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08월 17일 |
---|---|
쪽수, 무게, 크기 | 432쪽 | 606g | 150*210*30mm |
ISBN13 | 9791160401776 |
ISBN10 | 1160401772 |
발행일 | 2018년 08월 17일 |
---|---|
쪽수, 무게, 크기 | 432쪽 | 606g | 150*210*30mm |
ISBN13 | 9791160401776 |
ISBN10 | 1160401772 |
프롤로그_왜 지금 마을과 공동체를 이야기하는가 | 1부 | 함께하니 인생이 바뀌었다 1. 함께 어울려 사는 재미 헌 탁구대 하나의 기적 해외여행보다 더 재미있는 마을살이 같이 살면서도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공유 주택 2. 엄마를 해방시킨 품앗이 육아 아이 보느니 힘든 직장인이 낫다 독박 육아가 없는 곳 공동 육아를 하면서부터 내 삶이 생겼다 3. 아이도 어른도 모두 행복한 공동체 교육 실제 삶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교육의 추억 온 마을이 아이들을 키운다 삶과 무관한 무기력한 교육이여, 안녕! 4. 주경야독,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시골살이 동아리만 50개, 귀촌자들이 만든 별난 시골 마을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마을 주경야독으로 새로운 농부의 길을 찾다 5. 돈으로부터의 자유 가진 게 없을수록 함께 살 길을 찾아야 욕망에 사로잡히면 자유로울 수 없다 천혜의 길지에 저비용의 마을을 조성하다 | 2부 | 실낙원을 낙원으로 만든 사람들 1. 달동네에 먼저 달이 뜬다 ‘논골마을만들기 추진위원회’ 결성 ‘떴다 홍반장’ 마을 프로그램 사랑방이 되는 교회 2. 혁명이 시작된 변방 느린 사람의 속도로 맞추어 사는 곳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다 무소유, 산 위의 삶 3. 우리 마을 희망의 일자리 공동체 안에서 일자리를 찾다 사람이 우선인 일자리 4. 어울려야 치유되는 상처 공감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다 춤, 명상으로 분노를 버리다 심리 문제가 해결되면 유토피아가 열린다 | 3부 | 혼자 살아도 행복해야 한다 1.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이유 맬서스와 도킨스의 인구팽창론은 허구가 되어버렸다 또 하나의 혁명, 포유류에서의 이탈이 시작되었다 외로움은 흡연과 알코올중독만큼 해롭다 고독할 수는 있지만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2. 싱글의 공동체살이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혼삶족들 함께 살면서 배운 것들 | 4부 | 해외 공동체를 가다 1. 병든 개인과 세상의 치유자들 50대 중반, 몸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컬트’로 비난할 수 없는 공동체 선구자들 2. 환희의 비결은 타인을 위한 삶: 태국 아속 아속의 여러 모습 나누고, 비우고, 실천하는 승려들 포틸락이 선택한 삶 진정한 베풂으로 명소가 된 시사아속 3. ‘나’로 살면 누구나 천재: 인도 오로빌 세계에서 가장 큰 공동체 마을 돈 없이도 배울 수 있다 4. 지상에 만들어가는 천국: 미국 브루더호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들 사랑과 헌신, 노동이 함께하는 천국 독재의 아픈 역사 5. 불통의 아픈 역사를 딛고 다시 소통하는 사람들: 일본 야마기시 고정관념 없이 열린 자세로 최상의 것을 실현하라 진정한 소통으로 삶을 엮어나가는 사람들 6. 눈치 보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꿈: 일본 애즈원 그들은 왜 부유한 공동체를 떠났을까 명령도 강요도 없는 회사, 어머니 도시락 걱정이 없는 애즈원 사람들 에필로그_서로 의지하고 돕고 사랑하기를 부록_‘마을공동체가 궁금해요’ 일문일답 |
우리는 살면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행복하지만, 또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하고 만 살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알게 모르게 상처받기도 하고, 또 상처 주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살이라 생각하며 살지만 마음은 공허하기만 하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 경제적인 문제까지 끼어든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행복은 고사하고 끝없는 불안과 상처속에서 어느 순간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복잡하게 얽혀사느니 차라리 혼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행복이란 주관적인 감정이다. 