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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_7
1장. 무엇이 유령인가 _13 (그리고 유령이 아닌가)? 2장. 죽음의 땅 _29 : 초기의 목격자들 3장. 철커덕거리는 사슬과 흰옷 _73 : 서양의 유령 4장. 걸신 _143 : 동양의 유령 5장. 라 요로나와 꿈의 시대 _173 : 라틴 아메리카와 남반구의 유령 6장. 증거를 탐구하다 _193 : 유령과 과학 7장. 리처드 왕부터 〈파라노말 액티비티〉까지 _219 : 문학, 영화, 대중문화에 등장한 유령 나오며: 유령은 어디에나 있다 _265 미주 _271 참고문헌 _284 이미지 출처 _287 |
Lisa Mo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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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ghost’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은 잠깐 스치듯 보이는 반투명한 형체, 또는 죽은 자의 혼령 같은 것이 떠오른다. 좀 더 생각해 보면 어둡고 폐쇄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사건이 떠오를 수도 있고 어디선가 듣거나 본 섬뜩한 이야기나 무서운 영화가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형성된 관념에도 불구하고 ‘유령’을 정의하는 일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오늘날 서양에서는 유령을 죽은 자의 혼령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그리고 다른 문화권에서는 유령을 전혀 다르게 보았다. 유령에 대한 믿음은 거의 보편적인 현상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죽은 영혼이 취하는 형태는 특정 사회의 집단적 상상력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 p.16 성 아우구스티누스(기원후 354~430년)는 유령에 관한 초기 기독교의 견해를 잘 보여준다. 그는 당시 기독 교도들이 유령을 만난 경험을 일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자의 영혼이라고 믿지도 않았다. 대신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령이란 천사들이 심어놓은 영적인 환상일 뿐이라고 말했다(또는 두렵거나 부정적인 악령과의 만남일 수도 있다). 800년이 지난 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1270년경에 쓴 『신학대전Summa Theologia』에서 “악령은 이교도의 미신을 믿게 하려고 죽은 사람의 영혼인 척하고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토마스는 시몬 마구스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전설적인 마법사 시몬 마구스는 사도들이 얻었던 성령의 힘을 자신도 얻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사도들은 그를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시몬을 둘러싼 여러 마법 이야기 중 하나에서는 그가 한 남자아이를 죽여서 그의 유령을 마법을 위해 ‘부리는 영혼’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데 토마스는 시몬이 실제로는 아이의 영혼을 가장한 악령의 섬김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 p.52 1877년 미국에서 활동한 강신술사의 수는 200만 명에서 최대 1,1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다. 강신술사들은 주로 자기 집 거실에서 교령회를 자주 열었다. 이때 공중 부양, 물체의 순간 이동, 으스스 한 음악, 환영幻影, 심령체 등을 보여주거나 들려주었다. 강신술사 중에 가장 인기가 많았던 사람은 윌리엄 대번포트와 아이라 대번포트였을 것이다. 두 미국인의 아버지는 수사계 형사였다. 폭스 가족이 경험한 유령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대번포트 형제는 그들도 유령과 소통해 보기로 하고 천상의 안내자는 ‘존 킹’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1864년 대번포트 형제가 발행한 팸플릿에는 ‘조니 킹’으로 확인된다. 실제 이름은 한때 자메이카의 총독이었던 헨리 모건 경이었다).19 --- p.100 위대한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도 유령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유령과 쉽게 소통하기 위한 기계 장치를 발명하려고 했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어떤가? 그는 유령을 믿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10명가량의 다른 사람이 동시에 같은 현상을 목격한다면 나는 믿을 수 있다.” 29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보존에 관한 이론은 유령 사냥꾼들이 유령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학적 근거로 이용되기도 했다. 에너지의 총합이 일정하다면, 우리가 죽을 때 그 에너지는 어디로 가는가? 사실상 이 에너지는 (열의 형태로) 자연 환경으로 퍼지거나 다른 유기체로 옮겨 가지만, 유령을 믿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몸에 있던 에너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계속 주장한다. --- p.110 ‘죽은 자의 날Dias de los Muertos’은 걸신 축제처럼 지역에 따라 축제의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축제는 토착 메소아메리카의 축제와 가톨릭 만성절(11월 1일) 및 만령절(11월 2일)을 혼합해놓은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가톨릭 선교사들이 켈트족의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 그들도 켈트족의 삼하인 축제를 받아들여 만성절 및 만령절과 함께 10월 31일(켈트족에게는 10월 31일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고, 11월 1일부터 새해가 밝는다)에 기념했는데, 그 결과 핼러윈이 탄생했다. 삼하인 축제 기간에는 공포적인 요소를 장난스럽게 표현하기도 했다. 켈트족은 새해를 이승과 저승의 장막이 가장 얇아지는 시기로 믿었다. 이런 몇몇 특징은 확실히 오늘날의 핼러윈 축제에 반영되고 있다. --- p.175 만약 근대의 허구적인 유령 이야기가 죽은 아버지가 햄릿을 찾아오고 유령들이 리처드 3세에게 “절망하고 죽으라”라고 촉구했을 때 시작되었다고 인정한다면, 앞에서 제기한 ‘유령’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질문과 유사한 질문 한 가지가 더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유령 이야기’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이는 쉬운 질문이 아니다. 피츠 제임스 오브라이언의 단편소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What Was It?』(1859)는 초기 유령 이야기의 사례로 분류되지만, 폐허가 된 수도원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복수를 열망하는 반투명의 존재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날 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에게 공격을 받고 어딘가에 갇혀 죽어가는 한 남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마지막에는 남자가 자신의 하숙집 마당에 묻히는데,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 미스터리한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 p.221 |
우리는 가끔 어두운 밤길을 걷다보면 무언가 나타났다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럴때면 온 몸에 차가운 한기가 느껴지며 기분이 오싹해지고,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린다. 흔해빠진 경험이지만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우리는 살짝 당혹스러워한다. 내 눈이 헛것을 본 것일까? 아니면 유령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경험한 것일까?
