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에 하나의 큰 드라마가 세계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과, 그로 인해 미국과 나토 동맹군이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 벌인 전쟁이다. (두 진영 모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전쟁은 양쪽 진영의 선천적인 형질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이슬람과 서구가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그 이야기를 줄곧 따라온 사람이라면 이슬람과 서구 사이에서 최근에 일어난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근본주의 무장세력이 이슬람 사회들의 사회적 구조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닥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9·11로 최전선에 나섰지만 이슬람 세계에는 다른 가닥들이 여태까지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 다양한 주제와 세력들은 이슬람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사회적인 힘을 두고 수 세기 동안 경쟁해왔다. 사실 한때는 그 다른 주제들이 지배적인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신기술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 이른바 페이스북 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이 무대로 몰려들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박탈당한 채로 현재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각 지역 고유의 이야기들이 중단된 적은 없었다. --- p.17
이슬람의 눈으로 세계사를 보면 어떨까? 이슬람 세계는 스스로를 발육이 부진한 서구식 세계사의 다른 판본이라고, 같은 목표를 향해 발전해가긴 하지만 효과적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예로, 이슬람 세계에서는 역사 전체를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분기점이 다르다. (……) 지금 이슬람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위축된 현재를 세계사의 내러티브가 설명해야 할 현 시점이라고 상정한다면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눈으로 본 세계사
1. 문명의 탄생(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2. 고대(그리스와 로마)
3. 암흑 시대(그리스도교의 부상)
4. 부활: 르네상스와 개혁
5. 계몽(탐험과 과학)
6. 혁명(민주주의, 산업, 기술)
7. 민족국가의 부상: 제국을 향한 투쟁
8. 제1, 2차 세계대전
9. 냉전
10.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1.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2. 이슬람의 탄생
3. 칼리프조: 보편적 통일체를 향하여
4. 분열: 술탄 제국의 시대
5. 재앙: 침략자들과 몽골족
6. 부활: 3대 제국의 시대
7. 서양의 동양 침투
8. 개혁 운동
9. 세속 근대주의자들의 승리
10. 이슬람주의의 반발 --- pp.30~31
대부분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현재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와 서구는 서로 따로 존재하는 두 개의 우주 같았다. 각자 내부의 문제들로만 바빴고 각자 자신이 인류 역사의 중심이라고 여기며 각자의 흐름대로 살아오다가 17세기 후반에야 두 내러티브가 교차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둘은 서로를 거스르는 물결이었기 때문에, 한쪽이 물러나야만 했다. 그런데 서구가 더 강력했으므로 서구의 물결이 이슬람을 압도하고 휘저어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자리를 빼앗겼다 해도 이슬람의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역조처럼 수면 아래에서 계속 흘러왔으며 지금도 흐르고 있다. 현재 세계 분쟁 지역의 지도를 그려보면 공식적인 지도에서는 사라졌어도 죽지 않으려고 여전히 몸부림치는 독립체들의 경계선을 표시하게 된다. --- pp.32~33
몇 천 년에 걸친 역사 중에서 나는 오래전의 짧은 반세기에 어찌 보면 과도한 지면을 할애했는데, 거기에 오래 머무른 이유는 그 시기가 예언자 무함마드와 최초의 계승자 네 명의 일생을, 즉 이슬람의 창시 내러티브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친근한 인생극으로 전달할 텐데 그것이 바로 무슬림들이 그 이야기를 배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그 이야기에는 회의적으로 접근하고 무슬림의 서술은 덜 객관적이라고 여기는 반면, 비무슬림이 내놓은 자료는 더 신뢰한다. 그들이 주로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파헤치는 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무슬림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랜 세월 무슬림을 움직여온 이야기이며, 그것을 알아야 세계사 안에서 무슬림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p.33~34
무엇 때문에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주한 일이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히즈라는 무슬림 역사에 일어난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사건으로 이슬람에서 ‘움마’라고 부르는 무슬림 공동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히즈라 이전에 무함마드는 개별 추종자들의 설교자였다. 히즈라 이후에 무함마드는 법 제정을 하고 정치 방향을 제시하며 사회 지도를 담당하는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다. 히즈라는 ‘단절’을 뜻한다. 메디나 공동체에 합류한 사람들은 자기 부족을 포기하고, 이 새로운 공동체를 부족을 초월한 연맹으로 받아들였다. 메디나 공동체는 무함마드가 어린 시절을 보낸 메카의 대안이 될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이는 장대하면서도 종교적인 사회 프로젝트였다. --- p.68
