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7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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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6쪽 | 544g | 135*200*30mm |
ISBN13 | 9788991931312 |
ISBN10 | 8991931316 |
발행일 | 2007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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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6쪽 | 544g | 135*200*30mm |
ISBN13 | 9788991931312 |
ISBN10 | 8991931316 |
어둠 속의 사는 자 검은 바람 산울음 깊은 흐름 소란 마루미의 바다 후기 _ 마야베 미유키 옮기고 나서 _ 김소연 편집자 노트 _ 조소영 |
'외딴집' 하니까 어렸을때 살던 집이 생각났다. 과수원을 하시는 부모님은 과수원 가운데 집을 지어놓셨고 과수원이 동네에서 멀리 있는 관계로 우리집은 밤이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외딴집으로 돌변했다. 낮에는 일하느라 바빴던 부모님은 밤마실로 동네를 가셨고 어린 동생들과 나는 집을 지켜야 했지. 중앙에서 잘 나가다 미움을 사 유배를 오게 된 후나이 가가, 정말 그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죽였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자체가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준다는 것이 중요하지. 마루미 번은 그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다. 아니 잘 대해 줄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줄다리기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유배하니 조선시대 관리들이 윗사람에게 미움을 받아 유배를 떠나던 것이 생각났다. 다양한 사람들이 유배를 떠났고 유배가 풀려 다시 복귀하기도 했지만 가끔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죽어가는 경우가 있었다. 후나이 가가를 그런 경우를 치면 이상하겠지만 결국 그도 복귀하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죽은 케이스다. 조선이 유배지 관아 관리들이 유배온 사람을 보살폈다면 일본(에도시대)은 어땠을까? '호'와 같은 하녀를 하나 배치해두고 죄인이 유배지를 떠나지 못하게 관리하는 사람도 몇 명되겠지. 여자로서 무사가 되기위해 노력하지만 결론이 그다지 좋지않은 우사의 이야기도 슬프다.
가업을 이을 자식을 제외하곤 다른 자식들은 다른 일자리를 구해 자신을 삶을 책임져야 한다. 가업은 대부분 장남이 잇게 되어 있다. 차남이하 다른 자식들의 미래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미천한 신분의 호가 글을 익혔을리 만무, 귀족 신분의 '가가'가 호에게 글씨를 가르쳐 주는 것은 보면 감동했다. 귀천에 상관없이 주변 사람을 아끼는 가가의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 바보 '호'가 아니라 보물 '호'로 호의 이름을 바꿔 준 이도 가가다. 그런 가가의 처참한 최후는 안쓰러웠다. 모든 소설이 해피앤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외딴집》도 해피앤딩으로 끝을 맺지는 않았다. 하긴 동화도 알고보면 해피앤딩이 아닌 것이 많다잖아.
에도시대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이이 다이쇼군에 임명되어 막부를 개설한 1603년부터 15대 쇼군 요시노부가 정권을 조정에 반환한 1867년까지의 봉건시대를 말한다.
화가 한효석의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 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시리즈 ― 찾아보고 놀라지 말라 ― 는 인두겁의 사회 ․ 문화적 징표를 보여준다. 각 작품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감추고 있긴 하지만 ‘인간의 쓸데없는 피부’에 대한 것만은 동일하다. 다음은 한효석 작가의 말. 「5밀리미터만 벗겨도 우리는 고깃덩어리다. 부와 명예를 가졌을 때에 자신을 신격화하고 착각하며 남을 지배하려 하다 보면 동물들 사이에서는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마루미의 바다에 토끼가 날면서부터, 이 고깃덩어리들 사이의 카드놀음이 시작된다. 드라마틱하다는 건 이런 거로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가가 님의 신비가 끝내 신기루로 남을 것임을 짐작했을 땐 좀 너무하다 싶었지만 어차피 그보다는 ‘가가 님과 아이들’의 이야기니까 뭐 그쯤은 봐주기로 했다(봐주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말인즉슨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낸 셈. 홑 떨어져있는 가가 님임에도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데, 오히려 외딴집을 둘러싼 바깥의 외딴집들이 더 두려움에 떨게 되고 ― 우사나 호가 시도하는 선문답은 좀처럼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으면서 마루미의 고래 싸움에 새우 등만 터진다. 그리고, 적어도 라스트신을 향해 갈 때에도 와타베와 우사는 살아있어 주길 바랐으나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었다. 이래서는 ‘민폐 가가’다. 그 때문에 와타베의 르상티망이 과연 제대로 결실을 맺은 것인지, 우사와 호의 텔레파시가 제꺽 잇닿아있긴 한 건지도 의문스러워진다.
