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7년 06월 30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08쪽 | 308g | 128*188*20mm |
ISBN13 | 9788937473166 |
ISBN10 | 893747316X |
발행일 | 2017년 0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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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08쪽 | 308g | 128*188*20mm |
ISBN13 | 9788937473166 |
ISBN10 | 893747316X |
프롤로그 7 해가 지는 곳으로 15 에필로그 173 작가의 말 191 작품 해설 | 전소영(문학평론가) 193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모든 노래가 깨어나면 |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황폐함 뿐일까.
황폐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봄을 향해 나아갈까. 저 너머 어딘가에 봄이 오는 곳이 있다고 생각할까.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좀더 희망적일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거쳐온 것과 현재의 삶을 보면 낙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자원은 고갈되고, 각종 신종 바이러스가 생기고 있는 요즘이다. 곧 인간에 의해 정복되기도 하지만 진통이 따른다. 백신을 개발하면 더한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대책이 없다.
미래를 말하는 소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희망적인 미래 보다는 암울한 미래의 풍경이 더 많다. 인간적인 면이 거의 없으리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그럼에도 인간은 인간으로 인해 위로 받고, 인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다.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는 한국. 재앙과 죽음 뿐인 이곳에서 희망을 찾기란 힘들다. 류는 단과 함께 해민을 데리고 한국을 떠났다. 해림을 바이러스로 잃고 그곳에서 살 수 없었다. 희망을 찾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왔지만 그곳 또한 재앙과 황폐함 뿐이었다. 그런 곳에서도 사람들이 산다. 한 곳에 붙박이로 사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떠나온 사람들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동생 미소를 책임져야하는 도리는 표를 훔쳐 한국을 빠져나왔다. 텅 빈 거리, 텅 빈 집들. 먹을 것도 없는 곳이지만 미소를 데리고 해지는 쪽을 향해 움직였다. 우연히 류를 만나 통조림 몇 개를 얻었다. 그리고 지나를 만났다. 살아 남은 친척들과 함께 움직이는 지나 아버지의 트럭에 함께 타게 되었고, 그렇게 둘은 서로를 사랑했다. 학교와 가정의 폭력 피해자 건지의 시선은 지나에게 향해 있었고, 미소는 건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자인 도리가 미소와 함께 트럭에서 버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트럭을 멈추고 쉬고 있을때 총을 들고 강도들이 찾아와 가족 중 한 사람이 죽었다면 모든 책임은 도리에게 향하고 만다. 너 때문에 죽었다고. 너 때문에 지나가 죽을 수도 있었다고. 그때부터 그들에게 도리는 여정을 함께 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에 의해 짓밟혀져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만다.
지나의 아버지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그는 가족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책임 전가를 하고 싶었을 테고, 울분을 토해 낼 사람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인간의 본성이 나온다. 가족과 타인의 거리가 보인다. 가족은 보호해야 하지만 타인은 과감히 버려도 된다는 식이다. 타인이 비록 여자거나 어린아이일지라도.
나는 이 소설을 읽을 때 퀴어로 보지 않았다. 희망이라고는 일말의 빛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미래가 보였다. 온 세상이 눈 뿐인 곳에서 그나마 해가 지는 곳이 봄이 오고 있는 곳이라 믿었다. 그래서 건지도 해가 지는 쪽으로 향하고, 도리도 그쪽으로 향했다. 작가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다양한 사랑이 있지만, 작가가 이 소설에서 내세우는 것은 지나와 도리, 즉 여자와 여자의 사랑이다. 물론 그 이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왔지만 사랑이라고 말하지 못했으나 비로소 사랑이라고 일컫게 되는 류의 사랑이 있고, 처음부터 지나를 향한 사랑을 품었던 건지의 사랑, 건지를 바라보는 미소의 사랑이 있다. 이것 뿐일까. 이처럼 다양한 사랑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지나와 도리의 사랑이 주를 이룬다.
헤어져 있어도 언젠가는 만날 거라고,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 사랑이다. 또한 삶의 희망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간다. 오늘이 죽을 만큼 힘겹더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오늘을 견딘다. 그러다보면 어디선가 우연히 마주칠지도 모른다. 굳이 헤어진 장소에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작가는 사랑하는 일을 미루지 말자고 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대하자고도 말했다. 우리는 종종 잊는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늘 곁에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함께 할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 사랑하는 일을 등한시 했지는 않는가. 현재가 영원히 존재할 것 같지만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이 것만 기억하면 될 것 같다.
