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5년 0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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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44쪽 | 544g | 128*188*35mm |
ISBN13 | 9788932917207 |
ISBN10 | 8932917205 |
발행일 | 2015년 0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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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44쪽 | 544g | 128*188*35mm |
ISBN13 | 9788932917207 |
ISBN10 | 8932917205 |
책을 시작하며 제1부 제2부 작품 해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앵무새 죽이기』번역에 대하여 하퍼 리 연보 |
요즘 한창 인기인 TV 프로그램 <복면가왕>을 좋아한다. 공감하며, 즐기며, 기분 좋게, 그냥 듣는다. 가면 속 인물이 누군지 알 것 같은 경우도 있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그들의 정체가 더는 궁금하지 않다. 그냥, 노래를 듣는 게 전부다. 노래가 끝나고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은 가면을 벗는다. 뮤지컬 배우, 코미디언,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 배우, 다시 무대에 서고 싶어 힘을 얻고 싶은, 한때 잘 나가던, 가면을 쓰고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다던 가수.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그들의 얼굴을 가리고 나와 오직 목소리와 음악으로만 들려주고 평가받는다. '인기라는 편견을 버리고 진정성 있는 노래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가수가 진정한 가수'로 자리할 수 있는 무대를 희망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취지라고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보고 느끼기에 그 취지가 충분히 전달된 듯하다. 더는 가면 뒤의 얼굴이 궁금하지 않으니까, 오직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다는 바람만이 남았으니까 말이다. 노래를 부르고 싶은 이가 오직 노래 하나만으로 평가받는 게 당연한 건데, 온전히 노래 하나만으로 듣지 못하게 하는 배경이 이들을 가면 쓰고 무대 위에 오르게 한 건지도 모른다.
백지상태에서 배울 때 습득력이 좋다고 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그 노래만 듣는 게 감상의 시작인 것처럼,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은 상태로 익히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잘 배우는 거라고.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배우는 데 있어 이미 정해진 기준이나 주변의 목소리는 누군가 그려놓은 그림 위에 다시 그린 그림으로 남겨진다. 오롯이 내 것이 아닌 거다.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젬과 스카웃이 보는 세상도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 앞선 사람들이 정해놓은, 비상식이 상식을 지배하는 세상을 보며 혼란에 빠진 이 아이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한층 성장한 듯 보이는 3년이란 시간에 세상을 보는 눈과 지혜를 가졌을 스카웃을 기대해보는 마음으로 민망함을 누르곤 했다.
1930년의 미국 대공황의 시대. 앨라배마의 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혼란의 시기이면서 계층 간, 인종 간 차별이 심했던 그곳의 이야기를 어린 여자아이 스카웃의 성장의 시간 3년이 함께했다. 작은 동네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의 모습, 은둔하며 지내는 부 래들리를 향한 궁금증, 학교에서 배우는 것의 진정성, 어른들이 하는 사고를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것. 많은 것이 스카웃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그 이해하지 못함이 단순히 어른과 아이의 시선 문제는 아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편견과 인권의 문제가 어린 스카웃의 눈에 올바르게 비치지 않음은 당연하다. 모든 일에 있어서 옳고 그름의 기준이 피부색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 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174페이지)
가만히 듣고 있자면,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대부분 문제는 기존에 만들어놓은 편견과 이미 없어진 노예제도까지 은근히 계속 이어오면서 인종차별과 우월감이 만들고 있다.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위해 인간이 부리는 횡포가 지금도 다를 바는 없지만, 그 힘을 만들어주는 게 사람 사이의 차별이라는 게 공포로 다가온다. 그런 게 익숙해지면 그다음에는 또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지 못한 삶으로 밀어 넣으려는지 두려운 거다. 그래서 어린 스카웃의 눈에 비치는 그 마을, 어른들의 모습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불평등과 불이해의 세상에서 보고 자라는 아이의 시선 변화가 가져올 그 무엇이, 어떤 작용을 하면서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지 보게 한다. 법정에서 정의를 찾으려 변호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흑인 구역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고 예배를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을 키우면서, 이 아이가 가슴에 품게 될 것을 그려본다. 지금 그 어른들이 사는 세상과 이 아이가 자라면서 보고 배우고 느끼면서 쌓은 것으로 살아갈 세상이 어떻게 다를지 기대하게 한다.
