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5년 09월 18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36쪽 | 426g | 145*155*25mm |
ISBN13 | 9788959139668 |
ISBN10 | 8959139661 |
발행일 | 2015년 09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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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36쪽 | 426g | 145*155*25mm |
ISBN13 | 9788959139668 |
ISBN10 | 8959139661 |
가랑비가 흩뿌리고 가는 가을 밤 차창 너머 희뿌연 불빛 아래 소년과 소녀는 말없이 손을 잡고 걷는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숨을 죽이고 내려다보며 그들의 가슴 속 속삭임을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 가슴 속을 뚫고 스쳐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마음은 울고 지금껏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반문하는 가운데 시 한 편이라도 읽어 딱딱해진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펴보리라 마음먹고 시 읽는 밤을 구매하였다. 흑색과 백색이 간명함을 더하는 시인의 감성이 녹아든 시들은 기존의 시와는 차별화된 짧음으로 선문답 같은 형식에 정서를 담았다.
엄마 뱃속에서 모성이 이끄는 대로 받아먹고 지내다 유영하던 시간을 끝내고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는 숱한 만남 속에는 생각만 하여도 가슴 뛰게 하는 상대가 있다. 익숙지 않아 잘해주고 싶은 마음만 앞섰지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라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정형화된 틀은 깨지고 새로운 시도 아래 또 다른 인연은 이어졌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여기면서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사소한 행동이 이별로 이어졌다. 시인 역시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지고 난 뒤 이 시들을 쓴 것처럼 보인다.
‘니가 있을 땐 /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었다.
니가 떠난 후 /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을 잃고 시를 쓴다던 시인의 처연한 표정이 그려져 마음이 가볍지는 않지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동안 서로에게 걸맞은 연인을 만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이별하기 싫어서 이별을 미뤘던 일들을 떠올리며 이별을 공부 같다는 시인은 너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손을 내밀었던 이가 정체성을 찾고 싶다며 떠나갔을 때의 실연의 틈은 아물기 힘든 구멍을 내고 말았다. 심장 한가운데 깊게 패인 구멍은 어떤 것으로도 메워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 속에 또 다른 감정으로 채워지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게 한다.
우연한 만남이 필연적 사랑으로 이어져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 시간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관행대로 행하며 서로에게 정성을 다하지 않을 때 이별은 스멀스멀 기어든다.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기 싫은 생각에 괴로움을 피해 외로움을 선택하는 게 이별이라는 시인의 표현대로 힘들어도 함께 견디며 그 시간을 보내려는 의지가 끼어들 여지가 없을 때 우린 이별을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는 부음(訃音)은 살아온 세월이 살아갈 날들보다 길었음을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숱한 이별을 겪으며 가슴에 묻어 둔 이들을 끄집어내 추억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그리움의 대상이 늘어났다는 것과 변질된 자신의 이면에 자리하는 순수성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일 것이다. 잊고 지낸 예전의 나로 회귀하여 그 시절의 만남을 복원한다면 지금보다 더 잘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불을 지피는 늦가을의 정점이다.
하상욱의 시밤을 읽었네
시 밤새 읽을 만한 건 아니고
시,팔 분 안에 읽을 수 있네.
시팔이 하상욱, 시 팔아 부자되길 바래요.
리뷰를 길게 쓰고 싶지만
시, 팔 분만에 읽는 내용이라 길게 못써요ㅜㅜ.
시인 하상욱을 처음 알게 된 건 내가 즐겨보던 한 TV프로그램에서였다. 세계의 젊은이들의 생각과 이상을 알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꽤 즐겨봤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나온 시인의 얼굴을 보고는 관심을 가졌다. 시인 치고는 젊은 작가고 시인 치고는 꽤 개그맨스러운 외모때문에라도 그의 시가 궁금했다. 또한 출연진들로부터 짧은 그의 시를 듣고는 그의 시가 더 궁금해졌다. 뭔가 명쾌하게 가슴을 친다고 해야할까. 짧은 시에서 절묘한 느낌을 받았다. 짧은 글을 좋아하는 청춘들에게 일명 먹히는 시인 같았다. 그리고 그의 진가를 제대로 느낀 것 또한 역시 한 TV 프로그램의 재방송에서였다. 일명 명절 특집으로 방송된 '못친소' 특집으로 못친소란 못생긴 친구들을 소개합니다라는 말의 준말로 못생기지만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인 치고 못생겼으면서 예능프로그램에서 걸맞는 그의 외모를 보고는 그의 시를 정말 읽어야겠다며 딸이 구입해 둔 시집 『시 밤』을 찾아 읽었다.
글쎄 시에서 가슴을 탁치는 뭔가를 느꼈다. 어쩌면 말장난 같기도 한 그의 시. 말장난 같은데도 마음에 탁 들어오는 감정들을 느꼈다.
"자, 하상욱에게 '시험'이란 뭔가요?"
"저에게 시험이란 '옛사랑' 같아요."
"왜?"
"다시 보면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아, 이걸 시라고 말할 수 있나. 어쩌면 언어유희같은 그의 시. 그럼에도 뭔가 무릎을 탁 치는 뭔가가 느껴지지 않는가. 하상욱의 시집이라고 하지만 시의 제목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몇 줄의 문장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제목도 주어지지 않았고 『시 밤』이란 한 권의 시집일 뿐이지만 그의 시집은 시집이다. 다음 시를 보라.
처음엔
그래서 니가 좋았다.
이제는
그래도 니가 좋더라.
좋~을 때다.
우리.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도 너무 마음에 들잖아. 지금은 사귄지 오래되어, 혹은 함께 산지 오래되어 설렘을 잊은지도 오래되고, 좋다고 느낀지도 오래된 관계에, 처음 좋았던 때, 지금도 좋다고 느낄 때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한 시였다.
다른 사람을 만나려 했는데
닮은 사람만 찾으러 다니네
그런 것 같다.
너 같은데
너 같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 같다.
문득 감정이란 아주 단순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감정이란 것 아주 개인적이라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것. 바로 사랑에 대한 감정이 아닐까. 나이가 어리면 어린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공감하고, 나이가 많으면 자신이 경험한 감정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공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이를 떠난 공감을 할 수 있는 것. 굳이 사랑뿐일까. 우리의 삶 모든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것. 시절을 지나며 혹은 지난 시절을 생각하는 것이 삶의 단면들에 공감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서정성 짙은 풍경 사진과 함께 캘리그라피로 표현된 시에 가만히 시를 음미하는 시간을 갖게한다.
변했네.
변치 않을 거란 마음이.
잊었네.
잊지 못할 거란 생각을.
수많은 것들을 잊고 사는 우리. 우리의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잊고 사는 우리의 참모습을 마주한 것 같은 시들이었다. 하상욱이라는 시인을 왜 좋아하는지 느낄수 있었던 시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