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03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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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312g | 128*206*20mm |
ISBN13 | 9791159312236 |
ISBN10 | 1159312230 |
발행일 | 2018년 03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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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312g | 128*206*20mm |
ISBN13 | 9791159312236 |
ISBN10 | 1159312230 |
개정판을 내며 들어가는 말 제1장 머리말 제2장 제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 제3장 제3장 개별성 -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요소 제4장 제4장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 제5장 현실적용 해제 -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고민한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 | 서병훈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
고전의 무게일까. 책이 읽히지 않았다. 300페이지 가량의 분량이지만 작은 크기로 나온 문고판임에도 불구하고 독서에 걸린 시간은 <코스모스>를 읽는 시간과 맞먹었다. 논리적 서술에 대한 문해력이 난독증에 가까워진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점점 긴 시간을 들여 맥락을 살펴야하는 책을 읽기가 힘들어진다. 앞 문장과 뒷문장의 연결이 긴밀해질수록 삼천포의 수렁으로 흘러가는 상황이 잦아진다.
읽기 어려웠던만큼 이해도도 낮다. 책 전체에 퍼져 있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에 대한 주장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터라 어렵지 않았다. 사회학 서적에 자주 인용되는 문장의 원전에서 만나는 기쁨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고도 책에 펼쳐진 주장의 맥락이 한 줄로 잡히지 않았다. 찜찜하다. 다른 번역을 보면 좀 더 이해하고 주장의 줄거리를 꿸 수 있게 될까. 책의 명성이 높으니 아쉬움이 더 크다. 이 책을 읽고 논리적 글쓰기의 전범을 배웠다는 독자도 있다. 재독이 절실한 책이다.
밀은 당시 사회가 획일화되어가는 상황을 우려하며 개인의 개별성을 강조한다. 사상, 표현, 집회의 자유를 가진 개인들이 각자의 개별성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단 하나의 의견도 존중되는 가운데 더 나은 실패들을 쌓아 진리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주장 사이사이를 메우는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수도 없이 길을 잃었다. 논리의 바다에 휩쓸리던 와중에 붙잡은 문장을 옮긴다.
“흔히 말하는 ‘의지의 자유’를 다루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이 책은 그보다는 시민의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를 중심으로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p.21)
“집단의 생각이나 의사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런 한계를 명확히 하여 부당한 침해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서 정치적 독재를 방지하는 것 못지않게 긴요하다.”(p.28)
“사실 이 관습이라는 것은 속담 그대로 제2의 자연이다.……관습은 사람들이 만들고 지켜온 행동 규칙의 타당성을 전혀 의심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관습은 이성적인 토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일반적인 의식 때문에 이런 속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p.29) |
밀은 자유에 관한 단 하나의 원리를 주장한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사를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p.36) |
"자유의 원리는 인류가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을 통해 진보를 이룩할 수 있는 시대에나 성립되지, 그런 때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p.37)
“인류가 발전시켜온 생각이나 일상적인 행동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우리의 삶이 더 나빠지지 않고 지금 이 상태로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지적 또는 도덕적 존재로서 인간이 보여주는 모든 자랑스러운 것들의 근원, 즉 자신의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이렇게 된 것이다. 인간은 토론과 경험에 힘입어 자신의 과오를 고칠 수 있다.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의 경험을 올바르게 해석하자면 토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잘못된 생각과 관행은 사실과 논쟁 앞에서 점차 그 힘을 잃게 된다.……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의견이 상이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나아가 다양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 문제를 이모저모 따져보는 것이 필수적이다.……인간 지성의 본질에 비추어볼 때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pp.57-58) |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민주주의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헌법 제1조 1항에 적혀있듯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 제도에 익숙해져 있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50년 전에 쓰인 글이 있다. 바로 민주주의의 입문서라고 칭할 수 있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다. 책 제목이 '~론'으로 끝나면 왠지 읽는 걸 주저하게 된다. 어렵기만 한 전공 서적들이 생각나면서 지레 겁을 먹는다. 이 책의 첫인상도 그랬다. '자유론' 이름만 들어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에 대한 의미도 알기 어려운데 그것에 대한 이론이라고 하니 얼마나 읽기 힘들까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렇게 겁을 먹었지만 서평을 써야 하기에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펴보았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잘 읽혔다. 물론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흐름대로 비교적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어려운 이론서라기 보다 저자의 에세이에 가까웠다. 알고 보니 자유론의 원제는 'On Liberty'로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자유에 관하여' 정도가 되겠다.
