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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시의적절-07이동
황인찬 | 난다 | 2024년 07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5 리뷰 8건 | 판매지수 3,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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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254g | 120*185*16mm
ISBN13 9791191859980
ISBN10 1191859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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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손안에서 여름을 시작하는 책]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황인찬 시인의 책. 7월의 매일을 여름 냄새 가득한 시와 에세이로 채웠다. 시를 쓰고, 생각하고, 말하며 언제나 '시'라는 여정 중에 있는 그의 글은 여름의 무성함과 닮아있다. 다신 돌아오진 않을 오늘의 여름, 지나치는 시절 사이에서 탄생한 시와 이야기들을 마주해보자. - 에세이PD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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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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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쓰이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시만이 갖는 특별한 의미와 감각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의 작은 공동체가 시의 세계에는 있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전까지 그것이 굉장히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그리고 일방적인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문장을 읽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육화시켜나가는 과정은 저의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 어떤 순간의 시는 서로 직접 주고받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소리 내어 읽고 그것을 듣는 경험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꼭 낭독회에서만 이뤄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가까운 이에게 시를 읽어주거나 그것을 듣는 일도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꼭 행이나 연을 맞춰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자신의 흡을 따라 자연스럽게 읽는 것이야말로 그 시를 제일 잘 읽는 법일 테니까요.

앞으로도 때로 사람들은 제게 시를 어떻게 읽느냐 묻겠지요. 그러면 저는 마찬가지로 눈으로 읽는 것이라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말을 덧붙일 수도 있겠습니다.

같이 읽어요. 소리를 내면서요.
--- pp.39-40 「7월 4일, 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중에서

그 이야기들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엔들리스 에이트’다. 이름 그대로 끝나지 않는 팔월에 대한 이야기로, 여름방학이 끝나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하루히가 무의식중에 여름을 무한히 반복시켜버리는 것이 그 내용이다. 하루히가 느낀 아쉬움이란 아직 한 번도 친구들과 함께 방학 숙제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결국 일만오천 번을 넘는 반복 끝에 세계의 이상을 알아차린 ‘쿈’이 모두와 함께 방학 숙제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야기 자체는 다소 전형적인 ‘루프물’(서브컬처에서 주로 나타나는 서사 유형으로, 어떤 이유로 일정한 기간을 반복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이 그 반복을 통해 목표를 이루거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가는, ‘게임 오버’와 ‘재도전’이 설정된 게임 감각의 이야기)이지만, 작은 추억을 위해 세계를 멈춰버리는 이 이야기의 과격함을 나는 좋아했다. 여기에는 일상을 거부하고 성장을 지연시키며 차라리 세계를 중단(파괴)해버린다는 급격한 낙차에서 오는 뒤틀린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있다. 혹은 자기 파괴의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파괴되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자기일 뿐이니까. 신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버린다는 이야기 아닌가.
--- pp.86~87 「7월 11일, 나의 모범은 나의 미워하는 것, 나의 취미는 나의 부끄러운 것」 중에서

증명사진을 제출하셔야 한다고 해서 사진관에 갔네 옛날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거기 영혼이 담긴다고 믿었으나 찍힌 것은 아무것도 없었네 그런데도 플래시가 자꾸 터지고 너무 눈이 부셔서 눈물이 자꾸 흘렀네

나무에 앉은 새들은 조용히 잠들어 있네 아무리 다가가도 깨지를 않았네 죽은 것처럼 너무 좋아서 깨기 싫은 꿈을 꾸는 것처럼 텅 빈 스튜디오가 찍힌 사진 하나를 손에 쥐고 걸었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인생이라고 불렀네
--- pp.128-129 「7월 18일, 인생 사진」 중에서

말하지 않으면 슬프지 않다. 그러나 말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말한다. 그것이 요새 나의 삶과 시쓰기의 태도다. 김종삼과 같이 숭고하고 고결한 언어를 다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 될 테지만, 지금과 같은 시대에 그런 언어를 구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할뿐더러, 조금은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말하고자 한다. 숭고하지도 않고, 고결하지도 않게. 무엇인가를 은폐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것을 드러낼 뿐인. 창백하고 간결한 언어가 아니라, 다소 엉망진창이어도, 조금은 슬퍼지더라도 기어코 말해버리는 것. 나를 말로 뒤덮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말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진짜로 말해보는 것. 그것이 진정 가능할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이렇게 말해버렸기에, 그게 사실이 되리라 믿어볼 따름이다.
--- p.203 「7월 27일, 말하지 않으면 슬프지도 않지만」중에서

이제 너에게 진실을 말해줄게

지금 마주잡은 두 손이 한 권의 책이 되는 거야
거기 적힌 일은 앞으로 모두 다 일어날 거고

그 책의 가장 첫 줄에는 사랑이라고 적혀 있지
그다음에 적히는 건 무슨 일이든 좋을 거야 시시한 일도 괜찮고, 놀라운 일도 좋겠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 책에는 기쁨이 가득할 거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은 오래도록 행복했다고 커다랗게 아주 커다랗게 적혀 있을 거야
--- p.235 「7월 30일, 미래의 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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