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에 ‘오사카의 별’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고교 동급생이었는데, 고교생 2년 시절에 이미 키가 190cm가 넘어버려, 어딜 가더라도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한데, 사실 녀석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녀석은 항문이 두 개였다. 이것은 공공연한 소문이었다. _〈오사카의 별〉에서
“도저히 당신 소설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가 편지의 첫 문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OO에 사는 누구입니다’ 같은 의례적 인사는 없었고, 하다못해 ‘어이, 작가 양반. 되도 않는 소설 쓰느라 고생 많군’ 같은 비아냥도 없었다. 자신을 마장동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이라 소개한 이의 이름은 이재만이었다. 사실 나는 약간 놀랐다. 이재만은 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악당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때문에 오해를 받고 있어 억울하다고 했다. _〈독자편지〉에서
그녀는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맥주를 안 마시면 어쩐지 믿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꼭 같이 마시고 나서 말하고 싶다며, 맥주를 더 주문해달라고 했다. 맥주를 넘기는 그녀의 목선은 아름다웠다. 맥주가 목을 넘어갈 때마다 들리는 꿀꺽거리는 소리는 나의 고막 속에 ‘새 사랑이 시작될지도 모른단 말이야!’라는 울림을 만들어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침을 삼켰다. 그녀는 맥주를 삼켰고, 나는 침을 삼켰고, 그녀의 몸 안으로는 맥주가 들어갔고, 그녀가 목을 젖혀 맥주를 넘길 때마다 나의 영혼은 그녀의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_〈벚꽃 필 적의 야간 음주사〉에서
내 별명은 ‘개민석’이다. 술을 마시면 개가 된다 하여 지인들이 붙여준 것이다. 물론, 옆 테이블 손님들에게 추근대거나 지분거리는 것은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짖는 것’이다. 이게 무슨 술버릇인지 모르겠는데, “왈왈!” 하며 이삼십 분 정도 짖고 나면 고민 같은 것도 해결되고, 소화도 잘 되고, 목청도 트인다. 몇 년 되다보니 다들, ‘음. 이제 짖을 시간이군’ 하며 받아들이고, 때로는 ‘오늘은 좀 허기진 욕구불만의 소리 같군’, ‘저번보다 소리가 안 좋아. 어디 아픈 거 아냐?’ 따위의 의견도 내놓는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나는 ‘개민석’으로 지난 몇 년간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다. 그저께 술을 마시고 일어나보니 정말 개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_〈My Life As A Dog; 개 같은 내 인생〉에서
지난달에 과음을 한 후 하루 동안 개가 된 경험을 한 탓에, 나는 한 달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연경 씨에게 실연을 당해 또 한 번 과음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무슨 영문인지, 눈을 떠보니 이번에는 연경 씨 집의 개가 되어 있었다. _〈My Life As A Dog 2: ‘속’ 개 같은 내 인생〉에서
무리를 짓지 않는다. 소속되는 것도 싫어한다. 수임료는 현찰로 받지만,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 내키면 때론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는다. 여인의 키스도, 노인의 인사도, 젊은이의 존경도 그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단 하나, 매일 밤 동경의 야경을 즐기며 하이볼을 한잔 하는 것뿐이다. 그는 고독한 독신 탐정, 김평관
이다. _〈탐정 김평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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