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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등한 우리

: 집 안의 천사, 뮤즈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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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610g | 145*225*27mm
ISBN13 9791171711840
ISBN10 117171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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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가을, 명망 높은 여자 대학이자 하버드의 자매학교인 래드클리프대학이 미국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한 계층, 즉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전례 없는 장학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 장학 프로그램의 설립자인 래드클리프 총장이자 미생물학자 메리 잉그레이엄 번팅의 말을 빌리자면 래드클리프 독립연구소는 20세기 중반 미국 여성들에게 닥친 “기대받지 않는 풍조”에 맞서기 위해 계획되었다. 번팅이 보기에 너무도 많은 뛰어난 여성 학부생들이 가족과 집안일을 보살피면서 연구하고 집필할 방도를 찾지 못해 학자나 예술가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은 이렇게 ‘지적으로 추방당한 여성들’을 제 궤도로 돌려놓자고 제안했다.
--- p.11~12

섹스턴과 쿠민은 서로를 유심히 살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둘 다 마르고 검은 머리에 매력적이었다. (…) 쿠민은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반발심이 느껴지는 이 긴장한, 매력 넘치는 이방인을 즉시 경계했다. 두 사람 모두 불확실하고 심지어 온당하지 않게 느껴지는 일을 하려고 여기 왔다. 다시 말해 시인이 되려고 왔다. 그러려면 둘 다 용기를 그러모아야 했고 명백히 고독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 두렵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났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 p.28~29

주위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동안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집에서 글을 쓰는 쿠민은 “허리케인의 눈” 속에서 일하는 느낌이었다. 섹스턴 역시 비슷한 태풍 속에 있었다. 아이들이 몸 위로 기어오르면 조용히 시켜야 했다. “쉿! 시를 듣고 있잖아! 맥신이랑 통화 중이야!” 섹스턴은 한쪽 귀를 손가락으로 막고 시 전체를 파악하려 귀를 기울였고, 여기 단어를 바꾸고 저기 행갈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나중에 서로의 시가 종이 위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고 놀라곤 했다. 두 시인은 각자의 집, 각자의 책상에 앉아있었지만, 서로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몇 시간이나 통화하는 날도 있었다.
--- p.43

이런 차이점에도 올슨은 멀리 떨어져 사는 이 시인과 자신의 공통점을 알아보았다. 올슨은 답장에서 섹스턴을 “친애하는 나의 동족”이라고 불렀고,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고 했다. 또 섹스턴의 시집 『정신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서 작가 사진을 잘라내, 정신없는 자신의 책상 위 레오 톨스토이, 토머스 하디, 월트 휘트먼처럼 올슨이 “도움 주는 작가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초상화 곁에 걸어두었다고 말했다. 이어진 어느 편지에서 올슨은 섹스턴이 지나치게 자기비판적이라고 나무랐다. “그게 당신의 첫 책이라는 게 놀랍잖아요. 그러니 가혹하게 굴지 말고 자부심을 가져요.” (…) 올슨은 언제든 또 편지하라고 섹스턴에게 말했다. 섹스턴은 거의 즉시 답장했고 이후 활기찬 서신 교환이 이루어졌다.
--- p.85

섹스턴은 후손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동시대 독자의 덧없는 인정이나 판매량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도 했다. 단순한 숙녀 시인을 넘어서길 열망했고, “여성적 역할”을 초월하고 싶었다. (더불어 여성의 경력을 지원하는 연구소를 조심스럽게 칭찬했다.) 너무 큰 소리로 웃고 작품에 관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문단 파티에 처음 온 어색한 손님처럼 섹스턴은 국가의 위대한 문인들 사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욕망을 강조했다. “저는 이미 자격 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요청하는 것은 영원한 시인이 될 기회입니다.” 여기 단연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여성이 있었다.
--- p.109

스완은 쿠민과 섹스턴이라는 두 시인을 그릴 때 특별한 기쁨을 느꼈다. 처음에는 이 매력적인 검은 머리 여성들이 무척 비슷해 보여서 두 사람을 구별하는 데 기민한 눈이 필요했다. 스완은 잘 손질한 머리와 깃 있는 드레스 너머로 두 사람의 기질을 탐색했다. 쿠민이 정적이라면 섹스턴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섹스턴에게는 불안한 분위기가 있었고 어떤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완은 날카로운 연필 선을 사용해 섹스턴을 그렸다. 연필을 단단히 내리눌러 드레스의 주름을 두드러지게 했다. (…) 어쩌면 스완은 쿠민의 자제력을 몰라보고 시인의 차분함이 의도적인 성취가 아니라 타고난 성정인 것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완은 두 시인이 서로를 보완하는 방식을 알아보았다.
--- p.140~142