소설 속 스카웃의 '왜?'라는 물음들에 선명한 답을 주지 못하는 건, 이미 겪어온 것들이 만든 가치관이나 고정관념 때문인 거다. 그저 다를 뿐인, 다르다고 해서 불편을 주거나 해를 끼치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아서 생기는 일들에 저절로 물음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어린 스카웃이 이해 못 하는 세상으로만 머물지 않기를 내내 바라면서 읽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협박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흑인을 변호하며 무죄를 주장하고 진범을 가려내려 애쓰던 아빠의 정의로운 모습이 스카웃에게 전할 무언의 메시지가 읽히고 있어서다. 세상에는 피부색 때문에 차별당해야 하는 것도, 범죄자로 찍힐 이유도, 열등감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 소설이 빛난다. 아빠의 말처럼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되는 일인데, 그걸 자주 간과해서 생기는 일들을 이 소설이 말하고 있다. 소설의 끝 부분에서 스카웃이 부 래들리의 집 앞에서 서서 본 세상이 다르듯이, 서 있는 자리를 조금만 옮겨보면 될 것을.
"무엇보다도 간단한 요령 한 가지만 배운다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64~65페이지)
무엇이 우리 눈에 막을 하나 씌우고 있는지 보게 하는 소설이다.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 여러 사람의 말이 직접 부딪히지도 않는 것들에 대한 개념을 만들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런 개념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못 보게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와 고통을 만드는지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의 화자가 어린아이라는 점에서 더욱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3년의 세월이 스카웃에게 만든 시선으로 이 소설의 의미가 커진다. 결국, 이 소설이 하고 싶은 말도, 이 소설을 읽는 독자가 봐야 할 것도 같은 거다. 타인을, 세상을 향한 시선의 변화가 만들 어마어마한 것을 찾게 하는 것. 소설의 분량만 보자면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을 접하는 연령대가 많이 어렸으면 좋겠다. 스카웃처럼 초등학생의 나이로 읽기는 힘들겠지만, '어른이 되기 전에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을 만들기도 하기에...
6살부터 9살까지, 소녀의 눈에 비치는 1930년대 미국 남부 작은 마을의 모습은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다. 모두가 같은 사람일 뿐임에도 다른 삶의 방향을 택했다고 해서 사회의 격리대상, 낙오자로 못 박고 피부색에 따라 차이와 차별이 존재한다. 어른의 눈에는 흑과 백의 이분법적 논리가 세속적인 이념이나 통념으로 정리된다 하더라도 아이들 눈에는 그렇지 않다. 보다 인간 본연의 양심에 무게추를 기울이고 있으며 선명한 해답을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적어도 지금 어른이 된 우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욱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이리라.
소설은 정확히 두 포인트로 압축할 수 있다. 어린 치기로 문제를 일으킨 후 내내 은둔해서 살고있는 주인공 스카웃의 옆집 아저씨 부 래들리를 향한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을 바라보는 시점이 하나이고 젬과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가 맡게 된 흑인 톰 존슨의 백인 강간 사건의 재판을 다룬 법정에서의 일련의 과정을 다루는 게 또 다른 하나이다. 이 두 포인트 모두 '편견'과 '차이'의 원론적인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른들의 대치 상황을 보여주면서 아이의 시선으로는 어떻게 상이하게 보여지는지 스카웃의 솔직한 감정 고백에서 읽어낼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420쪽
1960년대에 하퍼 리가 말했지만 여전히 이 소설이 말하고 있는 차이와 편견, 관용, 이해와 같은 것들에서 자유롭지 못한 작금의 세상이다. 책 속에서 말하는 단 하나의 인간 부류인 사람이 존재하는 한,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매일 아침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폭력 사태의 중심에는 인종과 계층 간의 차이가 돌덩이처럼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비단 피부색의 차이뿐 아니라 나와 너의 차이에서 기인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일도 비일이재하다.
