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숙한 초등학생이 말했다. “오늘은 이렇게 뵐 수 있어서 기뻐요, 오사나이 씨.”
오사나이 쓰요시, 그것이 그의 풀 네임이다. 여자아이의 비스듬한 각도로 꼰 양다리, 원피스 옷자락 아래로 보이는 두 개의 무릎을 테이블 너머로 내려다보며 그는 잠자코 있었다.
“와 줘서 고마워요. 정말로,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딸이 그렇게 말한 다음 다리를 바꿔 꼬자 오사나이는 시선이 흔들렸다.
상대가 쿡쿡 웃기 시작했다.
“오사나이 씨, 나를 잘 봐요. 당신이 혼란스러우리라는 건 나도 알아요. 그래도 오늘 도쿄까지 와 준 것은 나를 만나기 위해서죠? 여러 가지 생각을 한 다음 스스로 결정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벌벌 떨어요?”
---「오전 11시」중에서
입사한 지 10년이 넘었어도 동기 중에서만이 아니라 사내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친구다운 친구, 퇴근 후에도 친하게 만나는 동료가 없는 것은 그 탓인지도 몰랐다. 영업에서 총무 분야로 이동된 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의 그러한 특성이 미묘하게 영향을 미친 것일 수 있다. 오사나이가 아직껏 나는 입사시험 면접에서 재수가 좋아 합격한 거다,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때 그 우연 덕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나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 고향의 하치노헤에서 지바의 이나게까지, 라고 오사나이는 이따금 생각하곤 했다. 물론 그런 자신 없는 이야기는 아내에게는 비밀이었다.
---「1」중에서
“지금까지하고는 좀 달라.”
“어떻게?”
“글쎄.” 아내는 말을 골랐다. “못 보던 눈빛이야. 사려 깊은 눈빛이라고나 할까. 물론 좋게 표현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렇게는 보이지 않던데, 나한테는.”
“오늘 당신이 없을 때 딱 한 번 그런 눈빛으로 나를 봤어. 소름 돋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눈빛이었어. 아키라 군은 어디서 왔니, 하고 물어봤는데, 그랬더니 루리가 내 쪽을 돌아보고 아무 말도 안 하고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거야. 안색을 살피는 눈으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눈으로. 이 사람한테 어떻게 얘기해야 좋을까? 하는. 나쁘게 말하면 생판 처음 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역시 표현이 잘 안 돼.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건 분명해.”
---「2」중에서
“엄마는 이제 손을 뗄지도 몰라요.” 그녀는 말했다. “이것으로 가출 인도 경력 세 번째인걸요.”
아이가 입에 올린 ‘손을 떼다’란 관용구에도, 아내가 숨기고 있던 과거 두 번의 인도 경력에 대해서도 오사나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목을 가장 간지럽히던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키라 군을 만나러 간 거니?”
문자로 하면, 네에? 하는 느낌의, 성가신 듯한 눈으로 딸은 오사나이를 돌아다봤다.
“다카다노바바까지 아키라 군을 만나러 간 거 아니니?”
딸은 등받이에 뒤통수를 댄 채 크게 턱을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그래?” 그는 딸의 몸짓을 그대로 믿었다. “아빠가 잘못 안 건가. 그렇다면 됐다.”
그럼 루리는 무슨 목적으로 다카다노바바의 비디오 대여점을 찾아가려고 했던 걸까?
---「3」중에서
지금, 그 초상화에 빠져들듯이 보고 있는 소녀의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있다.
옆에 다가앉아 그림을 들여다본 소녀의 어머니는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줄곧 손바닥을 가슴에 대고 높아지는 고동을 스스로 가라앉히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직업이 그러니만큼, 그런 과장된 몸짓도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녀는 프로 여배우다. 아마도 그녀는 오사나이가 그랬듯이 그것이 누구의 초상화인지 한
달의 영휴
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초상화로부터 눈을 든 그녀의 입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이 열리고 뭔가 적절한 감상을 오사나이에게 전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그림을 놓고 말할 수 있는 적절한 감상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그 사실을 소녀의 어머니도 오사나이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그저 오사나이를 향해 눈물을 글썽거릴 뿐이다.
---「오전 11시 30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