최진영 작가를 겨우 두 번째 만나는 것인데도 최진영의 색깔이 드러나는 소설이라고 감히 말한다. 읽은지 몇 년 되었지만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고 젊은 신인 작가에게 경탄과 충격을 동시에 받았었기에 그 소설에 대한 느낌이 어렴풋인 듯 강하게 남아있었다. 『해가 지는 곳으로』가 최진영 작가의 장편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은 구매 각이야" 하며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소장하는 재미는 덤이고.
우리는 어디로 가?
우리는…… 여름을 찾아서.
여름은 어디에 있는데?
나는 손가락으로 태양을 가리켰다.
저기, 해가 지는 곳에.
미소는 혀로 사탕을 굴리며 내 손을 꼭 잡았다.(24쪽)
이상한 바이러스가 세계를 뒤엎게 되자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었다. 약탈과 방화, 죽고 죽이는 사람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됐다. 어딘가 안전한 벙커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러시아로 몰리고 있었다. 서쪽을 향해 나아갔다. 지나는 곳마다 이미 폐허가 된 마을들 뿐이다. 아이의 간을 먹으면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설 때문에 아이들은 더욱 위험하다. 도대체 어디가 끝일까. 대재앙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긴 있을까. 희망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이 길 위에서 만난다.
도리_
이십대 초반의 도리, 그녀의 한참 어린 동생 미소를 데리고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왔다. 도둑질과 숨어 있기가 전문이다. 도리에겐 '살아남아야 한다, 미소를 혼자 두면 안된다', 라는 생각밖에 없다. 아무도 믿으면 안된다. 그러다 회색눈과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지나를 만났다. 도리와 전혀 반대의 사람이다. 최대한 빨히 먹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도리에게 먹는 행위라면 지나는 식탁을 차리고 품위를 지킨다. 도리는, 지나를 닮고 싶었다. 그러나 도리는 조금씩 재앙을 닮아 가고 있었다.(밑줄, 55쪽) 지나와 너무 가까워지면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지나가 신경 쓰인다. 일부러 지나를 미워해보지만 그런 자신이 더 미웠다.
미움이라니. 길위에서 그런 감정은 필요 없다. 미워할 이유가 없다. 증오하거나 두려워하면 그만이다. 그랬는데, 다른 감정이 생겨 버린 거다. 제 이름을 부르면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지나. 그 눈을 볼 때마다 나의 눈빛이 궁금했다. 나는 어떤 눈빛으로 너를 바라볼까. 어떤 눈빛이기에 너는 나를 보고 미소 지을까.(57쪽)
지나_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이번이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르잖아. 그럼 감자 한 알을 먹더라도 제대로 먹고 싶어지니까.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한 끼 한 끼가 소중하다면,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55쪽)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55쪽)
류_
딸 해림을 잃었다. 해민 마저 잃을 순 없었다. 바이러스를 피해 한국을 떠나야한다. 뜨거움도 없고 이 사람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도 없었지만 편안했고 이만하면 되었다는 마음으로 단과 결혼했다. 딸, 아들 하나씩 두었다. 하루하루 살기 바빠서 하고 싶었던 일들은 미루어왔다. 여행, 근사한 외식, 공연 관람...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살았다. 이젠 아니다. 해민을 지켜야 한다.
사람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미루는 삶은 끝났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100쪽)
도리와 지나가 주고받는 눈빛과 미소의 깨끗한 표정 속에서 마치 내가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공기가 달라졌다. 살인과 폭력과 치욕과 체념에 둔감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온갖 나쁜 것 속에서도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165쪽)
건지_
지나 누나와 지나 누나네 엄마가 아니었음 건지는 아버지에게 맞아죽었을지도 모른다. 울타리가 되어주던 지나 누나네 엄마가 죽었다. 건지 엄마도, 아빠도 죽었다. 건지는 지나네 가족과 함께 벙커를 향해 떠났다. 지나 누나 빼고 모두 건지를 더러운 물건 대하듯 취급해도 건지에겐 지나 누나만 있으면 아무렇지 않다.
