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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고칼로리 미스터리] 여성 혐오를 ‘버터’로 녹인, 실화 모티브의 미스터리 소설. 남성 연쇄 살인, 결혼 사기 피해액 10억원, 용의자는 100킬로그램이 넘는 주거불명 무직의 30대 여성이다. 용의자는 단독 인터뷰를 위해 접근한 기자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고, 그들 사이, 거부하기 힘든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소설M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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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즈키 아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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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권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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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이 마나코는 엄청나게 잘 먹겠지. 뚱보잖아. 그런 뚱보가 용케 결혼 사기를 쳤네. 역시 요리를 잘해서 그런가?”
분위기가 싸해졌다. 레이코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잠깐 눈썹을 찡그렸다. 옛날부터 여성혐오에는 리카 이상으로 민감하다. 그러나 료스케 씨가 딱히 무신경해서 내뱉은 말도 아니다. 이것이 세상 남자들의 평균 반응이다. 이 사건이 이렇게도 주목받는 것은 많은 남자들을 갖고 놀고, 법정에서도 여왕처럼 행세하는 가지이가 절대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보면 체중이 70킬로그램도 넘어 보인다. --- p.18-19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여자는 누구에게나 너그러워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어요. 그러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페미니스트와 마가린.” 리카는 어색하게 웃으며 죄송합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버터간장밥을 만드세요. 만약 내가 다음에 당신과 얘기한다면, 당신이 절대 마가린을 먹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일 거예요. 나는 진짜를 아는 사람하고만 만나고 싶거든요.” --- p.38-40 “당신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네요”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가지이는 쳇 하고 혀를 찬 것 같다. 입술이 힘없이 일그러지고 이중턱의 주름이 깊어졌다. “나는 남자를 기쁘게 해주는 게 즐거워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이 아니야. 남자를 돌봐주고, 지탱해주고, 따스하게 감싸주는 것이 신이 여자에게 내린 사명이고, 그걸 완수하는 것으로 여자는 모두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 말하자면 여신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거지.” --- p.114 “이 팔도 가슴도 엉덩이도 모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차 있어. 뉴욕 그릴의 스테이크와 이마한의 스키야키, 데이코쿠호텔 가르강튀아에서 파는 샬리아핀 파이가 이 몸을 만들었다고. 이곳에서 매일 뻔한 식사에 진절머리 날 때마다, 맛있는 음식이 생각나서 미칠 것 같을 때마다, 내 몸을 가만히 쓰다듬고 꼬집어보고 그래. 특히 두 팔은 차갑고 부드러워서 혀를 내밀어 핥으면 희미하게 단맛이 나지.” --- p.142 어떤 경우에든 조금이라도 공간을 쾌적하게 하려는 여자의 지혜, 자기 취향으로 환경을 바꾸는 여자의 씩씩함을 보수적인 남자일수록 꺼린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남자들이 무엇보다 여자에게 원하는 가사 능력의 핵심이다. 어째서 그런 모순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가정적인 여자라면 자신들을 능가하는 능력은 없으면서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는다, 라고 오히려 단정짓겠지. 집안일만큼 재능과 에고이즘과 일종의 광기가 필요한 분야도 없을 텐데. --- p.363 “당신하고 같은 이유야.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무진장 귀찮아졌어.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당연히 생기는 줄 아는 그들의 얼굴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식탁에 앉아서 그저 멍하니 요리를 기다리기만 하는 그들이, 아무런 긴장감 없이 대우받는 게 당연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그들이, 갑자기 싫어졌어.” --- p.394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하면 싫어해. 자기들이 경험한 적 없는 요리를 만들면 불안해서 입을 다물어. 그 사람들이 아는 것, 예상되는 것밖에 인정하지 않았어. 뵈프 부르기뇽을 만들어도, 어떤 요리인지 열심히 설명해도 고집스럽게 비프스튜라고만 인식하듯이.” --- p.443 |
