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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모래 위의 두 발

젖은 모래 위의 두 발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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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2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86g | 153*224*20mm
ISBN13 9788932917405
ISBN10 89329174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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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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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그 자리에 털퍼덕 무너진다. 「엄마, 이런 일은 상상도 못 했어. 타이스가 많이 아프대요. 우리 딸이 죽는대요. 저 애가 죽는대.」 엄마가 통곡한다. 절대로 눈물을 보이는 법이 없는 우리 엄마가. --- p.13

「매사 지금까지처럼 해. 타이스는 왜 어제 엄마에게 혼이 났는지도 모르고, 왜 오늘 똑같은 짓을 했는데 혼나지 않는지도 몰라. 이러다간 자기가 무슨 짓을 하든지 엄마 아빠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 거야. 여보, 사실 병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도 저 아이에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두 살배기 아이의 머릿속에는 3월 1일 이전과 이후가 없다고. 그냥 예전처럼 그 애의 삶은 쭉 계속되는 거야.」 --- p.20~21

「동생이 태어나면 첫째가 심통을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 동생이 아프다, 이런 말을 들으면 오빠는 자기가 저주를 내려서 그렇게 된 줄 알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엄마 아빠가 슬퍼하는 모습도 보이고. 아픈 동생에게 죄책감이 들고 온 집안의 슬픔이 내 책임 같은 거야. (…) 하지만 그게 아니야, 가스파르. 타이스가 아픈 건 네 탓이 아니란다. 아무 잘못도 없어. 가스파르, 선생님을 보렴. 네 탓이 아니야. 너는 아무 잘못도 없단다.」 --- p.22-23

전에는 타이스를 위해 오만 계획을 세웠고 오만 바람도 품었다. (…) 이제 커서를 옮겨야 한다.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끝으로 바짝 다가가야 한다. 그래도 그 생애의 본질, 사랑받으며 자랐다는 사실만은 변치 않을 것이다. 그래, 타이스는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 그저 주어진 시간이 짧을 뿐이다. 그래, 타이스의 생애는 짧겠지만 훨씬 치열할 것이다. --- p.27

「두 사람이 살아갈 나날을 전부 다 상상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우리 능력 밖의 일이죠. 평생 먹을 음식의 양을 한 번에 다 갖다 놓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랬다간 먹기도 전에 질리고 말걸요. 그래요, 남은 평생을 한꺼번에 생각하려고 하면 식욕이 달아날 법합니다. 매일의 일용할 양식, 그날그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뿐 내일 먹을 것, 모레 먹을 것은 생각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우리 생이 끝나는 그 순간 돌아보면 참 잘 먹었구나 싶을 겁니다.」 --- p.49~50

이 병은 돈키호테의 풍차, 우리가 쓸데없이 힘을 소진하게 만드는 풍차다. 이 병을 상대로 아등바등해 봤자 남는 게 없다. 우리는 벌써 오래전에 무기를 거두었다. 맥없이 손 놓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또 다른 도전을 재개하려 한다. [생에 살아갈 날을 더할 수 없다면 살아갈 날에 생을 더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싸움이다. --- p.140

오감은 사치다. (…) 귀로만 들을 수 있고, 눈으로만 볼 수 있고, 입으로만 말할 수 있고, 코로만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살갗으로만 촉감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과 그 끈질긴 소통 욕구, 함께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외면한다면 모를까. --- p.174~175

「엄마, 왜 티콜라가 죽었다고 바로 말하지 않았어요?」
「무슨 소리니, 가스파르. 엄마는 소식 듣자마자 너에게 말해 준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왜 우리 곁을 떠났다고 했냐고요. 되게 이상해요. 티콜라는 제 발로 떠난 것도 아니고 다시 돌아올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말했어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엄마는 너에게 티콜라가 죽었다고 말하기가 좀 그랬어. 그게 참 하기 어려운 말이거든. 적어도 어른들은 그래.」
「나는요, 그냥 [티콜라가 죽었어]라고 말해 주는 게 좋아요. 나는 죽었다는 말이 겁나지 않아요. 어차피 모두 죽는 거잖아요. 죽음은 별거 아니에요. 슬프긴 하지만 대단한 건 아니에요.」 --- p.163

거의 2년 가까이, 아이의 병이 하나하나 빼앗아 가는 것들을 보면서 나는 의문을 품었다. [우리 딸한테 뭐가 남을까?] 사랑. 사랑은 남을 것이다. 우리가 받은 사랑. 그리고 우리가 준 사랑도. --- p.214

「여기는 왜 이럴까요? 이 병실은 뭔가 특별하네요. (……) 더없이 딱한 아이가 있는데 왜 마음이 편해질까요. 한없이 따뜻한 기분이 들어요. 행복하다 싶을 정도로. 보호자를 두고 이런 말을 하다니, 죄송해요. 하지만 제 속에만 담아 놓을 수 없는 기분이라서.」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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