1961년 여름 내내 그리고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신문과 잡지는 연구소와 그 설립자에 대하여, 기적 같은 기회를 거머쥔 여성들에 대하여 앞다퉈 보도했다. 전국 잡지들은 래드클리프 독립연구소를 여성 교육의 새로운 경향에 관한 사례연구로 보았다. 지역신문은 사진이 잘 받는 장학생들을 부각하면서 행복한 가정 풍경을 재현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느 사진을 보면 섹스턴이 소매 없는 상의와 줄무늬 치마를 입고 딸 조이, 린다와 함께 있다. 또 어느 사진에서는 쿠민이 막내 대니얼을 한쪽 팔로 감싼 채 무릎에 책을 펴놓고 앉아있는데, 카메라 셔터 소리에 약간 놀란 것 같은 모습이다. (스완은 더 나중에 지역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1963년 어느 신문을 보면 스완의 프로필 사진 위에 “설거지를 하라고요? 아니, 그림을 그릴래요”라는 헤드라인이 붙어있다.) “우리는 개척자인 동시에 실험용 쥐였다.” 쿠민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서식지에서 하도 질문을 많이 받고 사진도 많이 찍혀서 우리 아이들은 누가 흘낏 쳐다보기만 해도 ‘치즈!’라고 할 정도였다.”
--- p.143

섹스턴은 여성의 글쓰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더욱 면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로웰의 세미나 시절에는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에 조바심쳤고, 진지한 남성 시인들에게 자신이 항상 열등하게 보일 거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래드클리프에서 여성과 예술에 관한 시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연구소의 명백히 정치적인 책무, 즉 홍보 책자와 언론 보도에서 되풀이해 강조되었던 그 임무 때문일 수도 있다. 떠들썩했던 언론, 기사에 보도된 프로필들, 미국 대중이 보여준 인정의 태도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저 여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섹스턴은 주로 집에서 일했고 케임브리지로 차를 몰고 나오면 전원 여성으로 이루어진 동료 장학생들 속으로 들어갔다. 마운트 오번 스트리트 78번지에는 잘난 척하는 존 홈스도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로버트 로웰도 없었다. 오직 자신과 같은 여자들뿐이었다. 섹스턴은 성적 긴장감이 넘치던 워크숍 공간 대신 서로를 지지해 주는 여성 공동체를 선택했다.
--- p.150

그러나 마크라키스는 그 평범한 저녁 시간 동안 그들이 뭔가를 알아채고 있었다는 것을, 다만 이 특별한 여성 집단에게 아직 표현할 언어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음, 그것은 뭐랄까, 언어가 없는 페미니즘이었어요.” 그는 말했다. 언어는 나중에, 마크라키스가 연구소를 떠나 대학 강단으로 나가고, 새로운 준장학생 집단이 그 노란색 집을 차지한 후에 왔다. 그사이 연구소 여성들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고, 쿠민의 말을 빌리자면 서로에게 “기꺼이 들어주고, 주고, 듣고, 받을 마음”을 선물했다.
--- p.161~162

그 1년을 보내며 다섯 명의 여성은 다 함께 친구가 되었고 일종의 ‘연구소 속 연구소’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작품에 협력하고, 논쟁하고, 축하했다. 무엇보다 서로를 예술가로 보았는데, 이 점이 학문을 좋아하는 학자 장학생들과 다른 점이었다. 이들에겐 박사 학위가 없었지만, 지원서의 요구대로 예술 분야에서 이와 ‘동등한’ 훈련을 받았다. 연구소가 예술가들을 학자들과 비교하는 방식을 농담 삼아 이들은 자신을 ‘동등한 우리’라고 불렀다. 이는 느슨한 연합이었다. 정기적인 모임도 클럽하우스의 규칙도 없었다. 다섯 명의 여성과 그 가족은 주말이면 가끔 모여 어울렸고, 다섯 명은 마운트 오번 스트리트의 노란색 집에서 규칙적으로 만났다. ‘동등한 우리’는 이 긴밀한 다섯 명 집단에 붙인 공식적인 이름이라기보다는 서로의 비슷한 정신을 일컫는 말이었다.
--- p.205