살인 용의자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주간지 기자 리카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꽃뱀 살인사건의 용의자 가지이 마나코의 독점 인터뷰를 준비중이다. 리카는 세간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꽃뱀 수법’이 아니라, 그 사건에 떠도는 여성혐오를 다루고자 한다. 가지이 마나코에게 사기피해를 입은 남성들은 거액의 돈을 바치면서도 “외롭게 살아서 노후를 돌봐줄 사람이라면 아무리 못생겨도 좋았다. 밥을 해줄 가정적인 여자라면 아무라도 좋았다.”며 그녀를 끊임없이 무시하는 발언을 했고, 이 사건에 대한 논쟁은 남녀 간 의견 대립으로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치소에 수감중인 가지이는 취재를 거부하는 데다가 특히 여성 기자에게는 냉담하다. 리카는 사실 이 사건에 깔린 사회적 배경도 배경이지만 가지이에게서 어떤 압도적인 느낌을 받는다.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고 누구나 사회에 세뇌된다. 뚱뚱한 몸으로 살아가겠다는 선택은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가지이는 무엇보다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시선에 압사당하는 현대인들과 달리, 그녀는 타인을 압도하고 있었다. 직장에 다니다가 결혼과 동시에 퇴직한 대학 친구 레이코의 조언으로 마침내 가지이를 만나게 된 리카는 그녀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면회를 갈 때마다 ‘버터’가 들어간 요리들을 맛보거나 직접 해먹어보라는 제안을 하나 둘 실행하면서 리카의 몸무게는 가지이처럼 늘어간다. 갇혀 있는 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리카. 이 둘 사이에는 점점 영화 『양들의 침묵』 속 스털링 FBI 요원과 한니발 렉터 박사의 관계처럼 묘한 동료애와 긴장감이 쌓이기 시작한다. 가부장제를 향한 작가의 비판적인 시선 기자 리카와 살인 용의자 가지이 사이에 감도는 긴장감은 소설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이어진다. 500쪽이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이 소설을 손에서 놓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 소설이 오직 진실을 파헤치려는 기자와 그를 손 위에 올려놓고 갖고 노는 사이코패스 살인범의 이야기라면 여느 미스터리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의 진가는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한 의도에 있다. 유즈키 아사코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요리소설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나오키 상 후보에 올라 작가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대표작이자 베스트셀러인 「아코짱 시리즈」에서 작가는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적인 여성 상사와 사회초년생을 주인공으로 한 직장 워로맨스(여성들 간에 친밀한 관계를 뜻하는 신조어)를 선보였다. 독자들을 희망차게 독려하는 작가 특유의 관점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직장 판타지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유즈키 아사코는 달콤하고 안전한 판타지에 숨지 않는다.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실화 사건 속에 숨겨져 있는 가부장제의 폐해를 파헤친다. 이런 작가적 태도는 이 소설을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출간 즉시 일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다.유즈키 아사코는 가지이가 왜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정말 그 남자들을 죽인 게 맞는지를 밝히는 과정만큼이나 피해남성들이 ‘여성의 돌봄’을 필요로 했다는 점과 그 이유를 공들여 묘사한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간 작품에서 여성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왔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분노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자도 가부장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버터』 집필 의도 중 하나다.” “범인이 다닌 유명 요리교실은 프로 요리사를 양성하기 위한 곳이었는데, 결혼이 목적인 셀럽들의 모임이라는 식으로 소문이 났다. 그녀가 ‘집밥’으로 피해 남성을 사로잡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이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파헤쳐보고 싶었다.” - 유즈키 아사코 인터뷰 중 |
이 책은 요리에 대한 이야기이자, 몸에 대한 이야기다. 허기에 대한 이야기면서 포만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진하고 고소하며 부드러운 ‘버터’를 욕망하면서, 그를 탐닉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수많은 여성들의 서사이기도 하다. ‘버터’란 우리가 평생 적敵으로 여기는 체지방의 은유이기도 하니까.
주인공 리카처럼 먹고 싶은 걸 만들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얻을 때 우리는 비로소 ‘버터’와 화해하게 될 것이다.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니가타산 쌀로 고슬고슬하게 지은 뜨거운 밥에 에쉬레 버터를 얹어, 뚝뚝 떨어지는 황금빛 액체를 혀끝으로 음미하면서 한없이 낙하하고 싶어진다. - 곽아람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