존 스튜어트 밀이 생각하는 자유에 관한 모든 생각을 이 책 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밀은 자유와 권력의 다툼이 역사가 시작된 까마득한 옛날부터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역사 초기에는 한 사람 혹은 한 계급이 지배 권력을 장악하는 독재 권력이 행사되었다고 설명하며 이들 권력자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피지배계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다 결국 이를 걱정하는 사람이 나타났고 자신의 나라를 온전하게 지탱하기 위해 최고 권력자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의 한계를 규정하게 되었다. 때문에 밀은 이 시기의 자유란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을 일컫는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 민주 정부가 설립되었다. 물론 민주 정부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밀은 특히 다수의 횡포를 온 사회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해악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유에 관한 하나의 명제를 제시한다. 바로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라고 말한다.
밀은 자유의 기본 영역을 크게 셋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는 내면적 의식의 영역이다. 이는 우리가 모든 주제에 대해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 그리고 절대적인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누려야 함을 말한다. 두 번째는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말한다. 밀은 사람들 모두 각각의 개성에 맞게 자기 삶을 살게 하고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갈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이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한 간섭이나 참견을 해서도 안 된다. 마지막 세 번째는 결사의 자유다.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나 억지로 끌려온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성인들이 어떤 목적의 모임이든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밀은 이 세 가지 자유가 모두 보장되어야만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의견을 무시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 또한 민주 사회에서 생각과 토론의 자유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밀은 개별성의 존중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지만 사회성도 등한시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에서 보호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신이 혜택을 받은 만큼 사회에 갚아 주어야 하며 사회 속에서 사는 한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기 위해 일정한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 행동 규칙으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사회를 방어하거나 사회 구성원이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데 필요한 노동과 희생 중에서 자신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책 속 여러 주장들 중에서 제3장의 개별성 부분이 가장 와닿았다. 128페이지 끝부분에 쓰인 문장을 적어보고자 한다. "근육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정신이나 도덕적 힘도 써야 커진다. 다른 사람이 믿으니까 자기도 믿는 경우도 그렇지만, 그저 어떤 일을 다른 사람이 하니까 따라 한다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자신의 분명한 이성적 판단에 따라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이성은 튼튼해질 수 없다."라고 말한다. 또한 "사람이 세상 또는 주변 환경이 정해주는 대로 살아간다면, 원숭이의 흉내 내는 능력 이상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 나 자신으로 살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교 입시가 인생의 끝인 것처럼 치열하게 공부하고, 그렇게 원하던 대학교에 들어가면 끝날 줄 알았던 레이스가 다시 시작된다. 이번엔 취업 전쟁이다. 그렇게 또 취업이라는 장벽을 뚫고 들어갔다면 그 이후에는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된다. 대체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달리고 달린다. 이 책에서 밀은 사람들이 자기 성향대로 마음껏 살기 위해서는 각자 다른 삶을 사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지금의 우리 사회가 이를 허용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생각보다 술술 읽혔지만 어려운 부분도 간혹 있었다. 알릴레오 유튜브에 소개된 자유론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유시민 님이 하시는 말씀이 자유론은 나이가 들었을 때 읽어야 더 잘 이해된다고 하셨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읽으면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한 번 읽고 덮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꺼내어 읽어봄직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150년 전의 쓰인 자유론이 현재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현재를 살고 있는 독자들이 이 책의 응답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제목이며 저자며 너무나 익숙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고, 읽을 생각도 못했던 책이다. 먼저 읽은 분들은 생각보다 잘 읽히고 내용이 좋다고 추천해주시기도 하셨다. 이제 적당히(?)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들였는데, 책도 얇고 작아서 마음이 놓였다. 자유에 대해, 19세기 천재가 뭐라고 했을까?
