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1992년 01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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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22쪽 | 188g | 128*205*20mm |
ISBN13 | 9788932001036 |
ISBN10 | 8932001030 |
발행일 | 1992년 01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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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22쪽 | 188g | 128*205*20mm |
ISBN13 | 9788932001036 |
ISBN10 | 8932001030 |
1959년 정든 유곽에서 봄 밤 또 비가 오고 루우트 기호 속에서 너는 네가 무엇을 흔드는지 모르고 口 話 出埃及 移 動 소 풍 自 然 물의 나라에서 돌아오지 않는 江 여름산 편 지 라라를 위하여 금촌 가는 길 꽃 피는 아버지 어떤 싸움의 記錄 家族風景 모래내·1978년 벽 제 세월의 집 앞에서 그 날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그해 가을 그날 아침 우리들의 팔다리여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人生·1978년 11월 성탄절 제대병 蒙昧日記 사랑日記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들에게 연애에 대하여 기억에 대하여 밥에 대하여 세월에 대하여 處 刑 눈 다시, 정든 유곽에서 이제는 다만 때 아닌, 때 늦은 사랑에 관하여 ▨해설·幸福 없이 사는 훈련·황동규 |
시인 이성복에게는 '시인들의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국내 시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꼽는 설문 조사에서 서정주, 정지용, 백석, 김수영에 이어 생존 시인으로는 유일하게 그가 꼽혔었다. 한국 현대시를 거론할 때마다 비평가나 시인들이 늘 빼놓지 않고 그를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첫 시집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980년 10월, 등단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시인 이성복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가 출간되었다. 당대 최고 평론가의 한 사람인 김현에 의해 인정을 받고 등단했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의 첫 시집은 많은 문인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이 시집에서 카프카와 보들레르를 문학의 등대로 삼아서 초현실주의적 방언과 이미지를 쏟아내었다. 비평가들의 찬사가 이어졌고 '그에 대한 마땅한 비평적 척도가 없다.'(시인 박덕규)라는 평까지 흘러나왔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움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우선, 시인은 자유연상으로 시를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口話(구화)'에서 '앵도'는 임산부들이 좋아하는 열매로 '애(아이)'를 연상시키고, '무서운 애'는 자라서 걷게 되고 이는 '걸어가는 詩(시)'를 연상시킨다. 또 '詩(시)'는 '오리발 내밀기'를 연상시킨다. '앵도'가 불러일으킨 연쇄반응적인 연상을 통해서 시와 삶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이런 연상법은 상투적인 시어들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심리적인 인과관계에 의존하고 있다. 시인의 독특한 연상법은 사물과 사물 사이 새로운 관계의 발견이라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다. 그가 문학에 대해서 "전혀 예기치 못한 형상들을 보여주는 문학의 됨됨이와 미술에서의 스크래치 기법은 놀랄 만큼 닮아있다. 백지에 크레파스로 여러 색을 칠하고 그 위에 검은색을 짙게 입힌 다음 옷핀 같은 것으로 긁으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중략) 비유컨대 우리의 삶과 세계를 구성하는 상식은 옷핀에 긁히기 전에 검정색이며 문학은 상식이라는 검은색 위에 상처 입히기다."라고 표현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또, 그는 시에서 '생의 불가해성, 고통, 아픔'을 드러내며 독자들을 불편의 극단에 내려놓는다. '모래내·1978년'에서 '우연히 스치는 질문-새는 어떻게 집을 짓는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풀잎도 잠을 자는가'(58쪽)라고 묻고,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에서 '끊임없이 왜 사는지 물었고, 끊임없이 희망을 접어 날렸다'(84쪽)라고 자문한다. 삶을 이해하지 못하겠음에 절망하고 좌절하는 자아가 드러난다. '기억에 대하여'에서는 '말에게 큰절한다 <모든 게 힘들고 어렵다는 느낌뿐이에요>'(91쪽)로, '그날'에서는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63쪽)로 삶에서의 고통과 아픔을 직접 드러내기도 한다. 직접적인 서술 외에도 시어들은 고통, 아픔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곽', '죽음', '구토', '상처', '지하', '욕', '죄' 등으로 삶의 고통과 아픔을 표현하고, 불안한 자의식까지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의 시집은 고통의 장소인 '정든 유곽에서'에서 시작해서 '다시, 정든 유곽에서'로, 이어 '이제는 다만 때아닌, 때 늦은 사랑에 관하여'를 읊으며 끝맺는다. 시인은 '정든 유곽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한 발자국'(112쪽)이라는 삶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장소에서 후회로 시간을 보내며 좌절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 '유곽'을 이야기하며 '때늦은 사랑'을 조용히 읊조린다. 이렇게 그의 시집이 온몸을 통과하면 우리는 '우리가 <아프다>라는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진실이 삶을 더욱 치열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 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
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아와 작은누나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 테야
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 테야
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 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라일라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번 소리 질렀다
이 동네는 法도 없는 동네냐 法도 없어 法도 그러나
나의 팔은 罪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市場에서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門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
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
이성복 / 어떤 싸움의 記錄
그의 초기 시들을 좋아한다. 어떤 닿음의 직전까지만 바래다놓고 훌쩍 도망가버려 어쩐지 배신감이 들게 만드는 그의 근작 (래여애반다라, 2013, 문학과 지성사) 과 달리 초기 시들은 상처와 슬픔이 이만큼 구체적이다. 시와 시인들에게서 간혹 '이건 아주 정확히 나의 것이다.' 라는 인상을 받곤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시를 읽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성복의 시가 때로 무섭다. '이건 아주 정확히 나의 것이다.' 차원 이상의 것,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오래전 바로 내가 쓴 시다.' 라는 확신이 든다. 가령 위의 시는 어떤가.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바로 나의 경험, 혹은 당시의 오감이 이 한 편의 시를 통해 현현한다. 나는 다시 아파지는 것이 마땅하나 그 상처가 이제는 오랜 것이어서 흉터를 바라보는 것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