어느 날 섹스턴은 뉴턴 공공도서관에서 울프의 책 한 권을 우연히 발견했다. 1929년에 도서관에 기증된 책이었다. 섹스턴은 그 책을 이동식 책상으로 가져갔고 그동안 이 책이 한 번도 대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은 30년 넘게 책장에 꽂혀있었고, 그사이 뉴턴 여성들은 대학에 가고, 직장을 그만두고, 전쟁 산업에 동원되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화가 치밀었다.” 섹스턴은 훗날 말했다. “도서관에 여성들이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그 책이 거기 있는지도 몰랐다. (…) 동네에 문제가 있었든지 혹은 학교의 제도나 기타 등등에 문제가 있었든지 아무튼 그 책은 도서관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 무엇보다 이 책은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책이 아닌가! 그게 전부인 책이다!”
--- p.209~210

낭독을 마친 섹스턴은 앞줄에서 듣고 있던 스완에게 말했다. “어때, 바버라? 우리 영원히 함께 갈 수 있을까?” 섹스턴의 질문이 이 특정 시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협업 관계를 뜻하는 거라고 이해한 스완은 대답으로 그동안 전화로 들었던 섹스턴의 시 파편들을 바탕으로 작업했던 자신의 그림과 드로잉을 공개했다. 그중 하나가 〈마법사들〉이었는데, 「음악가들」의 인물들이 섹스턴의 피리 소리에 반응해 모습을 바꾼 것처럼 보였다. “내 그림과 드로잉은 일종의 연장선이야. 내가 아직 만들어 내지 못한 이미지들이 당신 시에 있더라.” 스완은 스스로 마법사처럼 말했다.
--- p.216

1962년부터 1963년까지 올슨 가족은 매일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지고 씨름했다. 아무리 해도 틸리가 제시간에 집에 오지 않았다. (…) “어머니에게 사탕 가게 열쇠를 내준 것과 같았죠.” 케이시는 올슨의 도서관 출입 권한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경이로워했어요. 도무지 도서관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가 없었어요.” 올슨은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하고 있었다. 이토록 풍성한 도서관에 출입해 본 적이 없었고, 읽고 생각할 자유 시간도 많지 않았다.
--- p.236

세미나가 끝나고 청중이 흩어지자 섹스턴은 수줍게 올슨에게 다가가 메모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해 여름 섹스턴은 비서를 한 명 고용해 「창조적 과정의 죽음」 원고를 옮겨 썼다. 그들이 만든 이 이상하고 더듬거리는 듯한 문서는 공식 발표문이라기보다는 일기에 더 가까웠다. 온통 메모와 약어와 인용문이었다. 섹스턴이 이 문서를 편지와 공책과 시 초안 같은 사적인 문서 사이에 끼워놓은 것은 적절했다. 문서는 그곳에서 수십 년을 보내면서 올슨의 영향력과 두 예술가 사이 친밀함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다. “틸리는 다시 몰두하게 한다.” 언젠가 섹스턴은 이렇게 말하기도했다. 어쩌면 섹스턴은 분투의 시기에 그 문서를 꺼내 몇 줄 읽고 다시 쓸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 p.252

스완이 작업 속도를 늦추었던 것은 60대 초반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발을 다쳐 기동에 제한이 생겼을 때뿐이었다. 그는 말년에도 모든 일을 헤쳐나가며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스완의 마지막 전시회는 별세 10주기였던 2013년 매사추세츠 프래밍엄의 댄포스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이었다. 사랑하는 친구 섹스턴의 초상화를 비롯해 초기 초상화들도 전시되었다. “두 시인과의 우정 때문이었다.” 훗날 시집 표지 디자인에 대해 스완은 이렇게 말했다. “내겐 에이전트가 있어서 책 작업을 하게 해주세요, 하고 출판사를 쫓아다니지도 않았다. 그런 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그저 우정 때문에 한 일이었다.”
--- p.289~290

