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오토바이 라이더 사망’ 사고 기사가 나오면 뒤따르는 반응들이 있다. “보나마나 신호위반 했을 텐데 죽어도 할 말 없다” “내 앞에서 얼쩡거렸으면 밀어버릴 텐데”. 물론, 극단적인 악플들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죽음이 이렇게 조롱받아도 괜찮은 걸까? … 개별 라이더를 욕하고 처벌한다고 한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사고의 순간은 찰나이지만, 사고에는 맥락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라이더의 생계와 기업의 이윤, 소비자의 편리라는 복잡한 욕망의 연대 속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한 줄의 사고 소식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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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는 공공이 깔고 시민이 이용하는 공간이자 배달기업이 이용하는 공장, 배달노동자가 일하는 일터다. 시민, 소비자, 음식점 사장, 배달기업, 노동자는 도로를 각각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이 화해할 수 없는 충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평화로운 도로를 만들 수 없다. 아비규환 같은 현실의 도로는 핸드폰 화면 속에 들어오는 순간 평화롭고 반듯한 공간으로 바뀐다. 가상의 도로 위에 배달료와 배차 지시가 떨어지고 노동자들은 현실과 가상공간을 어지럽게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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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초보 라이더가 처음으로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첫 사고를 당하고 첫 산재 신청을 하는 과정을 돌이켜보면 적어도 난폭운전만이 배달노동자 사고의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 총 27명의 청년이 배달을 하다가 사망했는데, 이 중 3명은 첫 출근날, 3명은 이튿날, 6명은 보름 안에 사망했다. 난폭운전을 할 줄도 모르는 초보 라이더가 배달업에 뛰어드는데 그 누구도 그가 배달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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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라면 위험한 곳에 ‘주의’ 표지판이 곳곳에 부착되어 있고, 위험 물질에는 ‘경고’ 스티커가 붙어 있다. 노동자들은 이런 표시를 통해 작업장에 존재하는 위험을 인식하고 피한다. 일에 익숙해지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경험도 쌓인다. 그러나 배달라이더들의 작업장에는 ‘주의’ 표지판이나 ‘경고’ 스티커가 없다. 게다가 우리 작업장은 계절과 날씨, 교통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햇빛의 강도나 비와 눈발의 세기에 따라 우리가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지고, 바람이 거세게 불기라도 하면 오토바이가 밀려 나도 모르게 차선을 넘게 된다. 폭우가 내리면 도로 곳곳에 구멍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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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노동자들은 인간이 아닌 AI의 배차와 그들이 결정한 배달료에 따라 움직이다가도 AI가 처리할 수 없는 사건 사고가 발생하거나 오류가 발생하면 인간과 대화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 상담노동자들은 이때, 기업과 기계를 대신해서 배달노동자의 분노를 마주해야 한다. … 이때 알고리즘은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감정의 충돌이 벌어지는데, 역설적이게도 상담노동자들이 상처받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난 배달노동자에게 기계나 알고리즘 같은 대답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종종 배달노동자들은 인간 상담원과 대화하면서 자신이 대화하는 상대가 챗봇인지 인간인지 헷갈려 한다. 인간 같은 기계와 기계 같은 인간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의 노동이 통제되고 있다.
--- pp.116~117
라이더들은 핸드폰 앱이 5000원짜리 콜을 수락하겠냐고 물을 때, 수락할지 거절할지 한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 콜을 거절하면 7000원으로 오른 콜이 올 수도, 3500원으로 하락한 콜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라이더들은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다. 60초의 제한 시간 동안 삶을 건 도박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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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배민 AI는 직선거리 기준으로 배차했다. 오토바이가 오를 수 없는 산과 계단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 극적인 장면은 강과 바다가 있는 부산에서 나왔다. 광안리 근처에서 배달을 했던 라이더는 AI가 배차해주는 배달을 거절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 강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바로 건너편에 목적지가 있지만, 강을 건널 수 있는 모터보트는 없었기 때문에 라이더는 다리를 향해 한참을 돌아갔다. 이상하게도 그런 콜을 한 번 받기 시작하니 AI가 비슷한 코스를 계속 배차하기 시작했다. 라이더의 기분 탓일지, 직선거리 기준으로 가까운 콜이라 생각해서 AI가 라이더를 위해서 배차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참다못한 라이더는 줌을 향해 비명을 질렀다.
--- pp.160~161
실험을 모두 마친 다음날, 실험에 참여했던 쿠팡이츠 라이더가 징역을 갔다면서 내게 문자 하나를 보냈다. 쿠팡이츠는 거절을 많이 하면 ‘일주일 접속 금지’라고 문자로 통보하는데, 라이더들은 이를 ‘징역 갔다’라고 표현한다. ‘캐릭터 삭제(캐삭)’다. 누군가는 우리를 자유로운 플랫폼노동자라 부르지만, 우리는 족쇄와 ‘캐삭’ 사이를 아슬아슬 달리는 평범한 노동자일 뿐이다.
