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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타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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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414g | 128*188*30mm
ISBN13 9788981339432
ISBN10 8981339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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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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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입을 열면 우리가 족보도 모르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지. 우리는 걸어 다니는 사전들인 셈이야. 한가로이 수다를떨 때 내뱉는 한 문장에서도 우리는 라틴어, 앵글로색슨어, 옛 스칸디나비아어를 보존하고 있거든. 우리는 머릿속에 박물관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면서 날마다 우리가 들어보지도 못한 종족들을 기념하고 있어. 심지어 우리는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말하지 - 우리 언어는 우리가 읽어보지도 못한 모든 것들의 언어거든. 셰익스피어와 흠정 영역 성서가 슈퍼마켓에서, 버스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수다에서 표면으로 떠오르곤 하거든. 난 이런 일들이 기적 같아. 늘 볼 때마다 경탄하게 돼. 낱말들이 세상 무엇보다 더 오래 간다는 게, 낱말들이 바람과 함께 불면서, 동면했다가 다시 깨어나고, 전혀 뜻밖의 숙주에 기생체로 붙어 은닉하고, 살아남고 살아남고 또 살아남는다는 게. --- p.80

죽음을 다루는 이동식 무기 몇 톤을 수줍게 위장한 말들인 “마틸다”며 “허니”들에 대한 간명한 수다, 그리고 폭격을 당했을 때 폭발하지 않는 (대신 탑승한 군인들은 산 채로 구워진다) 그런 걸 두고 “푹 익었다”고 표현하는 식의 귀여운 완곡어법. 아, 피크닉이라는 말도 있었다. 사람들은 죽는 게 아니라 ‘결국 해냈고’, 총에 맞는 게 아니라 ‘총알을 막았다’. 그런 게 얼마나 괴상한 말들이었는지, 그때는 전혀 몰랐다. 당시에는 그게 정상적이고, 심지어 용인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낱말들은 내 직무였는데, 그때는 그 낱말들의 함의들을 정밀 분석할 만한 때가 아니었다. 아니 최소한 그런 종류의 분석은 할 수 없었다. 연합군 총사령부에서 나오는 코뮈니케들…… 공보 장교한테서 나오는 브리핑들…… 지금까지 갖고 있는 임페리얼 타자기로 정신없이 두들겨 작성한 나의 기사들. --- p.127

오래 전, 우리가 열세 살 열네 살이고 만사에 라이벌이던 시절, 우리는 어머니가 어느 여름 과외교사로 고용했던 젊은 청년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하고 있었어. 아마, 대학생이었을 거야. 열아홉이나 스물쯤 되었을까. 교실 밖에서 우리는 선생을 무시했지. 그러다가 뭔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어. 어느 날 내가 교실에 들어갔더니 고든이 말콤과 단 둘이 베르길리우스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눈치챘지. 고든이 공부를 즐기고 있다는 것과,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어. 허리를 굽혀 연습문제집을 바라보고 있는 말콤의 손이 고든의 어깨에 놓여 있었어. 나는 그 손을 보고 - 야윈 갈색 손이었지 - 짙은 눈썹과 갈색 눈으로 고든과 고든이 하는 말을 열중해서 듣고 있는 말콤의 얼굴을 바라보았어. 그러자 온몸이 뜨거운 질투로 가득 찼어. 그 손길이 내 어깨에 얹혀 있기를 바랐어. 나는 그 어른을, 남자를 원했고, 그러자 갑자기 무한하게 매혹적인 눈길이 나를 겨냥하더군.
나는 장미꽃밭 한가운데로 어머니를 찾으러 가서, 나도 라틴어를 배우고 싶다고 선언했어.
아마, 그로부터 몇 년 후, 내가 대학 입학시험을 그렇게 거뜬히 합격할 수 있었던 건, 처음으로 일깨워진 성적 욕망 때문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거야. --- p.50

이십대 후반이 될 때까지 난 고든만큼 내 흥미를 끄는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 그래서 우리 사이가 그랬던 것 같아. 만나는 남자마다 고든과 비교했고, 언제나 그들은 고든에게 못 미쳤어. 덜 지적이고, 덜 재치 있고, 덜 매력적이었지. 나는 고든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스릴에 맞춰 나 스스로를 시험했는데, 그런 건 세상에 없었어. 온 세상에 내 상대가 될 만한 남자가 친오빠밖에 없다는 건 심오하게 불행한 일처럼 느껴졌지.
근친상간은 나르시시즘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법이야. 고든과 내가 가장 자의식적이 되었을 때 - 늦은 사춘기의 섹슈얼리티와 이기주의로 불타고 있을 때 -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자기 자신이 전이된 모습을 보았지. 난 고든의 남성성에서 에로틱하게 깜박거리는 나 자신을 보았고, 고든이 나를 보는 눈빛에서 그 역시 뭔가 손짓하는 투영을 보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우리는 거울처럼 서로 마주 보면서, 끝도 없이 물러서는 영상들을 던지고 받았어. 우리는 암호를 써서 서로 대화했어. 다른 사람들은, 한동안, 그러니까 경멸로 가득한 두 해 가량, 모두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되었어. 우리는 단 두 사람만의 귀족 계급이었지. --- p.252

“쓰레기 같은 소리!”
클라우디아가 말한다. 이만하면 충분히 격렬하게 들린다. 꼭 진심인 것처럼 들리다시피 하니까. 눈길이 고든의 시선과 마주쳤을 때, 그녀는 고든이 속지 않았다는 걸 눈치 챈다. 하지만 그는 말을 계속하고 그녀도 계속 얘기하면서 말허리를 뚝뚝 끊어먹는데, 사실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 아래로 그들은 서로에게 전혀 다른 말을 전하고 있다.
사랑해, 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늘 사랑했어. 그 누구를 사랑했던 것보다도 더, 딱 한 사람만 빼고. 그 단어는 너무 심하게 잡아 늘였어, 그 말 하나한테 그렇게 많은 다른 것들을 표현하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자식에 대한 사랑, 친구들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 육체적 사랑과 물욕과 성자 같은 사랑. 나는 오빠한테 말할 필요 없지, 오빠가 나한테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심지어 그런 생각도 별로 해보지 않았어. 오빠는 내 분신이었고, 나 역시 오빠의 분신이었지. 그런데 이제 곧 나 밖에 남지 않을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 몰라.
보니까 실비아가 또 흐느끼고 있다. 우는 소리가 꽤나 시끄럽다. 당신 당장 뚝 그치지 않으면, 하고 클라우디아가 생각한다. 내가 그냥 택시 밖으로 밀어버릴지도 몰라. --- p.340

그래서 결국, 우리는 이 모든 걸 따로 떨어져서, 수십 년의 세월을 떨어져서, 반추하게 되는군요.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이야기 속에 있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당신이 쓴 글을 읽을 때면 당신이 모르는 모든 걸 생각한답니다. 당신은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뒤처져 있고,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당신이 생각했던 C, 당신이 기억했던 C.가 아니라,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클로디아가 되어서, 당신이 보면 움찔할 지도 몰라요. 당신이 알아보지도 못할 세상에 살고 있는, 낯선 사람. 난 이런 생각을 하면 견디기 힘들어요.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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