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7년 02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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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56쪽 | 390g | 126*182*30mm |
ISBN13 | 9788965745877 |
ISBN10 | 896574587X |
발행일 | 2017년 02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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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56쪽 | 390g | 126*182*30mm |
ISBN13 | 9788965745877 |
ISBN10 | 896574587X |
아버지|동부전선|“난 괜찮다”|세느주점|하관(下棺)|남산경찰서|상해(上海)|공습|압록강|흥남|서울|부산|낙동강|아가미|미크로네시아|베트남|결혼|첫날밤|해직|당신의 손|국립묘지|오토바이|어머니|덫|편지|형제|기별|누니|린다|억새|말|귀향 |봄 작가의 말 |
공터에서, 김훈 장편소설, 해냄 출간
김훈 선생의 글에서는 수고가 느껴집니다. 감정의 현을 건드리는 글들에서 활줄로 연주하는 것처럼 정성스럽고 정확한 음을 내려는 열정이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연주되는 이야기들이 화려하거나 수다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다를 줄이려는 노력에서 감정은 더욱 증폭되고 함부로 뭐라 말할 수 없게 합니다. 사람의 감정을 읽는다는 것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니 독자라는 이유로 어찌 수다를 떨 수 있겠습니까. 글쟁이가 글을 억제한다는 것이 마치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 같을진대, 독자 또한 글을 읽는 동안 숨 쉬기가 쉽지 않습니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선뜻 넘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문장마다 인물들의 신산한 삶이 느껴져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침 묻은 손가락으로 넘기기에 버거웠습니다. 작가가 후기에서 기록한 말입니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요즘 할리우드의 영화는 마블에서 만든 영웅들의 이야기로 가득 찹니다. 남 다른 초능력을 지니고 빌런들과 싸우며 정의를 세우는 이야기들입니다. 사람들이 이들 이야기에 푹 빠지는 이유를 저는 모릅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여 실사보다 뛰어난 현실감 있는 화면 때문인지, 빌런들을 처벌하는 통쾌함 때문인지, 현실의 어려움을 견디려는 몸부림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의미는 무슨 의미?” 그냥 눈이 즐겁고 귀가 빵빵하고 이야기 전개가 빠른 오락물이니 좋다는 말도 듣습니다. 이들의 영웅담은 현실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영화를 잘 못 봅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여 채 5분을 지속해서 볼 수가 없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영웅은 아마도 이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굴곡지고 왜곡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 중에는 제법 출세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부정한 폭력을 이용하는 사람, 남의 불행의 줄을 타고 행운의 땅으로 건넌 사람, 타인의 삶을 파괴하면서 자신의 삶을 건설하는 사람, 아마도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지칭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도리에 막혀 머뭇거리고, 끈질긴 인연의 끈들을 피해 두리번거리고, 태에서 태어나게 한 앞 세대의 강을 건너고, 회한의 안갯속을 헤매며 짓지도 않은 죄를 생각하며 쫓겨 다니는 사람들을 작가는 남루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말하고 싶었답니다. 슬픈 이야기라서 쓰고 싶었고, 고통이 난무한 이야기라 쓸 거리가 많아서 쓰고 싶었을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오늘도 자화자찬 수다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만들어 지지 못할 말을 던집니다. 비문입니다. 글은 기름이 자르르 흘러 등을 켜고 읽기에 어지럽습니다. 정의와 공정을 얘기하는 속에는 불의와 차별이 넘칩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단어의 뜻은 왜곡됩니다. 원래 말과 글은 무거운 것이었습니다만, 이제는 작은 바람에도 날아가는 겨가 되었습니다. 알곡을 덮었던 겨가 날아가는 것에만 시선이 집중되어 알곡은 개의치 않습니다. 시대가 어지럽습니다. 어지러운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데, 영웅을 빙자한 자들의 말은 화살이 되어 허망하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만약 소설가가 허망한 화살과도 같은 말에 눈길이 가고, 중언부언하는 글로 포구 앞바다를 채운다면 우리의 삶을 실은 조그만 배들은 포구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할 참극을 맞을 것입니다. ‘공터에서’ 들은 이야기가 너무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해서 남루한 얘기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남루한 한 세대의 물줄기를 바다로 밀어내는 다른 한 세대의 물줄기가 흐르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강을 이루고 바다와 만나는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작가는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저는 한 시대를 산 영웅의 서사시로 읽었습니다. 작가가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은 결코 남루한 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저는 봤다는 말입니다. 비루하기로 따지면 빌붙어 흘린 권력과 재물을 핥는 자들의 이야기가 압권이지요. 하루하루를 죽을 둥 살 둥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맛집에서 오랜만에 신메뉴를 내놨다. 근데 신메뉴가 영 땡기지 않는다.이 집의 시그니처가 워낙 맛있기 때문. <칼의노래><남한산성>의 재료는 일단 클라스가 다르다. 이순신, 선조, 인조, 김상헌, 최명길. 재료가 좋고 가게주인의 솜씨는 탑클라스니까 맛없을 리가 없다. 반면, 신메뉴 <공터에서> 재료는 듣보잡 세명이다. 어느 미친놈이 맛있는 두 메뉴를 두고 신메뉴를 주문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신메뉴를 먹어보았다.
