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점과 시각세포는 빛이 ‘어느 정도 있는지’, 즉 어느 정도 어둡거나 밝은지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시각세포가 여러 개로 나뉘고, 시각세포가 있는 피부 표면이 오목해지면서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지각할 수 있었다. 시각세포 사이에 경계가 생기거나 피부 표면이 오목하게 파이면, 직진하는 성질이 있는 빛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포착하고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7
포식자도 피식자도 생존을 위해 경쟁하듯 눈을 진화시켰다. 빛의 강약을 느끼는 수준의 안점에서 사물의 형태를 구분하는 정교한 눈으로 진화하기까지 50만여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40여억 년에 이르는 생명의 역사를 생각하면 무척 짧은 시기에 진화한 셈이다. 이러한 급격한 발달이 다양한 동물이 갑자기 출현하고 진화한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p.19
입구가 투명한 2개의 막으로 덮여 있는 ‘카메라눈’은 바늘구멍눈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카메라눈의 바깥쪽 막을 ‘각막’, 안쪽 막을 ‘수정체’라고 한다. 각막은 외부에서 들어온 빛을 굴절하고, 수정체는 두께를 바꾸며 빛의 굴절을 미세하게 조절하면서 초점 맺힌 상을 망막에 형성한다. 카메라눈은 빛이 들어오는 입구를 넓혀도 수정체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깨끗한 상을 맺는다. 또한 입구를 넓히면 많은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도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있다.
--- p.28
눈이 정면에 달린 육식동물과 달리 얼룩말 같은 초식동물은 눈이 머리 측면에 붙어 있어 대략 340도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내다볼 수 있다. 이 말인즉, 바로 뒤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본다는 뜻이다. 도망치기를 잘하는 초식동물은 적과의 거리를 재는 것보다 시야를 넓혀 적을 발견하자마자 잽싸게 달아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 p.52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시야 전체를 또렷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제한된 범위만 자세히 본다. 시야란 눈을 움직이지 않고 볼 수 있는 범위다. 카메라로 아웃포커싱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촬영하면 중심 이미지뿐 아니라 주변도 선명히 찍히지만, 우리가 또렷이 보는 부분은 시선이 향한 곳뿐이다.
--- p.58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개구리는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인식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먹잇감이 코앞에 있어도 움직이지 않으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개구리의 눈은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배경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먹이로 인식한다. 그래서 움직이는 곤충을 컴퓨터 모니터로 보여주면 먹이로 착각해 잡아먹으려고 한다.
--- p.84~85
자외선을 활용하는 생물은 곤충뿐만이 아니다. 들판의 꽃들도 자외선을 쉽게 감지하는 곤충의 눈을 이용한다. 자연계에 있는 꽃의 약 3분의 1은 색깔이 흰색이다. 많은 흰색 꽃이 자외선을 잘 반사하는 플라본과 플라보놀이라는 색소를 함유하고 있다. 이 현상에 의지하여 곤충들은 꽃의 꿀을 찾는다. 곤충들이 꽃가루를 운반해주면 꽃은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 p.92
도시에 사는 까마귀의 주요 먹이는 사람이 내놓은 음식 찌꺼기인데, 이들은 후각이 둔해서 대부분 시각에 의지하여 먹이를 찾는다. 이른 아침에 까마귀가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자외선 반사 덕분에 반투명한 쓰레기봉투 안을 볼 수 있다. 반투명해서 사람의 눈은 내용물을 잘 보지 못하지만 까마귀는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것이다.
--- p.93
심해의 빛 환경을 살펴보자. 잠수정을 타고 깊이 잠수하면 물속 빛이 청록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뀐다. 파장이 긴 빨간빛, 노란빛, 초록빛은 물에 쉽게 흡수되고, 수심 수백 m 깊이까지 도달할 수 있는 빛은 옅은 파란색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얀 태양빛에서 붉은색을 제거하면 청록색이 되고, 노랑이나 초록색을 제거하면 파란색이 된다.
--- p.112
아기의 시력을 잴 때는 시력검사표 대신 줄무늬가 있는 판을 사용한다. 흑백 줄무늬가 그려진 판과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회색 판을 동시에 보여주며 반응을 확인한다. 아기의 눈에는 줄무늬 판이 더욱 눈에 띄기 때문에 보통 그쪽을 쳐다본다. 그리고 줄무늬의 폭을 조금씩 줄이면 회색 판과 거의 구별되지 않으므로 둘 다 같은 빈도로 바라본다.
--- p.126
우리는 흔히 외부의 물체를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망막을 통해 보는 과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다. 돋보기 같은 볼록렌즈로 굴절한 빛을 스크린에 비추면 상이 뒤집혀 나타난다. 눈도 비슷하다. 눈에 닿은 빛은 각막과 수정체에서 굴절하고, 망막에는 상하좌우가 뒤바뀐 상이 형성된다. --- p.130쪽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다채롭다. 파란 그릇, 초록 잎, 노란 표지, 빨간 토마토……. 그 물체들은 파란색이나 빨간색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표면에 색이 묻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물체에 하얀빛이 닿으면, 표면의 원자와 분자가 빛의 일부를 반사하고 나머지 빛을 흡수하거나 투과하여 표면이 색을 띠는 것처럼 보인다.
--- p.161
빨강이나 노랑을 ‘더운색’, 파랑을 ‘찬색’이라고 부르듯 사람은 색에서도 따스함과 차가움을 느낀다. 실제로 여름에 방의 커튼 색을 노랑에서 하늘색으로 바꾸기만 해도 시원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또한 조명 색깔에 따라서도 온랭 감각이 달라져 체감온도를 다르게 느낀다.
--- p.184
블루 라이트가 눈에 나쁘다는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블루 라이트는 햇빛에도 포함되어 있다. 화창한 날 야외의 블루 라이트는 컴퓨터 모니터나 스마트폰의 약 100배나 강하다. 빛이 강한 야외에서는 동공 지름이 작아진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망막에 닿는 블루 라이트는 컴퓨터 모니터나 스마트폰의 수십 배에 이른다.
--- p.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