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9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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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28쪽 | 694g | 140*220*35mm |
ISBN13 | 9791167740021 |
ISBN10 | 1167740025 |
발행일 | 2021년 09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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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28쪽 | 694g | 140*220*35mm |
ISBN13 | 9791167740021 |
ISBN10 | 1167740025 |
한국의 독자들에게- 행복은 생각보다 튼튼하다 프롤로그- 행복하지 않아서 불행하다고? 1. 네덜란드- 행복은 끝없는 관용에서 온다 2. 스위스- 행복은 조용한 만족감이다 3. 부탄- 행복은 국가의 최대 목표다 4. 카타르- 행복은 복권 당첨이다 5. 아이슬란드- 행복은 실패할 수 있는 기회다 6. 몰도바- 행복은 여기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7. 태국- 행복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8. 영국- 행복은 좋은 인생의 부산물이다 9. 인도- 행복은 모순이다 10. 미국- 행복은 마음 둘 안식처다 에필로그- 아직 멀었어요? |
전작인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지혜를 탐색하던 저자가 이번엔 <행복의 지도>에서 행복을 향한 탐색의 여행을 떠난다. 삶의 목적의 하나로 우리는 종종 행복의 추구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 어떤 곳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할까? 행복을 얻는 법이 있을까? 행복은 측정 가능한가? 도대체 행복이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고 있다.
책 제목이 <행복의 지도>이다. 저자는 이 세상에 '행복의 낙원(원제: The Geography of Bliss)'이 있는 것처럼 행복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난다. 느껴진다.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열대와 한대, 민주주의 국가와 독재국가를 가리지 않는다. 행복의 필수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돈, 즐거움, 영적 깊이, 관심과 배려 등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을 다녀보면서 행복의 진정한 얼굴을 만나보려고 노력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방문한 스위스, 아이슬란드, 부탄, 인도 등 10개국 사람들의 행복찾기가 소개된다. 행복의 다양한 얼굴들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그려진다.
에릭 와이너의 첫 번째 방문국은 네델란드이다. 거기에는 '세계 행복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고 있는 루트 벤호벤 교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곳에 대한 모든 지식이 담긴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서 출발점으로 적절하게 들린다. 행복은 경제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은 부탄의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히말라야 산맥의 부탄에 살고 있다. 여기서는 국민총생산(GDP)이 아닌 국민총행복(GDH)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추진되는 곳이다. 대규모 천연가스 발견이라는 로또에 당첨되어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받을 필요가 없는 카타르, 실패가 용인되고 권장되는 아이슬란드, 불행의 시작이 시기심과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걸 보여주는 몰도바의 사례 등 다양한 국가에서의 삶과 행복과의 관계가 비교된다.
10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에릭 와이너가 발견한 행복의 얼굴은 다양하다. 생활환경이나 경제적 여건에 의해 행복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된다. 네델란드인에게 행복은 끝없는 관용에서 오며, 스위스인의 행복은 조용한 만족감에서 생기며, 아이슬란드인에게 행복은 실패할 수 있는 기회에서 생긴다는 점을 알려준다. 태국을 여행하면서 행복은ㄴ 행복을 의식하지 않는 삶에서 생기며, 인도에서는 모순적인 삶에 행복이 녹아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영국을 여행하고 나서 행복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어깨에 내려앉는 나비와 같다는 것을 배우기도 한다.
행복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주어진 환경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태도와 자세에도 크게 좌우된다는 점도 배운다. 또한 의식적으로 행복을 찾을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다 보면 행복은 스스로 찾아오는 인생의 부산물 같다는 점도 알려준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찾아나서는 저자를 뒤따라 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나라에서 슈퍼베스트셀러가 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에릭 와이너가 쓴 첫 번째 책이다(‘슈퍼’란 말을 붙일지 조금 고민했다. 우리나라의 독서 인구 수준에서 ‘슈퍼베스트셀러’라는 게 존재할 지가 의문이라서). 사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아직 읽지 않았고, 에릭 와이너의 책으로는 『천재의 지도』부터 읽은 터이다.
