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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문학동네시인선-099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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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50g | 130*224*20mm
ISBN13 9788954649162
ISBN10 8954649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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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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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려왔을까 집에서 몇 발자국 나서면
한강 하구로부터 100km란 팻말이 서 있다
강가의 팻말은 사람으로 있어줬다 그는 없다
내 앞으로 흘러가는 강물은 언제 떠나
다른 이가 기댈 수 있게 흘러오고 있는 중인가
한밤을 무너져서 왔을 키만한 팻말을 두드린다
문을 두드리듯 나는 아직도 밖인데
울림을 못 들었다 했다
그즈음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울림을 갖고 흘러오기 시작한 고통을 물려받게 되었나
옛 선비들은 마음 아플 때 멀리 떠나가는 방법을
때로 군주와 떨어져 무엇에 기대려 했는가
맞은편 강둑에선 보리들이 타들어가며 익어가고 있다
그저 바라보기 위해 심었을 뿐
가난한 시절의 허기에 기대려는 것일 텐데
익어간다는 건 누군가의 입속에 기댄다는 말도 되었다
한강 하구로부터 100km
내게 도착할 수 있는 거리면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표시인지도 모르겠다
넘어서면 안 된다는 경계는 아닐는지 그 생각으로 돌아선다
몇 발자국 떼자마자 내 마음은 시시각각 변할 것이다
시시각각은 내게 고통이고 시(詩)다
시시각각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죽어갔을 것이다
그것 없이 어떻게 시를 쓸 수 있었을 것인가
발걸음이 가볍다
---「한강 하구로부터 100km」중에서


누구나 뱃속에서부터 손을 꽉 쥐지요 쥔다는 것이
두려워서, 그래서 누군가 조금씩 달랬어요
공작 같은 옷에 새 가방 메고 집밖으로 내보내졌어요
새 물건들은 낯선 것들을 달래려는 부적이었지요
불균형과 아리송한 감정들이 뒤죽박죽이던 사춘기도
달래기 위함이지요 더 낯선 곳으로 나갈 때마다
새것의 명목들이 늘어났어요
달랜다는 말 절묘하다는 걸 아나요
사랑도 옆에 두려면 오랫동안 달래야만 하지요
못 이룬 것 낙담하진 말아요
아직 달랠 준비가 안 돼서 그래요
그들을 빛과 어둠으로 빚어서 그렇겠지요
그 절묘함은 다 빈치(da Vinci)지요
글자들이 좌우 뒤집어져 있고
거울에 비춰야 읽을 수 있는 것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을 달래려 함이 아니었을까요
한밤중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패로 꽂혀 있던 적
질주하는 트럭에 산화한 적 없었는지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짧게 끊어진 움직임들이
순간의 숨에 멎어요 들키지 않게 판독하는 것이지요
고드름처럼 매달린 죽음이 아직도 활동중이라는 걸
알았을까요 수요일이 다시 자리잡듯이
새삼스럽지도 않지요
대장장이에게 쇠와 마음이 불이(不二)이듯
몸과 달래기도 불이이지요
---「달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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