「비는 누구의 머리 위에나 똑같이 내린다.
하지만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ㅡ 하권 본문 p. 338
읽어보면 알겠지만 『외딴집』은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할 때 그 일상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니까 당연히 주어진 시대를 백그라운드로, 연기하는 건 개개인이. 그런데 이따금 이 작품을 두고 쉽게 읽을 수 없다는 얘기를 주워듣는다. 에도 시대의 어려운 관직명 때문일 수도 있고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변죽만 울리는 가가 님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얘기들은 작품을 읽을 때의 노선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듯싶다. 초반부터 시작되는 잠잠한 드잡이를 맛보고서도 이런 소리가 나올까. 게다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어떤 현대 스릴러물에도 뒤지지 않는 박진감도 엿보이는데 말이지, 그리고 감동도. 앞서 언급했듯 ‘드라마틱하다’는 건 ― 여기서의 방어기제 ― 호의 바보스러울 정도의 맑음(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호를 보면서, 호의 얼굴 위로 치매에 걸린 우리 할머니가 겹쳐졌다)이 외딴집과 마루미를 무대로 한 수수께끼 같은 원흉에 대립항으로 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애달픔에서 파생된다고 본다. 그럼으로 ‘민폐 가가’에서 ‘신(神) 가가’로의 자연스런 연착륙도 이루어진다. 여전히 마지막 맺음은 슬퍼서 싫지만…… 아 씨, 눈물이 다 나네.
덧) 원제 『孤宿の人』의 ‘人’는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마루미에 내리던 비는, 이제 조금은 그쳤을까.
나는 에도시대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하다. 책을 완독한 지금도 에도시대의 계급이름이라던가 문화라던가 하는 것을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름은 뭐가 그렇게 복잡하며, 도대체 상전이 몇인지.. 그런데도 과감히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은,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에 대한 신뢰감과 약간은 고풍스러운 느낌의 표지에 대한 호감 때문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했다. 단지 에도 시대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보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냐고!
사실 옮긴이도 그 부분을 염려하긴 했나 보다. "처음에는 읽기가 상당히 힘들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읽어보면 분명 후회하지 않을 거다"라는 식으로 옮긴이의 말에서 열심히 독자들을 설득한다. 중간중간 그냥 덮을까 할 때마다 그 말에 힘을 얻어 읽었으니 영 헛일은 아니었다.
<외딴집> 특히나 상권은 쑥쑥 잘 읽히지는 않는다. 은근히 일본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안된다고나 할까. 그나마 우리나라를 떠올리며 이랬겠거니 저랬겠거니 했으니 좀 속도가 나간 것 같다. 지금 이 책을 읽으려고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처음엔 약간 힘들더라도 끝까지 읽기를 권한다.
에도 시대가 배경이지만 <외딴집>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사실 현대에도 맞물리는 것이다. 진실을 감추기 위해 소문이 필요하고, 그 소문에 기대어 터무니없을 정도로 실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대의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휘둘리는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들, 오해와 은폐가 교묘히 뒤섞이는 그 현장은 지켜보는 우리에게 ’지금 우리도 저런 모습이 아닐까?’하는 씁쓸함을 맛보게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사람들이 진실을 알면 안된다며 정작 관계자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눈가리고 아웅하는 에도 시대 사람들을 보면서 결국 어딜가나 사람사는 것은 다 비슷하구나 싶었다. 아무리 나쁜 일도 "가가님의 탓이다" 한 마디면 만사 형통이지 않은가. 사고가 나도, 사람이 죽어도, 고기가 잡히지 않아도, 불이 나도, 벼락이 쳐도... 결국 사람들은 비난과 책임의 대상을 찾는 것 뿐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십여 장은 특히 좋았다. 호와 우사의 만남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 하고 말았다. 아아, 있는 힘껏 행복해지기도 힘겨운 세상인가..싶어서. 역시 미미여사는 뒷심이 무서운 작가다. 온갖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예리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그녀의 시선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