민항기 조종사들은 늘 시뮬레이터 평가에 들어가기 전 이런 함정들을 사전에 서로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시뮬레이터 평가는 6개월마다 돌아오는데 후반기에 들어갈수록 정보가 돌고 돌아 함정에 걸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는 몇몇 운 없는 조종사만 희생양이다. 그래서 일부 평가관은 이런 운 없는 사람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평가임에도 사전 브리핑을 통해 함정에 대해 미리 언급하기도 한다. 실수를 통해 얻는 교육 효과와 실수를 방지함으로써 얻는 교육 효과에 큰 차이가 없다면서 그것이 공평한 평가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 조심해”라는 입소문과 함께 리스트에 오른 평가관들은 절대 미리 알려주는 법이 없다. 오히려 아주 교묘한 함정을 만들어 피평가자를 몰아간다. 그리고 그 조종사가 함정 앞에 다다랐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핀다.
--- p.25 「조종사들은 어떤 평가관을 선호할까?」 중에서
한겨울 시카고를 떠올려보자. 겨울철 시카고에는 폭설이 자주 내리는데 종종 일주일 동안 공항을 폐쇄시키기도 하는 등 매우 심각한 항공대란을 일으킨다. 어느 날 폭설로 대규모 이륙 지연 사태가 발생해 항공기들이 3시간 이상 택시웨이에서 대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하자(물론 이런 일은 정말 드물다. 엔진을 켜둔 상태에서 이렇게 장시간 순서를 기다리는 일을 민항사에 20년 있으면서 단 두 번 겪어봤다). 시간당 2톤씩 약 6톤의 연료를 이미 지상에서 소모한 두 대의 B777이 있다. 하나는 중동의 E항공사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K항공사다. 두 항공기 모두 예상치 못한 연료 소모로 목적지에 도착했을때 가지고 있어야 할 ‘법정최저연료’ 이하가 될 상황이다.
--- p.54~55 「충분한 연료 없이 이륙할 수 있을까?」 중에서
그의 말대로 바람 세기가 급변하는 알프스 상공에서 정풍을 받으며 강하하는 쪽은 오버스피드를, 반대로 배풍을 받으며 강하하는 쪽은 스톨(Stall, 속도가 줄어 양력을 상실하는 현상)에 근접하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한다. 조종사인 나에게 어느 쪽이 더 위험하냐고 물어본다면 속도가 떨어지는 스톨이라고 주저 없이 답할 것이다. 오버스피드는 스포일러를 최대한 세워 대처하면 되지만 순항 중이거나 상승 중일 때 최소 속도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은 대처하기가 쉽지 않아 대단히 위험하다. 이때는 엔진이 모두 최대출력인데도 속도가 슬금슬금 떨어진다. 곧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항공기는 양력을 잃어 추락할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조종사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들 알다시피 에너지를 얻기 위해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비상을 선포하고 빨리 강하하는 것이다.
--- p.101 「삶과 죽음의 경계, 에어스피드」 중에서
B737, B777, A380 같은 대형 민항기를 랜딩시키는 것과 세스나 같은 작은 항공기를 랜딩시키는 데 있어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비행학교에서 배우는, 곧 랜딩을 위해 활주로 끝을 바라보다가 침하를 느끼며 당김을 하는 것이 언제까지 적용될 수 있는 테크닉일까? 날씨가 좋은 날에는 B777, A330, A380 같은 대형 민항기 조종사들도 활주로 전체를 느끼면서 또는 활주로 끝을 내려다보면서 침하를 느끼며 당김을 한다. 그런데 민항기는 훈련기가 아니다 보니 늘 날씨가 좋을 때만 랜딩할 수는 없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안전하게 내려야 한다. 이런 제한된 시각참조물(Visual Referance) 환경에서 랜딩할 때는 다른 도움이 필요하다. 이때 참조하는 중요한 장비가 바로 전파고도계(Radio Altimeter)다. 실시간으로 시현되는 고도를 읽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100피트 이하에서 들리는 고도 콜아웃 소리를 듣고 플레어 시기를 판단하는 것이다. 곧 “50, 40, 30, 20, 10” 소리를 들으며 플레어 양과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
--- p.163~164 「랜딩을 돕는 요소들」 중에서
30분 체공 연료는 모든 민항기가 반드시 랜딩할 때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정연료다. 만약 어느 항공기가 법정연료 미만을 남기고 랜딩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사고’로 간주해 조사가 시작된다. 그럼, 왜 30분 미만의 대기연료만 가지고 랜딩하면 사고로 간주할까? 그것은 불가항력적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기장의 판단이 잘못되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타이베이의 안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근거 없는 확신만 가지고 빙고퓨얼에 도달했는데도 회항하지 않고 홀딩하다가 결국 연료 부족으로 비상을 선포하고 랜딩했다면 이는 기장이 옷을 벗어야 할 수준의 중대 과실에 해당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해보겠다. 그렇다면 기장은 어떤 근거로 빙고퓨얼인데도 회항하지 않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분명 타이베이에 안전하게 내릴 수 있다고 판단하는 걸까?
--- p.218 「‘빙고퓨얼’이란 무슨 말일까?」 중에서
기장은 첫 접근에서 내리지 못하고 복행하는 상황에 대비하려고 B777 기준으로 대략 2~3톤의 추가 연료를 더 탑재하려는 것이다. 기장들은 이를 두고 ‘내 주머니 속 보험’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문제는 최대이륙중량으로 모든 계획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비행계획서를 받아본 기장이 “난 이 연료로 못 갑니다! 추가로 2톤 더 급유해주세요!”라고 고집을 부려 2톤의 연료를 더 싣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다른 부분에서 2톤의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 이때 승객을 하기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승객들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알려주지 않지만, 승객과 같이 날아갔어야 할 수화물 수십 개가, 많게는 100개 가까이가 카고 베이에서 급하게 하기된다. 목적지에 도착해 수화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나중에서야 자기 수화물이 실리지 않은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조종사와 출발지 지상 직원이 벌인 일 때문에 욕은 목적지 지상 직원이 먹어야 하니 서로 앙금이 생길 만하다.
--- p.237 「왜 내 짐이 오지 않은 거죠」 중에서
크리스마스 전까지 배달할 편지와 화물이 폭증해 정기 항공편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항공사는 특별 전세 화물기를 띄웠다. 내가 뉴욕까지 몰고 간 화물기는 연말을 맞아 뉴욕에서 동아시아로 향하는 많은 양의 우편물을 싣고 바로 출발해버렸다. 이렇게 되면 다음 날 두바이로 돌아갈 조종사들이 문제다. 일시적 수요 때문에 투입한 화물기는 고정 편이 아니니 다른 정기 항공편을 타고 승객이 되어 돌아가야 한다. 이때 기장에게는 퍼스트클래스가, 부기장과 퍼서부터는 비즈니스클래스가 배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자주 있을까? 자주 있다. 화물기를 비행하게 되면 종종 겪는 일이다. 많은 민항기 조종사들이 화물기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선 공항 VIP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고, 퍼스트클래스에 앉을 수 있으니 일반 승객처럼 비행을 즐기게 된다. 그럼, 이렇게 이동하는 시간도 비행시간에 포함될까? 포함된다. 조금 의외일 수 있지만, 비행수당까지 지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 p.270~271 「크루가 승객이 되는 비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