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옛날을 추억할까요? 레트로 열풍, 복고와 Y2K 트렌드의 거센 파도 속에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 파도에 누구보다 휩쓸린 사람이 저였거든요. 그러니까 추억을 테마로 한 책까지 썼겠죠. 사람마다 추억을 그리워하는 이유와 마음의 결은 다 다를 거예요. 그래도 90년대에 태어났던 밀레니얼들은 같은 추억을 공유합니다. 각자의 놀이터, 집, 교실, 문방구가 다 다르고 ‘데덴찌(엎어라 뒤집어라)’를 부르는 말들도 다르지만 결국 그리움의 대상은 같으니까요. 우린 비슷한 노래를 부르고 비슷한 TV 프로를 보고 2002 월드컵을 겪고 버디버디와 싸이월드에서 친목을 다졌어요.
그런데, 싸이월드가 부활한대도 예전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은 다를 거예요. 어린 시절의 마음은 지금 불러오기 힘든 감정이기에, 학창 시절 느꼈던 맛과 우정과 고민은 다시 찾기 힘든 것이기에, 지금은 없어진 아이템과 패션, 전자 기기들이 있기에 우리는 그때를 그리워합니다. 그 추억은 가끔 잔잔한 파도로, 또는 거센 파도로 옵니다.
---「서문 - 추억을 파도타는 기분」중에서
혜민이가 “나중에 우리 둘이 마지막 10대를 보내며 술 마시자."고 했다. 울컥했다. 우리 좀 불쌍한 신세인 것 같아. 고3 공부만 하다 끝나면. 10년 정도 청소년, 10대, 소녀였는데... 이제 곧 아니겠지. 평생 가장 소중히 남을 나의 학창 시절. 나는 그 끝자락을 정말 후회 없이 살고 있나?
---「2008년 고2 일기장」중에서
수련회에선 한밤중에 무서운 이야기 대전이 펼쳐졌다. 몇 명은 코 골면서 잤고, 나는 주로 깨어서 얘기를 듣는 쪽이었다. 애들 대여섯 명이 이불 속에 엎드리고 머리를 맞댔다. 핸드폰이 있는 애들은 폰 불빛을 켜서 약하게 어둠을 밝혔다. 우리는 학교보다 이런 시간에 중요한 능력들을 학습했다. 맺고 끊고 휘어잡는 스피치 능력과 잘 들어주는 스킬, 귓속말을 들릴 듯 말 듯 효과적으로 하는 법, 내 이야기만 하지 않고 다음 턴을 넘겨주는 미덕, 괴담을 평소에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풀어내는 암기력 등. 속삭이는 목소리로 이어 나가던 프로 이야기꾼들.
---「공포 특급 과몰입」중에서
멋진 가족과 선생님이 있고 아구몬 같은 평생 친구를 만나는 꿈을 꿨던 무지갯빛 마음들. 그때 몸은 작았어도 마음은 지구만 했다. 무엇보다, 무려 지구를 지키던 그들 앞에서 내 자잘한 고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의 주인공들은 목숨 같은 사랑이 악당에게 붙잡히고 전 지구적 재난이 닥쳐도 불굴의 의지로 이겨냈는데. 역시 10대의 체력과 정신력은 지구를 지키고도 남는구나. 30대의 나는 의자에 앉아 입으로만 감탄하고 있다. 만화 노래는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어릴 땐 아무 생각 없이 들었지만, 고난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어른이 되면 가사가 더 깊이 박힌다.
---「만화 주제가 ‘위로 리추얼’」중에서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를 타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었고, 스키장의 중급 코스를 태연한 표정으로 누볐던 나. 언덕 위에서 내려오기 직전에 난 주저하지 않았다. 결과에 대한 생각 없이 현재에 집중했다. 난 그토록 겁이 없었는데 왜 지금은 겁 많은 어른이 된 걸까?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유년의 안전한 세계에서 나왔더니, 모든 삶의 과정과 실패가 무서워졌다. 결과가 무서워서 시작도 도전도 잘 못하게 됐다. 어른이 되는 게 겁쟁이가 되는 거라면 어른 안 하고 싶다. 다시 그때처럼 용감해지고 싶다. 아무래도 인라인스케이트를 다시 타볼까 고민 중이다.
