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3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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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28쪽 | 160g | 153*224*20mm |
ISBN13 | 9788932022888 |
ISBN10 | 8932022887 |
발행일 | 2012년 03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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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28쪽 | 160g | 153*224*20mm |
ISBN13 | 9788932022888 |
ISBN10 | 8932022887 |
한국어판 서문 피로사회 신경성 폭력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깊은 심심함 활동적 삶 보는 법의 교육 바틀비의 경우 피로사회 미주 우울사회 미주 역자 후기 |
며칠 전에 한 후배가 보낸 카톡 메세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여자친구와 짧은 연애 끝에 헤어졌다는 소식.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가난한 남자와 만나지 말라고 반대했단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난을 이유로 반대하는 여친의 부모도 어이없지만, 부모가 반대한다고 그걸 남친에게 말해서 상처를 주고 헤어지는 여자는, 더 어이없다.
그런데 정말 황당했던 것은 상처받은 후배가 보낸 메세지다. "형, 나는 부자가 되고야 말거야."
부자? 한국 사회에서 부자의 기준은 공식적으로 약 30억원 정도의 재산을 갖춰야 한단다. 그래야 자식새끼대까지 손가락 까딱 안 하고 편하게 산다는 소리겠지. 어느 정도 세금이 인상되어도 버틸 수 있고. 부동산과 예금을 적절하게 조합해서 부를 대물림하기 쉬운 등급이 바로 30억원이다. 그런데 후배는 그러한 부자가 되겠다고 한다. 월급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15~25년을 모아야 하는데, 그 동안 돈 쓸 일이 안 생길 것 같느냐고, 엿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답장하니까, 다시 묻는다.
"아, 형은 부자되기 싫어?"
"부자되려고, 이겨먹으면서 재산 모으려고, 아등바등 인생 낭비하는 것보다는 가난해도 무시받지 않는 세상 만드는 것이, 훨씬 빠를 것 같다."
당신은 이것이 꿈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를테면, 세금 걷어서 국민 일인당 한 달에 100~150만원 정도 주는 것. 그러면 내수 경제가 탄탄해질게다. 게다가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므로 생존 경쟁의 냉혹함도 줄어들 것이다. 스트레스가 줄으니까 병에 시달리는 인구도 적어져서, 의료보험 부담도 확 낮아질 것이다. 세금이 자신에 대한 혜택으로 돌아오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한 국민들의 조세저항도 훨씬 줄어들겠지. 무엇보다도 적정 소비인구가 늘어나고, 패배감에 젖은 청년층과 노년층이 없어지면서 그들의 에너지가 곧바로 국가의 활력으로 전환될 것이다.
경제나 사회, 행정을 공부했다는 인간들이 그걸 과연 모를까? 문제는, 자기보다 빈곤한 자들을 보고 우월감을 즐기려는 심리, 더 벌어먹으며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위에 서고 싶다는 더러운 욕망이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욕하면서도, 자신도 기어올라가고 싶어서 안달이다. 이 무한 증폭되는 욕망의 게임은 언제나 대다수를 약자로 전락시키고, 그 책임을 약자가 된 개인에게 묻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토록 인기를 얻는 이유는 이러한 집단 무의식 때문이다. 경쟁을 아름답게 포장해서 승자에게 집중되는 부를 정당화시키고, 약자가 된 자들에게 '개인의 무능력'을 절감시켜서 끊임없이 자기갱신을 하도록 충동질하는 것. 그 와중에 빌어먹을 자기계발서 따위를 만드는 출판사들 덕분에 일 년에도 수백만 그루의 나무가 사라진다. 나무가 줄어드니까 공기도 탁해지고 사람들은 더러운 공기를 흡입하면서 부를 축적하려고 발악하다가, 죽는다.
독일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한병철 교수의 저서 <피로 사회>를 거듭 읽게 된다. 100페이지도 안되는 얇은 책인데,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다. 부자가 되어야 사랑도 마음대로 하는 세상, 스트레스와 분노에 죽을 때까지 시달려야 하는 이 세계의 끝은 어디일까. 극심한 소모 끝에 조로하거나, 전쟁으로 공멸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이제, 다시 물어야 한다. 이 피로증의 사회를 벗어나는 길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모두,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이다.
현대인에게 가장 심각한 질병은 무엇일까? 그리고 심각한 것에 비해 잘 걸리는 질병, 어느 누구에게나 잠재적인 증후가 있는 질병은 무엇일까? 물론 사람마다, 그리고 어떤 것을 심각하게 여기느냐는 관점에 따라 답은 달라질 것이다. 몇 년전 일이다. 이곳에 혼자 있는 관계로 몇 안 되는 친구와 자주 어울린다. 그 중 한 녀석은 평일 날도 가능하면 나와 함께 저녁을 먹곤 했다. 물론 친구는 아내와 같이 나왔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서로에게 허물이 없어졌다. 그 즈음, 나는 친구의 아내에게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그 아내는 자주 다퉜고, 내가 보기에는 그냥 넘길만한 일인데도 친구아내는 짜증을 내곤 했다. 그렇게 지내는 것이 불편했던 나는, 어느 날인가 친구에게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 혹시 우울증이 아닌지 검사해 보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울증이라는 질환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증상이 어떤지, 왜 걸리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 때, 친구의 말은 우울증이 심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약도 먹고 하지만 좀체 감당이 불감당이라는 얘기와 함께..
