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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

안전가옥 오리지널-2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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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54g | 128*195*30mm
ISBN13 9791191193879
ISBN10 11911938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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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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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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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학 기술을 가장 낭만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될 것이며, 현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이 될 것입니다.”
---「재이는 알고 싶다」중에서

여러분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 속 그곳. 그런 곳이라곤 없어서 늘 도망치듯 정처 없이 떠도는 자신과, 수도 없이 많은 행복한 기억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8990만 원짜리 기기를 사들이는 삶, 심지어 발명해 내는 삶. 우리들의 삶은 닿을 수도, 닮을 수도 없을 것이었다. 영원히.
---「재이는 알고 싶다」중에서

재이가 그 아비규환 속에서도 이 기기를 챙겨 나온 것은, 물론 경찰과 리사 일행 앞에서 말했던 대로 값나가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피바다 앞에서는 정말로 경황이 없었지만, 자기 방에서 미리 싸 놓은 가방을 손에 쥘 때쯤엔 그러고 보니 당장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사모님이 최근 며칠간 이 작은 기계를 통해 대체 무엇을 보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게 너무, 너무, 너무나 알고 싶었다.
---「리사는 갖고 싶다」중에서

다음 순간, 리사는 미친 듯이 직원 전용 통로를 뛰어서 드넓은 활주로로 나갔다. 아무런 근거는 없지만, 직감이 그를 이끌었다. 상대적으로 날렵한 경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저 멀리서 보였다. 작은 리사의 몸으로는, 아무리 달리고 또 달려도 도저히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활주로라는 것이 이렇게 길고 넓었 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리사가 뛰어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비행기가 드디어 이륙을 준비하는 듯 천천히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리사는 이를 악물고 비행기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속도를 내기 시작한 비행기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가속이 붙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한계에 다다른 것을 깨달은 리사는 쏟아지는 눈물을 멈추지도 못하고 화풀이라도 하듯 충동적으로 주머니에 들어 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리사는 갖고 싶다」중에서

리사는 그게 뭐든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마음에 재이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만든 기기인데도 참으로 오랜만에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차마 지난 기억을 돌아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재이는 살고 싶다」중에서

“그때… 너 활주로에서. 뭐라고 했어?” 그 순간, 리사의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그날의 절망감, 분노, 신기루처럼 아른거리던 재이의 모습, 뜨거웠던 아스팔트와 딱딱했던 신발 밑창, 바스락거리던 트렌치코트와 손가락 끝에 요철이 느껴지던 피스톨, 그리고 그대로 머리에 대고 확 방아쇠를 당기고 싶었을 만큼- 간절했던 한마디.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던 말.
---「재이는 살고 싶다」중에서

몇 년 사이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를 통해 기억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데 도가 튼 유저들은 직관적으로 알았다. 그 생생한 고통과 괴로움, 모욕감…… 이것은 진짜 있던 일들이 틀림없다. 리오가 어린애처럼 질질 짜고, 이사회와 주주들이 고성을 높이며 서로 싸우는 동안 리사는 홀로 단상 위에 서서 그 모든 꼴을 내려다보며 서서히 실감하는 중이었다. 진짜로 세상이 뒤집어져 버렸다는 것을.
---「리사는 있고 싶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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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복수를 꿈꿔 보지 않은 여자가 세상에 있을까. 다른 여자의 고통과 마주할 때마다 함께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던 여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도둑, 협잡꾼, 냉혈한, 거짓말쟁이, 규칙 위반자이자 포기를 모르는 승부사이기도 한 이 소설 속 여자들은 자신들이 머무르도록 그어진 선 밖으로 질주하며 우리가 때려 부수고 싶어 했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사막 한가운데서도, 지옥에 떨어져도 뻔뻔하게 웃으며 살아 돌아올 주인공이 함께 절벽을 뛰어넘자며 손을 내민다면 당신은 어떨까? 주저하기 전에 기억하자.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 최지은 (작가)
사람들의 기억이 업로드되어 행복하고 짜릿한 기억들만 언제든 다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면, 그런 기억들이 타인에게 생생하게 공유될 수 있다면, 인간의 기억과 망각이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이 질문은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이미 인간의 두뇌가 외부로 확장된 시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외부 기억 장치와 클라우드 접속 단말 노릇을 하고, 저마다 SNS를 이용해 보고 듣고 느끼고 누린 것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지금, 민지형은 아직 오지 않은 신기술인 “라이프 랜드스케이프”가 빚어낸 미래를 통해, 첨단 기술과 자본주의가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는 시대의 명암을 그려 낸다. 마치 SNS의 확장판 같은 발랄한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이 업로드되어 공유되고 재생되는 콘텐츠가 될 때, 경험한 기억과 생생한 망상이 뒤섞이고, 때로는 해상도를 높이거나 낮추며 수정될 때, 기억을 콘텐츠로 만들고 다시 체험하는 과정에서 어떤 기억이 타인의 의지에 따라 삭제되거나 변조될 때, 우리의 “기억”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람들의 비밀에 관심이 많고 선을 넘나드는 트릭스터 가사 도우미 재이와,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를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근원을 알지 못한 채 아버지의 억압에 짓눌려 있는 리사, 그리고 재계를 대표하는 그룹 호라이즌의 총수로 냉혹한 신처럼 군림하는 노아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기억”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누군가의 끔찍한 기억이 타인의 음습한 욕망의 먹이가 되고, 개인의 기억을 권력을 쥔 자들이 입맛대로 손댈 수 있는 시대, 타인의 업적을, 정치인의 비리를, 기업의 과실을, 대형 참사와 노동자의 죽음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지우고, 다크웹을 통해 누군가의 악몽 같은 순간들이 “죽이는 파일”의 형태로 돌아다닐 때, 이 강고한 벽에 균열을 내는 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잊고 싶지 않은, 혹은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의 힘이다. 누군가는 욕망을 위해 이용하는 타인의 기억에, 누군가는 공감하고 연대하며 복수에 나선다. 시스템에서 그 기억이 지워지더라도, 혹은 그 당사자가 죽는다 해도, 기억을 이어받는다는 행위는 뜻을 이어받는 일이다. 망각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무지가 주는 마음의 평화라면, 고통을 기억하고 의지를 이어 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미래로 가는 열쇠다. 기억하고 기록하여 과거를 미래로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 영광이 있으라.
- 전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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