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페레는 자기 딸들의 생모를 어느 정도까지 망가뜨렸을까? 실비 라르셰는 일종의 심리적 죽음을 맞았다. 다른 여성들은 말 그대로 죽음을 맞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교살되거나 총에 맞아 죽은 가정주부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수십 통의 욕설 문자메시지의 표적이 되었다가 끝내 맞아 죽은 전처들, 성관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칼에 찔려 죽은 여성들이 해마다 100명 이상이나 나온다. --- p.36~37
그는 조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사실 멜롱이 갑의 위치에 있었다. 구속 첫날, 수사관들은 그에게 63가지의 질문을 했다. 그는 침묵을 지켰지만 수사관들의 수법을 알아챘다. 그는 시간을 끌면서 심사숙고했고, 그런 다음에 진술을 했다. 둘째 날, 48개의 새로운 질문이 던져졌지만 구속 수사에 익숙한 그는 자신이 할 이야기를 세세히 가다듬을 뿐이었다. 레티시아가 발견되지 않는 한, 그의 진술―위험한 도로에서의 사고―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확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백이 없으면 시신도 없다. 아직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았다. --- p.71
수사관들은 차츰차츰 소녀의 삶에서 껄끄러운 부분들을 찾아냈다. 위탁가정의 양부인 파트롱 씨는 그녀를 광적으로 감시했다. 2010년 11월부터 실종되기까지 세 달 동안 그녀는 변했다. 그녀는 우울해했고, 평소보다 더 내부로 침잠했으며, 가까운 친구들에게 파트롱 씨 집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 p.95
미디어가 없었다면, 전국 방방곡곡으로 전해진 충격적인 전파가 없었다면 레티시아 페레는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를 알지 못했던 수천만의 사람들이 그녀가 실종되는 순간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텔레비전, 라디오, 언론, 인터넷은 부재하기에 현존하고 죽었기에 살아 있는 모순적인 인물을 만들어냈다. --- p.108
게다가 레티시아의 경우는 스토리텔링이 기가 막히게 용이했다. ‘괴물’의 손아귀에 떨어진 ‘천사’, ‘미치광이’에 의해 살해된 ‘순결한 소녀’, 기분 나쁜 커플로 묶인 두 인물의―아직도 그리고 여전히―관계도에서 희생자와 살인자는 죽음 속 단짝이 된다. 소녀의 실종과 발견되지 않는 시신을 둘러싼 서스펜스, 사건의 재빠른 정치화, 비탄에 빠진 가족들…. 이만하면 소비될 준비가 된 이야기다. --- p.129
포르닉 헌병대 회의실에 ‘피시(PC) 수사대’가 설치되었다. 그곳에서 수사 책임자, 범죄 분석가, 과학수사대의 작전참모, 그리고 거의 매일같이 나오는 앙제의 조사반장까지 만날 수 있었다. 네 사람 모두가 전일제로 근무하는 70명의 남녀 직원들로 구성된 ‘레티시아 수사반’을 이끌었다. 현장 수색에 동원된 200명의 기동헌병대원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2011년에 수사반은 수사관 인원이 25명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헌병대의 인력으로 볼 때 25명은 많은 수다. 하나의 수사반을 4개월 동안 유지했다는 것은 업적이나 다름없다. --- p.140
사건사고는 범죄자를 상정한다. 끔찍한 사건사고는 괴물을 요구한다. 괴물은 갇혀야 한다. 이러한 단순주의적 분석은 우리 사회의 바탕이 되는 움직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모든 범죄, 모든 사고, 모든 질병에 대한 사회적 분노를 쏟아부을 수 있는 책임자를 지정할 필요가 생긴다. 죄인의 낙인은 희생자의 고귀함과 쌍을 이룬다. 죄인이 비열할수록 희생자는 그만큼 더 순결해진다. 이러한 해석은 선한 사람들과 못된 사람들로 양분된 사회가 도래하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하면서 대통령은 프랑스 국민을 오류로 몰아넣는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성폭행이 가족 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 p.158~159
가장 규모가 컸던 2011년 1월 29일의 백색 행진이 그러한 차이를 뚜렷이 보여준다. 레티시아가 사라진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제일 유력한 용의자는 침묵을 지키고 있고, 프랑스 대통령이 몸소 사건을 챙겼다. 라 베르느리 시청 앞에는 조문 방명록과 함께 40개의 천막이 세워졌다. 14시부터 1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낭트 호텔에서부터 스쿠터와 플랫슈즈가 발견된 장소까지 레티시아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 행진하기 시작했다. 세 가족이 거기에 참가했는데, 파트롱 가족이 선두에 서고 페레 가족과 라르셰 가족은 멀리 뒤쳐지는 바람에 군중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 p.175
레티시아의 삶에는 세 가지 부당함이 있었다. 하나는 폭력적인 친아버지와 기만적인 위탁가정 양부 사이에서 보낸 유년기, 다른 하나는 18세의 나이에 맞은 잔혹한 죽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건사고 기사, 즉 죽음의 구경거리로의 전락이 그것이다. 처음 두 가지 부당함은 나를 미안하고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세 번째 부당함에 대해서는 나의 온 존재가 격분한다. --- p.192~193
잠수부들이 얼음장 같은 물속으로 내려갔다. 도르래가 바닥에 골고루 배치되기 시작했다. 잠수부들은 밧줄로 몸을 묶은 채 헌병들이 연병장에서 사열하듯 다 함께 줄지어서 걸었다. 시계(視界)가 제로여서 그들은 더듬더듬 나아가야 했다. 한 잠수부의 손에 무언가가 걸렸고 그는 그것이 장어잡이용 통발일 거라고 생각했다. 작은 철망 같았는데 무엇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그는 부표를 띄웠다. 도르래가 수면으로 올라갔다가 빛과 함께 즉시 내려왔다. 물속에서 토치램프의 불빛들이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붙잡았다. 잠수부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보았다. 시각은 11시 30분이었다.
