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노력하면 소비 통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라는 것이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욕구를 참고 절제하는 능력, 즉 자제력은 쓰면 쓸수록 단련되는 근육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참고 절제할수록 우리 뇌는 피로감을 느끼면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한다. 코르티솔은 만성 두통, 불면증, 면역저하 등을 유발하는 동시에 자제력을 약화시키고 충동적 행동을 야기한다. 욕구를 참는 일이 많아질수록 코르티솔 분비가 활발해진다. 그 결과, 어느 순간 더 이상의 자제력 발휘를 포기하게 된다. 포기만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그 동안 억압돼 있던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며 엉뚱한 곳에서 소비가 폭발한다. 절약하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절약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머릿속에 종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소비 통제를 결심했다가도 다시 충동구매의 유혹에 넘어가기를 반복하는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제력이 부족한 것도, 절약의지가 약한 것도, 충동구매 성향이 강한 것도 아니었다.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절약, 애쓸수록 실패한다〉 중에서
한 기업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기업의 회계장부를 보고 분석해야 한다. 회계장부는 무의미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숫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기업이 우량한 기업인지, 경영에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지, 효율적으로 생산을 하고 있는지와 같은 다양한 질문에 숫자는 정확한 답을 해줄 수 있다. 숫자가 말하는 것을 잘 분석하고 참고해서 경영자는 회사를 경영하고 주주는 투자를결정한다. 가정경제도 기업과 마찬가지다. 한 가정의 살림살이가 보여주는 숫자는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아끼고 절약해야 한다는 신념을 유지하거나 더 많이 공부해서 똑똑한 소비자가 되는 것으로 가정경제를 운영하면 금세 한계에 부딪친다. 개인의 결심이나 능력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지속가능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가야 하는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의사결정의 근거는 다름 아닌 숫자다. 이제는 내 마음속이나 옆집 아주머니가 아니라 우리 집 재무장부 속 숫자에 질문을 하자. 답은 숫자가 알려줄 것이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다〉 중에서
결정장애는 돈 문제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쉽게 결정하지 못하면 미루게 되고, 미룬다는 건 계속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다. 가격과 품질 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 옷 하나를 사는 데 몇날 며칠 인터넷을 뒤졌다고 하자. 옷 한 벌은 잘 샀을지 몰라도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허비한 시간 또한 우리가 치르는 비용이다. 돈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장애에 빠지는 이유는, 그 대상이 좋은지 나쁜지를 사고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을 쓸 대상이 아니라 나의 재정상태를 사고의 중심에 두어야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라 해도 돈이 없다면 구입하면 안 된다. 반대로 돈에 여유가 있다면 조금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쓸 이유는 없다. 역시 답은 숫자다. 결정장애를 극복하는 힘은 더 많이 알아서 더 똑똑한 소비자가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얼마를 쓸 수 있는지 그 숫자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 나온다. -〈결정장애를 극복하는 숫자의 힘〉 중에서
가정에는 버는 사람도 있고 쓰는 사람도 있다. 가족구성원은 능력에 따라 벌고 필요에 따라 나눈다.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같이 쓰는 공통 비용도 있고 각자 쓰는 개별 비용도 있다. 대표적인 공통 비용은 주거비, 인터넷 같은 공통 통신비, 공과금, 여행 비용 등이며 개별 비용은 교육비, 의류비, 용돈 등이다. 개별 비용을 파악하면 우리 집에서 누가 가장 돈을 많이 쓰는지 알 수 있다. 다들 자신은 쓰는 돈이 별로 없다고 여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단 한 집에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공통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4인 가족이 월세 100만 원을 내고 산다면 1인당 매월 25만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한 달 용돈이 10만 원이라고 10만원만 쓴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주부들은 별도로 용돈을 책정하여 지출하는 경우가 드물고 생활비에서 자신을 위한 지출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주부는 가족의 개인 지출을 파악하고 깜짝 놀랐다. 남편보다 자신의 지출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용돈은 따로 없지만 자신을 위해 지출하는 돈이 적지 않았다. 반면 남편은 따로 용돈이 있지만 용돈 이외의 다른 비용은 쓰지 않거나 용돈에 포함해서 써왔다. 그 결과 각자 쓰는 개별 비용은 남편이 아내보다 적었다. -〈공통 비용 vs 개별 비용〉 중에서
