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한 말들은 앞으로 자네가 ‘사실’을 직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인간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대부분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절대 자신을 대신할 수 없는 것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기 때문이지. 자네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 p.28
“부자가 되면, 지금이랑 뭐가 달라질 것 같은가?”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워지겠죠.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잖아요.” 뤄링은 평생 다 못 쓸 정도로 돈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해봤다. 제일 먼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숍으로 달려가 가격표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 사고 싶은 것을 전부 사버려야지. 생각만 해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 p.37
사실 우리는 모두 매일 연극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좋은 직원으로, 좋은 친구로, 훌륭한 시민으로, 훌륭한 자식으로, 훌륭한 며느리로, 훌륭한 사위로, 좋은 부모로, 심지어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이 중 자신이 정말 원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생 대작을 연기하는 우리는 상황마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때와 장소에 맞는 모습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 p.46
“잠깐만요, 그런데 내 에너지 파동이 어떤 형태인지 어떻게 확인하죠?”
“간단해. 주변 사람과 사물, 그리고 자네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면 바로 알 수 있어. 한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은 일정한 에너지 파동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비슷한 파동을 가진 사람, 사물, 사건을 끌어당긴다네. 이건 나중에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이루는 비결’을 배울 때 다시 얘기하도록 하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이루는 비결이요?”
--- p.69
잠시 후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웠다. 뤄링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즈밍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넓고 단단한 즈밍의 가슴이 좋았고, 무엇보다 즈밍에게 매우 민감한 부위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즈밍이 헛기침을 하더니 등을 돌리고 돌아누웠다. 그리고 1분도 지나지 않아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았다. 뤄링은 너무 화가 났고 그녀의 작은 자아도 움츠러들었다. 이날 뤄링은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 p.82
“요가 호흡법에서는 사람이 평생 호흡하는 횟수가 정해져 있다고 해요. 횟수는 고정이니, 한 번 호흡할 때 천천히 길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개나 원숭이는 호흡이 아주 짧고 빠르죠. 그래서 사람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거예요. 반면 거북은, 한 번 호흡하는 시간이 분 단위에요. 그래서 오래 사는 거죠. 호흡을 길게 하면 에너지 낭비를 막을 수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화가 나거나 긴장했을 때 저절로 호흡이 빨라지곤 했다. 그때마다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었구나. 아니, 내 소중한 생명이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 p.109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죠?”
“가까운 사이일수록 표현 방식이 중요하다네. 자신을 위한 본심에서 출발하면 스스로 상대방을 간섭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 그래서 함부로 상대방 영역에 침범해 그 사람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는 거야. 하지만 이런 방법은 전혀 효과가 없고 오히려 갈등을 야기할 뿐이지.”
“전 분명히 그 사람을 위해서 그런 거예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올바르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과 공유하고 싶은 거야. 그렇지? 하지만 ‘내 말대로 해. 내 말 안 들으면 큰일 나.’라는 식으로 본인이 정한 결과를 바라면 절대 안 돼. 바라는 것이 없어야 상대방이 쉽게 받아들인다는 뜻이야. 부부나 부모 자식 사이나 모두 똑같아.”
--- p.131
뤄링은 아파트 입구 앞에서 직감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펴보는데,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목격했다. 아파트 현관 앞에 즈밍과 긴 생머리 여자가 서 있었다. 뤄링은 두 사람이 입구로 걸어 나오자 깜짝 놀라 나무 뒤로 숨었다. 뤄링은 한동안 두 사람을 지켜봤다. 미소를 띤 채 대화하는 모습이 아주 친밀해 보였다. 너무 당황스러워 그저 지켜볼 뿐 어찌해야 좋을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제발, …… 제발 그냥 단순한 친구이길…….’
--- p.163
“왜 아니겠어요? 여러분이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직시하지 않은 채 이런 강좌나 정신 수양, 종교 활동에만 몰두한다면 아무리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러도 전혀 소용이 없을 거예요. 여러분이 애써 외면하려는 어두운 내면세계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깜깜하답니다. 이곳에는 하느님도, 부처님도, 다른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에요. 그 안에 숨겨진 그림자를 밖으로 가지고 나와 밝은 빛으로 치료하는 것도, 밝은 빛을 그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도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어요.”
--- p.194
한동안 생각을 정리한 후 눈을 떴는데, 문득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세상에, 리젠신! 리젠신은 뤄링을 보지 못했다. 그 옆에 젊고 예쁘장한 긴 생머리 아가씨가 서 있었다. 리젠신이 뭐라고 했는지 아가씨가 환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살포시 기댔다. 리젠신은 자연스럽게 아가씨 어깨를 감싸 안았다. 순간 뤄링은 이상하지만 아주 익숙한 감정에 휩싸였다. 놀랍게도 배신당하고 기만당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리젠신이 연인도 아닌데 왜 배신당하고 기만당했을 때의 감정이 느껴지지?
--- p.214
주간 회의가 끝난 후, 왕리의 호출을 받은 뤄링은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왕리가 뤄링에게 자리를 권하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리 팀장이 마케팅부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라는 건, 나도 잘 알지. 그런데 조직 개편이란 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워낙 많아서…… 리 팀장, 아마도 두 달 내에 다른 부서로 옮겨야 할 수도 있네. 아니면…… 아무튼, 미안하게 됐네.” 왕리는 차마 다음 말을 내뱉을 수 없어 사과로 마무리했다. 뤄링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왕리도 나름 힘든 입장일 테니, 따져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았다. “혹시, 어느 부서에 자리가 날지 아세요?”
---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