철망 한 귀퉁이로 손가락과 하늘거리는 머리카락이 보였다. --- p.212
검사실, 법원 노조원과 비노조원들, 신참들과 최고참들, 선동가들, 미지근한 태도의 사람들과 가장 소심한 사람들까지 포함해 모든 법조인들이 다 같이 분노하여 일주일간 공판을 중지하는 안을 표결에 부쳤다. 그 소식이 모든 법조계에 퍼지자 법관들이 법원 홀로 내려와 그곳에서 변호사들, 사회운동가들, 심지어 헌병들과 함께 투쟁에 들어갔다. 14시에 공동 작성된 공식 성명서를 법원장이 낭독함과 동시에 긴급하지 않은 모든 사건들은 환송되었다. 낭트 변호사회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 기념비적인 분노의 날이었다. --- p.233
지방연락사무소와 법무부 중앙행정처가 여전히 귀를 막고 있는 와중에 국장과 법관들의 결정은 루아르아틀랑티크 사회복귀및보호관찰교정당국에서 실행에 옮겨진다.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사안들을 위해 800건의 나머지 사건들이 미결로 남겨진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최근에 유죄판결을 받은 죄목이 ‘법관 모독’이었던 멜롱은 그물망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다. --- p.242
문제를 냉정히 분석하는 대신에 대통령은 희생양을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은 곧 사회 내에서 죄인들을 지목하여,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잘못’에 대해 ‘처벌’을 고지하는 것이었다. 레티시아 사건은 통치 기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즉 자신의 실수를 잊게끔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상의 적(판사, 도시의 젊은이, 불법체류자 등)에 대항해 민중을 결속시키기 위해 다수가 소수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 p.265
그녀는 분명 밤이 되기 전 저녁에는 우울했을 것이고, 아침에는 불안했을 것이며, 내면 깊은 곳에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하루가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을 것이다. --- p.308
가장 끔찍한 것은 이런 미치광이 같은 행동이 그의 상당한 수준의 지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멜롱은 뛰어난 홍보 전문가였다. 선량한 민중에게서 공포를 자아내기 위해 그는 ‘괴물’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꾸미고 (...) 자신의 ‘전설’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 p.312
레티시아 사건이 긍정적인 결과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살인자는 종신형을 받았고, 국가는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사법부와 교도행정당국은 인력 충원을 공고했고, 범죄자들에 대한 감시는 더욱 강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형벌 정책의 강화 또한 동반하게 되었는데, 대중이 범죄 전체에 대해 오로지 범죄자 전원의 투옥만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알겠는가? 그런 인간 쓰레기장이 새로운 멜롱을 만들어낼지? --- p.348~349
오후에 레티시아는 세 번이나 파트롱 씨의 딸 중 한 명에게 이야기를 좀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사촌들과 삼촌들, 숙모들과 재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티, 나중에. 조금만 이따가.” 불행히도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후에 레티시아는 어린아이들과 한참을 놀아주었다. (...) 책을 주면서 레티시아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난 이런 책을 읽기에는 너무 컸어.” --- p.353~354
심문이 끝나자 멜롱은 아홉 쪽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를 판사들에게 건넸다. 그 편지에서 그는 자기 버전으로 사건을 진술해놓았다. 라 베르느리에서의 만남, 둘만의 해변 산책, 바르브 블루스와 키46에서의 음주, 르 카스포로의 이동, 라 베르느리로 되돌아옴, 스쿠터를 타고 떠난 레티시아, 그녀에게 장갑을 주기 위한 추격 질주, 치명적인 교통사고, 푸조 106에 시신 싣기, 다시 르 카스포로 돌아옴, ‘푸른 구멍’, 다음 날 아침 절단된 시신의 발견, 아틀랑티스에서의 베르티에와의 만남, 통발을 라보에 빠뜨리고 몸통은 브리오르에 빠뜨림, 국립대테러부대에 의한 체포,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지의 키 큰 여자. “나는 아직까지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 p.369~370
레티시아의 장례식이 있은 뒤 삼촌이 그녀에게 자기 가족의 비밀, 즉 아버지의 강간, 그리고 어머니가 앓는 우울증의 원인을 알려주었을 때 제시카에게는 오직 하나의 장래, 파트롱 가족이라는 장래 외에는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녀를 입양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를,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그녀를 원하지 않았다. 타이티 섬에서의 휴가, 그녀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포기라고 보았다. 그 대신 그녀는 일자리와 아파트를 ‘스스로의 힘으로 구해야’ 했다. 다시 말해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가족이라는 존재, 그녀가 침묵을 지키며 견뎌낼 수 있게 해준 유일한 그것을 잃은 것이다. ‘애정의 대가로 강간을 당하는’ 거래가 깨진 것이다.
