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아름답게 형상화시킨 소설
『소피의 세계』는 철학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선보인다. 철학에 관한 소설이지만, 단순히 철학 소개를 위한 교양 소설이나 흥미 위주의 소설만이 아니다. 딱딱한 철학을 그저 쉽게 풀어낸 책만도 아니다. 『소피의 세계』는 현대 정신문명의 철학적 뿌리를 환상적인 이야기 구조 속에서 이해하게 한다.
가아더는 철학적 사변을 가장 대중적인 문학 형식인 소설을 통해 성공적으로 형상화시켰다. 즉 이 소설에는 철학적인 진지함과 엄밀함이 매혹적인 아름다움의 옷을 입고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있다. 작가는 철학적 사색의 길이 비록 고통스러운 정신의 노동과 인내를 요구하더라도 거기에는 다른 곳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철학적 삶과 태도에 대한 자연스러운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이 점이 여타 철학책들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특징이다.
가아더는 왜 『소피의 세계』를 썼을까?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철학은 이상한 시원함을 준다. 소설책처럼 술술 읽히지 않아 어떻게 생각하면 고통스럽지만 철학은 기본적으로 언어로 사고하는 학문이고 언어를 엄정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이유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라고 철학의 매력을 피력하기도 했다.
철학 선생님이었던 가아더 역시 아이들에게 늘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에게 철학은 민주적이며,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처럼 모든 사람과 관련이 있는 질문을 담기 때문에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학문이다. 가아더는 “철학은 영원하다고도 할 수 있는 전 세계적인 범위의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학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 우리의 삶을 더 강렬하게 만들어준다.”라고 강조하면서 “철학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비판과 분석 능력을 계발하는 사회를 위해 아주 중요하다. 맹목적으로 반항하는 세대를 만들어내는 사회는 매우 위험하다.”라는 말로 오늘날 철학이 지니는 의의를 얘기한다. 이를 통해 지금, 철학 부재의 시대에 우리가 철학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독자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철학의 퍼즐
『소피의 세계』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현대의 실존주의까지, 3,000년에 걸친 방대한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발자취를 남긴 철학 거장들의 사상을 하나하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풀어가면서도 지은이만의 독특한 소설적 장치 속으로 독자들이 깊이 빠져들게 한다. 이 책은 철학을 단순히 주입식으로 익히게 하지 않고 많은 사례와 문제 제기를 통해 책을 읽는 독자가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게 하면서 빈자리를 맞춰나가는 퍼즐 게임처럼 진행된다. 따라서 논리조차 암기해야 했던 청소년과 대학생, 나아가 성인들에게도 철학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며 사고하는 즐거움과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게 한다.
유럽에서 전 세계로 확산된 베스트셀러 『소피의 세계』 열풍
1993년 8월 독일에서 번역판이 출간된 이후 『슈피겔』지 등 5대 시사 주간지가 선정하는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뉴욕 타임스 북리뷰(New York Times Book Review)]에서는 ‘원래 청소년을 위해 쓰였지만 성인들이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고 기사화하기도 했다. 2011년 기준, 6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적으로 4,000만 부가 판매되었다.
철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현대판 판타지 소설을 상상해보라. 서로 전혀 다른 이 두 장르를 섞으면 당신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절묘한 역작, 희한한 세계적 베스트셀러일 것이다.
― 타임Time
이 책은 철학 개론을 한 번도 수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입문서가 될 것이며, 철학 개론을 수강했거나 수강했더라도 대부분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아주 흥미롭게 기억을 되살려줄 것이다.
― 뉴스위크Newsweek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철학 강의를 전혀 현학적이지 않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평이하고 능숙한 문체로 서양 철학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이 작품은 탐정 소설의 기본 형식을 빌려서 철학적 탐험을 소설로 만들었다. 이 책은 원래 청소년을 위해 쓰였지만 성인들이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 뉴욕 타임스 북리뷰New York Times Book Review
줄거리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클뢰베르베이엔에 살고 있는 열네 살 소녀 소피는 어느 날 의문의 편지를 받는다. “너는 누구니?” 편지를 보낸 사람은 스스로를 ‘철학자’라고 소개하고 곧장 소피와 철학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시작한다. 우체통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소피의 행동을 의심하는 소피 엄마의 의심에 굴하지 않고 이 흥미진진하고 미스테리한 철학 수업은 계속 진행된다. 이어서 정체를 드러낸 철학 선생님 알베르토 크녹스는 자연철학자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고대 철학자에서부터 흄, 키르케고르, 프로이트 등 현대의 철학자들까지 시대적 배경과 그들의 이론의 흐름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과정의 중간에 알베르트 크나그 소령과 힐데라는 인물이 튀어 나오고 소설은 미스테리에 싸인 채 전개되면서 중세 철학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앞부분에서 생생한 현실로 그려지던 ‘소피의 세계’가, 실은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던 노르웨이 유엔 평화 유지군의 알베르트 크나그 소령이 딸 힐데의 생일 선물로 쓴 창작 소설 속의 허구라는 메타 픽션(metafiction) 구조가 밝혀지면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자신들이 소설의 주인공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소피와 알베르토 크녹스 선생은 자신들을 창작한 크나그 소령에게 반발해 소설 『소피의 세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
감수자의 말(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
『소피의 세계』를 읽는 우리들 자신은 이 소설 속의 존재들보다 더 나은가?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이 세계의 존재는 소피의 세계와는 달리 자명하고 확고한 것인가? 작가는 독자인 우리를 이 물음 속으로 피할 수 없이 밀어 넣는다.
- p.743
일상성 속에 빠져 있는 의식을 일깨워 자기에게 가장 익숙하고 자명한 듯이 보이던 것, 바로 자기 자신과 주변 세계의 존재를 도리어 끝없이 낯설고 불가사의한 것으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이 이룰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성취의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소피의 세계』는 한갓 철학의 소개를 위한 교양 소설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의미 있는 철학적 성취인 것이다.
- p.743~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