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귀농패러다임 하에서
온전한 귀농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무리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먼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귀농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지친 현대 도시민의 대안적 삶의 출구가 될 수 있는가? 국가와 도시의 삶에 억눌리고 지친 국민들에게 마을과 농촌의 삶은 숨통을 트여주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먹고는 살 수 있는 것인가?
그 자신 귀농을 향한 유목민 신세로 숱한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던 저자는 귀농학교 강의를 듣는 예비귀농인들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귀농인도 억대 부자농부가 될 수 있다. 마을에 살면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식의 덕담 전파는 어차피 정부에서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정부가 미처 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는 악역을 자임한다. “귀농은 출구나 숨통이 아닐 수도 있고, 마을은 해방구가 아닐 수 있다”고 대놓고 고백하고 고발한다. “귀농과 마을을 부디 주의하고 조심하라”는 거듭된 당부의 말로 강의의 결론을 내리곤 한다.
“그렇다면 귀농을 하지 말라는 말인가?”
나름대로 귀농을 갈구하고 열망하며 마을로 내려갈 날을 철저히 준비하고 각오한 수강생들로부터 어김없이 들려오는 항의성 반문이다. 그런 그들 앞에 장황한 설명이 아닌 공식 통계를 내놓으면 대개는 표정이 굳어진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 농가의 연평균 농업소득은 1000만 원 정도인데 농가소득은 35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귀농해서 농사에 전념하고 싶어도 2500만 원쯤 되는 농외소득은 따로 벌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2차 농식품가공업을 하든, 3차 농촌관광업을 하든, 아예 막노동이나 생계형 아르바이트로 품을 팔든 각자 알아서 벌어야 하는 것이다. 정교한 귀농사업계획 또는 가계경영계획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계획을 세우기 위한 출발점은 먼저 자신의 마음가짐을 살펴보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귀농을 결행해야 하는 충분한 명분과 명확한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자신이 없다면 귀농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귀농이라는 개념부터 다시 정리하는 게 좋겠다. 귀농이란 본디 농사나 농부가 되는 1차원적인 물리적 행위와 결과만을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건 다분히 귀촌과 차별하고 차등을 두고자 하는 행정편의적인 시각과 발상일 뿐이다. 차라리 귀농과 귀촌을 하나로 묶어 ‘생명, 생태, 공동체 같은 농(農)적인 가치, 또는 살림의 가치로 귀의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게 더 그럴듯하다. 그러니 귀농을 했으니 농부로 살아야 하고, 귀촌을 했으니 그저 농촌의 주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강박에서 스스로 해방될 필요가 있다. 마을에서는 순정한 농부가 되든 그렇지 않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개별적 이기주의의 육묘장이나 공장 같은 도시난민촌을 자발적으로 탈출한 용기만으로도 얼마든지 스스로 대견해하고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 귀농인들이 농촌으로 내려가는 고귀한 노력과 비장한 시도는 무조건 칭찬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았다면, 귀농이 3가지 단계로 진화해감을 인정해야 한다. ‘귀농인’이란 이름이 따라붙는 단계는 왜 귀농을 했는지,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갈등하는 귀농 초기까지만이다. 그 단계를 잘 버티고 나면 이제 마을주민의 경지에 든다. 농사를 짓든 짓지 않든, 농촌마을의 주민,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어느 정도 먹고살 자신감이 생긴 귀농 적응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나만 생각하며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던 마을시민은 시간이 흐를수록 먹고사는 걱정이 점점 줄어든다. 점점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먹고 사는 일 말고 다른 일, 남의 일에도 기꺼이 마음을 내줄 여유와 여력이 생기게 된다. 시나브로 ‘마을주의자’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왜 귀농을 해야 하는지 남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고, 나와 내 가족만 챙기지 않고 남과 더불어 협동하고 연대할 수 있는 이타적이고 사회경제적인 몸과 마음이 준비된 ‘진실된 귀농’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국가와 정부, 자본주의와 정치경제학의 구조악이 함축된 도시생활의 유혹과 미련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농촌 주민의 단계에 접어든 사람이다.
이제 귀농에 대한 가치관과 방법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지난 20년 넘게 생태적 농부나 자립적 ‘마을시민’을 소망하는 다소 낭만적이고 낙관적인 귀농운동의 가치관과 방법론을 믿고 다져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마을에서 잘 생활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불안감과 위기의식의 사례가 귀농 현장의 도처에서 돌출하고 있다. 현실이 보내오는 수많은 신호들은 개인은 물론 정부당국에게도 귀농에 대한 사고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개인에게 귀농·귀촌은 단순한 생계수단의 교체가 아니라 삶의 대변화를 의미한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귀농은 농촌만의 정책문제가 아니라 도시문제의 해결을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예컨대, 농촌인구의 과소화 해결은 곧 도시인구의 과밀화 해소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농사라는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에만 방점을 찍었다면, 이제는 ‘사람 사는 농촌마을 만들기’ 그리고 그 전제조건이자 결과인 ‘농촌-도시 간 상생·호혜관계 구축’이라는 거시적 안목을 바탕으로 귀농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을주의자’인 저자는 우리의 농촌현장에서 얻은 실제 경험과 해외의 사례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농민 기본소득제’ 등 단·중·장기적으로 실천 가능한 의제들을 제시한다. 쉬우면 쉬운 대로 당장 실천하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애로점을 파악한 뒤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매우 절실한 사안들이다. 이를 위한 틀로서, 실천가들의 집단 논의 결과물인 ‘8대 의제와 실천방법론’, 여기에 저자의 생각 2가지를 더 보탠 10가지 귀농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생태귀농에서 ‘생활귀농’으로: 영세한 귀농인들의 초기 농사는 연간 평균 농업소득인 1천만 원 수준도 안 될 것이다. 기초생활 보장은커녕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쌓이는 구조다. 먹고살 수 있는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생활귀농이라야 지속가능한 생태귀농도 가능하다. 그러자면 ‘마을과 지역사회에서 능히 먹고사는 생활기술’로 단련하고 체화시키는 지역사회 생활기술 직업전문학교, 귀농인과 원주민이 공유·협업하는 지역공유 유휴시설 사회적(경제) 자산은행 등의 실용적인 기초·기본생활 지원정책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농업귀농에서 ‘농촌귀농’으로: 농촌에는 농부 외에 다양한 일터와 일자리에 종사하고 복무하는, 농사짓지 않는 이른바 마을시민들이 필요하다. 농부들만 모여 농사일에 매달려 사는 곳은 농장과 다를 바 없다. 농부들과 함께 다채로운 마을시민들이 한데 어울려 삶과 일이 하나로 어우러져야 비로소 ‘농촌마을’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자면 귀농형 일자리 구인·구직지원센터, 귀농형 마을기업 창업지원센터, 귀농인·농민 공동생산기반시설, 귀농인·농민 공동경영 마을기업 등을 지역 곳곳에 세워야 한다.