허나 반전 넘치게 여전히 고전이 어렵고, 읽을 만하다는 책인데도 생각보다 속도는 안 나갔다. 이 천재들의 “따라오려면 따라와봐.”식의 전개는 여전히 힘들고, 많은 페이지를 한 호흡으로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맥락에 쉽사리 전체 그림을 그리지는 못한다. 그나마 밀은 친절한 편인 듯. 장도 나뉘어져 있고, 나처럼 숲을 못 볼까봐 정리도 해주고. 그나마 다른 철학 고전 도서들 보다는 접근할 만하다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내용도 19세기에 쓰여진 것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인 발상이다. 밀이 뛰어났던 건지, 그 당시의 생각이 아직도 변하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에 적용되는 사항들이 많고 곱씹어 볼 것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무척 신나서 읽었다. 읽으면서 발제문이 이렇게나 쉽게 나오는 책이라니.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다른 관점이라 신기한 부분도 많았고, 이 시기에 이런 생각을! 하며 놀라운 면도 많았다.
머리말에서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이야기 한다.
- 현대 사회의 비극 1.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남을 따라가려는 습성이 있다. (11) 2. 자기 확신의 과잉이 그런 비극의 또 다른 뿌리가 된다. (중략) 내 생각이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남의 생각에 대해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 (12)
- 나는 이 책에서 자유에 관한 아주 간단명료한 단 하나의 원리를 천명하고자 한다. (중략) 인간사회에서 누구든 ? 개인이든 집단이든 ?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36)
현대 사회의 비극이라고 명명하고 풀어놓은 두 가지가 현재에도 몹시 동일해 사회가 이다지도 변하지 않았나 놀라웠다. 진리이기에 변하지 않는 건지… 쉽사리 타인을 따라가려고 하는 성향이 있고, 자기 확신의 과잉이 다른 문제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자신만의 개별성을 지녀야 하되, 자신의 생각을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열린 태도를 취해야 함을 책 전반에 걸쳐서 이야기 한다.
솔직히 이 책에서 이런 내용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유에 대해서 설명하겠지, 라고만 여겼지 자신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포함되리라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이 사고하는 능력에 있어서도 그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다 생각하게 둬야 한다! 라는 뉘앙스가 아니라, 올바르게, 혹은 진리로 향하기 위한 사고 능력을 이야기 해서 의외였다.
이는 저자 스스로가 사색하는 습관이 들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버지에게 교육 받으면서 키울 수 있었던 사색 능력을 평생 잘 활용한 듯하다. 그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도 공명정대하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본인은 힘들었을테지만, 어쨌든 인성 교육이나 도덕 관념은 잘 교육 받은 듯 하다. 지금이나 그 때나 돈이 정치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그런 상황에서 공정하게 정치하려고 노력했던 점이 멋있다. 자신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것만 말한다.
- 어떤 사람의 판단이 진실로 믿음직하다고 할 때, 그 믿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의 비판에 늘 귀를 기울이는 데서 비롯한다. 자신에 대한 반대 의견까지 폭넓게 수용함으로써, 그리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어떤 의견이 왜 잘못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줌으로써, 옳은 의견 못지않게 그릇된 의견을 통해서도 이득을 얻게 되는 것이다. (57)
- 서로 대립하는 두 주장 가운데 하나는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틀린 것으로 확연히 구분되기보다는, 각각 어느 정도씩 진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102)
게다가 이러한 생각의 자유는 온전히 타인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내가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음은, 타인도 마땅히 그러해야 함을 받아들인다. 자기 확신에 대해서 경계를 강조하는 저자는 책의 전반에서 한쪽만이 진리일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여러 의견을 들어 그 안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표명한다. 그 어떤 경우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자신의 사고 논리 안에서만 사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그렇게만 살게 될 테니. 저자의 성장과 진리 추구에 대한 논점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실현을 위한 방법에 있어서도 무척 공감한다. 심지어 너무 터무니없거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주장들도 표현할 수 있게 하고, 들어줘야 한다는 점에 대한 논리적인 이유에 수긍했다.
