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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허기질 때 어린이책에서 꺼내 먹은 것들 (큰글자도서)

마음이 허기질 때 어린이책에서 꺼내 먹은 것들 (큰글자도서)

: 나를 채운 열일곱 가지 맛

큰글자도서라이브러리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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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허기질 때 어린이책에서 꺼내 먹은 것들
[도서] 마음이 허기질 때 어린이책에서 꺼내 먹은 것들
김단비 저 궁리출판
10% 11,700
마음이 허기질 때 어린이책에서 꺼내 먹은 것들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67*246*20mm
ISBN13 9788958207931
ISBN10 8958207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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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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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에 간 엄마는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신문지에 둘둘 싸인 참기름 병이 보따리 한 귀퉁이를 고소하게 채우고 있었고, 깨, 콩, 고춧가루, 온갖 말린 나물이며 잡곡이 야물게 싸매져 있기도 했다. 그걸 푸는 데만도 한나절이었다. (…) 이제 어른이 되고 보니, 엄마가 그때 어떤 마음으로 외갓집으로 갔을까 궁금해졌다. 곤궁한 살림살이를 표내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퍼주시는 대로 가득가득 가지고 오면서 기뻤을까. 아니면 다음엔 꼭 용돈이라도, 외할머니가 바를 화장품이라도, 아니면 작은 선물 하나라도 꼭 가지고 와야지, 그렇게 다짐하기도 하셨을까.
--- pp.19-20

생일이나 되어야 제대로 거한 밥상을 받아볼 수 있었던, 일 년에 딱 한 번 자신을 위한 밥상을 받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어린 일꾼들 모두가 지금은 날마다 생일상처럼 귀한 밥상을 삼시세끼 받고 있기를 바란다. 간절히.
--- pp.34-35

노동이 즐거우려면 그 노동의 결과물로부터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내가 비빔밥집에서 일할 때, 메뉴 가운데 가장 비싼 불고기는 한 번도 먹어보질 못했다. 새우 한 마리가 들어간 된장찌개, 때로 설렁탕 한 그릇, 그것이 최대치였다. 손님들이 시키는 불고기를 먹으려면 그날 하루 일당을 다 써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번 5일치 임금을 한순간에 옷값으로 써버리는 사장님 딸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쓴맛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 pp.46-47

아버지에게 요리는 무엇이었을까.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을 채우기 위해 요리를 한다는 건 가당치 않았던 일이었겠다. (…) 아버지를 고향으로 타임슬립 시키는 맛은 할머니의 고추장과 김치 맛이다. 맛있어서라기보다 그 시절, 공부하면서 오가던 길이 그리도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 pp.53, 55

지금 아이들은 자기가 갖지 못한 닌텐도를 가진 옆집 친구를 부러워하고,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처럼 되고 싶어 한다. 세상이 변했으니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기동이가 끊임없이 노마와 똘똘이, 영이를 찾아다니면서 제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같이 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들려주면 좋겠다. 나 혼자 잘 살면 재미없다,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혼자 놀면 재미없다, 혼자 먹으면 맛없다, 나눠 먹어야 훨씬 맛있다, 하고 말이다.
--- pp.66-67

때로 어떤 음식들은 입이 아니라 머리에 깊이 새겨지기도 한다. 특정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제멋대로 후각을 자극해 곤란하게 하기도 한다. 시장 두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맛을 경험한 덕분에 ‘손맛’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다.
--- pp.134-135

봄이면 엄마가 만들어주는 쑥버무리에서 들판의 생기를 느끼고, 여름이면 오이냉국 한 그릇에 살아 뛰는 계절을 몸에 담았다. 가을이면 도토리묵을 먹고 겨울이면 값이 한없이 싸지는 홍합탕에서 온기를 얻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계절을 먹게 했던 엄마의 밥상. 이미 우리 집에 마고할미가 와서 살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 p.139

인간 세상이 코로나로 시끄럽거나 말거나, 어름치들은 입에 자갈을 하나씩 물고 옮기면서 알이 안전하게 머물 자리를 만들었겠지. 어쩌면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날이 온다 해도 이 순한 눈을 가진 물고기들은 변함없이 계곡 한쪽에서 삶을 이어갈지 모르겠다. 모쪼록 사람들이 지금보다 십 원어치쯤이라도 자연 앞에서 겸손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p.159

그때 먹은 참새가 진짜 맛있었다고, 우리 아버지는 참 자상한 분이었다고 얘기하는 남편의 얼굴은 중년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 아이의 얼굴이었다. 남편에게 참새구이는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막강한 요리다. 유년의 따뜻했던 한순간, 그립고 고소한 그 시절의 기억으로 남편은 외롭지 않게, 충만한 상태로 어른이 될 수 있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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