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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 양장 ]
리뷰 총점9.8 리뷰 40건 | 판매지수 4,644
베스트
한국소설 top10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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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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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0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0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230g | 108*190*20mm
ISBN13 9791160263299
ISBN10 1160263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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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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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여름에 베어 먹은 복숭아의 떫은 단맛이 어떻게 엄마의 몸 안에 퍼져갔는지, 배를 앓던 날의 베개 너머 꿈의 입구는 어떤 세상을 열어주었는지, 첫딸을 처음 품에 안은 순간 뜨겁게 눈물을 쏟아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런 것도.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그 안의 기록물과 전시품, 서적과 함께 사라지듯 엄마가 엄마의 시간을 안고 이 지상에서의 자취를 거두어간다고 생각하면……. 허무했다.
--- p.14

한 사람의 부재로 쌓여가는 마음이 집이 된다면 그 집의 내부는 너무도 많은 방과 복잡한 복도와 수많은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리라. 수납공간마다 물건들이 가득하고 물건들 사이 거울은 폐허의 땅을 형상화한 것 같은 먼지로 얼룩진 곳, 암담하도록 캄캄한 곳과 폭력적일 만큼 환한 곳이 섞여 있고 창밖의 풍경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그런 집…….
--- p.19~20

“엄마한테 어디 가고 싶은지, 뭘 구경하고 싶은지 제대로 물은 적이 없네. 알려 하지 않았어. 미연의 말에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 괜히 술만 더 따라 마셨다. 꿈의 마지막 장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모습으로 그 추운 숲길을 혼자 걸어가던 엄마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자꾸 소환되어서이기도 했다. 단지 꿈이란 걸 알면서도, 어린 엄마가 감당했을 숲의 추위가 나는 걱정됐다.
--- p.46~47

내가 만든 엉성한 칼국수에도 엄마의 손맛이 감돌았다. 나는 오랜만에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맛보고 씹고 삼키는 행위에만 온전히 몰두했다. 비워진 그릇과 접시를 보고 나서야 내가 거의 두 시간에 걸쳐, 그야말로 잡념이 사라진 상태로, 요리하고 먹는 행위를 즐겼으며 엄마가 아픈 뒤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다. 건강하게 더운 기운이 뼈와 내장 사이를 가득 채워갔다.
--- p.73

사실 옷은 시작에 불과했다. 엄마의 양말과 머플러, 엄마가 직접 겨자색의 굵은 실로 뜬 털모자에도 내 손은 뻗어갔다. 엄마의 물건에서 구불거리는 흰 머리카락을 발견한 날이면 핀셋으로 조심조심 떼어내 빈 유리병에 모으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건 그 나름대로 즐거운 취미가 됐다. 엄마가 쓰던 비누, 스킨과 로션, 영양크림을 나도 썼고 엄마에게는 애장품이던 금목걸이라든지 팔찌를 하고 산책을 나간 적도 있었다. 내 몸에서는 엄마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 p.75

“모진 말을 듣고 나왔지. 얼른 고향으로 가서 너희 할머니한테 다 일러바치려고 했어.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 보다. 그때는 참 고약한 말이었을 텐데, 이것 봐라, 이젠 기억도 잘 못하잖니.” 모든 건 잊힌다고, 세상에 잊히지 않는 것은 없다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 밤, 나는 엄마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달콤하고 긴 잠을 잤다.
--- p.89

“그런 마음은 참 좋은 거야.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 말이야.”
노파가 다녀가고 이틀 뒤 J읍에 내려온 영은 선배는 내 이야기를 듣자 그렇게 대꾸했다.
“좋은 건가?”
“좋지. 살아보니 그보다 좋은 건 없더라.”
--- p.112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雨水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슬픔으로 짜여졌지만 정작 그 슬픔이 결핍된 옷을 입은 채, 그리고 그 결핍이 이번 슬픔의 필연적인 정체성이란 걸 가까스로 깨달으며…….
--- p.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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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소설을 읽는 것은 언젠가 크게 발을 헛디뎌 무너져 내렸을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힘을 비축해두는 일이고, 적대적인 얼굴을 하고 불쑥 나타난 타인 앞에 잠시 멈춰 그가 나쁜 건지 아픈 건지를 헤아려볼 수 있는 숨을 준비해두는 일이고,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이 시대의 가장 약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어두는 일이다. 『겨울을 지나가다』를 읽으면서는 이미 아프게 겪었던 죽음들을 다시 제대로 애도할 기회를 갖는 동시에, 언젠가 이런 커다란 상실을 마주했을 때, 시간을 들여 요리한 칼국수를 맛보고 씹고 삼키는 행위에만 온전히 몰두하며 추상적인 고통이 마음에 그어놓은 어지러운 선들을 지워내고 구체적인 감각으로 삶을 채워가기 시작했던 정연을 떠올리며 어떤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쌓아둔다.
- 김혼비 (에세이스트)
사랑은 허름하고 이별은 거대합니다. 이를 깨닫는 순간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세상 가장 연하고 짧은 것들만이 영원을 부른다는 것. 내가 너의 마음을 넘었듯이 상대도 나의 마음을 넘어왔다는 것. 별 기대 없이 돌보던 것들이 실은 나를 보살펴주고 있었다는 것. 이토록 작은 사실들을 그러쥐고 작가는 그리고 우리는 다시 허름한 사랑을 시작합니다.
-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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