- 어떤 생각을 억압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행위가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류에게까지 ? 그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반대하는 사람에게까지 ? 강도질을 하는 것과 같은 악을 저지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그러한 행위는 잘못을 드러내고 진리를 찾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설령 잘못된 것이라 해도 그 의견을 억압하는 것은 틀린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비함으로써 진리를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50)
의견에 대해서 열어 두는 것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무척 공감했다. 들어 볼만한 의견이라면 나의 의견을 강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혹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면 그 사람이 진리를 찾을 기회를 박탈하는 경우다. 틀린 의견에 대해 나의 논리적 근거를 더 탄탄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어떠한 경우라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있어서 부당함이 없어야 한다. 한 개인이 성장하는 것을 촉구하는 의도에 모두가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녹아든 내용이라 마음에 안 들 수가!
여기에 성장의 관점에 대해서 더 논의를 하자면 저자는 인간의 성장, 진리 추구, 발전하는 것을 당연한 부분으로 여긴다. 특히 다른 방식들도 많지만 직접 경험하는 것만을 우선 순위로 둘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확인된 결과에 대해 알고, 또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젊은 시절에 가르침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적당히 나이가 들어 경험을 자신의 방식대로 이용하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자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조건이라고 하겠다. 기록으로 남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 가운데 어느 부분이 자신의 환경과 성격에 의미 있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127)
- 자기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선택하는 사람만이 자기가 타고난 모든 능력을 사용하게 된다. 관찰하기 위해 눈을 써야 하고, 앞날을 예측하기 위해 이성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자료를 모아야 하며, 결론을 내리기 위해 이런 저런 차이점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결정하고 나면, 자신의 신중한 선택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확고한 의지와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 (129)
자기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다른 경험을 쌓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경험을 보며 의미를 생각해 자신에게 적용시킬 부분을 고려하는 능력. 그러기 위해서는 위에서 이야기한 내 생각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도 경청하고 장단점 혹은 찬반을 구분해서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최선임을 분명히 한다. 자유라는 단어 자체가 개인에 집중되어 있고, 그러니 자신의 삶을 살도록 독려하는 것도 당연한 흐름이다.
자유에 대해서 저자는 자발적인 행동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어떤 생각이든 행동이든 다 용인하고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이 문제 되지 않는 한, 개인의 자발적인 행동에 간섭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가 자발적으로 무엇인가 선택했다는 것은, 그 일이 자기에게 바람직한 또는 적어도 참을 만한 것이기 때문에 그가 최선이라고 판단한 수단을 동원해서 그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가장 큰 이익을 준다는 사실의 증거가 된다. (213)
아직 내가 이 사항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해서 그런지, 저자의 의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수행하는 모든 행동이 결국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최선이고 가장 큰 이익을 준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지만, 조금은 억지스럽게 갖다 붙인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조언이나 설득 정도는 가능하지만 그 어떤 경우도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 물론 자신의 자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한해서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이 때문에 또 다른 토론 거리가 나오기는 한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경계선을 어떤 사람들로 한정 지어야 하는지 말이다.
- 자유의 원칙이 자유롭지 않을 자유free not to be free까지 허용하지 않는다.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213)
게다가 자유롭고 싶지 않을 선택을 내리는 것도 거부한다. 이에 대한 이유는 이해되지 않았다. 예전에 사회에서 먹고 살기가 어려워 차라리 의식주가 해결되는 감옥이 마음이 편해 일부러 범행을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얼마나 사회가 먹고 살기 힘들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얼마 전 채사장의 늬우스룸을 들으면서 신창원의 탈옥이 떠올랐다.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서 감옥을 빠져나간, 저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의 자유를 수행한 탈옥수는 잘못한 것일까? 감시를 잘 하고, 빌미를 애초에 제공하지 않았어야 하는 건 경찰과 교도관의 일이지, 탈옥수가 자신의 자유를 눈 앞에 두고도 묶어 두는 경우를 이야기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탈옥수가 탈출하게 되면 교도관에게 피해를 주니까 잘못된 행동이라는 게 맞을까? 이런 사항에 있어서 내가 명확히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진 못한 듯 하다.