나도 분명 스카웃만한 나이였을 때는 호기심 많고 맑은 눈을 가진 어린아이였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보이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보이는 것 이면의 다른 무엇, 더 거대한 알레고리를 생각할수록 때로는 비양심적이고 때로는 비겁한 어른의 모습을 보일 때도 더러 있다. 차이와 다름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은근슬쩍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아니꼬운 시선을 보냈던 경우가 분명 있었다. 고백하는 지금도 앞으로는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청렴하게 살고 싶고 양심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건 누구나 같다. 아무리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도 처음부터 악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신념을 관철하고 우직하니 지켜나가기에는 세상의 숨겨진 함정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스카웃, 단순히 변호사라는 직업의 성격으로 보면 모든 변호사는 말이다,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맡기 마련이란다. 내겐 지금 이 사건이 바로 그래. 이 문제에 관해 어쩌면 학교에서 기분 나쁜 말을 듣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나를 위해 한 가지만 약속해주렴. 고개를 높이 들고 주먹을 내려놓는 거다. 누가 뭐래도 화내지 않도록 해라. 어디 한번 머리로써 싸우도록 해봐...... 배우기 쉽지는 않겠지만 그건 좋은 일이란다."
"아빠, 우리가 이길까요?"
"아니."
"그렇다면 왜."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148~149쪽
태어나는 시점에는 모두가 평등했다. 굳이 인간을 결백한 평등의 기준으로 나눌 수 있는 때는 이 시기뿐이지 않을까 싶다. 그 후는 자기 스스로 혹은 사회의 테두리 속에서 변화하는 평등의 관점이 있을 뿐이다. 이런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시켜주는 작품이 『앵무새 죽이기』다. 죄 없는 앵무새가 더 발생하지 않으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에 대한 선결과제를 안겨주면서 말이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주변에서 많은 분이 추천한 책이기에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있었다. 재미와 생각의 관점 차이를 떠나서 읽고 난 지금은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를 하나 올려둔 기분이다. 나는 아직도 미완의 어른이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도 타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 다름의 문제에서는 계속해서 미완의 어른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 아닌 우려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정의와 양심, 신념과 용기의 상관 관계란,
표면적으로 재판의 결과만 두고 보자면 이 책에서 정의는 죽어있다. 몇몇 깨어있는 등장인물을 제외하고 아직 양심이라는 뿌리가 자라지 않은 아이의 눈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정의롭게 산다는 것, 양심적으로 살아간다는 것, 용기를 갖고 삶에 임한다는 것, 뚜렷한 신념으로 험난한 세상에 부딪혀 맞선다는 것, 어느 것 하나 쉽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여전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저 기억하며 살아가려고 애쓰면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정도는 항상 품게 될 것이다. 양심과 정의가 죽어가는 시대에 이런 소설이 살아있어서 다행이지 싶다.
영원히 품고 살아가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 아닐까, 양심이란, 정의란, 신념이란, 용기란,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이 모든 것을 선명하게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니더라. 그래서 미완의 어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란, 사람이란, 언제까지나. 그래서 항상 고민이 따르고 선택이 따르는 게 아닐까. 인생이란 덧없다고 말들 하지만, 이런 고민 속에서 한층 더 자라는 우리, 어른이 있는 것 같다. 성장소설이라는 기틀을 갖추고 있지만 아이가 아닌 어른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런 데 있지 않나 한다. 우리는 언제나 미.완.이라는 단어의 인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으므로. 지금, 아니 어쩌면 평생을 말이다.
