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0년 1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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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75쪽 | 309g | 132*225*20mm |
ISBN13 | 9788937460432 |
ISBN10 | 8937460432 |
발행일 | 2000년 1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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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75쪽 | 309g | 132*225*20mm |
ISBN13 | 9788937460432 |
ISBN10 | 8937460432 |
이 책을 20대 초반에 만났는지, 중고등학교때 만났는지 그마져도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읽긴 했지만 제대로 된 기억력은 없었다. 단지, 음...... 뭐랄까 어린날 읽었는데도 고전에서 주는 깊이가 있었고, 사뮈엘 베케트라는 작가에 대한 묵직함이 있었고, 뭔지 모르겠지만 <고도>를 기다리는 두 남자의 모습이 자세히는 아니지만 계속 기억에 남았다. 얼마전 필사를 결심 했을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헤세아저씨나 존 스타인벡의 글을 제쳐두고 제일 먼저 기억났던 것도 계속 기다리던 고도를 그들이 만났던가? 혹은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 라는 의심이 새삼 들어서 이 책을 천천히 필사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필사를 시작하고보니 단지 글자 쓰는 것에 정신이 팔려 내용 파악이 제대로 안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필사를 하는게 쉽지 않음을 느꼈다. 자꾸만 내용보다는 글을 써 나가는 과정과 몇페이지의 성공에만 목을 메는 거 같아 내가 책을 읽는 목적과 잘 맞지 않는 거 갈등과 고민도 깊었던거 같다.
일단,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이 들의 모습이 연극무대위를 꽉 채운다. 극본으로 쓰여진 책이기에 읽으면서 그가 써 놓은 지문하나하나에도 꽤 신경이 쓰였다. 에스트라공은 어떤 성격인지, 블라디미르는 어떤 성격인지 그런 지문에서 성격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그런 글이랄까나.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 그들의 "고도"를 기다리기. 고도라는 사람이 이 책에선 분명 인물로 묘사되고 있긴한데, 어릴적 읽을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읽으면서도 단순히 "고도"가 인물이기만 한 걸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쓸때의 베케트 상황이라던가, 시대배경의 지식까진 없어서 제대로 이해 할 순 없었지만 굳이 인물로 한정 짓지 않아도 될 그 무엇인가 라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도대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제대로 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고나마 좀 나은 사람이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리는 건 알지만 꼭 블라디미르가 일깨워줘야만 "아, 그렇치 고도를 기다리고 있었지." 라고 깨닫는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늘 까먹는다. 자신이 벗어 놓은 신발, 어제 만났었던 사람, 자신이 했던 행동들. 모든걸 깡그리 잊어버리고 늘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덩그라니 나무만 있는 그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곤, 블라디미르에게 서로 헤어질까? 라는 생각을 또 다시 말하고 간다라고 하다가 움직이지 않고, 다시 블라디미르가 "고도"를 기다린다고 말하면 그건 또 기억한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만이 진을 치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들의 기억력보다는 그 순간 순간 그들의 행동에 눈길이 간다. 저러고도 살아 갈 수 있나? 라는 현실적인 생각보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고도가 뭐지? 계속 그런 고민과 그들의 희화화된 모습과, 혹은 안타까운 모습들이 교차되어 지나간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린 게 맞을까? 아니면 그 순간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어린날 읽었을 때의 느낌보다 지금 읽는 묵직한 느낌이 더 깊이 와 닿는다. 그들의 모습을 글로 표현 할 순 없지만 뭔가 울림이 오는 느낌.
그들의 희화화된 모습이 어디에 대입해도 제정신이 아니지만 뭔가 이해가 되는 이상한 느낌.
이래서 고전은 늘 한번 읽고 말게 아니구나. 게다가 한 출판사만을 고집해서 읽을게 아니구나. 라는 새로운 생각도 들었다. 출판사 마다, 혹은 역자마다 느낌이 다르고, 그리고 현재 내가 책을 읽는 그 순간이 어떠냐에 따라, 내 처한상황과 나이에 따라 새로움을 선사하는 보물을 찾은 듯한 느낌. 그래서, 고전은 늘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를 파헤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못 다한 이야기를 내가 또 상상하며 기억해 두는 맛이 어떤지 다시한번 실감한 계기가 됐다. 어릴적 느낌이 틀리진 않았구나. 그때 읽어도, 지금 읽어도 좋았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이 희곡이 부조리극의 시작이었다고 하는데 부조리하다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도 조리있게 다가왔다. 그 시대에는 기존 희곡의 형식을 탈피했다고 하니 부조리극으로 불렸는지 모르겠으나 주제의 전달에 있어서 상당히 일목요연해 보인다. 고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창작자 자신이 나서서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걸 내가 알았다면 작품에 바로 썼을 것이다'라고 답변했다니까 말이다. 작가는 기대로든 희망으로든 구원으로든 구세주로든 신으로든 각자가 정의하기를 시도하도록 바란 게 아닐까 싶다.
모자와 구두로 영 또는 지성과 육 또는 행위나 미천함 등을 상징하려 한 건 일차원적인 상징이기도 하고 기다림과 나무(상징하는 바는 모든 걸 끝내는 것일 수도 구원일 수도 있다), 포조와 럭키(계층이나 지배와 피지배일 수도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관계성일 수도 있다), 소년(가장 중의적이며 함의가 큰 상징 같다) 등 상징체계들이 고도라는 대상에게서 그리고 그를 기다린다는 상징 속에서 비단 기대와 희망으로 상징되는 그 이상을 그려내 보고자 시도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대사의 반복 등으로 그저 부조리만으로 다인 이야기를 전하려 한 희곡이 아니라는 감상이 들었다.
삶에서 세상의 눈물이 일정해 누군가가 울면 누군가가 웃고 누군가가 웃으면 누군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도 되지만 우리는 다음 순간 나는 눈이 멀고 타자는 귀가 먼 순간이 같지만 그 순간이 언제였는지 잊어버린다. 고작 어제 만난 서로에 대해서도 희미할 뿐이다. 그렇게 고작 어제 일이 희미할 정도로 우리는 고단하고 막막하게 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희망하고 기대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무엇인지 어떤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듯, 모른 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세상의 누구나가, 오늘이 처음 만나는 거고 처음 말하는 거라며 고도는 오늘 오지 않고 내일 오신다고 했다는 메시지를 전하듯, 그렇게 우리에게 낯설게 희망을 품게 한다. 우리는 모든 걸 오늘 끝장낼 수도 있지만 기다림의 결실을 기대하며 끝낼 순간을 미룬다. 막연한 기대만으로 막막한 삶을 억지스럽게 감당하고 있는 거다. 고도가 신이건 구세주건 기대건 희망이건 간에 우리는 그 또는 그것이 무언지 알고 기다린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수염이 하얗다는 말을 듣고 놀라리만치, 그는 미지의 대상일 뿐이다. 그 미지의 대상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매정하고 가혹하며 서로에게 의지한다. 타자가 없으면 서운하면서도 좋다는 건,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타인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바람하는 것에서도 엿보이는 성향일 것이다. 타인은 필요악이면서 동시에 지옥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 희곡을 정의하면 '부조리극이다' '의미보다 대사의 반복이다'는 말들이 많던데 대사의 반복에도 의미가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살아가며 그런 의미가 명료하지 않은 반복들을 행하고 경험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말이다.
이 희곡은 부조리극의 효시였다지만 읽으며 느낀 건 너무도 정연하게 조리있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아마 다시 읽는다면 다른 감상이 더 깊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희곡이다. 극이 주는 감상과는 다르게 또 하나 기대하며 오늘도 이 삶을 감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