이러한 경험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 세대 전 지역에서 일어날 정도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렇지만 사후 세계와 유령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인류의 문명이 시대를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유령에 대한 믿음도 변화하고 발전했다. 유럽은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새로운 시대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수 세기 동안 종교나 마법의 영역에 있던 유령들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유령의 존재를 어린아이 장난 정도로 취급하며 무시했다. 토머스 홉스는 유령을 원시적인 사람들이 믿는 존재로 폄하하며 가톨릭의 고루한 개념과 동일시 했다. 하지만 이후 유령을 보았다는 목격담은 오히려 급증했다. 영국의 조셉 그랜빌 목사는 『사두키스무스 트리움파투스Saducismus Triumphatus』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그가 여기저기서 수집한 마녀와 유령 이야기 모음집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워낙 유명해져서 오늘날까지도 초자연적인 현상 전문가들에게 귀중한 연구자료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있다. 18세기 후반에는 강신술(죽은 자의 영혼을 영매(靈媒, medium)로 하는 특수한 인간을 통하여, 살아 있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한다고 믿는 것.)이 유행하면서 영매들이 전 세계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1877년 미국에서 활동한 강신술사의 수가 무려 200만 명에서 최대 1,1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등, 자동차, 전화, 영화 등 새로운 과학기술이 등장했다. 이제 강신술이나 유령에 대한 믿음은 퇴색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칼 융이 말했듯이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은 다른 것으로는 대체될 수 없는 원초적인 심상이었다. 칼 융 자신도 영혼과의 초자연적인 만남을 수차례 가졌다고 고백했다. 위대한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도 유령의 존재를 믿었다고 한다. 그는 유령과 쉽게 소통하기 위하여 기계 장치를 발명하려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유가족들은 세상을 떠난 가족들의 목소리를 언제라도 다시 듣고 싶어 했다. 그러한 소망에 따라 강신술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1882년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배럿과 저널리스트인 에드먼드 도슨 로저스는 심령 연구협회를 세웠다. 이 협회는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현상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최초의 단체였다. 이 협회는 텔레파시, 환각, 유령 등 700여 건의 사례를 연구하고 『살아있는 자의 몽환Phantasms of the Living』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또한 심령 연구 도서관을 세웠고, 1885년에는 미국심령연구협회American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를 설립했다. 1940년대에는 프랭크 포드모어가 초자연적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유령에 대한 사회의 태도가 바뀌었다. 유령은 공포적인 측면이 거의 제거되고 낭만적인 존재로 변해있었다. 여기에는 최초의 유령 만화 영화의 주인공인 캐스퍼 캐릭터도 한몫했다. 캐스퍼는 인간에게 겁을 주기보다 인간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꼬마 유령이다. 영화산업이 발달하면서 유령은 매력적인 소재가 되어주었다. 또한 세계적인 관광 붐에 편승하여 유령 관광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영국의 런던 탑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전형적인 유령 관광의 명소가 되었다. 이처럼 유령의 존재는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존재해왔다. 오늘날 미국에서 유령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절반 정도이고(3분의 1 이상은 유령이 나오는 집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고 믿는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보다 비율이 훨씬 높다. 예컨대 대만에서는 사무직 직장인 중 무려 87퍼센트가 유령의 존재를 믿는다고 한다. 이 사실은 유령이 여전히 우리의 관심과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책 『유령에 홀린 세계사』는 〈브램 스토커상 Bram Stoker Awards〉, 〈블랙 퀼 상 Black Quill Awards〉, 〈핼러윈 북 페스티벌 대상〉 수상에 빛나는 리사 모튼의 문명사 속 초자연 현상의 기원과 역사를 집대성한 기념비적 대작이다. 또한 세계 모든 유령에 대한 종합 보고서이기도 하다. 유령의 존재를 믿거나 믿지 않는 모두에게 이 책과의 만남은 매우 흥미롭고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
리사 모튼은 유령의 집, 강신술, 유령 사냥, ‘죽은 자의 날’뿐만 아니라 문학, 영화, 대중문화에 등장한 다양한 유령 이야기를 다룬다. 이 실체 없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책에는 그림과 사진, 영화 스틸, 일러스트 등 이미지 자료를 풍부하게 담았다. 이 책 『유령이 홀린 세계사』에서는 유령에 관한 모든 지식이 펼쳐진다. -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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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튼은 중국의 걸신 축제, 일본의 ‘오본(걸신 축제)’,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을 비롯해 브라질,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등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하게 전 세계의 유령 전통을 다루고 있다.” - 스펙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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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튼이 등골 오싹해지는 이 연구에서 보여주듯이 ‘죽지 않은 영혼’을 취하는 형태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유령에 대한 믿음은 거의 보편적이다.”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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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튼의 『유령에 홀린 세계사』는 수천 년에 걸친 유령의 역사를 차분하고도 경쾌한 필치로 잘 묘사했다. 모튼은 모든 시대와 문화를 관통하는 믿음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는지 탁월하게 보여준다. -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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