때론 경제적인 부가 행복의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을 내려 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비록 살림살이는 어렵다 할지라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그런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고통은 재난을 당해서 생기기도 하지만 더 큰 고통은 그런 재난을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할 때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피하면서도 관계에 목말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는 그런 행복을 위해 공동체 생활을 하거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보통 공동체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대안적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 만든 인위적인 마을을 말한다. 요즘은 기존의 마을을 더 사이 좋고 재미있는 대안마을로 변화시키는 전환마을을 포함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국내 공동체 18곳과 해외 공동체 5곳을 소개하고 있다. 국내공동체에는 전환마을과 도시에서 함께 집을 지어 사는 공유주택이 포함되어 있다. 3년동안 이들 공동체를 탐사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는 저자는, 새로운 가치와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세속에선 사람들 때문에 괴롭고 산속에선 아무도 없어서 괴로워하는 변덕쟁이’(11쪽)가 인간이라고 한다. 그런 가하면 ‘소속되고 합일되어 안정감을 주는 공동체야 말로 행복의 원천이라며 좇다가, 그것이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압살하고 피곤하게 하는 주범이라며 반공동체적으로 돌변하는 모순덩어리’(11쪽)가 인간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마을과 공동체가 주는 최대 장점은 노예살이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한다. 노예살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반복적으로 해야 할 때 그것이 바로 노예살이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공동체에서 사는 사람과의 인터뷰와 만남을 더해 갈수록 이들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선명해졌는데, 그것은 바로 돌봄과 친밀에 있었다고 한다. 공동체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변화이다. 이들은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하에서 미래의 보험에 매달리는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이웃과 서로 돌보며 친밀해짐으로써 행복해지는 삶을 택했다. 저자는 고립된 삶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이롭고 행복한지를 이들 공동체의 탐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공동체 중에서도 관심이 가는 곳은 전환마을과 ‘밝은누리’와 같은 우리나라의 공동체였다. 해외공동체의 경우 그들의 삶의 방식에 호기심이 들기는 했지만 선뜻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외국에서 공동체라 할 때는 자연마을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함께 모여 사는 마을을 말한다.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자본주의 삶의 잔인성과 파괴성을 보고 대안을 선택해 사는 마을이다. 대부분 남다른 가치하에 모여 사유재산을 가지지 않은 채 한가족처럼 살아간다. (…) 우리나라 같은 욕망사회에선 부자는 말할 것도 없고, 별로 가진 게 없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것을 내놓으라고 하면 ‘안 들어 가고 말지’라며 뒷걸음칠 가능성이 높다’(299쪽)라는 저자의 말은 공동체의 삶이 그리 단순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공동체에서의 삶도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이기에 단순히 욕망만을 내려놓는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헌신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가치관의 변화가 최우선 덕목이어야 함을 이들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은 보여준다.