"무엇보다도 간단한 요령 한 가지만 배운다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어. "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네?"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지."-64~65쪽
여태 내가 살아오면서 진정한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았던가. 아니다. 나는 늘 앞서 있기 보다는 중간쯤에 숨어있는 사람이었다. 어떠한 것에 대해 옳지 않다고 느끼거나 할 때도 속으로만 생각할 뿐이었지, 그것을 입밖으로 내뱉는 일이 드물었다. 두려움보다는 무관심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정치에는 더 무관심한 사람이었고, 정의롭지 못한 일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나서서 해결하겠지 하며 내가 나서는 일을 꺼려했다. 튀고 싶지 않다는 것도 있었겠고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두려워했던 것도 있었다.
그렇다. 이 책은 진정한 용기와 신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토록 오래도록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책. 흔히 하는 말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 이 책 외에 하퍼 리라는 이름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책. 바로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이다. 누구든 책 좀 읽어본 사람에게 물어보라. 『앵무새 죽이기』를 읽어보았느냐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고 할 것이고, 읽지 않았어도 책장 어딘가에 있었다는 걸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작품이란 이야기다. 난 사실 신문에서 하퍼 리의 신작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이십여 년 만에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퍼 리의 신작 만을 기대하고 있는데, 열린책들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다는 걸 알고 무척 반가웠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먼저 읽고 싶었던 책이기도 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스토리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속에서는 진 루이즈라는 이름을 가졌고 스카웃이라고 불리는 한 소녀가 화자이다. 성인이 되어 여섯 살 무렵부터 약 삼 년간에 걸쳐 일어났던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젬 오빠에게 일어난 사고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빠의 팔이 부러진 것의 발단은 유얼 집안 사람때문이었다는 가족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젬 오빠는 딜이 여름을 보내기 위해 이곳으로 왔던 때, 부 래들리를 집밖으로 끌어내자는 생각을 했던 때부터였다고 했다. 여섯 살의 스카웃은 젬 오빠와 함께 집 근처에서 놀고 있다가 딜을 알게 되었다. 열 살이 가까워온 젬 오빠와 일곱 살의 딜, 여섯 살의 스카웃이 유일한 놀이 상대였다.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며 여름을 보내다가 지루해진 그들은 스카웃의 옆집에 살고 있는 래들리를 집밖으로 끌어내자고 한다. 부 래들리는 십대 시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렸다가 집 밖으로 전혀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의 시체가 실려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살아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날개를 달고 살이 붙여져 떠돌았다. 그런 그를 끌어내기 위해 악동 짓을 하는 것이 시작되었다. 그 집 앞을 제대로 지나가지도 못했으면서도 말이다. 그게 발단이었다.
부 래들리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아이들은 쪽지를 보내거나 현관문을 두드리고 도망가거나 했다. 스카웃네 집에서 래들리 씨 집쪽으로 향하는 떡갈나무 옹이구멍에 두 개의 껌과 행운을 부르는 인디언 동전 두 개, 회색털실공 들이 들어있었다. 또한 비누로 만든 두 개의 인형까지. 누가 넣었을까? 아빠일까? 아니면 다른 아이들이 물건을 몰래 숨겨둔 걸까? 아이들이 이런 게임을 하고 있을때 스카웃의 아빠는 흑인을 변호해야 했다. 아직 흑인과 백인이 다른 공간의 교회를 다녀야 했던 때였다.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은 흑인을 변호해야 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가 변호하는 톰 로빈슨이 유얼 씨네 메이엘라를 강간했다는 사건이었다. 톰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정직하다고 했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들에게 배척당하는 터였다.
우리는 흔히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마련이다. 다른 이의 생각보다는 나의 생각이 우선인 경우, 진실과 정의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을의 몇 사람을 빼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톰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유얼 씨네 딸을 강간했을거라고 믿었던 이유처럼. 작가는 우리에게 나의 입장에서보다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213페이지)
나의 생각보다는 타인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나의 생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은 인종차별처럼 편견이 자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여러 작품을 읽고 나와 다른 시각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공평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소설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해주고 어느 누구에게도 특권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가. 우리의 시선을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는가.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책에서처럼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고 그들을 짓밟는 걸 서슴치 않는 이들도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 따뜻한 시선을 가져야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용기를 가지는 것. 진정한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진정한 용기와 신념.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