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12월 05일 |
---|---|
쪽수, 무게, 크기 | 144쪽 | 208g | 130*224*20mm |
ISBN13 | 9788954619578 |
ISBN10 | 8954619576 |
발행일 | 2012년 12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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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44쪽 | 208g | 130*224*20mm |
ISBN13 | 9788954619578 |
ISBN10 | 8954619576 |
시인의 말 1부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인천 반달 미신 당신의 연음 동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동백이라는 아름다운 재료 꾀병 용산 가는 길-청파동 1 2:8-청파동 2 관음-청파동 3 언덕이 언덕을 모르고 있을 때 光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태백중앙병원 2부 옷보다 못이 많았다 지금은 우리가 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유월의 독서 호우주의보 기억하는 일 야간자율학습 환절기 낙(落) 오래된 유원지 파주 발톱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학(鶴) 옷보다 못이 많았다 여름에 부르는 이름 이곳의 회화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별들의 이주-화포천 광장 3부 흙에 종이를 묻는 놀이 모래내 그림자극 마음 한철 별의 평야 청룡열차 천마총 놀이터 가을이 겨울에게 여름이 봄에게 낙서 저녁-금강 문병-남한강 꽃의 계단 눈을 감고 날지 못하는 새는 있어도 울지 못하는 새는 없다 꼬마 연 눈썹-1987년 4부 눈이 가장 먼저 붓는다 연화석재 2박 3일 잠들지 않는 숲 입속에서 넘어지는 하루 희망소비자가격 미인의 발 해남으로 보내는 편지 누비 골방 가족의 휴일 유성고시원 화재기 오늘의 식단-영(暎)에게 동생 당신이라는 세상 세상 끝 등대 1 세상 끝 등대 2 발문│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며 시인은 시를 쓰네 허수경(시인) |
눈을 감고 있었지만 정신은 잠을 물리치고 점점 또렷해졌다. 다시 잠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해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은 몇 시일까?
결국 일어나서 시계를 보았다. 새벽 12시 25분. 한참 자고 일어난 느낌인데 잠든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오늘은 엄마 모시고 〇〇대학병원 가는 날. 긴장한 탓일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멀뚱하니 앉아 있다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12.05. 문학동네)』를 펼쳤더니 「기억하는 일」이 반갑다고 손짓한다. 기억력이 남다르다고 해야 할까. 잘 잊어버리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잊지 못해서 더욱 쓸쓸해지는 비 오는 새벽에 「기억하는 일」을 만나는 일은 거북한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다. 새벽부터 장마 비가 내린다더니 비 오시는 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한다. 오락가락하나보다.
구청에서 직원이 나와 치매 노인의 정도를 확인해 간병인도 파견하고 지원도 한다 치매를 앓는 명자네 할머니는 매번 직원이 나오기만 하면 정신이 돌아온다 아들을 아버지라, 며느리를 엄마라 부르기를 그만두고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고 며느리를 며느리라 부르는 것이다 오래전 사복을 입고 온 군인들에게 속아 남편의 숨은 거처를 알려주었다가 혼자가 된 그녀였다 「기억하는 일」중에서
시는 나이가 들수록 좋아진다고 하던데 내 경우는 반대로 어릴 때 시를 즐겨 읽다가 한참 마음으로부터 멀리 두었다.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작년에 ‘비밀독서단’에서 접했고 궁금증이 동해서 구입한 시집이다. 며칠 동안 「마음 한철」만 읽고 또 읽기도 하고 「낙서」는 손으로 꾹꾹 눌러 써보기도 하고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내 슬픔을 소곤소곤 속삭이기도 했으며 내 추억 속의 「청룡열차」를 끄집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책상위에 버려두기도 하고 다시 찾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겨울과 봄을 함께 보내고 여름을 맞았다.
박준 시인의 시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나를 빈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여백(「당신이라는 세상」)과 같아서 벌어진 잇새로 함부로 뱉어낸 말들(「야간자율학습」)을 뉘우칠 시간을 주었고 짧은 손끝에서 무너지던 새벽(「동백이라는 아름다운 재료」)을 안쓰럽게 바라볼 줄 알게 하였으며, 내게도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 서로의 전부를 쥐여 주던 때가(「마음 한철」) 있었는지 뒤돌아보게 만들었고 작은 눈에서 /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자주 눈물을 쏟는 나를 위로해주었다. 흠집이 내가 되고 내가 흠집이 되는(「光」) 단단함을 가질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어서 책장을 덮어도 / 눈이 자꾸 부(「유월의 독서」)신 시집 곁을 떠나기 싫어 계속 맴돌았다.
하지만 이제 생각한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당신이라는 세상」) 그래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헤어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이름으로 / 지어지지 못하는 글자들을(「입속에서 넘어지는 하루」) 결코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이제 안녕!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유월의 독서」중에서
* 6월 22일(수) 새벽에 쓰기 시작해서 6월 23일(목)에 끝낸 리뷰입니다.
[ 지금은 우리가 ]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 별들의 이주(移住)-화포천 ]
오월 천변(川邊)에서는
멀리 보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하면
숭어는 겨울 동안
감고 있던 눈을 뜹니다
천변의
긴 밭에서
새들은
어제 심은 들깨씨를
잘도 파 물어갔고요
노인은
막대기에 양철통을 들고
밭으로 나가
새들을 쫓다가
졸다가
가져간 찰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새로 울고 싶은
오월의 밤하늘에는
날아오른 새들이
들깨씨를 토해놓은 듯
별들도 한창이었습니다
[ 가족의 휴일 ]
아버지는 오전 내내
마당에서 밀린 신문을 읽었고
나는 방에 틀어박혀
종로에나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날은 찌고 오후가 되자
어머니는 어디서
애호박을 가져와 썰었다
아버지를 따라나선
마을버스 차고지에는
내 신발처럼 닳은 물웅덩이
나는 기름띠로
비문(非文)을 적으며 놀다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바퀴에
고임목을 대다 말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번 주도 오후반이야"말하던
누나 목소리 같은 낮달이
길 건너 정류장에 섰다
[ 호우주의보 ]
이틀 내내 비가 왔다
미인은 김치를 자르던 가위를 씻어
귀를 뒤덮은 내 이야기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발밑으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꼭 오래전 누군가에게 받은 용서 같았다
이발소에 처음 취직했더니
머리카락을 날리지 않고
바닥을 쓸어내는 것만 배웠다는
친구의 말도 떠올랐다
미인은 내가 졸음을
그냥 지켜만 보는 것이 불만이었다
나는 미인이 새로 그리고 있는
유화 속에 어둡고 캄캄한 것들의
태(胎)가 자라는 것 같아 불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책 속의 글자를
바꿔 읽는 놀이를 하다 잠이 들었다
미인도 나도
흔들리는 마음들에게
빌려온 것이 적지 않아 보였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 소/라/향/기 ...
종종 꺼내 읽는 박준 시인님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중 '마음 한철'이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이에요. 시집을 가끔씩 꺼내 봐요. 처음에는 책 속의 글자처럼만 보이다가 시간이 흐르고 제 감정이 깊어지면 그제서야 살짝 시의 얼굴을 엿볼 수 있는 거 같아요. 어떨 때는 그렇게 점점 친근해진 얼굴이 아닌 또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순간들도 있고요. 그래서 두고두고 봐도 새로운 게 시인 거 같아요.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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