이에 반해 ‘밝은누리 공동체’나 ‘은혜공동체’ 같은 우리나라의 공동체적 삶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삶이 아닐까 싶다. 욕망에 사로잡히면 자유로울 수 없다는 너무나 평범한 진리를 이들은 알고 있었다. 이들 공동체는 ‘자본의 부추김에 현혹돼 돈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 분명한 삶의 여정을 제시하며 훈련한다.’(140쪽)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살았던 시골 동네에서의 삶이 이들에게 돌아온 것 같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시하지 않고,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많은 이들이 입시위주의 교육이 삶과 괴리되어 있음을 절감하면서도 자식에게 그런 교육을 답습케 한다. 자칫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85쪽)에서 벗어나고, 노후불안이 현저히 줄어 노후를 위한 준비에 목매다가 현재를 살아보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들의 삶을 읽으면서 출세하고 부자가 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이들 공동체에서의 삶이 누구에게나 행복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자본의 욕망에서 벗어나야 하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가치관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읽은 부분은 전환 마을이었다. ‘애초 누가 계획한 것도 아닌데, 한 명 한 명이 마음을 열고 함께하다 보니 이렇게 많은 가족 같은 이웃이 생긴 것을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더 놀란다’는 사람들. 나 또한 전환마을은 아니지만 시골 마을에 내려와 살면서 내가 사는 곳이 그런 마을이 되기를 꿈꾼다. 주위엔 비록 노인분들 밖에 없지만 다가가는 삶을 살고자 한다. 잘 되지는 않지만 타인의 시선과 자본의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습 중이다. 적게 벌어, 적게 쓰고 많이 베푸는 삶이 바로 행복의 비결인 것을 알아가고 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르게 살기로 한 셈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욕망보다는 행복, 돈보다는 즐거움을 원하는 삶이 살고 싶다면 이 책에서 그 해결의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공동체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다. 너무도 당연할 것만 같았던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공동체의 사전적 정의는 ‘특정한 사회적 공간에서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라 풀이되어 있다. 작게는 가족으로부터 지역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왔다. 하지만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가족들은 한집에서 기거하지만, 서로의 생활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채로 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전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했던 ‘이웃사촌’이라는 말조차도 차츰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더욱이 도시에서는 1인 가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타인과의 관계가 점점 단절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딱히 공동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모임에 소속되어 살아가기도 한다. 그 가운데 자신의 의도에 걸맞은 모임에서는 지속적으로 참여를 하지만, 모임의 성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에는 언제든지 그만두기도 한다. 때로는 성원 가운데 누군가와의 갈등으로 인해서, 모임의 성격과 상관없이 참여를 꺼리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작은 모임에서도 모든 사람의 의도와 만족도를 높이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종교전문기자가 쓴 공동체에 대한 탐사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취재했던 경험과 병을 치료하기 위해 체험했던 공동체 생활을 바탕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공동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 역시 몇 년 전부터 지인들과 더불어 소규모 공동체 마을을 꾸미고자 계획을 하고, 1년에 1~2차례 지인들이 소개해 준 마을들을 돌아본 경험이 있다. 처음의 의도가 지속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유명무실해진 곳도 목격할 수 있었다. 결국 서로의 뜻이 맞지 않아 생긴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모여 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최근 예멘 난민 문제를 둘러싼 찬반논쟁이나 대학생들을 위한 임대 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대 운동 등이 사회적 갈등의 한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인권이나 대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자는 당위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지만, 결국 자신의 일자리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생각에서 반대를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약자일 때는 정의의 투사이지만, 개인으로 돌아와서는 자신도 모르게 차별하고 박해에 가담해 버리는 반공동체적 삶을 살기도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하겠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1~3부는 국내의 19개 공동체를 다루고 있으며, 4부에서는 5개의 해외 공동체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함께 하니 인생이 바뀌었다’는 제목의 1부에서는 탁구대 하나로 시작된 파주 문발동의 공동체로부터 충북 보은의 ‘선애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동체의 출발과 활동 사항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사울 마포구의 ‘성미산마을’이나 광주의 ‘신흥마을’처럼 의도적 혹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품앗이나 협동조합을 통해서 공동체를 이루기도 하고, 특정 종교 혹은 공동의 신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 사례들도 접할 수 있었다. 이들의 생활을 통해서 자신만의 것을 고집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는 의미는 상실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부의 마지막 장은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또한 돈 때문에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이 시작될 수 있다는 너무도 평범한 사실을 직시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종교 혹은 공동의 신념으로 뭉친 경우, 오히려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그 성격이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외국의 섬에 종교 공동체를 짓는다고 하여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쳐서 같은 쪽으로만 끌고 가면 그건 종교 집단이지 공동체라고 볼 수 없’다는 한울마을의 주형로 대표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비록 같은 종교나 신념으로 뭉친 공동체라도,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타인의 삶을 지배하려는 시도는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실낙원을 낙원으로 만든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만든 