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간이!” 오토 트르스니에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위 도살업자라고 하는 이 인간이 말이야, 아니지, 가짜 소시지 제조업자라고 해야 훨씬 정확하지. 왜냐하면 자기가 만드는 소시지에 오래된 지방과 톱밥을 넣거든. 어쨌든 이 인간의 손에, 소시지에 장난치는 이 가짜 소시지 제조업자의 손에 피가 묻었어. 게다가 머리에는 똥이 들었고 가슴에는 시커먼 심술이 들어앉았지. 그런데 둘러보면 이 인간 혼자만 그런 게 아니야. 지금까지는 돼지만 죽었어. 아니, 저 인간 말대로 닭 몇 마리만 죽었어.지금까지는 담배 가게만 이렇게 더러워졌어. 그런데 지금 여기있는 당신들한테 한번 물어봅시다. 다음번에는 누구 차례일까? 다음 목표물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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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라…….” 프란츠는 걱정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프로이트의 말을 반복했다. “사람들이 교수님 카우치에 눕는 건 그런 진실을 듣기 위해서인가요”
“아이고, 무슨.”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하고 짤막해진 오요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늘 진실만 말한다면 진료실은 먼지가 쌓이다가 텅 비어서 작은 사막처럼 될 거야. 진실은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아. 인생에서도 그렇고, 정신분석에서도 그렇지. 환자들은 생각나는 걸 이야기하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단다. 반대로 할 때도 많아. 내가 생각나는 걸 이야기하고 환자들이 듣는 거지. 우리는 이야기하고 침묵하고, 침묵하고 이야기한단다. 그렇게 하면서 틈틈이 영혼의 어두운 면을 함께 탐색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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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프란츠는 한 손을 이마에 대고 이마 안쪽에서 생각들이 제멋대로 헝클어지려는 것을 막아보려 했다. “혹시 교수님의 카우치 진료법이 사람들을 편안하지만 닳고 닳은 길에서 끌어내어 완전히 낯선 자갈밭으로 보내기 위한 것인가요? 그래서 거기에서 힘겹게 길을 찾게 하기 위한 것인가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과연 그게 목적지로 통하는지도 모르는 길을요”
프로이트의 눈썹이 올라가고 천천히 입이 벌어졌다.
“그런 건가요” 프란츠가 다시 물었다. 프로이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왜 저를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세요, 교수님”
“내가 너를 어떻게 쳐다봤는데”
“모르겠어요. 제가 아주 말도 안 되는 멍청한 말을 한 것처럼 쳐다보셨어요.”
“아니야, 넌 멍청한 말을 하지 않았어. 절대로 그렇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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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지금, 하나는 여행 중에, 하나는 영국에서 피우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프란츠가 말했다.
프로이트는 고개를 가볍게 좌우로 흔들며 시가 세 개를 바라보다가 그중 하나를 손끝으로 잡아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이건 영국에서 피워야지!” 프로이트가 말했다. “자유를 누리며 처음 맛보는 시가!”
그는 나머지 두 개를 집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비춰본 후 조심조심 만져보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열정적으로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쥐어짜듯 말했다. “너는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멋지고, 이토록 불완전하면서도 완벽한 걸 입에 물어본 적이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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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길이 뭔가 낯익다고 생각되기는 하더구나. 하지만 길을 아는 것이 우리의 운명은 아니란다.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운명이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건 대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하기 위해서야. 말하자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가는 거지. 크게 운이 좋아야만 간혹 작은 빛이나마 타오르는 걸 볼 수 있어. 그리고 커다란 용기를 내거나 끈기를 보이거나 우직함이 있어야만, 가장 좋은 건 이 세 가지를 다 갖춰야만 스스로 여기저기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거야!”
--- p.240
바로 그 순간 바람이 불어온 거예요. 갑작스레 강풍인지 돌풍인지 미풍인지, 하여간 바람이 불었어요. 어쨌든 그 느닷없이 불어온 바람이 바지에 걸려들면서 말하자면 바지를 똑바로 일으켜 세웠어요. 이제 그 게슈타포들의 얼굴 표정이 제각각으로 변하면서 바보처럼 놀라거나 놀라서 바보처럼 일그러지던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세요. 왜냐하면 그게 평범한 바지가 아니었거든요. 그건 사실 반쪽짜리 바지였어요. 바짓가랑이가 하나뿐이었어요. 나머지 한쪽은 무릎 높이쯤까지 바짓단을 줄인 다음 맞붙여 꿰맨 거였어요.
--- p.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