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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범한 사람들

아주 평범한 사람들

: 101예비경찰대대와 유대인 학살

[ 증보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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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문화 top100 1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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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84쪽 | 698g | 152*225*23mm
ISBN13 9791192913025
ISBN10 119291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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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자들의 이야기’ 같은 주제를 다루는 역사 서술은 관련자들을 단순히 악마적 존재로 규정하는 어떠한 시도도 분명히 거부해야 한다.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강제이송을 담당했던 예비경찰대대 대원들은 이 작전에 참가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거나 은밀하게 회피했던 다른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었다. 따라서 모든 학살자나 회피자의 행위를 최대한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한다면 동일한 상황에서 스스로 학살자 또는 회피자─양자 모두 인간─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인정은 사실상 두 가지 행동 양식으로 감정을 이입하는 시도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나는 설명이 변명을, 이해가 용서를 의미한다는 식의 상투적인 옛 설명 방식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 설명은 변명이 아니며 이해는 결코 용서가 아니다. 범죄자들을 인간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는 이 연구뿐 아니라 조잡한 일차원적 캐리커처 수준을 넘어서 홀로코스트 학살자들을 깊이 있게 다루는 어떠한 역사 연구도 불가능할 것이다. 유대계 프랑스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는 나치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 이렇게 썼다. “우리의 연구를 이끄는 목표는 결국 오직 한 단어 ‘이해(understanding)’이다.” 나는 바로 이 정신에 입각해서 이 책을 집필하고자 했다.
---「초판 서문」중에서

101예비경찰대대의 평범한 대원들의 절대 다수는 함부르크 지역 출신이었다. 약 63퍼센트는 노동자 계층 출신이었으나 숙련 노동자는 거의 없었다. (…) 대원들의 평균 연령은 39세였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정규군으로 복무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고 간주되는 37세에서 42세 사이여서 1939년 9월 이후 예비경찰직에 집중 징집되었다. (…) 전체적으로 101예비경찰대대 대원들은 독일 사회에서 낮은 계층 출신이었다. 그들은 사회적 신분 상승이나 지리적 이동을 경험하지 않았다. (…) 나이로 볼 때 그들이 성장한 시기는 모두 나치 이전이었다. 그들은 나치의 이념과는 다른 정치적 가치들과 도덕 규범을 아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가장 덜 나치화된 지역으로 명성 있던 함부르크 출신이었으며 다수는 정치문화적으로 반(反)나치 정서를 갖고 있던 사회계급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치의 비전, 즉 ‘유대인 없는 인종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집단학살자를 배출하기에 매우 유망한 집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5. 101예비경찰대대」중에서

유제푸프에서는 500명 가운데 단 12명 정도의 대원들만 트라프 소령의 제안에 본능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임박한 집단학살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애초부터 사살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한 대원들의 수는 왜 이렇게 적었을까? 트라프의 제안이 갑작스러웠다는 것이 부분적인 원인일 수 있다. 대원들은 유제푸프 작전에 대해 들은 순간 매우 “당황했다”. 그들은 아무런 사전 경고도 받지 못했고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트라프의 제안에 순간적으로 반응할 수 없었을 때 그들은 그만 첫 번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 그날 아침 유제푸프에서 트라프의 제안에 따라 앞으로 나서는 행동은 대원들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며 자신이 너무나 “약한” “겁쟁이”임을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한 대원이 나중에 강조했듯이, 그 누가 “감히” 집결한 부대원들 앞에서 “체면을 잃고자” 하겠는가? 여러 차례 사살을 집행한 끝에 결국 사살조 면제를 요청했던 한 대원은 “만약 누군가 내게 도대체 왜 처음에 다른 대원들과 함께 사살조에 참가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겁쟁이 취급을 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사살을 거부하는 것은 우선 노력하다가 나중에 더이상 계속 사살할 수 없게 된 것과 전혀 다르다고 덧붙였다. 대열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정말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훨씬 잘 알았던 또 다른 대원은 아주 간단하게 표현했다. “나는 겁쟁이였다.”
---「8. 집단 학살에 대한 성찰」중에서

