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두 명이에요. 여름인데 비가 갑자기 내렸어요. 학교 갈 때 우산을 까먹고 안 가져갔어요. 비를 쫄쫄 맞고 집에 왔는데, “아침에 비 온다고 분명히 우산 가져가랬지?”, “왜 엄마 말을 죽어도 안 듣냐?”라면서 엄마가 옷걸이로 등짝을 사정없이 짝짝 때렸어요. 엄마가 눈 꼬리를 치켜뜨고 사납게 달려드는데, 꼭 ‘팥쥐엄마’ 같았어요. 등이 따갑고 아파서 울고 있는데, 갑자기 ‘콩쥐엄마’가 나타나 “비 맞고 감기 들라... 따뜻한 초코우유를 데워놨으니 어여 마셔.”라며 막 먹으라는 거예요. 눈앞에서 콩쥐엄마와 팥쥐엄마 둘이 왔다 갔다 했어요. 정신이 막 어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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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평소 거짓말을 자주 하고 친구들 가방에서 돈을 훔치는 일이 잦자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학교 Wee클래스에 상담을 의뢰하였다. 상담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선 아이는 놀랍게도 “우리 엄마를 상담 좀 해 주세요.”라고 부탁을 하였다. 엄마 C씨는 30대 중반으로 다단계 화장품 업체의 간부급 인사였다. 업계에서는 탄탄한 하부 조직을 갖춘 성공한 인물로 회사의 롤 모델 역할을 하는 등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었다. 화장품 외판원부터 시작해 지금의 성공 신화를 이루게 된 데는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언변, 고객 감동을 통한 특유의 친화력이 한몫을 하였다. 하지만 집 안에만 드리워진 아동학대의 그림자를 그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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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C씨는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았다. C씨는 오빠 몫의 노릇노릇한 갈치구이를 더 먹으려다, “가시나가 어데 오빠 걸 넘보노?”라며 친정엄마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던 첫 기억을 갖고 있었다. 그랬던 엄마가 C씨의 초등학교 입학식 전날, 너무나 갖고 싶었던 빨간 구두를 사와 “에구... 살림이 어려워 미안하구나. 입학식에 예쁜 원피스도 사주고 싶었는데....”라며 눈물을 흘리며 따스하게 안아주기도 하였다. 받아쓰기 시험에 100점을 맞았던 날, 엄마는 “아이구, 내 새끼! 참 착하네.”라며 숨이 넘어갈 듯 칭찬하더니 별안간 비에 젖어 축축해진 빨간 구두를 보고는 “가시나가 칠칠맞지 못하게 얼마나 비싼 구둔데 이 모양이냐?”라며 혼찌검을 냈다. C씨는 100점 맞은 덕분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가 순식간에 돌변해 천둥벼락 치는 꾸지람을 들으며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했다. C씨의 유년 시절의 기억은 하루에도 열두 번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기분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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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한 엄마가 전혀 다른, 정반대의 속성을 가진 두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 C씨가 보이는 모습은 전형적으로 손바닥 뒤집듯 돌변하는 분열(splitting)된 양상을 띠고 있다. 엄마가 머리끝까지 화를 내고 있다면, 그때 그 상태는 ‘나쁘기만 한 상태(all bad)’로 전락하고 말아서 콩쥐엄마와 같이 좋은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C씨는 아이에게 콩쥐엄마처럼 좋은 것이라면 별도 달도 다 따줄 것 같이 ‘좋기만 한 상태(all good)’인 환상을 심어줄 때도 있었다. C씨처럼 분열된 친정엄마에게서 제대로 된 공감과 양육을 받지 못하고 유년기 시절을 보낸 경우, 자기를 양육한 엄마같이 정신의 구조가 통합되지 못한 채 분열된 상태의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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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어떤 엄마의 모습을 찾아줄 것인가? 이 아이에게 찾아줄 엄마의 모습은 콩쥐엄마여야 한다. 만일 자신이 팥쥐엄마라는 생각이 든다면, 팥쥐엄마에서 콩쥐엄마로 걸어가야 할 가시밭길을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자신의 아들은 콩쥐엄마와 같은 아내를 만날 것이고, 딸은 장차 콩쥐엄마로 자라날 것이다. 분열된 엄마가 분열적 양육 태도를 가진다면, 결과적으로 자녀는 분열된 정신 상태를 가진 경계선적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기 때문에 엄마의 혼자 힘으로는 바로잡기가 무척 어렵다. 지금까지 엄마의 나이만큼 부정적인 것이 내면화되었기 때문에 이를 상쇄시키기 위해 긍정적인 경험이 많아져야 비로소 통합에 이를 수 있다. 특히 분열적인 엄마를 돕기 위해서는 남편의 지대한 도움이 필요하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계획적이고 심층적인 ‘가족치료’를 지속해 나갈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 p.34, 「콩쥐엄마 팥쥐엄마」 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요.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예전 초등학교 친구들과 매일 2시간씩 통화를 해요. 유일하게 저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거든요. 친구들이 전화를 안 받으면 나만 소외되는 것 같고, 버려지는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해져요. 그런 기분이 드는 날은 나도 모르게 자해(self harm)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중1 때 엄마와 같이 살려고 친구들이 있는 도시를 떠나왔어요. 엄마와 살고 싶기도 했고, 이모와 외할머니에게서 벗어나고도 싶었거든요. 너무 보고 싶은 엄마였는데... 막상 함께 있으니 어색하고 불편해요. 엄마에게 먼저 말을 걸고 다가가고 싶지만, 왠지 무서워요. 바쁘다며 거절할까 봐 두렵고 망설이게 돼요. 