역시 벙커 같은 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그런 곳에서 다시 사람들에 섞여 살아남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주 고요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죽는 날까지 좋은 것을 지킬 것이다. 좋은 것은 소중한 것, 내 중심에 있는 이것. 그렇게 마음 먹었다.(131쪽)
한국판 『로드』를 읽는 기분이었다. 인류의 대재앙이라는 설정, 어딘가 있을 안전한 곳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동물의 세계가 되어버린 세상, 그 속에서 살아남는 분투,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의 나날들.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자주 바뀐다. 여자이거나, 아이이거나. 물리적 강자로 분류할 수 있는 남자, 군인, 어른이 아니다. 상대적 약자들이 이 폐허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지를 보는 것이라 더욱 마음 졸이며 책을 읽을 것이다. 작가의 계산된 장치였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더러운지, 인간이 여타 동물과 다를 것 없다는,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는 설정 속에서 다섯 명의 시선이 교차하며 전쟁 같은 세상을 비집고 들어간다. 오직 생존이 목표였는데 뼈밖에 남지 않은 몸 속에서 작은 생명의 펌프질이 팔딱팔딱 뛰더니 피의 순환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되었고, 기쁨이 되었고, 경직된 마음을 부드럽게 마사지 해주었다. 아무 희망도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짓고 손을 잡으며 '사랑해'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더욱 살고 싶어졌다. 살아야 한다는 명제 아래 그들은 더욱 단단히 손을 잡았다.
이게 앞서 말한 최진영식 어둠 속 희미한 불빛같은 희망을 선사하는 소설 전개랄까. 컴컴한 터널만 계속 지나는 것 같은데 그 안에서 간간히 잔빛이 비치는 느낌. 더 달리다 보면 저어기 뿌연 입구 같은 게 보이는 기분. 오히려 해가 지는 곳이 아닌 해가 뜰 것 같은 곳으로 전진하는 느낌.
같이 공부하는 팀이 있다. 그들과 공부를 하다 보면 다양한 ‘만약에’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지구가 종말하고 있다. 당신은 종말 하는 지구에서 살아남아 지구 재건을 위한 전사가 되고 싶은가? 아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는 것을 선택할 것이냐? 나는 고민 없이 함께 죽는 것을 선택한다고 했다. 살아남아 전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맨 땅에 살기 위해 몸부림 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이 외로워야 하고, 지독해 져야 하는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나의 생각은 어쩜 미래는 지금보다 편리하겠지만 사는 건 점점 더 힘들어 질 거라는 나름의 생각 때문일지 모른다. 미래를 말하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를 보더라도 천국으로 묘사되기 보다는 회색 도시 혹은 더 치열한 계급 사회가 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 암시가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만난 최진영의 소설도 그런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구에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뒤덮는다. 이 바이러스로 세상은 온통 혼란하기만 하다. 이 바리어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삽시간에 죽어 가고 살아남은 이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언제 끝날지 모를 여정을 떠난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동생 미소를 지키며 맨몸으로 러시아를 걸어온 도리. 미소와 도리는 밤을 보내기 위해 어느 마을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일가친척과 함께 탑차를 타고 러시아로 흘러 들어온 지나를 만나게 되는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세상이 망하는 것처럼 돌아가도 결국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살아나갈 힘이 생기는 것일까? 바이러스로 세상은 엉망이 되고 내가 살기 위해 내 앞에 있는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죽여서 그들에게 있는 모든 물품들을 빼앗아야 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그 세상에 지나와 도리가 만나고 그 둘은 첫 눈에 사랑하게 된다. 도리를 받을 수 없다는 가족들의 원성을 받지만 지나는 그럴수록 더욱 도리만을 보게 된다. 하지만 믿었던(?) 가족의 다른 행동.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본능은 어떻게 할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지나와 도리는 헤어지게 된다. 헤어져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지나와 도리. 세상은 점점 회색빛으로 물들고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도 사랑이 있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일까?
소설은 친절하지도 다정하지도 않다. 막연하게 소설 속 상황을 상상하고 그려 본다. 폐허 속에서 도리와 지나의 사랑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암울함 까지도.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폐허 속에 살아남아 세상을 재건하기 보다는 남들 죽을 때 같이 죽는 걸로. 재건할 자신도 그 우울함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도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모든 게 사라져도 사랑의 마음은, 사랑했던 마음은 세상에 여운으로 남게 될까? 그래서 사람들은 형체도 없는 사랑에 집착하는 것일까? 오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