새 칼리프 아부 바크르는 그가 얕잡을 수 없는 전략가라는 것을 보여줬다. 배교자 전쟁이라고 불린 반란을 종식시키고 아라비아를 통합하는 데에는 1년이 조금 넘게 걸렸다. 하지만 아부 바크르는 무슬림 공동체를 대할 때면 이제껏 사람들이 그를 사랑해온 바로 그 이유였던 겸손과 애정, 자비심만을 보여줬다. 눈이 깊고 어깨가 구부정한 남자였던 아부 바크르는 소박한 옷을 입고 검소하게 살았으며 부를 전혀 축적하지 않았다. 그가 즐기는 치장이라고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헤나로 붉게 염색하는 것뿐이었다. 분쟁이 일어나면 공정한 손으로 정의를 실현했으며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언제나 원로회와 함께했고, 평등한 공동체의 대표자로서 통치했으며 자신을 종교적으로 승격하려는 주장은 전혀 하지 않았다. --- pp.90~91
두 번째 칼리프 우마르는 10년 동안 움마를 지휘했으며 그 기간 동안 이슬람 신학의 진로를 정하고 이슬람을 정치적인 이념으로 정립하고 이슬람 문명에 고유한 특질을 부여했으며, 종국에는 로마 제국보다 더 큰 제국을 건설했다. 우마르는 사도 바울과 칼 마르크스, 로렌초 데 메디치에 나폴레옹까지 합쳐놓은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슬람 밖의 사람들은 그저 그의 이름만, 혹은 이름에 한두 줄 정도의 설명 정도만 알 뿐이다. 이는 아마도 우마르가 허세 부리지 않는 것을 자신의 핵심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지배하지 않았으며, 모든 권위를 신에게 돌렸다. 우마르는 그의 마음속에서 이슬람을 완전무결하며 공정하고 만민 평등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그렸고, 그 이상을 현실화하고자 했다. --- pp.92~93
전사들과 함께 시인들도 여럿이(그중에는 여자도 몇 명 있었다) 이 전장에 따라갔으며 귀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서 카디시야 전투를 트로이 전쟁처럼(그보다 짧긴 했지만) 신화적인 위상으로 끌어올렸다. 예를 들자면 승리가 확실해지자 전령 하나가 곧바로 기쁜 소식을 전하러 말에 올라타서 아라비아로 내달렸다. 메디나에 가까웠을 때 전령은 길가에서 괴상한 늙은이를 지나쳤는데, 기워 고친 외투를 입은 그 소박한 노인이 펄쩍 뛰면서 전령에게 카디시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렇소.” 전령이 대답했다.
“어떤 소식인가? 어떤 소식인가?” 노인이 간절하게 물었다. 하지만 전령은 잡담이나 하느라 멈출 수 없다고 한 뒤 계속 달렸다. 노인은 빠른 걸음으로 전령을 따라오며 귀찮게 질문을 계속했다. 그들이 도시의 문을 지났을 때 군중이 모여들었다. “길을 비켜라!” 전령은 거만하게 소리쳤다. “나는 당장 칼리프를 뵈어야 한다. 칼리프 우마르는 어디 계신가?”
군중은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바로 뒤에 있지 않소.”
겉치레를 하지 않는 것, 전설에 따르면 그게 바로 우마르의 생활 방식이었다. --- p.100
무함마드는 초자연적 기적을 행한 적이 없다. 그는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힘을 보여서 지지자를 얻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무함마드의 유일한 초자연적 재주는 예루살렘에서 백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이었는데, 사실 이것도 군중 앞에서 행한 기적은 아니었다. 그 기적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일어났으며 나중에 무함마드가 동료들에게 이야기해준 것이다. 사실 무함마드가 행한 기적은 (쿠란 자체와, 그 내용을 들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끼친 쿠란의 설득력을 제외하면) 무슬림들이 병력에서 1대 3으로 뒤질 때조차 전투에서 승리했던 일이다. 그 기적은 초기 칼리프 시절에 무슬림이 통치하는 영토를 숨 가쁜 속도로 확장해나갈 때 계속해서 이어졌으니, 신의 개입이 아니고서야 그처럼 놀라운 성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 p.141
9·11의 가해자들은 정말 자신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맞서서 반격을 했다고 생각할까? 자유에 대한 증오가 오늘날 정치적으로 과격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일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그것을 지하드주의자의 담론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담론은 자유와 그 반대 개념, 혹은 민주주의와 그 반대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체로 수양 대 퇴폐, 도덕적인 청렴 대 도덕적 타락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수 세기 동안 서구가 이슬람 사회를 지배하고 그로 인해 공동체와 가족이 파편화되고 이슬람의 사회적 가치가 침식되며 술이 확산되고 종교의 자리에 오락이 들어서고 부유한 상류 계층이 세속화되면서 부자와 빈자 사이의 간극이 갈수록 깊어져가는 현상에서 기인한 표현들이다. --- p.543
내 생각에는 현대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갈등을 ‘문명의 충돌’이라? 이해하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만일 그 진술이 ‘우리는 서로 다르니 둘 중 하나만 남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면 말이다. 그보다는 서로 맞지 않는 두 줄기의 세계사가 교차하며 발생한 마찰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무슬림은 어딘가로 향하는 한 무리다. 유럽인과 유럽에서 분가한 사람들은 다른 어딘가로 향하는 한 무리다. 그런데 두 무리의 사람들의 길이 교차하면서 부딪히고 부서지는 사건들이 벌어졌으며, 그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p.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