그렇다면 사회와 개인의 자유는 어떤 연결점이 있을까. 저자는 사회가 개인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금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 사회가 순전히 개인적인 행동에 간섭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런 간섭이 잘못된 방법으로 잘못된 곳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78)
- 공공여론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다른 사람에게 좋고 나쁜 것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생각이고, 실제 대부분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쾌락이나 편의에 대해 그저 자신들의 기분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행동은 전부 자신에게 해를 주는 것으로 생각하며 극단적인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 (178)
이유는 사회가 개인을 제한하는 데는 특별한 목적을 지닐 수도 있기 때문. 개인을 제한하여 사회라는 이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숨겨진 목적이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그저 공공의 선호에 따라 개인을 무시하고 거부하고 몰아내고자 한다. 이는 앞에서 이야기 했던 저자의 열린 의견 수용에 반하는 내용이다. 일관성 있는 주장이다. 대다수라는 것이, 사회라는 것이 결국은 그 생존을 위해 위협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이든 싹을 잘라내려고 한다. 저자는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의 자유를 결코 침해해서는 안 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열어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나는 어느 사회든지 다른 사회를 강제로 문명화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악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그들과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들 눈에 불미스러운 이유로, 당사자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제도를 폐기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193)
여기서 조금 의아한 점도 있다. 부당한 상황에 처해 있어도 개인이 그것을 자유 침해라고 여기지 않으면 바깥에서 도와줘선 안 된다고. 먼저 손 내밀지 않는 이상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 이게 조금 애매하다. 폭력 가정에서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술 안 마실 땐 괜찮다고, 혹은 자신이 맞을 짓을 했다고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그 생활 안에 젖어 들어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무의식으로는 느끼지만 의식적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이럴 때 밖에서 아무리 손을 뻗어 도와주려고 해도 괜찮은가
이런 상황에서 ‘계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들에게 끊임없이 그들의 처우가 잘못되었음을, 자신은 굳이 괜찮다는 데 아니라고, 잘못되었다고 ‘강요’하여 현실을 달리 보게 만들어야 할까? 매트릭스의 빨간 약과 파란 약을 공평하게 선택하게 하는 게 아니라 억지로 깨우고자 하는 게 괜찮을까? 누가 봐도 자신의 자유에 문제가 있고, 생존에 있어 위협이 가해지고 있는데도 일단은 지켜봐야 하는 걸까? 이 부분도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을 최소한으로 한정한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존중해야 하므로. 이에 짚어 볼 사안이 공교육이다. 아이들이 교육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는 부모가 결정할 사항이지 국가가 나서서 현재 우리가 하는 것처럼 교육을 총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정부가 모든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교육을 직접 담당하려고 헛되게 애쓸 필요는 없다. 그냥 부모가 원하는 장소에서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교육받도록 내버려두면 된다. (218)
- 만일 국가가 국민 교육의 전부 또는 상당한 부분을 직접 담당한다면 나는 그 누구 못지않게 반대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성격의 개별성, 의견과 행동 양식의 다양함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왔다. 교육의 다양성도 그에 못지 않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219)
솔직히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교육을 잘 받았기에 이리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부가 교육에 대해 최소한의 수준을 정해놓지 않으면 교육이 제대로 수행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물론 공교육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도 없다. 현재 공교육이 지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보면 이 또한 생각이 많아지는 주제다. 저자가 말한 국가가 직접 담당하면서 커진 문제이기에 다양성을 어떻게 추구해야 할지 고민된다. 교육이 교육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동 학대와 관련될 수 있고, 교육의 질에 따라 아이의 삶이 변화될 수도 있으니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저자가 인간을 보는 관점이 무척 좋다. 특히 가장 좋았던 문장. 그리고 번역가가 주석에 실어둔 원문도 무척 좋았다.
-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 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130)
- “Human nature is not a machine to be built after a model, and set to do exactly the work prescribed for it, but a tree, which requires to grow and develop itself on all sides, according to the tendency of the inward forces which make it a living thing.” (276)
- “If a person possesses any tolerable amount of common sense and experience, his own mode of laying out his existence is the best, not because it is the best in itself, but because it is his own mode.” (277)
우리 인간을 성장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객체로 본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삶의 방식임을 곳곳에서 표명한다. 전체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철학적인 말로 꼬아놓지 않고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쉽고 명료하게 기술하여 받아들이게 하였다. 왜 천재인지, 왜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지도 알겠다. 추후 능력이 된다면 원서로 만나보고 싶다.