---「겁많은 어른이 돼버린 아이」중에서
신문에 ‘세기말’ 단어가 자주 보이던 시기였다. IMF 버전의 환경 운동인 ‘아나바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운동이 지나가고, 곧 2000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Y2K라는 세기말적이고 상징적인 이름의 가수까지 나왔다. 1월 1일이 되는 순간 컴퓨터가 다운되든지, 뭐 어떤 거든 큰 사건이 터질 거라는 루머와 세기말의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들 불길함을 느꼈지만 속으로 삼키고 쉬쉬하며 말하지 않았다. 사이비 단체들에선 난리를 쳤다. 그건 92년 기독교 쪽에서 발생한 ‘휴거’ 소동과도 비슷했다. 사람들도, 나도 은근히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처럼, 나만 망하는 건 싫어도 다 같이 망하는 건 괜찮다는 심리가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새천년의 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치미 뗀 빨간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해가 뜨자 사람들은 밀레니얼엔 새 세상이 열릴 거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밀레니얼 세대’로 이름 붙여졌다. 새천년의 희망을 품고.
---「신문 밖의 밀레니얼」중에서
지금은 잃어버린 능력들이 몇 개 있다. 그 능력들을 어릴 땐 자연스레 구사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능력 유효기간이 끝난 히어로물 속 히어로처럼, 다시 불러와지지 않았다. 부르는 버튼이 어디 있을 법한데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찾을 마음조차 없거나.
대표 능력 중 하나는 ‘미술을 사랑하는 능력’이다. 색종이와 함께 수많은 공작물을 붙이고 잘랐던, 물통에 물을 받으러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수채화를 칠했던 기억. 크레파스로 무지개를 1차로 칠하고 2차로 검은색을 덧칠한 다음, 검정 칠을 뾰족한 막대로 긁어내면 예쁜 스크래치 작품이 됐고, 물감을 종이 반쪽에만 그리고 나머지 반쪽 면을 덮은 후 떼면 ‘데칼코마니’가 됐다. 학교에서 미술 시간을 제일 좋아했던, 미술학원에서 데생을 배우던 기억들이 행복하게 남아있는데, 어느새 그걸 잊고 산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그림을 안 그리게 됐고, 내가 미술을 왜 좋아했는지 어떤 표정으로 신나 하며 그렸는지 다 잊은 것이다.
---「잃어버린 능력 히어로물」중에서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평소처럼 밝게 웃으면서 친구들을 잡으러 학교 계단을 뛰어다니던 나였다. 나를 보고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혀를 차셨다.
“민정아, 노는 게 그렇게 좋니?”
네, 그렇게 좋았어요. 영영 못 잊을 만큼. 다시는 그래볼 날이 오지 않더라구요.
---「달려라 여고생」중에서
특히 우리 반엔 전설의 ‘야설왕’이 있어 어둠의 파일을 얻기가 쉬웠다. 그녀는 ‘야설왕’과 ‘야동왕’ 무려 두 분야에서 왕위를 석권한 권위자였다. 그녀의 자료실은 야설들이 백몇 개는 저장된 보물 창고로, 꾸준한 업데이트도 잊지 않았다. 가끔 함박웃음을 지으며 “야, 내가 그거 2편 구해왔어.”라며 내 옆구리를 찔러주곤 했다. 소설을 같이 읽다가 지치면 책상에 엎드려서 또 읽었다. 그건 “……..” 대사 공백의 끝에 숨소리가 많고, 캐릭터와 스토리는 오직 야한 장면을 위한 빌드업일 뿐인, 대부분 신음으로 이루어진 야릇한 세계였다. 왠지 영상보다 텍스트로 읽으면 더 몰입되고 끝없이 상상하게 돼서 우린 새벽까지 그런 걸 읽었다.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우리가 사전으로 공부하는 줄 알았겠지만.
---「야한 소녀들」중에서
남은 친구들끼리 빈 교실을 둘러보고 나가는 길이었다. 나는 공연이 끝나고 가장 나중에 들어가는 배우처럼, 마지막까지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때의 난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나는 이걸 다시 못 보게 되겠지. 이 교실을, 딱딱한 의자를, 나무 사물함을, 운동장 골대를 다시 볼 일이 없겠지. 교복 입고 뛰어다닐 일도 없고. 앞으로 펼쳐질 시기마다 우리는 새롭게 어른이 되겠지. 둘도 없이 친했던 친구들은 멀어져 버리고, 몇십 년이 지나면 어릴 때 기억은 까맣게 잊고 말겠지. 우연히 학교 근처에 발길이 닿더라도 힘주어 돌아서겠지. 학생 때보다 힘든 순간들이 아마도 많을 텐데, 너무 힘들 땐 이 추억을 열어보고 울고야 말겠지.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학교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