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은 어떤 학문일까요? 그렇지요. 기호학은 ‘기호’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기호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학문”이에요. 여러분이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기호를 통해 소통하며 살아갑니다. 각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기호에 담지요. 우리가 내뱉는 말뿐 아니라, 글[문자], 몸짓과 손짓, 눈빛 등도 모두 기호에 포함됩니다. 교과서의 수식, 도로 표지판, 동물들의 언어도 기호에 속하고요. 그런데 각각의 기호엔 일정한 의미, 즉 뜻이 담겨 있어요. 건널목의 빨간 신호등은 “잠시 멈추세요”라는 의미를 지니고, 수식에서 사용하는 ‘+’는 “두 숫자를 합하시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휴대폰의 전화벨은 “전화가 왔다”는 것을 뜻하고요. (……) 이처럼 얼핏 같아 보이는 행동이라고 해도 맥락에 따라 의미는 가지각색일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다른 사람과 제대로 소통하려면 먼저 그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기호의 뜻을 이해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기호학은 대체 왜 배우는 걸까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걸까요? 이 자리에 모인 친구들 대부분은 이런 궁금증을 품고 있을 거예요. 답을 드리자면, 단언컨대 기호학은 매우 쓸모 있는 학문입니다. 기호학을 공부하게 되면 다양한 기호를 통해 세상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때로는 그것의 어려움을 배우며, 의사소통의 복잡한 메커니즘도 이해할 수 있거든요.---「1강 [기호는 소통의 씨앗]」중에서
질문을 하나 던질게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이 누구일까요? 저라면 아서 코넌 도일의 소설에 등장하는 명탐정 셜록 홈스를 들겠습니다. 그 셜록 홈스가 범인을 찾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바로 ‘가추법’이에요. 그는 범인이 남긴 흔적을 가지고 여러 가설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범인을 추론해서 찾아냅니다. 그런데 이런 ‘가추법’과 같은 논리학이 기호 해석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요? 우리는 각자 보거나 듣는 여러 가지 현상이나 사물을 기호화하여 해석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나름의 사고체계를 통해 해석한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기호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문학, 예술, 대중문화뿐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기호와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기호학자 퍼스가 “이 우주는 기호로 가득 차 있다”라는 흥미로운 말을 한 배경이지요. 제가 아까 든 예를 가지고 설명해볼게요. 집에 왔는데, 제가 사둔 푸딩이 사라졌어요. ‘푸딩이 없어진’ 상황은 해석을 기다리는 일종의 기호 상태가 된 겁니다. 이제 저는 이 기호를 해석해야 해요. 그러면 저는 논리적인 방법을 사용하겠죠. 이때 사용하는 논리적인 방법이 가추법입니다. 셜록 홈스가 가추법을 사용하여 기호를 해석하는 장면을 한번 볼까요? 어느 날 홈스는 어떤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의 소매가 닳아서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았어요.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우리의 탐정은 이를 기호로서 해석하여 여러 가지 단서들과 결합한 후, 최종적으로 그
여자가 타자를 치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추리합니다. 이렇듯 기호 해석은 논리 과정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 꼭 기억하세요.---「5강 [친구가 내 물건을 훔쳐간 것 같은데, 어떡하지?]」중에서
미국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사례를 이야기해볼게요. 1970년대에 미국의 맥도널드 햄버거는 “쇠고기가 아니라 벌레를 으깨어 패티(patty)를 만든다”라는 이상한 소문에 시달렸어요. 경영진들은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괴담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자 매출에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에 맥도널드 사는 식재료 준비에 사용되는 소고기의 가공 과정을 TV 광고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상황은 점점 나빠졌어요. 마침내 그들은 논리적인 설득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맥도널드 사처럼 햄버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회사가 벌레를 재료로 쓰려면 그냥 포획해서 되는 게 아니라 공장 내에서 길러야 하는데, 계산해보면 벌레 사육비가 소 사육비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을 광고로 설명했지요. 하지만 이 방법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맥도널드에 가지 않는 사람의 99%가 그 소문에 대해 믿지 않지만 꺼림칙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답했다는 사실이에요. 이런 비합리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뇌가 ‘동시에 알게 된 것들’을 무조건 연결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맥도널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맥도널드와 벌레라는 이미지가 연결되어버리는 것이죠. 특정 연예인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돌고 나면, 그 소문이 거짓으로 밝혀지고 난 뒤에도 그에 대한 시선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도 이런 프레임 현상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입견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해도 소용없어요. 그들에게 “그건 진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하면 할수록 그들의 뇌 속의 프레임은 더 강화될 따름입니다. 메탈리카의 노래 제목처럼, 이것은 ‘슬프지만 진실이야(sad but true)’라고나 할까요? ---「10강 [소문의 탄생]」중에서
