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먼이 어떤 토론회에서 만난 인문학자들 보고 “거만한 바보”라고 한 거예요. 그냥 바보는 괜찮다, 대화도 할 수 있고 도와줄 수도 있고. 그런데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뭘 잘 안다고 믿고 있는 거만한 바보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한 거예요. 제가 그 대목을 읽고 처음에는 말이 너무 심하네, 이렇게 생각했는데 다른 과학 책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다 보니까 제가 바보가 맞는 거예요. 제가 그 바보 범위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안 되겠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우리 문과들을 보면서 얼마나 비웃었을까, 이런 생각도 좀 들고 해서 그때부터 짬짬이 과학 책을 읽기 시작했죠.
--- p.18~19, 「유시민 - 모름을 인정하면 열리는 새로운 시야」 중에서
[강원국] 나를 억누르고 살아왔는데 건축을 만나면서 억눌렀던 감정을 확 터트리신 건가요?
[유현준] 건축설계를 하면서 정말 숨통이 트인다는 기분을 느꼈어요. 제가 약간 관종 끼도 있는데 건축설계가 그걸 한 방에 해소해주더라고요. 건축설계는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듣고 박수 쳐주고 칭찬해주는 거예요. 제 존재를 인정받는 거죠. 더 잘하고 싶어졌어요. 전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내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한번 경쟁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도 하게 된 거죠. 이런 마음으로 입학해서인지 하버드대학교에서 굉장히 재밌게 공부했습니다.
--- p.52, 「유현준 ― 불안과 결핍을 딛고 만들어낸 소통의 공간」 중에서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됐어요. 사실 저희 부모님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요. 돈도 없고 빨갱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이고.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옆에서 잘 챙기려고 하겠습니까? 저희 어머니도 아흔 살 넘어가면서인지 능력이 조금씩 떨어지시는데, 그런 분을 누가 찾아오겠어요. 근데 이웃들은 매번 찾아오시는 거예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 우리 엄마 따뜻하게 입을 옷, 노인네 안 미끄러지는 양말까지 챙겨주세요. 딸인 저도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까지 다 챙겨주시는 거예요.(중략)
구례는 제가 떠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을 거예요. 다만 나이가 들면서 전에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거죠. 마음을 나누며 산다고 해서 인간의 절대 고독이나 외로움까지 모두 해소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사람이 망가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하는 심각한 일은 이 삶 속에 존재하진 않을 것 같아요. 이렇게 수시로 사람 마음에 들락거리니까요.
--- p.71, 「정지아 ― 이웃의 따스한 침범이 준 해방이라는 선물」 중에서
[강원국] 그럼 글을 쓰는 당사자는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슬아] 강원국 선생님의 말씀을 빌려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요. ‘듣기가 선행돼야 한다’라고요. 저는 쓰기가 읽기의 극치라고 생각해요. 많이 읽는 독자를 계속 하다 보면 결국 쓰게 된다고 생각해요.
--- p.145, 「이슬아 ― 스스로에게 작가라는 깃발을 꽂고 나아가는 삶」 중에서
미국인 조지 에드먼즈 교수님 모시고 일주일 동안 전국의 개울물을 뒤지면서 다닌 거죠. 그러면서 제가 이 할아버지처럼 살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 날 교수님이 묵으신 조선호텔에서 맥주 한잔 사주실 때 물었죠. 당신처럼 되는 방법이 뭐냐고. 그랬더니 미국으로 유학을 오래요. 그러면서 이런 거 저런 거 가르쳐주셨는데 아, 이거다 싶었죠. 그래서 그날부터 유학 준비를 했어요.
--- p.156~157, 「최재천 ― 젊은 날의 공허를 딛고 순수한 탐구열의 세계로」 중에서
저는 고민이나 질문을 품고 있으면 발효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엔 질문이 A였는데 조금 지나니까 ‘핵심이 A가 아니라 B였네.’ 이런 순간이 오거든요. 그러니까 처음엔 ‘내가 이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지? 얼마나 버티지?’ 이랬는데 조금 더 가니까 ‘시간이 줄어들고 있네.’ 이렇게 바뀐 거죠.
돈은 지금은 없어도 앞으로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근데 시간은 줄어들기만 할 뿐이에요. 통장 잔고만 갖고 사는 것과 비슷하죠. 만 원 한 장을 쓰더라도 중요한 거에 아껴 쓰게 되잖아요. 자, 그러면 시간이 지금도 줄고 있는데, 나는 내 시간을 아껴서 중요한 곳에 가치 있게 쓰고 있나? 이런 질문을 하고 거울을 봤더니 눈동자가 풀려 있는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시간을 가치 있게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됐지요.
