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찬아, 너 지금 어디냐?]
성재 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한창 신차 리뷰를 쓰고 있던 나는 습관적으로 키보드를 두들기며 대답한다.
“사무실인데요.”
[지금 시간 돼? 일이 하나 들어왔는데.]
성재 형은 전 직장 선배로, 지금은 대리운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그 회사는 슈퍼카의 대리운전도 가능해서 유명 기업 사장이나 연예인들이 즐겨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형은 나와 같은 자동차 잡지 기자나 카레이서들을 잘 구슬려 종종 슈퍼카의 대리운전을 맡기곤 했다. 우리로서도 슈퍼카를 몰 기회가 흔치 않고 페이도 꽤 짭짤한 편이어서 이런 제안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 30분쯤 기다렸을까. 스테이크 하우스 문이 열리며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나타났다. 웃고 있는 입매가 왠지 눈에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
이제 생각났다. 너 김유찬이지? 맞지?”
반가움에 목소리를 높이며 그가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난 얼떨결에 그의 얼굴을 본다.
“나야, 정이준. 기억 안 나?”
실내가 어두워서 얼굴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입매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낄낄대며 웃었다. 저 웃음소리, 그리고 웃을 때마다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가면서 살짝 드러나는 입동 굴……. 그래, 기억난다. 하얗고 예쁘장했지만 묘하게 심술 맞던 꼬마의 이미지와 그의 얼굴이 겹쳤다. 그 꼬마가 지금 이 녀석이란 말인가.
“아……, 정이준!”
“이게 얼마 만이야? 벌써 20년이 다 됐겠네. 네가 전학 간 게 6학년 때던가?”
“아니, 5학년 때였어.”
아버지 사업이 망하기 전, 내가 사립학교에 다녔을 때 정이준은 같은 반 친구였다.
---「1. 사건에 연루되다」중에서
우리는 건배를 하고 위스키 잔을 비웠다. 그리고 어린 시절 얘기와 축구 얘기, 자동차 얘기를 하면서 위스키 한 병을 다 마셨고 이것도 부족해 보드카와 테킬라까지 마셨다. 너무 마신 나머지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난 바 옆에 있는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바에 서 있는 정이준을 보았다. 술을 그렇게 마시고도 멀쩡한 그는 웃으면서 새 술을 따고 있었다.
목이 말라 눈을 떴다. 창문 가득 햇살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침이었다. 숙취로 머리가 욱신거렸다. 소파에 엎드려 자던 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통째로 꺼내 입을 대고 마시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다. 이런, 지각이다. 난 정신을 차려보려 했다. 그러나 주변이 계속 핑핑 돌 뿐 내 몸은 마음과 달리 흐느적거리며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출근해야 할 텐데. 내 앞에는 정이준이 병을 손에 쥔 채로 바닥에 엎드려 있다.
난 비틀대며 녀석에게 다가가 흔들어 깨웠다.
“야, 나 가야겠어.”
하지만 미동이 없다. 이상했다. 그의 몸이 차갑고 딱딱하다.
“이준아, 이준아, 일어나 봐. 인마, 일어나!”
난 그가 살아 있기를 바라며 다시 몸을 흔들었다. 그는 눈을 뜨지 않는다. 이번에는 코에 손을 가져다 댔다.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었다. 그가 죽은 것이다.
---「1. 사건에 연루되다」중에서
“벤츠 놔두고 왜 마세라티를 타고 오셨어요?”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들어와서요.”
“이런……, 왜요?”
“아직 원인은 모릅니다. 서비스센터에 맡기고 왔어요.”
“거 참……, 이상하네. 갑자기 웬 엔진 이상이야? 그대로 탔으면 어쩔 뻔했어요? 큰일 날 뻔했네.”
조우식이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 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유찬 씨도 혹시 모르니까 주의해요. 거기 회사,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니까.”
난 성재 형이 들려준 얘기가 생각났다. 7~8년 전에 눈길에서 일어났다는 위너 수행 기사의 교통사고. 결과는 운전 미숙으로 처리됐다지. 하지만 오늘 내가 차의 이상을 겪고 나니 그 얘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기분이 찜찜하다.
“내가 유찬 씨였으면 호신술이라도 하나 배워둘 텐데. 복싱이나 유도, 뭐 그런 거. 수행 기사라는 우리 직업이 의외로 위험해요. 사장들, 적이 은근 많거든요. 차에 누가 장난을 칠지,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르니까.”
---「5. 거듭된 만남」중에서
7~8년 전, 운전 미숙으로 눈길에 미끄러져 죽었다는 전전 수행 기사와 업체에 선물을 돌리다 심부전이 와서 죽었다는 전 수행 기사 이연. 이들의 죽음까지 생각하니 박 실장의 잠적이 심상치 않다.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6. 납득할 수 없는 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