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진심으로 상대를 도와주고 싶다면 우울증을 공부해야만 한다. 우울증에 걸렸을 때 증상이 어떻고, 무엇을 피해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데 어떻게 도와줄지 몰라 괴로워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연인 들을 위한 것이다.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책을 읽을 여력이 거의 없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주위의 도움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프롤로그」중에서
오래전 헤어졌던 연인이 불쑥 찾아오듯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이 나에게 찾아왔었다. 그리스 신화에는 ‘레테의 강’이라는 망각의 강이 등장한다. 그 강물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과거의 모든 기억을 깨끗이 잊게 된다고 한다. 망자는 레테의 강물을 마신 뒤 강을 건너 죽음의 세계로 향한다. 그런 강물을 마시고 강을 건넌 듯, 우울증에 걸리자 내게 완전히 다른 신세계가 펼쳐졌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작은 죽음처럼 느껴졌다. 하늘은 빙빙 돌고 주변은 온통 흑백 풍경으로 바뀌어,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별과 달과 구름, 심지어 사이프러스 나무도 소용돌이치듯 회전했다. ---「살아서 죽음의 강을 건넌다는 것」중에서
어느 날 머리 통증이 너무 심했다. 하늘이 빙빙 돌고 주변은 온통 흑백 풍경으로 바뀔 만큼. 이때 아는 지인과 통화하던 중, 그분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치 안정제를 맞은 것처럼 말끔히 증상이 없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몇 시간 후에 통증이 계속되긴 했지만. 그때 정말 절실하게 깨달았다. 말의 힘이 이렇게 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냥 스스로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숨 막히는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나를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앞으로 지나야 하는 또 다른 고통의 터널을 버틸 수 있도록 해준다.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중에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은 그 사실을 털어놓으면, 상대방이 자신을 정신 이상자라고 생각하거나 혹시 멀리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한다. 그런데 ‘정신질환’과 ‘정신병’의 의미를 정확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똑같이 ‘정신’이라는 말이 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전혀 다르다. 영어로 정신질환은 ‘mental illness’라고 하고, 정신병은 ‘psychosis’라고 한다. 즉, 우리말 ‘멘탈’과 ‘사이코’의 차이다. ‘정신질환’은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와 같이 비교적 덜 심각한 병이다. ‘정신병’은 정신분열증을 뜻하는 조현병, 망상장애와 같은 환각과 환청이 있는 심각한 병적 상태를 말한다. 우울증은 정신질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심한 경우를 제외하고 정신병에 해당하지 않는다. ---「우울증은 정신병이 아닌, 질환이다」중에서
만약 멀쩡했던 당신의 가족이나 친구, 사랑하는 연인이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의 가족이 심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정신분열증을 앓거나, 치매에 걸리거나, 또는 예상치 못한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다면……. 소설 『변신』은 ‘벌레’로 변한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아니, 다시 정정한다. 소설 『변신』은 ‘정신질환자’로 변한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그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회의 편견, 특히 가족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갔다. ---「하루아침에 흉측한 벌레로 변하다」중에서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기지와 용기 그리고 정신력을 두루 갖춘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 만약 그가 트로이를 함락시킨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돛대를 매는 기둥에 자신의 몸을 묶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신력으로만 바다의 마녀인 세이렌의 노래 유혹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물론 당연히 아니다. 우울증 앞에서는 사람의 의지력과 정신력
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만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