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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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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년 12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404쪽 | 354g | 120*202*19mm
ISBN13 9791197537578
ISBN10 1197537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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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사라지는 것을 막는 것이 문학의 목표라고 믿었지만 정작 나 자신의 시간은 허비하고 있었다.
--- p.28

나는 창조와 하느님, 자연-이 비참함을 뭐라 부르건-을 향한 분노에 압도당했다. 우주적인 폭력에 저항하는 유일한 길은 삶을 거부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물론 그 경우에는 쇼샤를 함께 데려가야 할 것이었다.
--- p.180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진리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단 하나의 관념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야. 모든 것은 게임이야. 국가주의도, 국제주의도, 종교도, 무신론도, 정신주의도, 물질주의도. 심지어는 자살마저도.
--- p.196

로마가 멸망한 이유는 단 한 가지야. 낡게 되면서지. 하늘에도 새로운 것을 향한 열정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별은 스스로가 별인 게 싫어 결국에는 신성이 되지. 은하수는 자신에게 싫증이 나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 p.200

나는 세상이 항상 지금과 같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덕주의자들이 악으로 일컫는 것은 사실 삶의 질서였다.
--- p.265

인간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수많은 시체들이 묻힌 공동묘지예요.

나는 공동묘지이기만 한 게 아녜요. 내 뇌 속에는 정신병원도 있어요. 정신병자들이 사납게 웃는 소리가 들려요. 그들은 철창을 끌어당기며 탈출하려 하죠.
--- p.294

도라, 너는 대중이 마치 순진한 양이라도 되는 듯, 몇몇 악당만이 인간의 비극에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실제로는 대중의 다수가 살인을 하고 약탈을 하고 강간을 하고 히틀러, 스탈린과 같은 압제자들이 항상 저질렀던 짓을 하기를 원하고 있어.
--- p.296

나는 그 모든 행동이 내가 내린 결정이 아니라 어떤 알지 못하는 힘이 나를 대신해서 내린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환상은 내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결혼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하고, 전쟁에 나가고, 자살하는 것은 아닐까
--- p.301

“오, 아렐레, 너와 함께 있는 건 좋아. 나치가 쳐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돼?”
“죽어야지.”
“함께?”
“그래, 쇼셸레.”
“메시아는 오지 않아?”
“그렇게 빨리 오지는 않을 거야.”
“아렐레, 어떤 노래가 생각났어.”
“무슨 노래?”
쇼샤는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콩,
국수는 그녀의 이름,
그들은 금요일에 결혼을 했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았네
그녀는 내 품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오, 아렐레. 우리가 죽게 된다 하더라도 네 옆에 눕는 건 좋아.”
--- p.324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모리스. 그리고 자네도, 추칙. 자비로운 진리라는 게 없다면 나는 따스함과 기쁨의 순간을 주는 거짓을 받아들이겠어요.
--- p.346

나는 무기력이라는 힘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 내가 낯선 땅에 가 어떤 호텔 방이나 병원에서 아파 누워 있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내 집에서 죽고 싶어요. 낯선 공동묘지에서 휴식하고 싶지는 않아요. 히틀러가 내게 뭘 더 할 수 있겠어요.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시체는 전지전능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죠. 살아 있는 사람들 모두는 죽은 사람들이 이미 이룬 것들-완전한 평화와 전적인 독립-을 계속해서 바라죠.
--- p.348

죽음은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안타까워요. 그것은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값비싼 포도주와 같아요. 자살하는 사람은 한 번에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고자 해요. 하지만 그렇게 바보가 아닌 사람들은 죽음의 맛을 즐기는 법을 배우죠.”
--- p.349

한순간 살아 있었는데 그다음 순간 죽은 거죠. 슬프기도 하지만 그가 부럽기도 해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죽음은 긴 과정이에요. 우리는 성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죽기 시작하죠.
--- p.353