올슨은 라우터와 하우 부부에게 리베카 하딩 데이비스의 『제철소에서의 삶』을 한 권 건넸다. 올슨은 밤에 자려면 반드시 낮에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다 데이비스의 작품에 무척 감동받았고 이 책이 절판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제철소에서의 삶』은 과거 문학 가운데 여성이 쓴 중요하고도 인상적인 작품이 꽤 많지 않을까 하는 올슨의 의심이 정확했음을 증명했다. 여성과 유색인 작가로 구성된 올슨의 강의안은 정전을 바꾸고 그리하여 학과 교실의 구성 자체를 바꾸게 될 것이다.
--- p.319

올슨이 제안한 해결책은 단순하면서도 혁명적이었다. “가르치는 여러분부터 여성 작가를 읽으세요.” 그는 청중에게 도전했다. 특히 전기적 비평을 권장했다. “여성의 책만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여성의 삶을 통해 여성의 삶에 대해 가르치세요. 또 자서전, 전기, 일기, 편지를 통해서도 가르치세요.” 올슨은 또 자신을 포함한 “살아있는 여성 작가들”도 읽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했다. 그들은 정말로 귀를 기울였다. 그 연설을 통해 올슨은 학계에서도 명성을 쌓았는데, 전례 없는 주장이어서가 아니라(1970년 총회에서 쇼월터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시기적절하고 정열적이며 강력한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슨 자신이 그동안 과소 대표되었던 여성 작가이자 노동계급 작가의 산 예시였다. 여전히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었고, 다른 학자들과 달리 올슨은 스스로 살아오며 분투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공개 토론을 마친 후 참석자들은 올슨의 호텔 방에 몰려가 교과과정과 교수진을 다양화할 방도를 논의했다. 그들은 목마른 나그네가 물에 끌리듯 지칠 줄 모르고 열정적인 올슨에게 끌렸고, 올슨은 그들에게 전국의 대학 교육자로서 독립적인 여정을 이어갈 용기와 힘을 주었다.
--- p.322~323

워커는 치마를 허리까지 걷어 올리고 벌레와 돼지풀에 맨다리를 쏘이면서도 손으로 그린 지도를 붙들고 웃자란 잡초 사이를 헤치며 아무 표지 없는 허스턴의 무덤을 향해 나아갔다. (…) 워커는 지역의 묘비 제작자를 찾아가 미래의 방문객이 찾아올 수 있도록 허스턴의 무덤을 표시하기로 했다. 워커가 원한 묘비는 너무 비싸서 조금 더 저렴한 묘비에 만족해야 했다. 워커는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돌 위에 새겨달라고 부탁했다. “조라 닐 허스턴, ‘남부의 천재’, 소설가 민속학자 인류학자, 1901~1960.” 워커는 허스턴의 생년을 잘못 알았지만(1891년에 태어났다) 허스턴이 역사에서 잊히지 않도록 했다. 이 묘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다.
--- p.337~338

시가 너무 좋아 평론가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는 『뉴욕 타임스』에서 1971년 출간된 실비아 플라스의 『겨울나무』와 쿠민의 시집을 나란히 칭찬했다(최초로 섹스턴과 플라스가 아닌 쿠민과 플라스가 나란히 읽혔다). 오츠는 쿠민의 대담함과 다양한 관점, 진정성을 칭찬하며 비록 소로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지만 쿠민이 그 초월주의자보다 더 낫고, 쿠민의 시에는 “종종 소로의 시에서는 볼 수 없어서 화가 나는 날카롭게 벼린, 단호하고, 이따금 악몽 같은 주체성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오츠는 또 쿠민과 섹스턴을 비교하기도 했는데, 대다수 비평가가 차이점을 본 반면 오츠는 두 시인에게 비록 그 방식은 다르지만 “보편적 여성”의 목소리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이 비교는 각 시인의 고유함을 지켜주면서 동시에 이전 비평가들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두 여성 시인을 동일시했다. (…) 이 서평에 감격한 쿠민은 오츠에게 “세심하게 읽어주어서 진심으로 기쁘다”라는 내용의 짧은 편지를 썼다.
--- p.350