에릭 와이너는 ‘행복’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많은 철학자, 사회학자, 종교가, 아니 모든 직업의 수많은 사람들이 던진 질문이다. 에릭 와이너도 똑같은 질문은 던지지만, 기자 출신의 ‘철학적 여행가’(저자 소개가 그렇다)답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세계 곳곳을 찾아다닌다. 행복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나라들이다.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 나라(네덜란드), 행복지수가 높다고 하는 나라(스위스, 부탄, 아이슬란드 같은 나라들), 행복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도, 태국, 카타르 같은 나라), 행복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나라(그럼에도 신경 쓰는 나라. 영국 같은 곳), 그리고 전혀 행복하지 않은 나라까지도(몰도바). 그리고 돌아온다. 자신의 나라, 미국으로.
그는 그 나라의 형편을 보고,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을 만나서 질문을 한다. 행복한지,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혹은 왜 행복하지 않은지. 그리고 모든 나라에서 서로 다른 답을 듣는다. 아니 모든 사람에게서 다른 답을 듣는다고 해야 옳겠다. 어떤 나라에서는 ‘돈’부터 들먹이지만(돈이 넘쳐나는 카타르와 너무 가난한 몰도바 같은 나라다), 아예 돈 같은 것은 행복의 조건에 포함시키지 않는 나라도 있다. 사실 그런 나라는 대체로 가난하지 않다. 스위스 같은 나라 말이다. 그러나 부탄 같은 나라를 생각하면 또 부자여야만 돈에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처음으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행복할 권리’는 아님)를 헌법에 명시한 나라가 미국이라면 부탄은 정부 공식적으로 행복지수를 도입한 나라이기도 하다. 또 부탄은 종종 가장 행복한 나라(적어도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답변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에릭 와이너는 그 이면의 다른 모습들을 본다. 국가가 행복을 최대 목표로 삼았다고 해서 반드시 국가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인상 깊은 나라는 아이슬란드다(스위스는 너무 적막하다). 스위스보다 더 적막할 것 같은 아이슬란드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따뜻한 나라인 듯하다. 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에 그런 듯하다. 출근길에 아는 사람들하고 인사하느라 30분이 늦어지는 나라, 그래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 나라.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으며, 실패하더라도 비난보다는 격려를 받는 나라. 적어도 에릭 와이너는 아이슬란드를 그렇게 보았다. 반면에 카타르에서는 껍데기만 본다. 카타르인은 보지 못하고, 카타르인을 위해 일하는 외국인들만 잔뜩 만나게 된다. 가난하게 살다 갑자기 돈의 홍수를 만나게 된 벼락부자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과연 그게 행복인지에 대해서 심각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카타르 편에 부제를 ‘행복은 복권 당첨이다’라고 한 것은 일종의 비아냥이다(물론 몰도바의 입장에서는 부러움이다).
그렇게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행복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나름대로 답을 찾고자 한 에릭 와이너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여행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과연 행복을 위한 낙원이란 존재하는가?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다닌다. 낙원이 아니라도 낙원 비슷한 곳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찾는다(이를테면 노스캐롤라이나의 애슈빌 같은 곳). 하지만 그곳은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로 원래의 모양새를 잃고 만다. 그래서 에릭 와이너는 “낙원은 움직이는 과녁”이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행복은 명사도 동사도 아니다. 접속사다.”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은, 사회는 관계에서 온다는 얘기다.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돈도 필요하고, 지리적 여건도 필요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행복은 세상과 단절되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에릭 와이너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체험하며 얻은 답이다. 나는 이 뻔할 수 있는 결론을 신뢰한다.
끝이 뭉툭하게 닳은 연필 한 자루만 손에 쥐어 줘도 마냥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잘 써지지 않는 연필심에 침을 발라가며 삐뚤빼뚤 글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의미도 없는 낙서를 하면서 온종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시절. 삶이 흘러가는 방향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자라는 키만큼이나 수북수북 행복이 쌓여가던 시절. 계절이 오가는 길목에 허름한 아지트 하나만 있어도 행복했던 기억을 가득가득 담을 수 있었던 시절. 그러나 세상 모든 것에 깃들던 행복이 어느 순간 한 뼘 사진 속으로 오그라들었고, 행복은 체험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라만 보는 눈요깃감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나에겐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났던 것일까?