공동체를 주로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적 무능이 사회적 무능력으로 간주되고 있기에, 그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복지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도 ‘복지’를 바라보는 관점은 양분되어 있어, 이를 ‘불필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 정작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은 ‘불공정’이 지배하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복지 혜택’을 둘러싼 논의에서 ‘무상 불가’ 혹은 ‘불공평’을 내세우며 복지를 확대하자는 의견에 맹렬히 반대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가난한 마을’이라 여겨졌던 이들이 서로 힘을 합쳐 도서관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는가 하면,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전과자들과 함께 ‘적게 쓰면서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나 좋은 직장에서 높은 임금을 받고 살아가기를 꿈꾸지만, 정작 그 속에서 하나의 부품처럼 소모되는 삶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인간의 삶을 효율성과 경제성을 기준으로 따지는 세상의 평가에 대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회의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능력보다 누군가와 어울려 사는 것에 더 가치를 두는 이들도 주변에는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어쩌면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들과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잘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1부와 2부에서 공동체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제시하고 그 특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면, 3부에서는 ‘혼자 살아도 행복해야 한다’는 제목 아래 싱글들이 공동체를 통해서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과 그 이유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약자와 소수자일수록 서로 힘이 되어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같이 지내는 상대방을 통해서 자신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짚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의 4부에서는 저자가 경험한 해외공동체 체험을 통해서, 모두 5개의 공동체 사례와 특징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병을 얻어 직장을 쉬면서, 치료의 목적으로 태국의 아속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해외의 사례들을 하나씩 경험했다고 한다. 흔히 공동체를 이상향에 비기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이상향은 장소라기보다는 가치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즉 어디에서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인권운동가인 킹 목사가 했다는, ‘인생의 가장 지속적이고 긴급한 질문은 다른 사람을 위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다’라는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공동체 안에서 권력 관계로 인한 부작용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부의 사람들은 점점 고립적인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현실 세계와 가상공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익명의 장막에 숨어 타인들을 비난하고,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어쩌면 소통의 공간인 가상공간에서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자신의 언어만을 일방적으로 배출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불통의 대안이 공동체를 만들어 소통의 수단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공동체는 항상 선일까? 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의 모습이나 지향,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인 의미를 띨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항상 타인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차니)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공동체가 100개라면 100개의 운영방식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한 동네에 살며 옆집 밥 숟가락 수까지 속속들이 알던 옛날 공동체와는 사뭇 다른 현대의 공동체는 존재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함께 거주하면서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이루는 형태가 있는가 하면,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 형태를 띠기도 한다. 한 아파트의 주민들이 교류하며 도시공동체를 이루기도 하고,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을 고민하는 부모들이 모여 공동육아로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세상과는 거리를 둔 채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곳도 있고, 세상속에 녹아들어가 한 마을 전체를 공동체의 방식으로 재조직하는데 열정을 바치기도 한다.
방식은 다양하지만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는 대체로 비슷하다. 채움보다는 비움을, 소비보다는 나눔을, 이윤보다는 가치를, 혼자보다는 함께를 추구하며 세상을 점진적으로 바꿔나간다. 각양각색의 공동체들 안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균질한 집단이 아니다. 공동체를 이루겠다고 모여 획일화를 추구한다면 모순이다. 두 사람만 모여도 다툼이 있을진대, 하물며 다양한 생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갈등이 없을 리 없다.
숙명같은 갈등을 짊어지고
나 또한 농촌시골에서 마을공동체 운동을 하면서 실패를 반복해왔다. 우선은 도시에서만 살다가 처음 살아보는 시골살이에 삶을 꿰어 맞추려니 고역이었다. 자급자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씀씀이를 줄이고 작게라도 텃밭을 일구며 땅과 생명의 진리를 몸소 체득해보고자 노력했다. 반복되는 풀과의 전쟁에 호미 하나 달랑 들고 덤벼들었다가 나가떨어지기 일쑤였고 10년째 하는 텃밭농사는 여전히 엉망이다. 시골살이의 불편함에 어느정도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도시에서 살던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터전을 잡고 들어간 마을의 원주민들속에 스며들어 어울리는 것도 녹록치 않았다. 함께 하는 이들간의 대립과 반목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거나 심지어 동지라고 믿었던 이가 한순간에 적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텃밭에서 실패할 때는 땅의 위대함 앞에 겸손해졌지만, 사람 가운데서 실패할 때는 존재의 연약함에 절망하며 상처를 입고 불면의 밤을 보냈다.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의 마을공동체 탐사기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다른 공동체들을 봤다. 이 책은 공동육아, 공유주택, 마을교육공동체, 영성공동체, 마을만들기 운동 등 내로라 할만한 공동체 운동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노예적 삶이 아니라 돌봄과 친밀한 관계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삶의 대안은 '공동체'라고 강조한다.