그녀는 멋진 잠옷을 걸쳤다. 그녀는 침대로 와 내 신발과 셔츠를 벗겼다. 나는 자면서도 모든 쾌락을 한꺼번에 맛보려는 그녀의 충동을 비웃었다. 그것이 바로 자살이야, 하고 나는 생각했다. 쾌락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흥분을 누리려 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이 나 자신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었다.
--- p.359

파이텔존이 한 말 중 내가 종종 되풀이하는 말이 있네. ‘인간은 비관주의나 낙관주의에 빠져서는 어떤 상상력도 갖지 못한다네
--- p.380

어쨌든 누군가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삶을 살았고, 사랑을 했고, 희망을 가졌고, 하느님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씨름한 사람이 그냥 사라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어떻게 된 노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점에서 그들이 여기 있는 것만 같네. 시간이 환영이라면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말라는 법도 없지.
--- p.385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쇼샤는 참 독특한 소설이다. 어떠한 자극적인 소재도, 깜짝 놀랄 만한 반전도 없는데 이상하게 한번 이야기에 발을 들여놓으면 좀처럼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다. 별것 없는 일상이 반복됨에도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는 까닭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에게서 풍기는 개성 때문일 것이다. 아이작 B. 싱어는 전혀 다른 인물들을 창조해냈음에도 인물 한 명, 한 명이 가진 입체성과 깊이를 아주 훌륭히 표현했다. 나치가 곧 쳐들어와 학살을 자행할 것이 분명한 바르샤바에서 이 다양한 인물들이 마주한 것은 죽음인 동시에 삶이다. 즉 죽음이 목전에 있기에 삶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알고 보면 인간의 삶을, 혹은 자신의 삶을 이해해보려는 간절한 독백이다. 그런데 문학이, 문학하는 인간이 하는 일이란 게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우크라이나에서 인간의 생명이 파리 목숨 취급당하고, 우리의 지정학적 위기 역시 그 못지않게 고조되는 가운데, 죽음 앞에 선 삶의 민낯은 어떠한지 이 소설을 통해 바라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일 듯하다. 아래는 중심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이다. 책 속 등장인물은 저마다 다른 태도로 이 파국을 맞이하고, 헤쳐 나가고, 때론 굴복하며, 몸소 겪어낸다. 각 인물은 다양한 삶을 대변한다.

끝없는 갈망은 곧 스스로의 숨통을 옥죄는 것, 하지만 그게 삶이 아니라면 뭘까
베티 슬로님


“죽음은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안타까워요. 그것은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값비싼 포도주와 같아요. 자살하는 사람은 한 번에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고자 해요. 하지만 그렇게 바보가 아닌 사람들은 죽음의 맛을 즐기는 법을 배우죠.”

아름다운 여성이자 출중한 능력이 있는 배우지만 끝없는 자기멸시와 회한, 그리고 갈망으로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인물, 베티 슬로님. 누구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돈과 아름다움 등 모든 것을 갖춘 데다 미국 시민권자라 히틀러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그녀지만 어쩐 일인지 이 모든 인물들 중 죽음에 가장 가까운 것만 같다.

하늘을 배반한 배덕자, 또는 하늘과 마주한 메시아
모리스 파이텔존


“어쩌면 혼돈이야말로 목적인지도 몰라. 자네는 카발라를 봤을 테고, 아인 소프가 세상을 창조한 후 처음으로 불을 밝히고 공허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대창조가 시작된 것은 이 공허 속에서였어. 이 신성한 무가 창조의 본질 자체야.”
“나는 하느님을, 목적도 모른 채 만든 자신의 은하계와 무수한 법칙 때문에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심하게 병든 존재로 생각하지.”

모리스 파이텔존은 석학, 가난뱅이, 합리주의자이면서도 종교에 대한 관심을 잃지 못하는 인물이다. 다양한 여성과 연애를 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주와 인간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해 마르지 않는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 자신 역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권태롭기 때문에 쾌락을 탐하는가, 탐하기에 권태로운가
(셀리아 첸트시너)


“어떤 사람들이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건 그들에게 손을 뻗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죠.”