<공터에서>는 듣보잡 세명이 등장한다. 마동수. 마창세. 마차세. 마동수는 아빠고 마장세와 마차세는 각각 장남과 차남이다. 세 듣보잡은 존나 궁상스럽다. 마장세는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질은 하춘파의 소개로 한국어를 가르친 것 뿐이었다. 6.25때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스탈린 만세를 국군이 점령하자 국군 만세를 외쳤다. 능동이란게 인생에 없는 수동적인 듣보잡 인간 그자체. 마장세와 마차세도 다를 건 없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공터에서>를 출간하고 김훈은 위와 같은 인터뷰를 했다. 의문이 생겼다. 기존 소설의 인물들과 이번 작품의 인물들이 비슷하다고? 아니다. 마가 세명은 완전히 머뭇거리며, 완전히 무기력하다. 반면, 앞선 두 작품의 인물들은 머뭇거리나 무기력하지 않다.
완전히 무기력한 인물들의 서사라도 괜찮다면 책을 권한다. 하지만 <칼의노래><남한산성>의 인물들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김훈의 팬이라면 소설은 여전히 좋다.
여담으로 작가의 색깔이 너무 강해서인지 작품에 한계도 조금은 느껴진다. 마차세의 와이프(박상희)가 결혼 전에 편지를 보낸 부분에서 그렇다.박상희란 인물이 편지를 썼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김훈이 여대생 코스프레를 해서 대필했다는 느낌만 든다. 어느 여대생이 단문으로 편지를 조지고, 주어+동사 문장형식으로 죽 이어나갈까?
마동수(馬東守)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7쪽)
첫 문장의 의미가 남다른 김훈의 소설 <공터에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주인공의 삶이 마무리되는 객관적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분명 이야기는 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소설은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왔던 한 아버지와 아들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작가가 전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동수의 삶은 우리 현대사의 아픈 장면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마동수는 경술년 국치의 해에 태어나 서울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만주의 길림, 장춘, 상해를 떠돌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돌아온다.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그곳에서 피 묻은 군복을 빠는 빨래꾼이 된다. 이 때 흥남에서 피난온 이도순을 만나 부부가 된다. 장남 마장세와 차남 마차세가 태어나지만 아버지 마동수는 변변한 직업없이 가끔씩 집에만 들르는 무능한 가장이었다. 가족 생계는 오롯이 이도순의 몫이었다. 마차세는 아버지의 삶을 이렇게 정리한다.
"난 아버지를 묻을 때 슬펐지만 좋았어. 한 세상이 이제 겨우 갔구나 싶었지. 이런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흙을 쾅쾅 밟았어. 형은 그 힘들게 지나간 자취가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는 거지.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려다가 또 다른 수렁에 빠지고 있는 게 아닐까? (184쪽)
장남 마장세는 베트남에 파병되었다가 그곳에서 제대하고 바로 미크로네시아로 가서 정착한다. 거기서 호텔업과 고철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좋아서 정착했다기보다는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는 아버지 자취가 남아있는 곳으로 가기가 싫었고, 둘째는 베트남에서 전사한 전우 김정필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데 그는 베트남에서 함께 작전시 부상을 당했으며 탈출하는 과정에서 부담이 되어 자신이 사살한 동료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고 죽은 김정필과 함께 무공훈장을 받았던 것이다.
차남 마차세의 삶도 순탄하지 않다. 제대하고 사귀던 여자 박상희와 결혼하지만 주간지 인턴기자로 취직한지 3개월만에 해고된다. 미대를 졸업한 아내 박상희의 미술학원 강의수입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의 부모들의 삶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어머니 이도순도 마동수가 죽고 난 후 8년을 더 살았지만 결국 요양원에서 숨을 거둔다. 장남 마장세도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채 좋지 않은 모습으로 귀국한다.
내세울 것 없은 우리 이웃의 삶이 급박한 역사적 사건의 전개를 따라 그려진 작품이다. 이들은 세상과 겉돌면서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며 쫒겨 다닌다. 삶이 주는 무게에 짓눌리고 하루하루 마치 공터에서 혼자 쓸쓸하게 서 있는 듯하다. 지난 시대의 역사와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작가의 심정이 작품의 제목에 나타나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