--- p.219~220, 「최인아 ― 사랑하는 이에게 묻듯 자신에게 질문하는 사람」 중에서
저는 신영복 선생님 말씀을 좋아합니다. 이런 말씀이 있어요. 한 사람에 대한 어떤 평가,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대의 모순이나 아픔을 얼마나 담아내는지가 기준이 되면 좋겠다는 말씀이에요. 제가 변호하는 사건, 앞으로 변호할 사건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어떤 모순이나 아픔을 많이 담아내고 싶습니다. 아픔을 그냥 담아내는 게 아니라, 따뜻한 애정을 갖고 미래 지향적인 얘기를 하고 싶어요.
재심도 제 개인의 역량의 한계 때문에 맡아서 진행할 수 있는 사건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사건 속에서 의미 부여를 계속하죠. 의미 부여가 되면 일에 대한 열정이 생깁니다. 그러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야겠다는 욕심을 갖게 되고요.
--- p.239~240, 「박준영 ― 재생하며 나아간 삶, 약자를 위한 재심은 내 운명」 중에서
김동식 작가는 자신이 수천만 원의 인세를 받는 스타 작가라는 사실이 아직도 신기하다. 자신의 인기를 여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동식이 살아온 얘길 들어보면 왜 그런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이보다 더 흙수저일 수 있을까 싶다. 올해로 서른여덟 살인 김동식은 인생에서 31년은 지독히 가난했고,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후로 손에 기름때가 가실 날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됐다. 그의 소설을 기다리고 책을 사보는 독자가 있다. 여기저기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썼는데, 수입은 공장노동자 시절보다 열 배 이상 많다. 김동식 작가 입장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꿈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다.
--- p.244, 「김동식 ― 세상에 묵직한 펀치를 날리는 변방의 이야기꾼」 중에서
[강원국] 메밀국수집을 열면서 지구온난화까지 계산에 넣었다니 기가 막힙니다. 지, 장, 법은 또 어떻게 적용되는지 더 궁금해지는데요.
[고명환] 지地는 목, 입지예요. 내 가게가 될 곳의 인접한 도로에서 차는 어떤 속도로 다니는지, 사람들의 보행 속도는 어떤지 점검했어요. 예를 들면 포장마차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의 걸음이 느릴수록 좋겠죠. 그래서 포장마차는 골목 안에 있는 거예요. 선릉역 대로변에는 포장마차가 없잖아요.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느린 곳이 좋은 상권이에요. 볼 게 많아서 걸음이 느려지는 거거든요. 간판도 보고 진열된 상품도 보다 보니 걸음이 느려지는 거죠.
--- p.276, 「고명환 ― 끝이 아름다운 삶으로 정진하는 치열한 독서가」 중에서
[강원국] 우리 사회가 참된 리더에 대한 목마름이 큰데요.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 필요한 리더일까요?
[고동진] 일단 중간관리자가 됐을 때는 밑에 있는 사람이 뭔가 해내지 못할 것 같을 때 커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아랫사람을 끌어주는 능력이 계속 쌓이면 사람들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그게 바로 솔선수범인 거죠. 근데 솔선수범 없이 입으로만 하는 얘기는 절대로 사람들이 따르지 않아요. 따르는 시늉을 하겠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솔선수범은 기본으로 깔려야 하는 하나의 자기 자산이고, 겸손과 배려가 거기에 더해져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낮추면 남이 따라오고, 자신을 과시하면 남들이 의심한다고 그랬어요. 청나라 때 중국 사람이 한 얘기인데, 저는 이게 요즘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를 반영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아는 것도 기억 속에 존재하는 거지, 진짜 아는 건지는 모르잖아요. 기억이 틀릴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겸손하고 배려하고 역지사지해야 합니다. 그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길 이유가 없어요. 선후배 간에 사이가 나빠질 이유가 저는 없다고 봅니다.
--- p.308, 「고동진 ― 갤럭시 세계 신화를 창조한, 목표가 이끈 삶」 중에서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풀꽃문학관’에 출근하잖아요. 쭉 가다보면 초등학교 몇 군데를 지나가게 되는데요, 어떤 때는 천사를 만난다니까요. 그냥 지나가는데 아이들이 알아보고 인사를 해요. 천사처럼 “안녕하세요” 그래요. 저는 이 아이들이 내가 시 쓰는 사람인 걸 아나, 내가 옛날에 교장이었던 걸 아나 싶어서 그 아이에게 물어봐요. “내가 누군지 아니?” 하면 “몰라요” 그래요. 그냥 동네 할아버지니까 인사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 생각하죠.
‘아, 오늘도 천사를 만났구나.’
나에게 인사를 건넨 천사를 만났으니까 오늘은 화낼 일이 있어도 화를 덜 내야겠다, 몸이 아픈 일이 있어도 즐겁게 생각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그리고 가급적이면 좀 느릿느릿하게 다니려고 해요. 자전거 타고 너무 빨리 가면 천사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 p.362~363, 「나태주 ― 살기 위해 썼고, 살아가기 위해 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