이처럼 현대인에게 가장 흔하고, 또 흔한 것에 비해 심각한 질병이 바로 우울증과 같은 신경질환 일 것이다. 물론 우리들은 그 질환의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알고 있지만, 왜 현대에 들어 그렇게까지 심각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스트레스라는 것이 현대에 들어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책의 저자 한병철 교수는 그것을 현대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국내에서 공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철학과 독일문학, 신학을 공부했다는 저자, 그는 심리장애가 오늘날의 사회근저에서 일어나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의 결과임을 이 책 [피로사회]에서 말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고 말한다. 현대사회 이전의 세계, 즉 지난 세기는 모든 질병이 백신에 의해 면역되는 것과 같은 면역학적 시대였다고 그는 정의한다. 그것은 안과 밖, 친구와 적, 나와 남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이 분명하게 구별되는 사회,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적대성 내지는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이른바 규율사회로 ‘해서는 안 된다’ 혹은 ‘해야만 한다’와 같은 금지에 의해 이루어진 부정의 사회로, 사람들은 규율사회에서 낙오될 경우 광인과 범죄자로 남게 된다. 반면 21세기는 병리학적으로 볼 때, 신경증적이라 규정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시대의 질병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이는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규율사회에서 부정성이 제거되고, ‘할 수 있다’와 같은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패러다임이 변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회를 저자는 성과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을 성과주체라고 명명한다.
성과사회는 긍정의 사회이다. 또한 성공하라는 것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규율이며, 성공을 위해 강조하는 것이 바로 긍정성이다. 그러나 강제, 금지, 의무와 같은 규율에 의한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의 긍정은 성과, 능력 등과 결합하면서 과잉을 요구하게 만든다. 이것은 타자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고 한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성공이라는 단어로 존재감을 확인하게 되었기에 자아는 피로해지고, 스스로의 요구에 만족하지 못 할 경우 좌절감은 우울증이나 자신이 낙오자라는 생각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여 성과사회에서 성과주체인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들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성과시회를 자본주의의 진화가 낳은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사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이 땅에 들어온 성과위주의 평가는 성공을 이루려는 개인들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전체적인 생산성을 극대화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과를 위해 부단히 자기계발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자기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로 자리잡아, 이전 세기의 타자착취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성과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는 피로는 이제 만연하다 못해 일상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 시키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피로는 능력의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길 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사색적인 삶과 휴식의 가치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는 무위의 삶과도 연관이 있다.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승자독식의 경쟁체계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사회에 넘쳐나는 처세술에 관한 책보다는, [장자]와 같은 고전을 읽고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현대 사회는 행복을, 성공을 담보로 우리더러 자꾸만 우울증 환자가 되라고 독촉하지만,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협박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피로해지는 것이 싫기만 하다.
제목만 들어도 피로가 몰려온다.
'피로사회', 지금 대한민국 전역에는 저자의 표현대로 피로가 가득 차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끝없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의심해 봐야 하고, 남들과의 비교가 아닌 자신이 좀 더 나은 삶으로의 진입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더 나은 단계로의 사회 구성원이 되기를 꿈꾼다.
서점에 가보면 잘 나가는 베스트 셀러 코너에는 어김없이 자기 계발서나, 성공의 힘, 긍정의 힘 등등이 한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은 지금 성공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사회로 변모해 있다. 이에 저자의 책 '피로사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겐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로 시작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후기 근대사회의 질병으로 '소진증후군,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을 들고 있다.
더구나 그러한 질병들은 타자로 인해 갖게 되는 질병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의해 생기는 질병으로 보고 있다.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독려하고, 스스로에게 더 나은 발전된 모습을 가져보라고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한다. 그러한 저자의 말을 통해 우리사회를 휩싸고 있는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저마다의 능력이상을 꿈꾸며 오늘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그러한 모습만이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이고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듯이 오늘도 자신을 독려하고 있는 자신을 볼지도 모르겠다.
더 끔찍하게 저자는 그러한 행위는 완전히 자신이 망가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에 아니라고 항변해 보고 싶지만, 지금 이 순간도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읽고 배워야 한다고 조이는 나 자신을 보면 그런 말을 꺼내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고 갈팡질팔거리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이미 이러한 생각이나 모습 속에 나에게 자리 잡고 있는 성공에 대한 생각이나, 좀 더 잘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내 모습을 읽게 된다.
그러나 가장 문제인 것은 그러한 여유의 시간이 주어질 때 조차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질병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그러한 삶을 살도록 부추기지도 않은데, 나 자신이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고, 나 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스스로의 못난 면을 어김없이 읽게 된다.
결국, 저자의 표현이 그대로 나에게 맞아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결국, 나를 힘들게 하고, 못살게 구는 것은 타자로 인한 것이 아니고, 또한 사회가 쳐 놓은 덫에 빠진 것도 아닌 스스로가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불만족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사회는 분노가 가득 들어 찬 사회라는 어느 표현이 맞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러한 분노를 제대로 이완시키지 못한 미성숙으로 저마다의 감정을 불특정 다수에게 쏟아 붓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언론에 등장하고 있는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그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잘 반영해 주고 있는 듯하다.
이제라도 성장,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사회적 분위기를 멈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성공이라는 열망보다는 자신이 지금 제대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사회의 타자들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자문해 보는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현대 사회의 성공에 대한 자기 착취적 질병을 사색적 삶의 태도를 통해서 인간 본연의 삶의 모습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한 의문을 품기 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나에겐 더욱 절실한 시간이다. 잘 될까??
빨리 빨리가 마치 그 사람의 능력이 되어버린 대한 민국 사회 퍼져 있는 증후군이 이제는 조금씩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선은 내가 먼저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