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10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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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00쪽 | 674g | 140*210*35mm |
ISBN13 | 9788937444005 |
ISBN10 | 8937444003 |
발행일 | 2019년 10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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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00쪽 | 674g | 140*210*35mm |
ISBN13 | 9788937444005 |
ISBN10 | 8937444003 |
MD 한마디
[2018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토카르추크 대표작] 2008년 폴란드 최고의 문학상 니케 문학상, 2018년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분 수상작. '떠남'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록한 짧은 글들의 모음집으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는 소설의 가치가 생생하게 빛나는 작품이다. - 소설MD 김도훈
소설의 형식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일깨운 책읽기였습니다.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추크 작품들의 본질적 특징은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글쓰기,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이라고 요약됩니다. 그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 2007년에 발표된 <방랑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소설을 가르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방랑자들>을 읽다보면 많은 여행을 통하여 얻은 이야기들을 엮어 놓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여행은 공간의 이동을 말합니다. 더하여 책과 신문 등을 읽어 경험하는 시공간의 여행도 있겠습니다. 다양한 여행경험을 통하여 얻은 100여 편의 이야기들을 엮어 <방랑자들>이 구성되었습니다.
‘<방랑자들>은 한 마디로 여행기’라고 규정한 옮긴이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100여 편이나 되는 이야기들을 엮어 602쪽이나 되는 대작을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요? 수십 쪽도 모자로 연속극처럼 몇 개로 나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불과 몇 줄에 불과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들 이야기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들로 나눌 수는 없었을까요? 물론 속편이 감흥이 덜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옮긴이에 따르면 이야기들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발견된다고 하였습니다. 아직은 작품 전체를 놓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서 그 연결지점을 찾아내지 못한 까닭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일부 이야기들 사이에서는 굳이 공통점이라 할 만한 것을 찾을 수는 있지만 백여 편이나 되는 조각들을 하나로 꿰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인체 혹은 장기를 보관하는 박물관 혹은 기법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병리학을 전공하는 저 역시 특별한 사례들을 모아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포르말린에 담이 보관하였기 때문에 포르말린이 증발하거나 보관용기가 파손되었을 때 포르말린이 새어나오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포르말린이 발암성 물질이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요즘에는 플라스틱을 주입해서 이런 불편함을 없앴기 때문에 직접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색감이나 촉감은 실제 장기와 다소 다른 편입니다. 플라스티네이션이라고 하는 기법입니다. 폴란드 출신 독일의 해부학자 군터 폰 하겐스가 고안해 1977년 특허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체의 신비’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만, 사전에 기증받은 시신으로 ‘제작된 작품(?)’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사형수 혹은 돈을 주고 장기를 사들이기도 했다고 해서 법적, 윤리적 논란이 일었습니다.
작가 역시 인체 혹은 장기를 모아놓은 이티네라리움이라는 박물관에 관심이 많은 모양입니다. 책의 말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체 박물관 아홉 곳의 이름과 위치를 적어놓았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필라델피아를 방문했는데, 그때 일정이 맞지 않아 박물관을 찾아가보지 못해서 아직도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인간의 삶 자체를 하나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첫 번째 이야기를 서너살 때 현존을 깨달았다는 ‘여기 내가 있다’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어서 어렸을 적 걸어서 들판을 가로지르는 첫 번째 여행을 시작으로 다양한 여행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난해부터 ‘경관기행’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태어난 곳에서부터 성장하면서 살아온 고장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현업에 종사하고 있고, 평소 취미생활인 책읽고 독후감 쓰기, 간간히 책도 써야 하기 때문에 지지부진합니다만, 언젠가는 지금 이야기를 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방랑자들>에 담긴 이야기들을 많이 인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삶은 곧 여행이다. 어떤 삶이 이어질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행을 떠나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획을 세워왔지만 갑자기 생긴 사정에 따라 일정이 달라진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은행나무 숲길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부근의 장소까지 찾아 떠났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은행잎들이 다 떨어져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있는 경우, 주변의 두번째 장소 또한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에 무거운 발걸음을 향하지만 역시 같은 느낌에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고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할때처럼. 삶 또한 이처럼 예기치 않은 일들 투성이다.
