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마음들을 다시 마주할 때] 최은미 소설가의 6년 만의 장편 소설이자 202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여기 우리 마주」의 연장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정체 모를 공포와 단절을 겪었던 우리의 지난 모습들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서로의 생채기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지나온 자리를 마주하게 하는 소설. - 소설/시 PD 김유리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 나는 웃으면 눈꼬리가 처지는 반달눈에 흔히들 강아지 상이라고 하는 얼굴이었다. 마음먹고 웃으면 거의 예외 없이 호감을 샀다. 안 웃으면 참해 보이고, 웃으면 참한 데다 귀엽기까지 한 얼굴이 되는 것이다. 내 외모에 대한 그런 반응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놀랍도록 일관되게 이어졌다. 나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여자답다는 말을 들었고 아무리 귀엽게 보이고 싶지 않아도 이미 생긴 게 귀여워서 어쩔 수 없이 귀여워지곤 했다. --- p.24
어느 때보다도 서하의 마음을 다치게 한 채로 수미는 서하와 떨어져 격리된 상태였다. 서하도 수미도 서로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한 채였다. 아무리 서하가 보고 싶어도 격리실 문을 부수지 않는 한 수미는 지금 서하를 만날 수 없었다. --- p.73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수미가 무언가를 더는 견디지 않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러면 나도 내가 있는 곳을 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치워두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 p.87
만조 아줌마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나는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만조 아줌마는 내게 그 말을 했다. 열두살의 내게 그 말을 들려주었다. 나리 니 탓이 아니라고. 너를 그렇게 둬서 미안하다고. --- p.255
마음이 수없이 헤집어지더라도 나는 수미와 서하가 겨우내 서로를 충분히 겪길 바랐다.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 보길 바랐다. 수미가 실감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내 공방 문을 열어놓을 수 있었다. 서하를 보고 있는 어른이 너뿐이 아니라고, 너만이 아니라고, 가족이어서 해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라고, 가족이 아니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믿어보라고, 가족 아닌 그이들이 저기 있다고, 수미가 체감할 때까지 나는 언제까지고 말해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격렬한 폭풍이 오기 직전의 풍경을 가슴에 품고 산다.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려는 의지와 정상에 부합하려는 고투가 저변에 깔려 있긴 하지만, 불안은 조금씩 차오르고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은 자기파멸에까지 닿을 듯 위태롭다. 최은미 소설 속 인물들처럼. 『마주』의 ‘나리’와 ‘수미’가 그러하듯이. 이 소설은 우리 모두가 지나온 팬데믹 시대를 첨예하게 그리면서도, 타인을 부수면서 스스로도 기꺼이 무너지려 하는 인물들의 날선 충동을 깊숙이 파고든다. 우리의 취약함을, 우리의 광포함과 쓸쓸함을 아프도록 깊숙이. 하지만 좋은 소설이 대개 그렇듯 최은미의 『마주』 역시 개인의 불안과 외로움을 펼쳐 보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몫에 대한 질문을 아우른다. 팬데믹이 새로운 과거이면서 오래된 미래가 된 시대, 『마주』는 소중히 읽혀야 한다.
- 조해진 (소설가)
최은미의 소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숨 막힐 정도로 정교하게 인간의 삶과 인간의 마음을 관찰한다. 그것은 강렬한 빛을 비추며 백일하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기보다는 질식 직전에 극도로 예민해지는 종류의 감각에 가깝다. 우리에게 타자란 그토록 절박한 문제임을, 그리고 동시에 그토록 절실한 존재임을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최은미가 그리는 여성들이 내뱉는 저 절박한 호흡들은 서로를 ‘마주’하며 교환된다. 그리고 그 교환 속에서 고통과 사랑이, 증오와 이해가 겹쳐지는 것이다. 최은미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고립과 거리두기의 시대였던 팬데믹을 통과하며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