행복은 어쩌면 행복에 대한 아무 관념이 없던 어린 시절에나 맛볼 수 있는, 유효기간이 매우 짧은 경험일지도 모른다. '뭔가 관찰하는 행동만으로 관찰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하이젠베르크 원리가 작동하는 순간, 이를테면 성인이 된 당신이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지금 행복한가?' 하면서 하루에 12번쯤 질문을 던지는 순간 어린 시절의 흔했던 행복은 그 성질이 변하여 다시는 그런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맛보던 순수했던 행복.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행복의 가짓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헤아릴 수 없는 행복의 그라디에이션 속에서 우리들 각자는 자신이 찾는 행복을 잃은 채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게 아닌가. 자식에 대한 걱정과 당부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주저리주저리 엉뚱한 말만 늘어놓다 잘 있으라는 인사말로 끝을 맺는 부모님의 편지처럼 성인이 된 우리는 행복에 대한 욕심과 갈망이 너무 깊고 다양해서 도저히 이룰 수 없고 노력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꿈속의 샹그릴라로 변하게 한 것은 아닌지...
기자 출신의 작가 에릭 와이너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행복하다고 인정받는 세계 각국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행복이란 주제를 통찰한 여행 산문집 <행복의 지도>를 완성했으니 말이다. 네덜란드, 스위스, 부탄, 카타르, 아이슬란드, 몰도바, 태국, 영국, 인도, 미국을 돌면서 작가는 '그곳에서 살면 내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처음의 상상을 몸소 실천하고 그에 대한 깨달음과 소회를 책으로 썼다. 그러나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어느 동화 속 이야기처럼 작가 스스로가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었나 보다.
"네덜란드의 관용은 일상 속에서 정확히 어떤 모습일까? 우선 세 가지가 떠오른다. 마약, 성매매, 자전거 타기. 네덜란드에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합법이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미리 조치를 취하기만 한다면, 이 세 가지 모두 쉽사리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쓰는 것이 그런 조치다." (p.41)
흔히 행복을 찾는 여행이라고 하면 자신의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내면에서 들끓는 욕심을 인식하고 이를 잠재우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거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시기심과 질투 등 행복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심리적 처방을 찾아 떠나는 내적 여행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행복에 대한 탐구를 핑계로 공간적 이동을 요하는 여행을 선택했다. 말하자면 작가는 행복이 그 나라만의 자연경관과 문화적 배경에 의해 탄생된 독자적 산물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어쩌면 행복 탐구를 빌미로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잔혹한 기후와 철저한 고립 앞에서 아이슬란드인들은 절망 때문에 술독에 빠져 사는 삶을 쉽사리 선택할 수도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그랬다. 하지만 이 바이킹의 강인한 아들딸들은 정오의 하늘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검은 어둠 속을 들여다보며 다른 삶을 선택했다. 행복하게 술독에 빠지는 삶. 내가 보기에 그건 현명한 선택이다. 사실 어둠 속에서 달리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p.298)
국가가 나서서 국민 행복 총량을 높이는 정책을 펴는 부탄, 국민에게 어지간한 월급쟁이 연봉보다 많은 용돈을 나눠 주는 카타르, 실패가 권장되는 나라 아이슬란드, 지구에서 가장 덜 행복한 나라 몰도바, 모순덩어리의 국가 인도, 유럽의 여러 나라와 저자의 고향인 미국 등을 돌아본 작가는 '행복의 본질에 대해 포괄적으로 일반화할 사람은 바보 아니면 철학자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철학자도 아니고 바보도 물론 아닌 작가가 행복의 본질을 밝힐 수는 없었으리라. 그럼에도 작가는 행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남겼다.
"돈은 중요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 돈이 우리 생각대로 기능하는 것도 아니다. 가족은 중요하다. 친구도 중요하다. 시기심은 해롭다.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그렇다. 바닷가는 선택 사항이다. 신뢰는 그렇지 않다. 감사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서 감하 더 나아가는 건 종잡을 수 없는 바다에 발을 들여놓는 것과 같다. 행복은 미꾸라지 같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을 많이 만났다." (P.521 '에필로그' 중에서)
행복에 목이 마른 현대인들은 독서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론을 읽기도 하고, 천 근 무게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누군가가 하는 행복에 대한 강의를 듣기도 하고, 행복을 위해서라면 반 백 년도 더 된 자신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행복에 이르렀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행복은 다만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 삶 전체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목적일 수는 없다. 게다가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마음이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에 이르는 저마다 다른 거리를 갖고 있는 까닭에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음식을 맛볼지라도 행복의 감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마음이 행복에 이르는 거리는 몇 미터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지금 시속 몇 킬로미터의 속도로 행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