외람되지만 기자의 시각으로 해석되고 다듬어진 저 아름다운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땀과 투혼을 바쳤을까 생각했다. 뜻이 좋다고 언제나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공동체는 수없이 많은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갈등은 공동체의 숙명과도 같다. 공동체 내면의 서사에는 즐거움과 행복만큼 아픔과 고통도 짙게 배어 있기 마련이다. 공동체의 속살에는 의외로 상처가 많다. 숙명같은 갈등을 짊어지고 기꺼이 불편함을 무릅쓰며 마을공동체를 일구는 사람들의 마음이 책 마디 마디 글의 행간에서 느껴졌다.
"함께 하는 것은 변화를 촉진한다. 감자와 고구마 당근을 씻을 때 한 바가지에 넣고 씻으면 서로 부딪치며 빨리 씻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씻기는 과정은 좀 더 세련되고 원만해지는 과정이자 아픔의 여정이기도 하다."(238쪽)
돌아보니 기쁨도 슬픔도 모두 사람에게서 나왔다. 공동체의 처음도 끝도 다 사람이다. 그 자체로 살아있는 유기체다. 그 형태가 세모이든 네모이든 '관계의 총합'이 바로 공동체다. 함께 어울리며 부딪치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못했을 경험이다. 인간의 삶이란 더불어 함께 하는 가운데 성장해나갈 때 가치있게 빛난다는 진리를 공동체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깨달아간다.
공동체, 희망과 절망 사이
사실 이 서평을 쓰는데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책장을 덮었는데 뭔가 불편한 느낌이 가시지를 않았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묻기를 반복했다.
나는 '공동체는 선인가?'라는 질문이 자칫 '공동체만 선이다'로 귀결되지 않도록 경계하며 늘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는 세상의 진보와는 별상관없는 '그들'만의 자족적인 실험에 머무를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안이 과정의 언어이듯이 공동체도 과정일 뿐, 세상사 문제에 대한 딱 떨어지는 정답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여러 대안 중의 하나일 뿐이고 그마저도 현재진행형이다.
공동체는 인간다운 삶을 찾아나가는 하나의 여정이다. 나는 공동체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노예적 삶을 극복하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추락이 두려워 발버둥치며 경쟁을 강요당하고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는 생활과 과감히 결별하고 공동체를 선택하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가진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므로 생기는 말도 안되는 문제들이 산적하다. 시야가 '공동체'에만 갇혀 좁아지면 자칫 이런 국가의 무책임함과 무능력함에 의도치 않게 면죄부를 주게 될 수도 있다. 공동체 운동을 하는 내가 끊임없이 시선을 공동체 밖으로 두려는 이유다.
21세기 대안적 삶으로 마을공동체를 주목하면서 민간 뿐만 아니라 정부부처들도 경쟁적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에 뛰어들었고 각종 공모사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마을공동체를 칭송하고 그 모델을 만들어보겠다는 장밋빛 전망들은 넘쳐나는데 우리네 삶의 현실은 그다지 달라지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앞다퉈 마을만들기 사업이 벌어지면서 '공동체'라는 말이 너무나 가볍게 소비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여러모로 공동체는 한국사회 희망과 절망 사이 그 어디쯤에 있다. 나는 다만 다른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 운동이 우리 사회가 절망에서 희망쪽으로 옮겨가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조현 기자의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를 읽는 독자들이 공동체의 생활 방식에 매료되어 다른 삶을 기획해보는 용기를 내기를 바란다. 그건 충분히 가치있고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공동체의 명과 암을 같이 보고, 공동체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현실과도 연관지어 입체적으로 보기를 바란다. 시골살이가 마냥 낭만이 아니듯이 공동체도 마냥 유토피아가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