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했던 소년 앤드류 와일즈는 이 난제를 한 허름한 동네 도서관에서 읽게 된다. 후일에 회상하기를 그는 그때 이 문제를 풀어야겠다는 어떤 운명적인 힘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일생을 바쳐 풀어내기로 결심하고 수학자가 되어 7년간의 은둔 생활 끝에 결국 350년간 수많은 수학자의 무릎을 꿇렸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어낸다. 1997년의 일이다. 내가 책을 읽었던 해가 2005년이니, 고작 8년 전의 일이었던 셈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전율이 일었다. 앤드류 와일즈가 운명적인 힘에 이끌려 평생을 바쳤던 그 학문은 내가 알고 있던 단순한 수학이 아니었다. 완전무결한 그 무엇, 세상의 욕심이나 향락에서 벗어나 순수한 이상향을 추구하는 그 무엇이었다. 수학자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
람인 것 같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플라톤이 역설했던 ‘이데아’의 개념과 비슷하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새벽까지 학원 숙제를 하고 자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하지만 나는 초등학생 때 자정을 넘겨 잔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던 밤에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던 것이다. 다음 날의 학교 수업에 지장을 줄까 걱정해 늦더라도 2시 전에는 늘 잠에 들었던 안수경이 그야말로 무아지경으로 몰입하여 책을 읽은 것이다.
책장을 덮은 후 내가 수학을 대하는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그냥 사칙연산의 연장선인 간단한 산수가 아니라 철학에서 출발했던 수학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맛봤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하디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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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를 매료시킨 것은 우주의 96%를 이루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였다. 생각해 보라. 스스로 지혜롭다는 종이 우주에 대해 아는 것은 고작 4%이고, 나머지는 96%의 미지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소년은 꿈을 꾼다. 망원경을 바라보는 자신을.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자신의 모습을.
어릴 적, 소년은 어머니와 함께 《인디아나 존스》를 자주 보았다. 숨겨진 유물을 찾으러 다니며 온갖 모험을 하는 인디아나 존스가 멋져 보이던 그는 한동안 고고학자와 과학자 중 무엇이 될지 고민하기도 했을 정도. 그런 그에게 천문학이 들어오자 그는 멋진 해결책을 찾게 된다. 바로 ‘우주 고고학자’가 되는 것이다! 즉 별과 성운, 은하 등을 연구하며 우주의 역사를 연구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 아닌가! 책은 과연 그 제목대로 소년에게 보물섬을 향한 지도가 되어 주었고, 소년은 지도에서 ‘우주론’이라는 보물을 꿈꾼다.
--- p.66
사실 언제부터 과학을 좋아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남은 기억이라고는 내가 수학, 과학 성적이 좋은 중학생이었다는 것 그래서 과학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고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왜 그렇게 과학을 미친 듯이 공부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에 대해 어릴 적 추억을 되돌아보면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지만 어린 나이에 가끔 고독을 즐기며 사색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때가 바로 길가의 개미를 관찰할 때였다. 왜 하필 개미였을까?
개미는 항상 무리지어 다니며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종류마다 크기도 다양하고 생김새도 단순하여 다른 곤충에 비해 덜 징그럽다. 게다가 한국에 서식하는 개미들은 독이 없고 공격성도 없기 때문에 초등학생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연약한 생물이다. 마음만 먹으면 개미를 이용해 해 보고 싶은 것 모두를 시도할 수 있었다. 물론 윤리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그리 긍정적이지는 못하다. 하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어린 시절 나의 과학적, 공학적 사고 능력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개미와 관련하여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 p.117~118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학생이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카이스트’에 다니느냐며 놀라워하거나 그런 과도 있냐는 반응을 한다. 다른 대학의 디자인학과와 마찬가지로 실기 시험을 보고 입학하는지 궁금해할 만큼 산업디자인학과는 카이스트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대체 왜 카이스트에 산업디자인학과가 있을까? 다른 학교의 산업디자인학과와 무엇이 다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고 넘어가야 하지만, 우선 카이스트라는 특수한 환경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먼저인 듯하다. 카이스트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생활한다. 과학이라는 특수한 관심 분야를 공유하는 만큼 전체 구성원 모두 기본적으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새내기 시절에는 무학과로써 모두가 같은 수업을 듣고 자연과학과 공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지식을 익힌다. 이런 특수한 환경 속의 카이스트에서 바라는 산업디자이너는 일반적인 산업디자이너와는 다른 목표를 추구한다.
--- p.227~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