밤낮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엄마를 보면 괜스레 내가 짐이 되는 것만 같아 스스로가 너무 싫고 미워져요. 저 자신이 너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어요. 밤늦게까지 그런 생각에 빠져 울다가 화내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손목에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손목에서 느껴지는 쓰리고 아픈 고통에 기분이 후련해지고 시원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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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D씨의 손에 끌려 상담을 온 중3 A양의 호소이다.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A양은 한 번씩 고개를 들 때만 눈맞춤이 조심스레 이뤄졌다. 검은 반팔 티셔츠를 입은 왼쪽 팔엔 흰색 토시가 손등을 반이나 덮고 있었고, 검지에는 밴드가 칭칭 감겨 있었다. A양과 달리 엄마 D씨는 숏커트에 깔끔한 파랑 정장 차림으로 당당하고 다부져 보였으며, 표정의 변화 없이 A양의 자해에 대해 설명하며 “제가 얘한테 잘못한 게 많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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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D씨는 22살 어린 나이에 혼전임신으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시댁에서 함께 생활했다. 동갑인 남편은 D씨의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에 반가움보단 당황스러워하며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중절수술을 생각했지만, 겁이 나서 할 수가 없었다. 배가 부른 D씨를 보고, 아들 발목 잡았다며 낙심하는 시모의 눈치를 받으며 출산을 했지만, 몸조리는 사치였다. 경제력이 없는 남편으로 인해 시댁에서 분유와 기저귀를 사다 줬지만 그조차 헤프게 쓴다며 못마땅해 했다. 시어머니의 구박은 참을 수 있었지만, 남편이 줄곧 “내 새끼 맞나?”라며 아이 자체를 부정할 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100일도 채 안 된 아이를 안고 도망치듯 친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포대기에 싼 아이를 안고 있는 D씨를 보자 친정엄마는 방바닥을 치며 동네 창피하다며 통곡을 했다. 입양을 보내자는 친정엄마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육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미혼모에 대한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지쳐갔다. 그때쯤 재력 좋은 혼처가 나왔다며 아이는 내가 키울 테니 팔자를 고쳐보라는 친정엄마의 설득에 못 이긴 척 재혼을 했다. 그렇게 아이를 두고 홀연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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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두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고 있는 어린 A양의 두려움을 한번 상상해보자. 엄마의 남겨진 가방을 안고 밤새 눈물을 흘리며 떠난 엄마를 찾고 있는 어린아이는, 세상과 사람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겠는가!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엔 그 누구도 없을 것이며, 자신의 존재 역시 무가치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유기공포(fear of abandonment)를 경험한 사람은 타인과 세상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다. 자신을 낳은 엄마에게도 버려졌는데 어떻게 엄마 아닌 사람들을 믿을 수가 있겠는가! 사람에 대한 불신은 관계에서 일정한 경계를 두고 마음을 내놓지 못한다.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보다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A양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피곤에 지쳐 퇴근하는 엄마를 보면, 자신이 짐이 되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혹여라도 엄마가 연락이 안 되면 또 나를 두고 떠났나 싶어 극도의 불안이 밀려와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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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의 유기공포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이 내면화(internalization)되어야 한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또 버려질 것 같은 유기공포가 안개가 피어오르듯 A양의 마음을 덮어버리게 되어 현실을 객관화하여 바라보고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금의 A양은 예전 엄마가 자기 곁을 떠날 때의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당시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를 유지하고 진정시키는 데 어려움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선 엄마 D씨는 출근할 때 정확한 귀가 시간과 행선지를 미리 알려주고, 귀가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확히 지켜 A양을 안심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경험이 쌓이게 되면 엄마에 대한 신뢰가 내면화되어 A양은 엄마가 보이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인해 자기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가 일하고 있는 식당을 둘러보고, 엄마가 요리한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된다.
