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이 있으면 취재하고, 확인이 되면 보도하라.’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제 취재 경험과 생각을 읽으시면서 정의롭지도 또 공정하지도 못한 우리의 경제에 분노하시기 바랍니다. 분노해야 세상은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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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터진 ‘라임펀드 주가조작 사건’ 그리고 2020년 세상 밖으로 나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두 사건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이 한 사람 있습니다. 주가조작 선수로 알려진 ‘이OO’입니다. 김건희 여사가 증권계좌를 맡겨 주식 거래를 일임했다는 바로 그 인물입니다. 선수 이OO는 현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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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보고서에 등장하는 그 8명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지금의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입니다. 38페이지 분량의 내사보고서에 ‘김건희’라는 이름은 딱 두 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 등장은 15페이지에 ‘도이치모터스 주주인 ‘김건희’를 강남구 학동사거리 근처 권오수 회장이 경영하는 미니 자동차 매장 2층에서 (주가조작 선수) 이OO에게 소개하고 주식을 일임하면서 신한증권 계좌 10억 원으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하게 하였음’이고, 두 번째 등장은 20페이지에 ‘2010년 2월 초순경 ‘김건희’ 신한증권 10억 원 자금 조달’이라고 적시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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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보고서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에 대한 작전은 2011년 초 종료됐습니다. 그리고 1년 뒤인 2012년 3월, 윤석열 당시 대검찰청 중수 1과장은 김건희 여사와 결혼하고, 그해 7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하 중앙지검) 특별수사 부장으로 승진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2013년 3월 경찰 내사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됩니다. 경찰 내사가 있던 시점에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중앙지검 특수부장의 부인이었습니다. 경찰은 ‘김건희’라는 이름을 모를 수 있지만, 검찰은 누군지 알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직을 두루 거친 특수통 부장 검사의 부인 이름이 적혀 있는 내사보고서를 받아본 담당 검사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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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라임 펀드 가입 피해자들이 은행에서 권유한 건데 설마 떼이겠냐는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우량 기업에만 투자해 안전하다는 라임펀드 자금은 실제론 듣도 보도 못한 코스닥 상장사들에 투자됐습니다. 그리고 라임과 결탁한 주가조작단은 라임의 투자금을 이런 정체 모를 코스닥 상장사들의 주가를 조작하는 밑천으로 사용했습니다. 주가조작은 사실 거의 성공할 뻔 했습니다. 배신만 없었다면 말이죠. 지금에 와서 보면 당시 주가조작단의 의도대로 주가조작이 성공했다면 일반 서민들의 돈 1조 6,000억 원이 환매중단 되는 라임사태가 어쩌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보면 황당하고 허황되기조차 한 라임 주가조작 사건의 시작은 2017년 ‘이인광’이라는 한 기업 사냥꾼으로부터 출발합니다.
--- p.70∼71
다른 일자리는 몰라도 기자는, 언론은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슬만 먹고 살 수야 없겠지만,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용기와 배짱도 있어야 할 테고 말이죠. 물론 8학군 출신이라 해서, 외고 출신이라 해서, 돈 많은 부모 뒀다고 해서 모두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직원이라면 몰라도 언론사 기자가, KBS 기자가 영어 단어 하나 더 많이 아는 게 취재에 뭐 그리 도움이 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언론사만이라도 입사 전형을 바꿔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토익점수 몇 점인지 따지지 말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얼마나 있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그래야 ‘기레기’가 아닌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짜 기자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 p.93
7광구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일본과 공동개발구역으로 묶여 개발이 중지된 상태입니다. 더구나 6년 뒤 2028년엔 7광구 전역이 일본 영토로 귀속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다른 건 몰라도 영토분쟁에서 ‘조용한 외교’란 없습니다. 조용하면 뺏기는 겁니다.
--- p.99
‘헌 집 줄 테니 새 집을 다오.’ 땅이 부족한 도심에서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헌 집 한 채를 허물고 새 집 두 채를 짓는 재개발·재건축입니다. 그런데 내가 살 새 집을 내 돈 들여 지으려 하지 않습니다. 남의 돈으로, 공짜로 새 집을 지으려는 데서 재개발·재건축의 문제점은 출발합니다.
--- p.151
오늘은 국토부 장관이 반지하 같은 취약가구 거주자를 위한 근본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습기 차고 어두컴컴한 반지하에 원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짜 서민들의 삶을 국가가 보호해주고 개선해주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 찾아옵니다.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는 전국 약 36만 가구에 당장 뭘 어떻게 해주란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지난달 정부는 ‘서민계층 민생안정대책’이란 명목으로 ‘종부세 감면’ 정책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잔인합니다.
--- p.193
용산 철도 정비창 부지도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초고층 오피스 빌딩들로 가득 채워진 국제상업지구로 개발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아파트 값이 올라갈 테니 말이죠. 토지임대부 아파트 짓겠다고 하면, 여기도 인근 주민들과 한바탕 일전을 치러야 할 겁니다. SH 김헌동 사장은 ‘백년주택’이란 이름의 반값 아파트를 추진하겠다고 내놓았습니다. 서울에 평균 3억원짜리 토지임대부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겁니다. 평소의 소신을 실행시킬 수 있는 권한과 자리가 주어졌으니 실제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경우도 수없이 봐왔으니까 말이죠.
--- p.213∼214
주가조작과 7광구. 부동산 문제에 이르기까지 책에서 기술한 제 생각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 입장에서 취재하면서 지켜보고, 물어보고, 판단한 점을 적은 것이니 말이죠. 당연히 저와 다른 생각, 다른 견해가 있을 겁니다. 이런 생각의 다양성, 그리고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풍토가 한국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고 저는 믿습니다. 모쪼록 제 생각을 읽고, 많은 분이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하지 않는 데 대해 분노하셨으면 합니다. 분노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 p.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