--- p.398~399
2012년 8월 23일, 예심판사가 기소 명령서 하단에 서명을 했다. 토니 멜롱, 33세, 고물상, ‘누범자로서 납치에 이은 살인 혐의’로 심문을 받음, 브쟁르코케 수용소에 유치, 위 사람을 루아르아틀랑티크 중범죄재판소에 회부하여 법에 따른 심판을 받게 한다. --- p.409
레티시아는 구타당하고, 칼에 찔리고, 목이 졸렸다. 그녀의 시신은 금속 톱에 의해 토막이 났고, 쓰레기통에 담겨 있다가 물에 던져져서 물고기 밥이 되었다. 레티시아는 ‘과잉 살해’를 당했다. 몇 시간 만에 생기발랄한 소녀가 살덩어리, 피투성이가 된 사지, 잘린 머리, 시멘트 블록이 달린 몸통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소멸이, 중단된 구강성교로부터 시작된 시퀀스를 매듭지었다. 그녀의 내면에 굴복해야 할 여성이, 깔아뭉개고 파괴되어야 할 여성이 있
다는 점에서 레티시아는 여성으로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처벌이자 동시에 복수이기도 한 레티시아 살해는 여성 혐오 범죄이다. --- p.429
남성적 의미로서의 인간은 더 나쁜 존재다. 가끔 내가 제시카의 곁에서 거북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남자이기 때문이고, 그녀가 살아오는 내내 남자들이 그녀에게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다. 남자들, 분란이 생기면 커터 칼로 해결하는 것도 남자이고, 당신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남자이고, 당신이 들고 있어야 하는 키친타월에 정액을 쏟는 것도 남자이고, 당신을 칼로 찌르는 것도 닭의 목을 자르듯 당신의 목을 자르는 것도 남자이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당신은 쾌락의 대상, 노리개일 뿐이다. 또한 장관들, 지도자들, 텔레비전에 나와서 떠드는 사람들, 알고, 명령을 내리고, 옳은 사람들, 당신에 대해, 당신의 위에서, 당신의 속에서, 당신을 통해 말하는 사람들도 남자들이다. 결국 언제나 남자들이 이긴다. 그들은 당신을 자기들이 원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까닭이다. --- p.445
범인은 너무나 가증스럽고 그토록 잔혹한 행위들에 대해 유죄이므로 평범한 사람들,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들, 학생들, 식료품상들, 공증인 사무소의 서기들 등 질서 있는 소소한 삶을 살아가는 그 모든 익명의 사람들보다 우월해진다. 그는 악에 관한 자신의 모든 소질로써, 그리고 용기로써 익명의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 p.463
만일 우리가 그녀 존재의 진실,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독, 그녀가 선택했던 길들, 그리고 그녀가 처했던 환경이나 사회와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면, 레티시아 죽음의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레티시아가 무엇을 했으며 남자들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수사관들의 모든 작업은 민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안전은 하나의 권리이므로 우리는 악당들을 체포한다. 우리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그들을 재판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18세의 나이로 살해당한 국민 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공서비스의 임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 프로젝트라고. --- p.471
살자, 저항하자, 사랑하자, 그리고 우리의 시간이 다 소진되면 기억하자. 레티시아가 제일 먼저 내려왔다는 것을, 그리고 물밑 진흙이 18세의 아름다움을 더럽혔다는 것을. 우리의 죽음은 그보다 덜 씁쓸하고 덜 무서우리라.
--- p.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