경찰들의 기억에, 두 차례에 걸친 파르체프 유대인 이송 작전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모든 것은 순탄하게 진행되었으며 사살은 거의 없었다. (…) 경찰들은 파르체프 유대인들이 어디로 보내지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슈타인메츠가 나중에 고백했듯이, “이 이송이 유대인들에게 죽음으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두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수용소에서 살해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직접 사살에 참여하지 않는 한 이러한 사실 인식은 101예비경찰대대 대원들에게 아무런 마음의 갈등도 일으키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파르체프 이송으로 발생한 희생자 수는 유제푸프와 워마지 학살에서 발생한 희생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았는데도 말이다. 그들에게는 분명히 이 원칙이 적용되었다. “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사실 슈타인메츠 소대의 몇몇 대원들에게 기억 속에 가장 생생히 남아 있는 일은 그들이 파르체프 북쪽에서 경비를 설 때 하루 종일 질퍽한 풀밭에서 발이 젖은 채로 서 있었을 때였다.
---「10. 8월 트레블링카행 강제이송 열차」중에서

작전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어 대원들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파르체프 이송 작전과, 반면 그토록 잔혹한 것으로 기억된 일주일 후의 미엥지제치 이송 작전 사이의 극단적인 대비가 발생한 까닭은 무엇일까? 독일 측에서 보면 가해자와 희생자 사이의 수적 대비가 열쇠였다. 파르체프에서는 유대인 5000여 명의 처리를 위해 치안경찰 2개 중대와 1개 보조경찰대 등 총 300~350명이 배치되었다. 두 배 이상의 유대인들이 이주되어야 했던 미엥지제치에서는 치안경찰 5개 소대, 지역의 보안경찰, 1개 보조경찰대 등 총 350~400명이 투입되었다. 즉 후자의 경우 이송대상자 수에 비해 이송 작전에 투입된 병력의 비율이 전자보다 훨씬 적었다. 즉, 각 대원들에게 부과된 짐이 크면 클수록 그들은 더욱 잔인하고 야만적으로 행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10. 8월 트레블링카행 강제이송 열차」중에서

유제푸프에서 시작한 101예비경찰대대의 활동은 생존 유대인 수색 작전과 함께 거의 완전한 하나의 순환 서클을 형성했다. 학살, 강제이송, 경비, 봉쇄, 도피한 유대인 수색, 사살. 초기의 충격적인 학살에 참여한 이후 그들이 참가한 많은 대규모 이송 작전 동안에는 실질적으로 전 대원이 적어도 봉쇄 조치에 투입되었다. 그들은 수많은 유대인들을 열차에 몰아넣었지만 열차여행의 저편에서 벌어진 집단학살로부터는 내심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자신들이 강제이송한 유대인들의 운명과 자신들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 사냥”은 달랐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시 희생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마주 섰으며 사살도 개인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보다 한층 중요한 것은 경찰대원들이 다시 각자 상당한 정도의 선택권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살조 참여냐 회피냐의 선택권이 어떻게 행사되는지에 따라 대대가 얼마나 “강한 사나이”들과 “겁쟁이”들로 분열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유제푸프 작전 이후 몇 달 동안 많은 대원들은 점차 무감각하고 냉담한 그리고 여러 경우에는 매우 열렬한 살인자로 변해갔다. 반면 단지 제한적으로만 살인에 동참했으며 특별한 노력이나 별다른 처벌 없이 피할 수만 있다면 즉각 이를 회피했던 대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비동조자들 가운데 끊임없이 위협받는 자신의 도덕적 자율성 영역을 지키는 데 성공한 대원은 소수였다. 그들은 도덕적 자율의식이 살아 있는 한, 학살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서 여러 가지 행동 패턴과 영리한 전략을 개발해나갔으며 그 결과 냉혹한 살인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14. “유대인 사냥”」중에서