매일을 여행자처럼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아니하고 떠도는 삶.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 방랑자라 부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떠돌며 살고 있고, 어떤 이들은 그런 삶을 꿈꾼다. 100여 편의 짧은 이야기가 수록된 『방랑자』는 그러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하다. 때로는 작가의 목소리로 때로는 타인들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점점 달아오르는 군중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정말 놀랍도록 즐거운 일이었다. (376페이지)
삶의 어느 경계선. 떠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어떤 여자의 삶처럼. 우리는 일종의 방랑자다. 소설의 아누슈카는 장애인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어머니가 찾아와 자유 시간을 주지만, 그녀는 어딘가로 가서 마음껏 소리내어 울고 싶다. 거리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소리내어 말하는 여인을 바라보다 그녀는 탔던 열차를 내리고 다시 타기를 반복한다. 자기 아파트 앞에서 서성거렸다가 그 여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녀가 느꼈을 고통, 아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거리를 떠도는 여자가 되어 있는 그녀. 그 또한 하나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쿠니츠키는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조그만 섬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애태우는 한 남자의 모습이다. 사라진 순간을 되새기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건 없다. 어떻게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가. 길을 헛갈렸을거라며 애써 마음을 다잡지만 쿠니츠키는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각자의 이야기이면서 또한 다음 이야기를 나타낸다. 하나의 장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별함을 만날 수 있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에게 보내는 어느 딸의 편지는 의미심장하다. 신하가 죽자 황제는 미라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영혼이 숨쉬게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달라는 딸의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흑인이 아닌 백인이었어도 자신의 신하를 박제해 전시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인간의 진정한 권력은 인간의 육신에 있는지, 영혼을 다스릴 수 있도록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말이었다. 몇 번의 간청을 거쳐 이제는 당당히 요구하겠다라고 말하는 딸에게서 삶의 방향을 배우기도 한다.
죽은 아이나,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의 시신을 사려는 샬로타는 해부학자의 딸이다. 알코올 속을 헤엄쳐 다니는 아름답고 창백한 표본들이 그녀에게는 자식이나 다름없다. 그런 그녀도 항구쪽을 걷다가 남자용 누더기를 걸치고 동인도 회사의 선원이 되는 상상을 한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겼음에도 떠나고 싶은 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듯 하다. 아마도 여행의 경험과 취향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죽은 인간의 표본을 말하는 부분이 많았다. 신체의 한 부분을 표본으로 남기거나 해부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인간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향하는 움직임 속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상태의 인간을 놓고 설득력이 부족한 설명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나'라는 존재를 이해함에 있어 관계성을 배제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118페이지)
모든 여행자의 시간은 수없이 많은 시간이 하나로 모인 결합체다. 그것은 혼돈의 대양속에서 정리된 시간, 섬과 군도의 시간이다. 기차역의 시계가 만들어 내는 시간, 가는 곳마다 달라지는, 그때그때 약속된 시간이자 자오선의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이 사라져 버리고,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오후와 저녁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온다. 그저 잠시 머무는 대도시에서의 빡빡한 시간은 하룻저녁을 송두리째 바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83페이지)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일상의 시간을 잊기 위해, 새로운 삶의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 현재의 것들을 잊고 낯선 장소에서 미래를 꿈꾼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떠나든, 옷가지와 다른 것들을 가득 담아 떠나든 우리는 언제나 시간을 달린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공간도 방랑하는 여행자의 한 공간임을 잊지 않는다.
글을 많이 써본 사람이 쏟아낼 수 있는 문체였다. 편안하게 마치 눈으로 실제 풍광을 그저 무던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런 문체다. 수식어가 많고 화려하고 맵고 짜고 달다구리한 정리되지 못한 수도 없이 많은 글들과 각종 영상물이 쏟아지는 요즘, 2020년을 며칠 앞둔 2019년도 기준에서 볼때, 방랑자들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문체는 허세가 없고 담백하다. 그래서 국제선 여객기를 타기 전, 대기시간을 멋드러지게 시간 보낼 수 있다. 아이를 픽업하고 다시 픽업하는 엄마들이 자가용 차 조수석에 놔두고 수시로 읽어도 좋고, 독박육아로 몸과 마음이 지치거나 혹은 산후우울증으로 자살충동까지 겪은 여성들이 자신의 심신을 치료하고자 책을 찾고 있다면, 흔하디 흔한 육아서적이 아닌 201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올라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을 조심스레 권해본다. 내공이 깃든 삶이 묻어있으니, 우리도 이 책 읽고 다시 일어서자. '나' 자신으로 다시 살아가기 위해 책을 읽으며 내공을 기르자. 나는 나일뿐, 그 누구도 내 인생 살아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