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네는 그 소설과 만났다. 지갑에 들어 있던 도서상품권이 생각나서 훌쩍 들른 작은 서점. 입구 근처 신간 코너에 눕혀져 쌓여 있는 파란 표지에는 아기자기한 폰트로 『소녀의 행진』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
그날, 자기 전에 책의 감촉을 확인해두고자 서두만 읽어보려고 방에서 무심히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의 손맛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정신을 차렸더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커튼을 젖혀둔 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동트기 직전인 걸 알고는 놀랐다. 아침놀이 어디론가 달아나려는 듯한 하늘이었다. 세계는 어제까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러나 아카네에게는 이곳이 아주 조금 다르게 보였다. 폭발할 것 같은 경탄을 느꼈다. 이 책은 아무도 알 리 없는 나 자신을 이해해준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봐주지 않는 내면을 봐준다. 존재해도 된다는 희미한 권리를 이 이야기가 부여해준 것 같았다. 아카네는 이런 감상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기회가 절대 오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카네는 그럴 수 없다. 다만 사실은 기대하기도 했다. 어딘가에는 이 이야기에 그려진 소녀와 똑같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까.
--- pp.13~14
다들 본질을 전혀 모른다. 결국 아카네는 지금도 여전히 『소녀의 행진』에 품은 진정한 감상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못했다. 그저 고요히, 만들어진 이야기에 기대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언젠가 주인공 소녀처럼 자신도 달라질 수 있다고, 그저 혼자 꿈을 꾸면서.
--- p.15
오로지 한 가지 감정에 지배된 채 행동하는 자신을 아카네는 절실하게 혐오했다. 사랑받고 싶어. 아카네는 아마도 태어났을 때부터 지녔을 그 터무니없이 거대한 감정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어느샌가 알아차렸다. 그때는 도망치려고 해도 이미 늦은 상태라, 견고한 감옥 혹은 단단한 목줄과도 같은 그 감정이 언제나 아카네의 반응과 행동을 지켜보고 제한했다. (…) 진정한 자신을 끝없이 위협하는 그 감정을 아카네는 증오한다.
--- p.27
어깨에 닿는 위치까지 기른 머리카락, 까만 코트, 하얀 스커트. 나약한 소리를 짓밟는 것처럼 발소리를 크게 울리는 부츠. 그리고 그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절대 도망치지 않는 의지를 선언하는 듯한 옆얼굴. 순간, 아카네는 아주 일순간이지만 사랑받고 싶은 자신을 잊었다.
“아이……?”
아카네는 뒤를 돌아보고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걸어서 멀어지는 상대방의 뒷모습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지면에 떨어져 누군지 모를 자에게 짓밟혔다.
--- p.31
언제든 그저 자기답기를 추구한다. 보폭도 외모도 행동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형태로서 이 세계에 존재하게 하고 싶었다. 그 마음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아이는 좋았다.
--- p.36
“그 녀석도 아이라는 이름?”
“음, 네, 맞아요.”
“호오. 나도 아이야. 그래서 돌아본 건데.”
알고 있어.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는 마음속 아카네와 대조적으로 겉의 아카네는 “우와!” 하고 놀람을 표현했다.
“이런 일이 다 있네!”
“그러게. 그럼 그 아이에게 안부 전해줘.”
태평하게, 그러나 정말로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올곧게, 아카네에게만 전하는 말을 남기고 아이는 문 쪽을 향했다. 저런 가식 없는 모습, 진지한 모습도 책에서 읽은 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전부 꿈이라고 아카네가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대로 아이를 놓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 p.42
처음에는 아이가 이야기 세계에서 나왔다고 착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이야기가 오늘부터 시작되려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이야기에 그려진 주인공의 행동이나 심경을, 경험하지 않은 것까지 자기 이야기처럼 느낀 것도 납득할 수 있다. 이제부터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확인해보자. 그 자리에서 결심한 아카네는 처음으로 『소녀의 행진』에 대해 느끼는 자신의 진정한 감상 중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이 소설, 주인공 여자아이가 저랑 똑같아요.”
그녀의 내면까지 말하지 않은 건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젠가 아이와 함께라면. 아카네는 꿈을 꾼다.
--- p.70
이런 연출과 드러나는 효과의 흐름을 두고 주리아는 종종 스토리라고 표현한다. 그건 주리아가 아이돌로서 살기 위한 신조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은 언제나 스토리 안에 있어야 한다.
--- 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