--- pp.172~173
산업화가 낳은 인간 소외를 날카롭게 비판한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인간이 마치 기계 부품처럼 쉼 없이 돌아갔다면, 라이더들은 스마트폰 앱 속에서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한다. 손님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인간이 아닌 귀여운 캐릭터가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공장은 인간을 기계처럼 대했고, 앱은 노동자를 인간이 아니라 데이터로 대한다.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지만, 오늘날 노동자들은 “우리는 데이터가 아니다. 우리는 캐릭터가 아니다”라고 외쳐야 할 것 같다. 디지털 일터에 AI라는 새로운 기계, 새로운 컨베이어벨트가 도입됐다. AI에 대한 규제와 통제 없이는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안전 대책도 없다.
--- pp.195~196
사건보다 긴 여운을 남긴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배달노동자에게 갑질한 당사자가 학원 셔틀 차량을 도와주는 노동자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잘나가는 사람인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가해자 역시 돈을 잘 버는 직업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롱거리가 됐다. ‘셔틀 도우미 주제에’라는 반응이 나왔다. ‘배달노동자 주제에’라고 말한 사람에게 ‘셔틀 도우미 주제에’라고 반응하는 사회에서 갑질 문제가 해결되기는 힘들다.
--- pp.201~202
사실 실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배달노동자들은 상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보통 음식점에서 해결한다. … 대부분의 점주들은 흔쾌히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하지만, 몇몇 업주들은 화장실 관리가 어려워서인지, 귀찮아서인지 화장실이 없다는 거짓말을 한다. … 화장실 사용만 막는 게 아니다. 배달노동자들이 가게 안에 있는 걸 손님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땀내가 난다는 이유로 한여름과 추운 겨울에 밖에서 대기하라고 하는 일부 점주들도 있다. 호텔 로비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추워도 밖에서 대기하라고 한다. 라이더들도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가게에 피해가 될까 봐 미안해서 가게 안으로 잘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추방의 경험은 라이더의 가슴에 차곡차곡 상처를 쌓는다.
--- pp.224~225
오직 이륜차로 배달 일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고 겪을 수 있는 특수한 경험들을 산업안전 정책이라는 보편적인 정책으로 만드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달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SPC 공장에 있는 소스 조리기가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큰 줄 몰랐고, 거기에 사람이 끼면 죽을 정도로 위험한지 몰랐다. 석탄발전소를 청소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사람이 혼자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우리가 매일 보고 운전하는 도로 위도 마찬가지다. 내가 네 바퀴로 안전하게 지나가는 도로 위의 맨홀 뚜껑이 두 바퀴로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충격
적인 일이다.
--- pp.258~259
난폭운전을 하는 라이더들이 결국 살아남는 배달 생태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난폭운전을 욕하는 시민들과 그런 라이더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기업을 욕하는 시민들과, 이런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하는 라이더들이 각자의 도로 위에서 일방통행하며 달리는 일이 지겹도록 반복될 것이다. 안전 장구 착용과 교통법규 준수는 당연히 라이더의 몫이다. 그러나 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교통법규를 지키는 라이더가 배달산업 생태계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 pp.267~268
손님의 배달앱에서 열심히 달려가던 귀여운 배달라이더 캐릭터가 갑자기 멈추는 순간이 바로 사고의 순간이다. 손님이 배달을 시키고 실시간으로 배달라이더를 확인했다면, 배달노동자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음식점이나 플랫폼에 항의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은 핸드폰 화면 속 배달노동자는 영정으로 장례식장 단상에 놓인다. 배달산업은 배달노동자의 생명을 먹으며 계속해서 성장했고, 도로는 전쟁터로 변했다. 전사자는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고 살아남은 자는 ‘딸배(배달노동자를 비하하는 은어)’가 된다. 죽음조차 존중받지 못해, 배달노동자의 이야기는 ‘감성팔이’라는 모욕을 당한다. 장례식장 쌀밥과 댓글 속 욕을 반복해서 먹다 보면 반박할 기력조차 사라진다.
--- p.270
죽음을 쫓아가는 걸 멈추고 죽음을 생산하는 공장과 기계를 멈춰보려고 노력했다. 이 책의 취지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배달공장을 멈추고 어떠한 위험 요소가 있는지 다 같이 들어가서 살펴보자는 제안이다. 배달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기업은 더 이상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임금, 고용뿐만 아니라 산업안전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이 쪼개지고 유연화되는 것만큼 기업도 쪼개지고 유연화되고 있는 중이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빈칸만이 존재한다. 이 빈칸을 채우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이 책이 쓰일 수 있다면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다.
--- p.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