셋째, 생계귀농에서 ‘복지귀농’으로: 귀농인의 기초생활·생계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1%를 위한 ‘돈 버는 농업’이라는 농업경제학 일방의 관점에서 벗어나, 99%를 위한 ‘사람 사는 농촌’이라는 농촌사회학, 사회복지학으로 농정의 근본기조부터 바꾸어야 한다. 농민 기본소득제, 농가소득보전 직불제 등의 제도와 마을단위의 사회안전망 등의 구체적인 방안들을 실현해낼 수 있도록 한다.
넷째, 마을귀농에서 ‘지역귀농’으로: 귀농인이 작은 마을 안에만 갇혀서는 적정한 규모의 경제사업도, 유기적인 지역사회 활동도 영위할 수 없다. 마을 안에서 마을 밖의 지역으로 경제사업 규모와 사회활동 범위를 확대·확장해야 한다. 지역단위 공동체사업 협동경영체, 유기농 로컬푸드 지역농민시장 등 많은 과제들이 있다.
다섯째, 경제귀농에서 ‘문화귀농’으로: 진정한 귀농인이라면, 정상적인 귀농인이라면 돈을 벌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귀농하는 건 아닐 것이다. 상실했던 ‘사람 사는 삶’의 문화적 그리움이 핵심 동인일 것이다. 농촌을 상업적 관광지나 놀이터처럼 훼손하는 농촌관광사업부터 재고, 경계하고, 관광농업이 아닌, 휴양과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문화농업으로 정상화되어야 한다.
여섯째, 단독귀농에서 ‘공동귀농’으로: 개별적 귀농보다는 뜻과 목적을 공감·공유하는 공동·집단귀농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다. 마을공동체 사업, 지역공동체 활동을 벌일 때 서로 협동해서 체계적인 사업조직을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노동자 공동귀농 협동조합, 귀농인·소농 중심 6차농업 생산자협동조합, 에너지자립 생태·생활 공동체마을 등이 실천모델로 유망하다.
일곱째, 독립귀농에서 ‘연대귀농’으로: 귀농인이 혼자 ‘좋은 농사’를 짓기는 어렵다. 사회적 인간이려면 마을주민, 지역사회는 물론, 도시민, 소비자들과 지속적·유기적으로 교류하고 거래해야 한다. 농업회의소 중심 자생적 지역학습조직, 농민·노동자 또는 농민·도시민 상생기금, 도시민(도시농업인) 직거래 네트워크 등을 이웃과 더불어 공조, 협업할 수 있다.
여덟째, 개인귀농에서 ‘사회귀농’으로: 농촌에서 개인주의자나 이기주의자는 불편한 존재로 환영받지 못한다. 마을공동체의 이웃, 지역사회의 타인을 이타적으로 배려하는 공익적·공공적 시민의식과 선도적 실천역량부터 갖추어야 한다. 마을교육공동체, 사회적협동조합 등의 지역공동체 운동, 로컬푸드 유통, 토종종자 보전 등 풀뿌리 순환자치경제네트워크 구축, 평화통일농업, 생태농부학교 등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아홉째, 관치귀농에서 ‘자치귀농’으로: 오늘날 정부의 귀농지원정책은 진정성이나 실효성이 기대와 필요에 미치지 못한다. 농정예산의 한계 때문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농정철학의 부재, 농정 정상화의 의지 결여가 고질적 원인이다. 결국 귀농인끼리 자조와 자립을 통한 자치와 자생이 최선의 자구책일 수 있다. 귀농인 생활자치 생태공동체마을 모델, 귀농형 마을기업(사회적경제) 모델, 그리고 귀농농가 적정 가계경영 모델을 스스로, 함께 개발해 공유하고 전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열째, 운동귀농에서 ‘사업귀농’으로: 기존의 민간 귀농운동 지원조직은 농업,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등 귀농사업과 농가경영, 교육·문화, 생활복지 등 귀농생활을 지원하는 전문조직 수준의 위상과 기능으로 거듭나야 한다. 귀농운동본부의 자생·자립 사업구조 구축, 농업·농촌형 사회적경제 등 귀농사업 지원센터의 운영, 가계경영과 자녀교육 등 귀농생활 지원센터의 운영 등을 통해 귀농운동에서 ‘귀농생활’로 귀농의 가치관과 방법론을 대전환하는 공공의 역할, 사회적 책무를 떠맡아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고민의 깊이와 실천의 무게가 더해졌을 때, 시민의 삶의 질은 물론이고 국가의 품격도 한층 높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