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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동도일사』에 대하여 일러두기 동도일사 | 일기 동도일사 | 문답 동도일사 | 공문 박상식 연보 |
저박상식
관심작가 알림신청朴祥植
역부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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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경계하고, 동북아 국제 정세를 살펴라!
「일기」 편 다음으로 이어지는 「문답」 편에는 김홍집과 일본 외교공사들이 나눈 토론이 대화체로 적혀 있다. 이 토론에서 박상식은 외교공사 간의 문답 내용을 받아 적는 속기사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토론 주제는 주로 인천 개항과 미곡 수출 금지, 해관 규칙, 미국·러시아·유럽 등 서양과의 수교 문제 등 양국 수신사가 합의하고 해결해야 할 내용들뿐만 아니라, 개인의 안부를 묻거나 명승지 유람 권유하는 등 사적인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대화를 통해 조선과 일본이 각각 외교 현안에 대한 입장과 개항과 근대화를 받아들이는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다. 「공문」 편에는 제2차 수신사를 파견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이 주고받은 서계를 모아 놓았다. 일본으로 가는 데 필요한 배를 빌리는 값을 지불하라는 일본 측 문서부터 부산에서 배를 띄우기 전 제사를 지내며 읊은 기도문, 수신사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음을 알리는 보고서 등 다양한 내용의 공문서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일본·청나라와 접촉하며 수집한 동북아 국제정세와 근대 일본의 사정을 상세하게 분석한 보고서에는 당시 동아시아를 둘러싸고 있던 외세의 동향과 메이지 유신 이후 전근대와 근대의 과도기에 놓인 일본 사회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러시아는 요즈음 두만강 해구에 군함 16척을 두고 있습니다. 매 척에 해군경이 거느리는 3000여 명의 군병이 있으며 그 의도는 장차 우리나라 동남해를 경유해 중국 산둥 성 해안을 돌아 곧장 북경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라 합니다. 이 때문에 청사와 일본인이 모두 시일이 절박해 오므로 팔을 괴고 한숨지으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 만약 일이 있으면 우리나라와 일본이 함께 그 피해를 입고 서양 각국도 역시 모두 러시아를 호랑이처럼 무서워하며 전 세계(宇內)와 합종으로 막으려고 하니 수호통상修好通商의 본뜻이 오로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 『동도일사』 「공문」 편에서 부산 사람의 눈으로 본 개화기 일본의 풍경 『동도일사』는 부산 사람이 쓴 유일한 사행일기다. 조선 후기부터 회답겸쇄환사행을 포함한 12차례 통신사행과 개항 이후 4차례의 수신사행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부산 사람들이 일본에 다녀왔다. 그러나 일제시기 이전에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며 저작물을 남긴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1763년 통신사행에 참여해 통신사선 건조와 운항 실태를 기록한 변탁卞琢의 『계미수사록癸未隨?錄』이 있긴 하지만, 박상식처럼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사행일기를 남긴 부산 사람은 없다. 『동도일사』에는 사행에서 돌아온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요절한 박상식의 눈으로 본 개화기 일본에 대한 부산인의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또한 중앙관료가 아닌 지방 중인 출신이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제2차 수신사와 관련된 연구는 김홍집의 『수신사행기록』과 『김홍집유고』, 조선 중앙관리들이 집필한 『동문휘고同文彙考』와 『왜사일기』 등 주로 중앙관리들이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동도일사』에는 기존의 수신사 관련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상당 부분 수록되어 있으므로 제2차 수신사 연구를 위한 사료적 가치가 남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