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탈출했습니까?” 그가 다시 센터장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루시엔.” 마침내 케네디가 밝혔다.
헌터는 두 눈을 감고 고통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루시엔?” 가르시아는 헌터와 케네디를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루시엔이 누굽니까?”
헌터는 다시 눈을 떴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입을 연 쪽은 케네디 센터장이었다.
“루시엔 폴터.”
그 이름을 큰 소리로 입 밖에 내는 순간, 그의 얼굴은 괴로움으로 온통 납빛이 되고 말았다.
가르시아는 지금 파트너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전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만약 그가 헌터를 잘 알지 못했다면, 분명 자신의 파트너가 겁에 질렸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 pp.13~14
“그러니까 네 말은…….” 헌터가 마침내 이야기를 끝맺자 가르시아가 입을 열었다. “이 루시엔이라는 인물이 평생 살인을 저질러왔다는 거지? 그, 뭐냐…….”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의 공기를 탐색하며 적절한 어휘를 찾았다. “그러니까, ‘살인 매뉴얼’을 만들고 싶어서?”
“아니, 겨우 그런 것 따위가 아니야.” 헌터가 바로잡았다. “루시엔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문서로 남겼어. 피해자의 이름과 주소, 그들을 죽이고 싶다는 욕구를 촉발한 특별한 요인들, 살인 계획, 직접 실험한 각기 다른 범행 수법의 세부 사항들과 시그너처, 자기가 느낀 감정들까지 전부. 그 일지들은 살인 전과 행위 중 그리고 살인 후의 정신에 관한 연구, 즉 ‘정신 이상과 혼란에 대한 심리학적 자기진단’의 방대한 기록으로 평가됐지. 따라서 매뉴얼은 아니야. 그는 백과사전을 쓰고 있었어.”
“찾아낸 공책이 몇 권이라고?”
“쉰세 권.” 헌터가 대답했다. “각 일지가 약 300쪽 분량이었어.”
가르시아는 루시엔의 ‘백과사전’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완전히 미친 짓이야.”
--- pp.52~53
“(…) 그는 자기가 체포된 것에 대해, 그리고 자기를 막은 것에 대해 자신의…… 이렇게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연구’를 종료시킨 것에 대해 당신을 원망하고 있어요. 분명히 화가 나 있고, 그의 말을 빌리자면 지난 3년 반 동안 시간을 돈 세듯 세면서 복수를 계획했죠. 설상가상으로 그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의 도시에요. 그가 당신을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까?”
그 가능성을 이미 고려해봤던 헌터는 잠시 동안 웨스트의 완강한 시선을 마주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가 마침내 시인했다. “하지만 날 쫓아온다 해도 당장은 아닐 겁니다.”
“이해가 안 되는데.” 웨스트가 반박했다. “왜죠?”
“루시엔은 먼저, 자기가 하겠다고 말한 대로 반드시 할 테니까요.” 헌터가 대답했다. “이 상황을 게임으로 전환할 거예요. 자기에겐 없지만 우리에게는 적용될 규칙이 아주 많은 게임으로, 그가 모든 걸 통제하는 게임이죠. 이미 무고한 일곱의 생명을 앗아 갔는데, 섬뜩한 것은 아직 게임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에게 일곱 명의 목숨 따윈 그저 몸풀기에 불과해요.”
웨스트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삐딱한 코를 긁었다.
“루시엔이 곧장 날 찾아오면 좋겠군요.” 헌터가 덧붙였다.
--- pp.137~138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거라 생각하자, 루시엔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흥분에 휩싸였다. 그에게 살인이란 항상 개인적인 일이었고, 일대일의 교전이었다. 그의 영혼을 황홀감으로 가득 채우는 건, 피해자들의 생명이 빠져나갈 때 그들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행위였다. 그는 그들의 공포를 음미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니 그들이 죽을 때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의 삶이 끝나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들의 몸속 원자 하나하나를 장악하는 절망과 고통을 맛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루시엔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살인 장치’를 직접 만들어보니 준비하는 내내 이상하고 짜릿한 흥분감이 느껴졌고, 시간이 갈수록 그 짜릿함이 커진다는 사실 또한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모든 것을 게임으로 바꾼 것, 특히 헌터를 상대로 게임을 벌이는 것은 그저 그에게 흥분을 더하는 역할을 할 따름이었다. (…) 그래. 루시엔은 생각했다. 불꽃놀이를 하기에 정말 좋은 밤이야.
--- pp.209~210
식당 안은 피해자가 둘뿐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혈이 낭자했다. 하지만 바닥 대부분과 벽, 가구, 커튼, 심지어 천장까지 뒤덮은 믿을 수 없는 양의 피는 그들 앞에 펼쳐진 참사의 일부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방의 중앙에는 6인용 식탁이 있었는데 의자는 식탁의 양 끝에 하나씩, 양옆에 두 개씩 놓여 있었다. (…) 루시엔은 흡사 마지막 만찬과 같은 장면을 연출해놓았다. 붉은 실크 드레스를 입은 어머니는 북쪽의 식탁 끝에, 짙은 줄무늬 정장을 입은 아버지는 아내의 바로 맞은편에 앉혀놓았다. 처음에는 그들의 복장이, 누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를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두 시신 모두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 p.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