우리는 같은 금액의 돈이라 해도 그 출처에 따라 다르게 생각한다. 실제로 통장 계좌에 따로 넣어놓지는 않지만 마음속에서는 별도의 계정으로 분류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마음속 회계장부라는 뜻으로 심적 회계 (mental account) 또는 심리계좌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로 번 돈 5만 원은 ‘일해서 번 돈’ 이라는 계좌에 넣는다. 열심히 일해서 벌었기 때문에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돈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길을 가다 5만 원짜리 지폐를 주웠다. 이 돈은 그 즉시‘공돈’이라는 계좌로 들어간다. 공돈 계좌에 들어간 돈은 아주 쉽게 쓴다. 말 그대로 공돈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로또 당첨자가 거액을 쉽게 탕진하는 것도 당첨금을 공돈 계좌에 넣어놨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인 A와 B는 연봉이 같다. 그러나 월급을 받는 형식은 다르다. A가 다니는 회사는 연말에 한 번 보너스를 준다. B의 회사는 보너스를 한 번에 주지 않고 12로 나눠 급여에 일정하게 포함해서 준다. 결과적으로는 같은 돈을 받는 A와 B, 그러나 항상 B가 A보다 더 많은 돈을 저축한다. 그렇다고 A가 B보다 사치스럽거나 자제심이 없는 건 아니다. 월급을 어떤 심리계좌에 넣어두었냐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월급은 열심히 일한 대가로 번돈이다. B는 이 돈을 ‘일해서 번돈’이라는 계좌에 집어넣고 쉽게 쓰려 하지 않는다. A도 매달 월급은 ‘일해서 번 돈’ 이라는 계좌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연말 보너스는 추가로 생기는 소득이라는 생각에 ‘공돈 계좌’에 들어간다. 일단 ‘공돈’이라는 이름표가 붙으면 꺼내 쓰기가 쉬워진다. -〈내 마음속 회계장부〉 중에서
부동산의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 측정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길 하나 사이에 두고도 가격이 다르고 같은 건물인데 층에 따라서도 가격이 다른 게 부동산이다. 내 집 가진 사람은 지금 가격이 결코 비싼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집 없는 사람은 한국은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하소연한다.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많지만 그중 시중 금리와 임대 수익률로 부동산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이 있다. 임대 수익률은 부동산이 얼마만큼의 수익을 발생시키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지표이기 때문에 부동산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근거다. 임대 수익률은 시중 금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임대 수익률이 최소한 시중 금리보다는 높아야 한다. 더군다나 각종 세금과 집 수리비, 공실 비용, 중개 비용 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것까지 고려해 금리보다 높은 수준에서 임대료를 결정한다. 각종 비용을 고려하면 부동산 임대 수익률은 금리보다 2~3% 높게 결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너무 높은 수준에서 임대 수익률이 결정되면 다들 은행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려 집을 사 부동산임대업을 하려 들 것이다. 금리보다 2~3% 높은 수익률이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른 적정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부동산 가치, 어떻게 평가할까〉 중에서
과거의 노력은 부족했지만 현재 순자산 13억 원이 있고 남편이 5년은 더 일할 수 있으니 이 부부의 미래는 걱정 없다고 생각한다면 섣부른 판단이다.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 이 가정의 미래를 순탄하게만 볼 수 없는 요소들이 있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유동성 부족, 즉 현금 부족이 올 수 있다. 만약 소유하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돌려줘야 할 전세보증금이 5억 원이다. 그러나 당장 마련할 수 있는 돈은 살고 있는 집 전세보증금 4억 원과 현금 6,000만 원 뿐이다. 결국 4,000만 원이 모자라는 유동성 부족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 조금 더 길게 보면, 자녀 둘의 결혼이 위험 요소다. 요즘은 해외연수, 취업난 등으로 취업이 늦다 보니 내년 결혼 예정인 33세 큰아들은 이제 직장생활 4년차다. 모아놓은 돈이 5,000만 원 남짓이라 서울에서 신혼집을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30세 작은아들도 5년 이내에 결혼한다면, 서울에서 전세를 얻는 데 한 명당 적어도 2억 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집에서 꺼내 쓸 수 있는 돈은 퇴직금뿐이다. 노후 자금이 줄어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부부는 퇴직금을 꺼내 자녀 결혼자금으로 쓸 예정이다. 이대로라면 둘째가 결혼할 때 나머지 퇴직금을 다 쓰고 모자라는 돈은 아파트 담보대출을 얻어 결혼 자금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은퇴 시점에 퇴직금이 소진될 위험이 존재한다. -〈과연 13억 원을 지킬 수 있을까〉 중에서
투자에는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언제 사야 하고, 언제 팔아야 하며, 얼마를 사야 하는지 고도의 지식과 판단력이 요구된다. 이를 갖추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 에너지가 소모된다. 게다가 올바른 투자를 방해하는 각종 심리적 편향도 이겨내야 한다. 우리는 전업 투자자가 아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본업이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투자에 일희일비하는 순간, 즉 돈 생각으로 머릿속이 터널링을 이루는 순간 희생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얼마 안 되는 원금으로 투자해서 얻을 이익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희생해야 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초라할 뿐이다. 우리의 투자는 그래서 돈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투자여야 하고, 심리적 편향을 극복할 수 있는 투자여야 한다. 최대한 고민하지 않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바로 숫자다. 숫자란 앞으로 어떤 종목이 오를지, 어떤 산업이 유망할지에 대한 예상이 아니라 과거 실적과 주식 가격이라는 확정된 수치다. 미래를 예측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고 에너지나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숫자로 투자하기, 안정적으로 돈 불리기〉 중에서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