--- p.176, 「후시딘 엄마」 중에서
“이제 고2가 된 딸이 있어요. 밤이 되면 함께 자기 시작한 것이 벌써 2년이 넘었네요. 물론 혼자 잘 때도 있지만, 혼자 자다가도 무섭다며 제 옆에 와서 자기도 해요. 중2 겨울부터인가 밤이 되면 무서운 영화 본 게 생각난다고도 하고, 어떨 땐 그냥 무서워서 혼자 못 자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같이 자기 시작했어요. 귀찮고 싫을 때도 많았지만요. 집에서 늦게까지 일을 할 때가 많다 보니, 딸아이가 먼저 잘 때도 있어요. 그때는 방문을 열어놓거나 스탠드를 꼭 켜놓고 자요. 잠들 때까지 시간도 걸리는 것 같고요. 같이 잘 때는 “안아줘.”, “뽀뽀해 줘.”, “엄마는 나를 사랑해?” 이런 유치한 질문도 해요. 어떨 땐 “섬 집 아기 불러줘.”라며 자장가까지 부르라 한다니까요. 그럴 땐 마치 서너 살짜리 아이 같아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빨리 자라며 소리치게 되고. 일하고 있을 때면 옆에 와서 다 큰 애가 뽀뽀도 몇 번이고 해 달라 하는데, 그걸 어디 다 해 줄 수가 있나요? 바빠서 못 해 주기라도 하면 “엄마는 나를 싫어하지?”라며 유치원 아이처럼 토라져 가 버리고, 다 큰 딸에게 언제까지 뽀뽀해 주며 함께 자야 하나요? 이제 곧 대학생이 될 텐데, 무서움이 많은 딸이 집을 떠나면 혼자 잘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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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인 딸에 대한 고민으로 상담실을 방문한 엄마 L씨의 호소이다. 혼자 자는 것을 무서워하는 딸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던 중 임신하기 전에 있었던 트라우마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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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대학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내일 집에 갈 테니 미역국 좀 끓여 놓거라.” 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L씨는 영문도 모른 채 다음날 미역국을 끓여 놓고 시어머니를 기다렸다. 벨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시어머니와 함께 동행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어머니가 잘 가는 점집의 무당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취업이 걱정되어 L씨 부부와 상의도 없이 굿을 하기 위해서 집으로 무당을 불러들였던 것이었다. L씨는 너무나 무서웠지만, 무당과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차려놓은 음식 앞에 절을 하였다. 굿이 끝나갈 무렵, 무당은 거실에 부부를 꿇어 앉혀 놓고 큰 칼을 몸 가까이 갖다 대며 귀신을 쫓는 행위를 했다. L씨는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견뎌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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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씨는 미신적, 종교적 상황에서 겪게 된 트라우마를 통해 불안을 안은 채 임신과 출산을 하였고, 내재된 불안은 아이에게 전위(displacement)된 양상으로 보인다. 이후 L씨는 점집 간판만 봐도 그때의 악몽에 사로잡혀 몸이 먼저 반응하였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는 혼자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딸이 초5 때, L씨는 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에 간 적이 있었는데, 모텔 앞까지 갔다가 혼자 잠을 잘 용기가 없어 결국 동생이 사는 평택까지 택시를 타고 간 적도 있었다. 엄마가 겪은 과거의 일들을 지금의 딸에게 물려준 셈이 되었다. 딸이 보이는 수면 양상은 L씨의 불안이 딸의 불안으로 세대 간 전이(intergeneration transference)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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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씨가 엄마의 따뜻한 품을 기분 좋게 내어주고 딸이 원하는 자장가를 그때의 목소리로 불러주면서 엄마를 온전히 차지할 수 있도록 한다면, 엄마와 함께하는 좋은 느낌은 딸에게 만족감과 안정감을 주는 긍정적 관계 경험으로 내면화(internalization)될 수 있다. 긍정적인 느낌으로 내면화된 엄마의 상(像)은 아이에게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를 발휘하게 한다. 다시 말해 자녀가 마음속에 안정된 대상 이미지(대상표상, object representation)와 자기 이미지(자기표상, self representation)를 가지게 되어 엄마 없이도 편안하게 잠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엄마에게도 만족감과 안정감을 주는 상호 긍정적인 경험으로 내면화되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혼자 잠자기 어려운 딸의 증상을 개선하기 위한 엄마와의 긍정적 관계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서로에게 치료적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 p.213, 「17살 섬 집 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