단정하고 보수적인 옷차림에 조심스러운 몸짓을 보이는 기혼여성이지만, 그녀의 안에는 문학과 연극, 음악 심지어 신문 기사에서조차 성적 쾌락을 느끼는 관능성이 숨어 있다. 고아 태생이라는 가혹한 운명으로 미숙한 남자 하이믈을 남편으로 맞아야 했다. 풍부한 재능을 가졌지만 결국 운명 앞에 체념해버리는 그녀의 모습은 약하디약한 우리 인간의 보편성을 나타내는 것만 같아 가슴 찡하다.

살아 있으니 삶이 있다
(하이믈 첸트시너)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모리스. 그리고 자네도, 추칙. 자비로운 진리라는 게 없다면 나는 따스함과 기쁨의 순간을 주는 거짓을 받아들이겠어요.”
“소유의 시간은 곧 지나가고 새로운 본능을 가진 인간이 출현할 거야, 나눔을 실천하는.”

셀리아의 남편으로 어마어마한 부자이지만, 아이처럼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으며 서투르다. 하지만 이 왜소하고 무능한 남자에게 비범한 능력이 있는데, 그건 바로 삶을 감각하는 태도다. 그는 도덕과 관습, 의식 따위를 고찰할 능력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지만 어떤 삶이 ‘인간으로 사는 삶’인지 감각할 수 있는 능력만은 탁월하다.

삶에 어떤 기대도 없는 0의 인간. 텅 비었기에 더욱 투명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
(주인공, 아론 그라이딩거, 아렐레)

혼탁한 세상에서의 순수, 그것은 곧 창조
(쇼샤 슐디네르, 쇼셸레)


도서관에 갈 때마다 나는 어쩌면 그 책들 속에 나와 같은 기질과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찾게 해주는 계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 나는 세상이 항상 지금과 같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덕주의자들이 악으로 일컫는 것은 사실 삶의 질서였다.

“오, 아렐레, 너와 함께 있는 건 좋아. 나치가 쳐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돼?”
“죽어야지.”
“함께?”
“그래, 쇼셸레.”
“메시아는 오지 않아?”
“그렇게 빨리 오지는 않을 거야.” …… 그녀는 내 품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오, 아렐레. 우리가 죽게 된다 하더라도 네 옆에 눕는 건 좋아.”

주인공 아론은 소설가이고 쇼샤는 그의 어릴 적 소꿉친구로 몸과 마음의 성장이 멈춘 백치이다. 아론은 온갖 여성과의 만남을 이어오던 중 우연히 쇼샤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순간 아론은 자신이 지금껏 찾아왔던 것이 쇼샤였음을 깨닫게 된다. 명석한 젊은이와 어리숙한 소녀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주변의 우려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둘의 조합은 불안정하다. 하지만 둘의 만남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단 한 사람, 모리스 파이텔존은 예외로) 창조력이 피어난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20대에 처음 『쇼샤』를 접했을 때, 내 내면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던 소년의 가슴은 터질 듯 두근거렸다. 『쇼샤』는 사랑이 인간의 눈을 뜨게 하는 방식을,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랑이 지극히 이타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성석제 (소설가)
이 책을 읽으며 사랑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사랑하게 된 나를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 금정연 (작가)
쇼샤를 만나고, 질문이 남았다. 우리는 사랑이 아닌 걸 사랑이라고 부르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20세기 초 나치즘과 반유대주의와 이념의 갈등으로 혼란스럽던 바르샤바 유대인 공동체를 배경으로, 인간 개개인의 고통과 욕망을 들뜨지 않은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생과 사를 통찰한 『쇼사』는 아름다운 사랑의 서사다. 불가능한 이 사랑의 서사가 가능했던 것은 인간이 상실했지만 상실되지 않은 순수에 대한 아이작 싱어의 믿음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순수로의 회귀-‘몸을 돌리는 순간 끝나버리는’ 인생 전체를 온전히 바쳐야 하는 기나긴 여정인 듯하다.
-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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