제 어린 시절에 TV에서 미국 서부 영화를 자주 틀어주곤 했어요. 영화에서는 인디언들이 미국 백인들을 위협하고 살해하는 악당으로 그려졌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언제나 착한 미국 백인들이 나쁜 인디언들을 이기는 것이었고요. 그래서인지 저는 어린 시절에 인디언들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부족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역사책을 보니 정반대였어요. 원래 지금의 미국 땅에는 인디언들이 먼저 살고 있었어요. 이후에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온 유럽인들이 인디언들이 사는 땅을 폭력으로 야금야금 강탈한 것이지요. 그전까지 인디언 부족들은 자연과 함께 소박하고 욕심 없이 살고 있었는데, 최신 무기를 앞세운 백인들에게 터전을 빼앗긴 것입니다. 이런 슬픈 역사가 미국사예요. 제가 어릴 적 영화에서 본 내용과 달리, 미국 백인들은 참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어요. 그래서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폭력을 은폐하기 위해서 대중문화를 통해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를 유포한 겁니다. 그 신화가 바로 ‘서부 영화’이고, 그 신화의 이데올로기는 “백인은 선량하고, 인디언은 폭력적이다”입니다. 이처럼 영화, 소설 등 모든 이야기에는 이데올로기, 특정한 가치관, 세계관이 담겨 있어요. TV드라마, 광고, 영화, 로맨스 소설 등 다양한 대중문화에도 이런 신화들과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아주 많이 담겨 있고요.---「12강 [왜 대중매체에는 미남미녀만 나올까?]」중에서
몸짓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팁을 알려드릴게요. 다음과 같은 동작들은 ‘예스’를 의미하는 제스처일 확률이 높아요.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앞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미소를 짓는다’, ‘몸의 방향이 상대를 향하게 한다’, ‘계속해서 시선을 마주친다’, ‘고개를 끄덕인다’ 등입니다. 반대로 다음과 같은 동작들은 ‘노’를 뜻하는 몸짓일 가능성이 큽니다. ‘팔장을 낀다’, ‘문가를 두드린다’, ‘손으로 턱을 괸다’, ‘발과 몸이 다른 방향을 향하게 한다’, ‘무릎 위에 손을 얹어놓는다’, ‘손을 입 부분으
로 가져간다’, ‘심하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불안정하게 눈동자를 계속 움직인다’, ‘찡그린다’, ‘곁눈질을 한다’ 등입니다. 또한 ‘아직 결정하지 못했음’을 뜻하는 몸짓도 있어요. ‘음료를 홀짝거린다’, ‘안경 끝을 자꾸 만진다’, ‘안경을 닦는다’, ‘머리를 긁적인다’, ‘자꾸 턱을 톡톡 친다’ 등입니다. 물론 위의 공식이 수학 공식처럼 100%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쫓기는 일이 있어서 심하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져 팔짱을 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위의 행동들은 제가 앞서 언급한 의미를 가리킬 확률이 제법 높습니다.---「15강 [신체기호를 알면 연애를 잘할 수 있다]」중에서
이번에는 ‘아름답다’라는 말을 생각해봅시다. 이 단어는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대상이 미적으로 뛰어나다”는 의미겠지요. 이처럼 ‘아름답다’는 원래는 미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A는 아름답다”라는 문장을 듣고 “A가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다르게 사용되면서 ‘도덕적인 가치’를 지닌 단어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아름다운 가게’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예, 재활용품을 판매하는 가게입니다. 일종의 ‘나눔 가게’라고도 불리는데, 사람들이 쓰던 물품들을 거둬들인 뒤 재활용하여 싼값으로 파는 가게입니다. 여기서 나온 돈은 소외계층을 위해 기부하는, 즉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단체예요. 이 ‘아름다운 가게’라는 상호 때문에 ‘아름다운’이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달라졌습니다. ‘아름다운 가게’라는 가게 이름에서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는 겉보기에 아름답다는 뜻보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니까요. 이를 여러 기관에서 따라 하면서, 사람들이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지요. 제가 기억하는 상호만 해도 여러 개입니다. ‘아름다운 가게’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등산’, ‘아름다운 국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국수’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저렴한 국숫집을 말해요.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는 순우리말인 데다가, 듣기 좋고 부르기도 좋아서 여러 상호에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19강 [‘아름다운 가게’는 왜 아름다울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