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없으니 낮도 없었다. 계속 밤이었다. 모든 일상이 깨지거나, 망가지거나,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헤드램프의 배터리가 약해지기 시작하자 광부들은 헤드램프 사용을 자제했다. 그들은 감각이 상실된 불안한 세계로 들어섰다. 구사일생의 경험 때문에 감정적 과부하 상태인 광부들은 시간개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고참 광부들은 단단한 바위를 수백 미터나 뚫고 파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그들이 보기에 구조 작전은 설령 시작된다 하더라도 복잡하고 불확실했다.
심리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의 생존 본능이 공익을 압도한다. 아드레날린이 머리로 치솟고 생존의 화학물질이 몸에 퍼지면 놀라운 육체적 능력을 발휘하게 되지만, 맹목적으로 생존에만 집착하는 광부들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계획을 세울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처음 몇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서른세 명의 광부들은 배회하는 굶주린 짐승들처럼 좁아진 세상 속에서 아무 데나 똥오줌을 쌌다. 단결의 필요성을 무시한 채 따로따로 갱도 여기저기 뚫려 있는 굴로 들어갔다. 첫날 밤 깊이 잠든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본문 중에서
셋째 날 오전 6시 30분. 잠에서 깬 광부들은 기도할 준비를 했다. 엔리케스는 명랑한 목소리로 주님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거라고 약속했다. 엔리케스의 설교와 기도는 날이 갈수록 광부들에게 꽉 붙잡고 매달려야 할 유일한 생명줄처럼 느껴졌다. 구조대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르지만, 엔리케스의 믿음은 광부들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서른네 번째 광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도가 끝나자 세풀베다는 동료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했다. 세풀베다의 태도는 광부들에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열정을 불어넣었지만, 광산의 지위 체계를 무시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광부들에게 우르수아를 존중하라고 했다. 만약 우르수아가 리더 노릇을 원치 않는다면 그때는 세풀베다가 기꺼이 리더가 되어 동료들을 구슬리고, 위협하고, 자극하면서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을 터였다. --- 본문 중에서
광부들은 금세 세풀베다와 우르수아를 리더로 삼았다. 빠르게 줄어드는 식량의 관리를 두 사람에게 맡긴 것이다. 꽤 오랫동안 갇혀 있게 될 거라고 정확히 예측한 그들은 처음에는 열두 시간마다 소량의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첫 주가 지나자 식사를 스물네 시간에 한 번으로 줄였다. 대피소에 보관된 비상식량은 최소 분량으로 나눠 놓았다. 참치 한 스푼과 우유나 주스 반 잔, 크래커 한 개. 광부들은 한데 모여서 서른세 명이 모두 음식을 배급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시에 이 빈약한 ‘식사’를 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것은 우르수아나 세풀베다, 또는 고메스가 아니었다. 광부들은 날이 가도 변함없이 토론과 다수결로 결정을 내렸다. 모두의 의견을 듣고 해법을 찾으면서 동의나 합의에 이르렀다. 세풀베다는 비공식적인 중재자였다. 항상 객관적인 말투를 유지하면서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원만히 조율했다.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동료들 앞에서는 씩씩하게 굴었지만, 그들이 잠들면 저는 울었어요. 침대나 음식이 나타나게 하는 마법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민주적인 체계가 자리 잡자 광부들은 기초적인 질서 의식을 바탕으로 하루 일과를 조직적으로 꾸려나갔다. 세풀베다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특정 임무를 맡기기 시작했다. 정비공, 전기 기사, 중장비 기사를 비롯한 각종 기술자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그는 이 풍부한 지식을 어떻게 이용할지 알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육중한 불도저의 기사인 세풀베다는 발로 페달을 밟아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특수 장화를 신었다. 일반 광부들의 장화보다 두꺼운 그 장화는 항상 속에 습기가 찼다. 그래서 세풀베다의 발에는 심각한 무좀이 발생했다. 가슴과 등에는 작고 빨간 얼룩들이 생겼다. 마치 질병처럼 곰팡이가 온몸으로 퍼져갔다. 이따금 종기에 고름이 차서 터지면 작은 흉터가 남았다. 습도 95퍼센트는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곰팡이가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으며, 세풀베다는 가려워서 반쯤 미칠 지경이었다. 더러운 물과 지속적인 습기는 입속에도 염증을 일으켰다. 다른 광부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구취가 심했다. 세풀베다가 구조대에게 바라는 자잘한 수백 가지 위문품 중에서 첫째는 바로 칫솔이었다. --- 본문 중에서
칠레뿐만 아니라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전문가들도 이 광부들의 모습에 놀랐다. 그들은 땅속에서 17일을 보내는 동안 자발적으로 일과의 원칙을 세우고 지상에서의 일상을 이어나갔다. 대부분 개개인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기계 기술과 전기 기술을 이용해 그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준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일상이 계속되었기에 ?망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군의관 야레나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그들을 환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땅속에 갇혀 지낸 시간들의 교훈에 대해 묻자, 사무엘 아발로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은 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삶이 끝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살고 즐기세요. 지금, 바로 이 순간 말입니다.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지 마세요. 우리가 겪은 일에 비하면 여러분의 문제들은 너무나 사소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을 돕는 능력을 키우세요.”
초라하고 절박한 광부 서른세 명과 그들의 가족이 어떻게 믿음과 희망의 상징이 되었을까? 이들은 대부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도 못했으며,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다. 그들은 보통 사람이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든 어두운 동굴 구석에서 날마다 죽음을 모면하며 일하는 억센 사내들이었다.
때로는 동료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었다. 빈자리는 금세 새로운 광부로 메워졌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런 광부들에게 공평한 세상이나 능력주의 사회 같은 개념은 비행기 탑승이나 여권 신청 절차처럼 생소했다. 하지만 그들은 생존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에 본보기가 되었다. 악이 존재하듯 선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상기시켜준 것이다. 그리고 나라와 나라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세상에서는 단 하나의 사건이 우리 모두를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