참혹한 학살 공포와의 직접적 대면은 더이상 학살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대원들의 수를 주목할 만큼 크게 증가시켰다. 반면 유대인 학살과 강제이송 및 경비에서 작업 분담이 이루어지고 학살 행위가 죽음의 수용소로 넘겨지자, 대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유대인 학살에서 여전히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일말의 책임 의식도 느끼지 않았다. 또한 직접적인 감시 없이 수행된 밀그램의 실험에서처럼 많은 경찰대원들은 직접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반유대주의적이었던 다른 동부 유럽 국민들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폴란드 주민들 가운데서는 대규모 살인 보조부대─악명 높은 자원 보조경찰대─에 한 명도 모집되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폴란드인들에 대한 독일 경찰의 증언은, 물론 폴란드인이 얼마나 반유대주의적인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단서를 주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폴란드인에 대한 독일 경찰의 시선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폴란드인들에게 자신들의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많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17. 독일인, 폴란드인, 유대인」중에서

앞서 언급한 두 종류의 잔학행위-전시 야만화와 인종주의-는 야만화를 일으키는 전쟁이라는 맥락 안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조종된 잔학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이와 다르다. 그들은 광기, 비통함, 좌절감이 아니라 계산에 따라 행동한다. 유럽 유대인 전체의 몰살을 추구한 체계적인 나치 정책의 집행 과정에 가담했던 101예비경찰대대는 분명히 후자에 속한다. 이미 1차 세계대전에서 전투에 참가했던 몇몇 고참 대원들이나 러시아에서 폴란드로 이전 배치되었던 하사관 몇 명을 제외하면 101예비경찰대대 대원들은 아직 불구대천의 적들과 전투나 유혈 충돌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화가 나서 총 한 방을 쏘아본 적도, 자신이 사격의 대상이 된 적도, 전쟁 중에 동료가 옆에서 죽어가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따라서 이전에 있었던 전쟁 경험에서 나온 또는 이후의 전쟁에서 증폭된 전시 야만화는 유제푸프에서 경찰대원들의 행동에 직접 영향을 준 요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학살이 시작되자 이들은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해갔다. 마치 전투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최초 한 사람을 향해 총을 쏠 때 느꼈던 전율과 공포가 지나고 살인이 일상적 임무가 되어가면서 그것은 점점 더 쉬워졌다. 이런 측면에서 경찰대원들의 야만화는 그들이 저지른 행동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였다.
---「18. 아주 평범한 사람들」중에서

101예비경찰대대가 보인 집단행동은 우리를 매우 불안하게 하는 깊은 함의를 지닌다. 오늘날 인종주의 전통에 물들고 전쟁과 전쟁 위협 때문에 포위 심리에 사로잡힌 사회가 많다. 어디서나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권위를 존중하고 권위에 따르도록 가르치며, 사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거의 기능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어디서나 사람들은 각자의 직업 분야에서 출세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모든 근대 사회에서 드러나는 삶의 복잡성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관료화 전문화는 공식적인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개인적 책임감을 점점 희석시키고 있다. 실질적으로 모든 사회 공동체에서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은 개인들의 행동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도덕적인 가치기준을 설정한다. 만약 101예비경찰대대 대원들이 당시의 조건 아래서 학살자가 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유사한 조건이 주어질 때 어떤 집단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8. 아주 평범한 사람들」중에서

첫 출판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제기했던 여러 쟁점들에 대해 수많은 연구 성과가 나왔기 때문인데, 이 가운데 우리의 지식과 관점을 보완해준 연구 성과들을 4개 영역으로 구분하여 중점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그동안 치안경찰에 소속된 다른 부대에 관한 많은 사례연구가 나왔다. 이 연구들 덕분에 101예비경찰대대가 보인 행태가 전형적인 사례이거나 대표성이 있는지, 아니면 그들의 독특성이 뚜렷한지 등의 쟁점에 관해 훨씬 더 충실하게 비교사적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최종해결”에 가담한 “평범한” 학살자들의 동기에 관한 다양한 후속 연구가 이루어졌다. 셋째, 예비경찰대대에 속했던 룩셈부르크 출신 대원들에 관한 사례연구가 나왔는데, 이는 “독일인” 대원과 “비독일인” 대원〔독일에 점령된 유럽 국가 출신의 대원〕의 행태를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넷째, 101예비경찰대대에 관한, 이미 알려졌거나 새로 발굴된 사진 자료를 세심하게 분석한 연구들이 나왔다.
---「3판 후기: 이후 25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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