에이드리언 리치의 추도사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투쟁적인 페미니즘이 문학계에 침투했다는 신호였다. 섹스턴이 한때 출산과 신체 부위에 관한 시들로 비판을 받았다면(“육체적 경험의 애처롭고도 역겨운 면”이라고 했던 디키의 비평을 떠올려보자) 이제 그는 선견과 길잡이로 찬사를 받았다. 쿠민이 사적인 편지에서 말했듯이 섹스턴은 여성운동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여성의 삶에 대한 진실을 시로 써왔다. 「마흔 살의 월경」과 「낙태」 같은 시들은 “인습 파괴자이자 개척자, 노출광의 감각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런 말을 해야만 하는 직접적인 필요에서 나왔다. (…) 여성에게 글쓰기는 자아의 표현을 뛰어넘고 치료를 뛰어넘었다. 이는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 언젠가 올슨이 말한 대로 “글 쓰는 여성은 모두 생존자다.”
--- p.373

『여성으로 태어남에 대하여』는 획기적인 책이었지만, 리치보다 먼저 모성에 관해 쓴 사람들이 앞서 길을 닦아놓았다. 바로 섹스턴과 올슨, 그리고 쿠민이었다. 쿠민은 ‘동등한 우리’에 대해 거의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들 덕분에 개인적 경험을 시의 소재로 사용하게 되었고, 함께 금기를 깼으며,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여성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쿠민은 리치의 말에 감동했고 쿠민의 아카이브에서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팬레터를 쓰기에 이르렀다. “정말이지 명쾌하고 정확하고 공정해요.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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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한 편의 소설처럼 읽힌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소설로. 면밀하고 주의 깊으면서 힘이 넘친다.”
-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
“최고의 책. 기한이 지난 어느 ‘실험’에 관한 환영의 스포트라이트.”
- 커커스 리뷰
“풍부하고 강력하다. 예술과 여자들의 우정에 관한 러브스토리.”
- 하퍼스 매거진
“역사를 조명하는 매력적인 문화 전기.”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도허티의 생동하는 호기심과 다방면에 걸친 전문지식이 이 역동적인 집단 전기에 빛과 온기를 불어넣었다.”
- 북리스트
“우아하고 소설 같은 역사. 도허티의 산문은 눈부시고, 전기적·창조적·정치적 문제 사이를 누비며 자신의 방대한 연구를 능숙하게 서사에 녹여낸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과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가 만났다.”
-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여성 예술가들의 정신 분열을 재생산하는 소외의 체계를 따져보게 한다. 이들이 서로 뭘 원했고 뭘 주었는지에 관한 이야기.”
- 네이션
“전기적 스케치와 시 낭독회를 능숙하게 엮어 배치했다.”
- 북포럼
“자료에 저자의 목소리를 곁들여 풍성한 태피스트리를 짜냈다. 예술과 급진적 정치, 인간관계, 속박되지 않은 야망에 관해 들려준다.”
- 데이즈드
“경이로운 책. 놀라운 시공간에서 발견된 긴장과 야망, 사회참여, 우정, 공동체를 향한 열망을 포착한다.”
- 옵저버
“제1 물결과 제2 물결 페미니즘, 버지니아 울프와 베티 프리단 사이에서 중요한 가교가 된 실험 이야기. 생생하고 매혹적이며 탁월한 논쟁을 펼친다.”
- 하이퍼앨러직
“저자는 재능 있는 여성들의 예술적 성취와 여성운동에 미친 영향, 그리고 여성운동이 이들에게 미친 영향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들의 초상에 공감할 수 있도록 생생하고도 능란하게 엮어낸다.”
- 월스트리트 저널
“다섯 예술가의 관계를 능수능란한 역사로 보여준다. 도허티는 종종 갈등을 빚었던 이들의 친밀성을 자세히 보여주며 이러한 역학관계가 어떻게 미국의 페미니즘과 문화의 흐름을 미리 보여주었는지를 강조한다.”
- 뉴요커
“뛰어나다. 도허티의 정밀한 역사는 변화를 이루려면 반드시 외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며 이러한 제도와 구조는 모든 인간이 단순하게 대등한 게 아니라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믿음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힘주어 일깨운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이 짜릿한 책 안에서 매기 도허티는 훌륭한 대학의 안식처라는 1년간의 공동체에 창의적인 여성들을 모았던 영광의 한 실험을 발굴하고 오래 숨겨졌던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동등한 우리』는 고립되었던 이 여성들에게 공동체가 어떤 힘을 주었는지, 또 2년 후 『여성성의 신화』가 출간되고 제2 물결 페미니즘이 도래하면서 벌어질 일들을 미리 예견했음을 깨닫게 할 때 감정적인 힘을 발휘한다.”
- 아너 무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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